"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다시 집을 지을지 모르겠어요. 80세가 넘으신 분들은 농사나 집 짓기를 포기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매일 산불 피해 현장을 오가며 주민들과 만나 온 한 군의원은 걱정이 크다. 60~70세 주민들만 해도 영농 복귀나 집 짓기에 의지를 보이지만, 나이가 고령일수록 다시 시작하길 포기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기였다.
'괴물 산불'로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남은 큰 숙제 중 하나는 '새집 마련'이다. 이재민에게 제공되는 모듈러주택이나 컨테이너하우스 등 임시 주거시설은 기본 1년, 길어야 2년이 되면 비워 줘야 한다.
대피소에서 만난 한 주민(76)도 좌절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산불로 집과 전 재산을 잃었어요. 임시 주거시설을 매입하든지 새로 집을 지어야 하는데, 결국 빚을 내라는 얘기잖아요. 이 나이에 빚을 내서 어떻게 갚으라는 건지…."
집을 짓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 부담이다. 최대 3천600만원인 정부 지원금으로는 턱도 없고, 국민 성금을 더해도 건축비는 여전히 큰 짐이 된다.
여유 자금이 생기더라도 제대로 집을 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집터부터 걸림돌이 된다. 살던 곳에 건물을 신축하려면 건축법상 4m 폭의 도로와 2m 이상 붙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래된 마을의 경우 도로 폭이 2~3m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운기가 드나들거나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다.
도로 4m 요건을 맞추려면 내 땅의 일부를 도로로 내주는 수밖에 없다. 토지 소유주가 본인이 아니거나 옆집 경계와 물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집터가 해결되면 건축비를 둘러싼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통상 가장 저렴한 건축 방식은 샌드위치 패널을 이용한 경량철골조 주택, 이른바 '판넬집'이다.
100X100㎜ 아연도각관을 뼈대로 세우고, 두께가 얇은 강판 두 장 사이를 단열재로 채운 샌드위치 패널로 벽체를 만드는 방식이다.
화재 시 불씨를 화염으로 키우기로 악명 높은 바로 그 건축자재다. 정부는 지난 2021년 샌드위치 패널 충진재를 불연재나 준불연재로 사용하도록 규정을 강화했지만,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외부 마감재는 패널 바깥쪽에 사이딩이 붙어 있는 사이딩 일체형 패널을 사용하고, 지붕은 경사지붕으로 마무리. 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방식이면 화장실과 주방 등을 더해 3.3㎡당 500만원가량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지어도 건축비는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여기에 각종 인허가 비용과 부대시설 설치 비용까지 더한다면 건축비는 20%가량 추가된다.
이 과정에서 시공업자와 공사비나 하자 보수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획일적인 형태의 집으로 채워진 농촌 마을 풍경도 그리 아름다울 리 없다.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집 짓기를 주민들의 몫으로만 남겨 둬도 될까. 지자체가 개입해 주민들이 집 짓기를 선택하기 쉽도록 폭을 넓혀 주는 방법은 어떨까.
지자체가 공모를 통해 표준 주택 설계안 4, 5개를 선정하고, 각 설계안에 따라 최적의 시공을 해 줄 수 있는 업체들도 입찰로 선정하는 것이다.
주민이 원하는 면적과 구조의 표준 설계안을 고르면, 준공과 하자 보수까지 낙찰받은 시공업체가 도맡아 진행하는 방식이다.
집을 짓지 않고 방치하면 사람이 떠나고 마을은 무너진다. 대형 산불에 빨라진 지방 소멸 위기를 늦추려면 생각의 틀을 깨는 다양한 정책적 대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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