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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황영은] 덕질 예찬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소위 '덕질'은, 사람이든 음악이든 예술 작품이든 어느 한 분야에 깊이 빠져서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가리켜 말한다. 한때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 혹은 아이돌 가수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에 머물렀다면 이제 이 덕질의 범위는 매우 넓고 다양해졌다. 특정 감독의 영화나 스포츠 선수, 유튜브 채널, 케이팝, 게임, 피규어 등등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가지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덕질의 어원은 일본어 '오타쿠(1970년에 등장한 일본의 신조어. 넓은 의미로는 특정 분야에 광적으로 파고들며 분석하는 사람, 좁은 의미로는 일본 애니메이션풍의 콘텐츠 서브컬처 문화를 취미로 하는 사람을 일컬음)'에서 유래된 '덕후'라는 단어로부터 파생된 의미이다.

필터 없는 무조건적인 맹종은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고로 과거에 덕질의 대표 이미지로 각인됐던, 아이돌 가수를 따라다니며 과도하게 몰두하는 그 행위에 부정적 인식이 짙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랬는데,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SNS가 발달하고 자기 PR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덕질은 '나'를 피력하고 또 어필하는 하나의 도구로서도 자리매김해 나간 것 같다.

당장 필자 주변의 사람들만 봐도 어디 한 가지씩에는 빠져 있는 듯하다. 인도 영화, 뮤지컬 배우, 낚시, 세계의 오지 음식 등등 그 영역도 대상도 가지각색이다.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귀중한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좋아하는 분야 속으로 깊숙이 침투한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사사로울 수도 있는 한 부분이, 다른 누군가에겐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죽도록 좋아하는 구역으로 테두리를 설정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도파민에 예민하다.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로서 기쁨이나 보상, 동기 부여와 관련이 깊은데, 과장을 좀 보태어 이 덕질이란 합법적 도파민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인간이 소소한 흥미에 빠져서 한없이 설레며 일상의 행복을 찾는 행위, 그 가슴 떨리는 순간이 도파민의 분출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또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열광하다 보면 자연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될 테고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끼리의 사회적 연결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나아가 자아 성취감까지 만끽하는 등 다방면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거라고 짐작한다.

덕질은 또한 나를 만나는 하나의 행위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서 그것을 내 안으로 깊숙이, 마음이 지구라면 두터운 맨틀을 뚫고 외핵, 내핵의 중심 그 정점에까지 스며들게 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니까. 마법 같은 마력. 덕질을 이렇게 예찬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를 연결해 주는 스페셜하고도 소중한 끈이자, 이전까지 무중력이었던 내 생을 단번에 휘감아 끌어당기는 중력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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