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이 아님에도 아파트 단지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은 고양이가 근래 들어 유독 바쁘게 움직인다는 걸 모르기 어려웠다. 고양이의 배는 도도록이 솟은 걸 넘어 중력을 한껏 받아 거의 땅에 닿을 것 같았다. 영역을 잘 확보해 뒤룩뒤룩 살이 찐 비만형이 아니라는 걸 주민 상당수는 알아챈 듯했다. 생명을 잉태한 동물에게 갖는 경외감이 보편적 인류애처럼 퍼져 고양이를 보는 눈은 측은한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즈음 '그 뉴스'에 격분한 건 인류애를 훼손하려는 고의가 느껴진 탓이었다. 분명 쓰던 국자였고,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이었다. 잘못 보낸 걸지 모른다며 인륜에 부합하는 '선한 의도'를 지우지 않으려 애썼으나 중고 물품은 한둘이 아니었다. 낡은 옷도 '기부 물품'이라는 이름으로 답지(遝至)했다.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이 갈마들다 분노로 발화한 건 '착불 택배'(수신자 요금 부담)도 있다는 대목에서였다. "와 이케싸?"(왜 이러는 건데?)
기부로 부풀어 오를 애민 정신을 방해하고 싶진 않다. 벼룩에 굴레를 씌우는 기술이라도 어디든 쓸모가 있을 거라 짐작하며 일단 받아 쓰고 싶은 게 이재민의 마음이라지만, 뭐든 주면 고마워할 것이라는 건 착각이다. 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착각은 시혜자(施惠者)의 자세일 뿐이다. 자신이 주고 싶은 걸 보내는 부박(浮薄)한 기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기부에 앞서 '적재적소'라는 말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주는 대로 받으라는 식은 곤란하다. 필요한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최근 지진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미얀마에 '그 사람들도 밥은 먹어야 할 테고 그들도 쌀이 주식이라니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여분의 김치를 보내자. 한국의 음식 문화도 알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식'이라며 김치를 다짜고짜 보내면 단교(斷交)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린란드 이누이트의 별미 '키비악'을 받았을 때 심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부적절한 기부 물품을 이토록 성토하는 건 이재민의 회복 의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부의 본질은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서 확산하는 선한 영향력에 있다. 집은 물론이고 생필품 모두를 잃어 망연자실한 이들이 중고 물품을 받고 우두망찰할 상상을 하면 아찔하다.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일어나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무지를 죄로 몰아 비난하는 건 선의가 몰각(沒却)되므로 비인간적일 수 있지만 고의라면 다르다.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더럽히는 악질적인 훼방이다.
일본 속담에 '일가들은 울며 모여들고 남들은 먹으러 모여든다'는 말이 있다. 불행한 일이 닥치면 친척들은 동정과 애도를 위해 찾아오지만 남들은 이익을 챙기려 하거나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구경하러 온다는 뜻이다. 악행을 반복해도 관행처럼 넘기면 나중엔 잘못인지도 모르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재깍 법이 되는 시대인데 더불어민주당이 민생을 보듬는 법률안으로 가칭 '허위 구휼 및 생색에 관한 처벌법'이라도 만들어 기부 빌런들을 엄히 다스리길 바라는 심정이 된다.
그렇기에 이참에 명쾌하게 정리한다. 우선 수신자 부담 착불 택배 따위는 안 된다. 인력이 필요한 곳에 재능 기부를 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짜고짜 가서 봉사하겠다고 하면 민폐가 될 수 있다. 중고 물품도 금한다. 만약 영험하거나 마력이 있다면, 예컨대 만파식적급 도구나 식기라면 무방하다. 단, 실행 설명서를 첨부하거나 본인이 직접 와서 기사(奇事)를 시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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