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수용] 불안과 공포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행복을 정의하는 여러 기준 중에 불안하지 않은 상태도 포함할 수 있다. 정신적·물질적 결핍(缺乏)에 대한 불안, 신체적 위해(危害)에 대한 불안,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삶은 온통 불안에 휩싸여 있다. 불안의 다른 얼굴은 예측 불가능한 변동성이다. 축적된 정보값을 벗어난 결과가 수시로 발생할 때엔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미국 증시와 국채가 최고의 안전 자산으로 여겨진 이유는 누적된 데이터가 알려주는 예측 가능성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도널드 트럼프의 한마디에 세계 경제는 하루가 멀다고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관세(關稅)가 이토록 무서운 단어임을 미처 몰랐다. 세계 증시는 기록적 폭등락을 거듭하며 투자자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공포지수(恐怖指數)로 불리는 'VIX(Volatility Index)'는 변동성을 예측하는 지수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1993년에 도입했는데, S&P500 지수 옵션의 가격을 기반으로 계산한다. VIX가 높을수록 시장의 불확실성과 공포가 크다. 지수 30 이상이면 극심한 혼란으로 본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82.69로 사상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발발(勃發)하면서 50을 훌쩍 넘겼는데, 코로나 이후 최고치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도 급등락을 거듭했다. 코스피가 급락할 때 급등하는 특성이 있는데, 지난주엔 지난해 8월 '블랙먼데이' 이후 최고치인 44.23을 기록했다가 28.20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 불확실성 지수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에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언론 기사 중 제목과 본문 등에 '정치'와 '불확실'을 포함한 기사 수를 집계해 산출하는데, 지난 13일 기준 2.5(일주일 이동평균)로 집계됐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12.8로 역대 최고치였을 때보다 많이 낮아졌지만 계엄 사태 전 0.4~0.5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불확실성의 난무(亂舞)로 예측 가능했던 일상이 불안과 공포에 잠식됐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흑백 구분조차 모호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시대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믿고픈 대로 보는 습성을 떨쳐 버리고 넓고 깊게 들여다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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