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이정식] 2025년 노동절, 포용적 성장을 위한 사회적 대전환의 시점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다가오는 5월 1일, 제135주년 세계 노동절을 맞는다. 노동절은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연대를 전하며, 동시에 노동의 본질적 의미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 활동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노동현실은 이 가치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지 못하다.

2025년 현재, 노동시장은 다층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비정규직 확대, 세대 간 고용 격차, 고령층의 생계형 노동, 플랫폼 노동의 확산, 디지털 전환이 초래한 불안정성 등 복합적인 위기가 고용 기반을 흔들고 있다.

청년층은 노동시장 진입 단계부터 불리한 조건에 맞닥뜨린다. 2024년 기준 20대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3.1%에 이르며, 청년 실업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 불안정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커리어(career) 단절과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대졸 초기 취업자 중 상당수가 계약직이나 시간제 일자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현실은 청년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중장년층도 예외는 아니다. 실직 이후 재취업까지 평균 수개월 이상이 소요되며, 재취업 시 임금이 30% 이상 감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생애소득 저하를 넘어, 삶의 질과 사회 통합 기반까지 위협한다.

고령층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의 다수는 퇴직 후 생계를 위해 취약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이는 복지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플랫폼 노동자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220만 명 이상이 플랫폼 기반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이 창출한 새로운 일자리 속에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지표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를 장기적 시각에서 대응하고 있다. 독일은 직무 표준화와 전환 훈련을 강화하고, 프랑스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 기준을 법제화했다. 덴마크는 실업급여와 재취업 코칭을 연계해 전직을 촉진하고, 일본은 지역별 최저임금 체계를 도입했다. 각국의 조건은 다르지만,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하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 대응하는 사회만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변화를 선도할 것인지, 아니면 대응에 뒤처져 도태될 것인지. 지금 필요한 것은 진정성 있는 사회적 논의와 실천이다. 고용의 질과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고, 다양한 이해 주체가 참여하는 협력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어느 일방의 주장만으로는 구조 개편을 이뤄낼 수 없다.

공정한 임금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공공부문부터 적용하고, 민간 부문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중소기업의 임금 구조 개선에는 실질적인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직업훈련과 역량 개발도 핵심이다.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는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산업계가 참여하는 실효성 있는 재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기술 변화에 취약한 계층을 위한 맞춤형 훈련 설계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층적 노사정 대화를 제도화하고 실질화해야 한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시간, 플랫폼 노동, 고령 고용 등 노동시장 핵심 의제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정책은 위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공감과 참여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노동절은 과거의 투쟁을 현재에 비추어 기리며, 내일을 준비하는 사회적 다짐의 날이다. 포용적 성장, 지속 가능한 고용, 인간다운 노동은 선언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구조를 바꾸는 실천, 제도를 만드는 연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형식과 실질의 일치로 노동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노동, 함께 나아가는 성장을 위해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할 때다. 2025년 노동절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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