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식(寒食)은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이다. 보통 명절에는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제사 지내고 가족이나 이웃과 나눠 먹으니, 설날의 떡국, 단오의 수리취떡, 추석의 송편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식에는 불 사용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게 하였기에, 차려 낼 음식이 없었다.
한식은 그 유래가 되었다는 개자추(介子推)를 추모하며 불을 못 때서 꽃샘추위에 떨고 찬 음식을 먹으며 조상의 묘에 제사 드리는 우울한 날이었다. 조선 이달(李達)의 "흰둥이 앞서가고 누렁이 뒤따라오는데, 들판 풀 사이로 무덤이 줄지어 있다네. 늙은이는 제사를 마치고 밭 사이 길로, 저물녘 취해 아이 부축받고 돌아오누나"라고 한 시에서 한식의 우울한 정서를 잘 볼 수 있다.
중국 진(晉)나라의 중이(重耳)는 춘추 시대 헌공(獻公)의 둘째 아들이자 태자 신생(申生)의 아우인데, 헌공이 여희(驪姬)를 총애하여 신생을 죽이자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 귀국하여 훗날 문공(文公)이라 불리는 왕이 되었다.
중이가 제후국을 전전하며 온갖 고초를 겪을 때 개자추(介子推)라는 가신(家臣)이 제 허벅지를 베어 중이에게 먹이는 등 충성을 다해 보필하였다. 그런데 중이가 왕이 된 뒤에 행한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개자추만 제외되었다. 그러자 개자추는 왕의 처사를 원망하는 용사가(龍蛇歌)를 지어 부른 뒤 면산(綿山)에 숨었다. 뒤늦게 왕이 개자추를 찾았으나 그가 산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기에,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면산에 불을 질렀지만, 그는 나무를 끌어안고 불타 죽었다. 이에 개자추를 추모하기 위해 그가 죽은 날 불을 피우지 못하게 금한 것이 한식의 기원(起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문제는 문공의 처사이다. 문공은 19년간 망명 생활의 고초(苦楚)를 견뎌 내고 귀국하여 극도로 혼란하였던 진나라를 안정시켜 패자(霸者)가 되었으니, 그는 정치적 능력이 있었으며 역사 기록에서도 그가 훌륭한 인재를 기용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문공이 개자추를 잊었을까? 개자추는 문공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그와 상이한 평가도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성현(成俔)은 '개자추를 조롱하다'라는 시에 "부귀는 하늘 위 구름이고, 공명은 길 가운데 흙이라네. 급급히 보답받을 작정 하니, 잘기가 장사꾼과 한가질세… 살아서는 진나라 명신으로 말고삐 잡고 왕 위해 헌신하다가, 죽어서는 재앙 내리는 악귀가 되어 영원히 비웃음거리가 되었네. 후인들은 또 무슨 죄가 있길래, 해마다 이런 해독을 입는가? 서울 안에는 불 사용 금지령이 엄해, 모든 집의 새벽 솥이 썰렁하고, 무덤 가득한 공동묘지에도, 제사 올리는 향 연기 끊겼네"라고 하였다.
제 허벅지를 베어 주군에게 먹일 정도의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공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큰 불만을 가진 사람에게 권력을 쥐여 주는 처사가 몹시 위험하다는 사실을 진 문공이 간파한 것은 아닐까? 진 문공은 개자추와 같은 극단적 인물을 기용하지 않는 정치적 혜안을 지녔기에 패자가 될 수 있었다.
목하(目下)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이 속속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물론 그중 가장 능력 있고 신망 있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개자추 같은 가신의 위험성도 잘 아는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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