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대한제국의 국내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점이었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은 한반도 지배에 눈을 돌리고 있었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때 '만추리아호'가 인천항에 도착한다. 배에는 당시 21세였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가 타고 있었다. 만추리아호를 타고 온 대규모 미국 아시아 순방 외교 사절단은 대한제국 방문 전, 일본에서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와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에 동의한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서명한 뒤였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국제적으로 용인된 순간이었다.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고종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일본의 침략을 막아줄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라 생각해 앨리스를 공주로 생각하고 극진히 대접한다. 황실 악단이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수천 명의 인파는 황실 가마를 타고 덕수궁으로 향하는 앨리스 일행을 환영했다. 고종은 그해 왕실 사진사인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을 불러 곤룡포(袞龍袍)를 갖춰 입는다. 덕수궁 중명전(重明殿) 1층에서 촬영한 고종의 눈빛은 망연해 보였고, 어진 사진은 앨리스가 떠나는 날 고종과 아들 순종의 사진을 함께 액자에 담아 전달되었다.
이수인 연출의 <어둠상자>(전주시립극단)는 1905년에 을사늑약 직전 촬영한 고종 황제의 사진 한 장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102년간(1905~2012)의 기억의 층위를 다루고 있다. '어둠상자'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즉'어두운 방'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카메라 장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어둠상자>는 이강백 작가의 알레고리로 전유된다. 사진을 촬영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빛(진실)을 담기 위해 어둠(망각, 은폐, 고통)을 거쳐야 한다는 역사의 기록이자, 망각된 진실을 복원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극은 사진 한 장을 통해, 대한제국을 포위해 오는 일본의 강탈 속에서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고종 황제의 비극적 내면과 대한제국의 역사성을 포착해 내고 있다. 극 중에서 고종 황제가 승하(1919)하는 날, 김규진에게 고종의 밀지가 전달된다."육손 경, 미국 공주에게 선물한 사진을 찾아서 깨끗이 없애주오. 그 사진이 없어지지 않으면, 나는 죽어서도 영원히 그 치욕을 잊지 못할 것이오."고종 황제의 사진 한 장으로 1905년 앨리스가 황실을 방문하던 시점부터, 2012년 덕수궁에서 개최된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한제국 황실 사진전('대한제국 황실의 초상')까지, 고종 황제의 마지막 어진을 촬영한 황실 사진사 김규진의 4대에 걸친 서사의 교차점을 포착하며, 작가의 '황실 사진사 4대 가족의 이야기'는 이수인 연출 특유의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 마지막 사진의 역사성.
앨리스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환송장에서 황제와 황태자(순종)는 자신들의 사진을 내게 주었다. 사진에는 황제다운 존재감이 없었으며, 애처로운 모습이었다."<어둠상자>에 등장하는 고종 황제(이병옥 분)는 김규진에게 극 초반 이런 대사를 한다."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어디요? 미국이요, 미국!. 조미통상조약 맺을 때, 미국은 우리를 보호하겠다고 굳게 약속했소. 지금 대한제국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구려. 짐이 일부러 소담한 증명전의 복도를 택하고, 우리 고유의 임금 옷을 입은 까닭은, 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이끌어 약속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오." 고종이 앨리스에게 선물한 사진은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 소니언 재단 산하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 아카이브(Freer Gallery of Art and Arthur M. Sackler Gallery Archives)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사진은 대한제국 연호인 광무 9년(1905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일행단에게 선물한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채색된 고종의 흑백사진은 2019년 미국 뉴어크박물관이 한국문화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905년 김규진이 촬영하여 미국 외교 사절단에 전달한 사진으로, 가장 오래된 고종 황제의 초상사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진은 외교 사절단과 함께 앨리스와 방한한 미국 철도·선박 재벌 에드워드 해리먼(1848~1909)의 소장품으로, 1934년 그의 부인이 기증한 것이다. 을사늑약 직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고종은 그 조약을 직감하고 있었는지, 두 손을 모은 채 사선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애처롭게 보인다. <어둠상자>는 사진 한 장을 통해, 치욕스러운 어둠의 시간을 배회하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고종 황제의 굴욕의 역사를 담아내며, 여전히 근현대사의 어둠상자에 갇혀 있는 시대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

◆인화되는 역사와 기억의 알레고리
<어둠상자>는 알레고리의 구조의 작품이면서도 연극임을 환기하는 메타극으로, 이수인 연출이 이끄는 극단 떼아뜨르 봄날이 추구해온 형식들이다. 탈재현성이 중심이 되는 이수인 무대에서 배우들의 행동하기는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감각적 행위로 전달되기보다, 감정을 전소시키는 덜어내기 방식의 리듬감으로 양식화되어 장면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대사도 극 중 인물의 내면을 확장하는 감정으로 동일화되기보다, 서사를 완충시키는 음악, 배우의 퍼포먼스, 오브제를 통해 서사를 전달한다. 배우들(앙상블)의 허밍의 리듬은 현대적인 코로스 언어가 되면서도, 좌우로 한 발, 뒤로 두 발, 물러서서 네 발, 연속적인 동작의 리듬 속 장면을 대비시키는 장면 전환은 극적 효과로 나타나게 된다. 인물들의 대화나 극중 장면은 메타적 놀이성으로 유희되는 언어로 지속되고, 그 사이를 연결시키는 리듬과 행위, 몸동작으로 이루어진 이수인 표현 형식은 이강백의 알레고리 구조와 연극임을 환기시키는 메타극적 특성이 무대에서 중화되면서,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와 기억, 그리고 연극적 재현의 경계를 끊임없이 자각하게 만드는 자기 반성적 체험의 장으로 확장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 따르면, 알레고리는 "부분과 전체가 동질적 관계를 맺지 않는 상징 구조"이며, 단편화된 이미지들이 모여 총체적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연극에서 '사진'은 단지 기술적 장치가 아닌, 역사의 단면을 압축하는 은유의 장치로 기능된다. 4대에 걸친 인물들의 사진 촬영 행위는 각기 다른 시대 상황(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현대)에 대한 응축된 서술이자, 그 시대의 권력과 윤리에 대한 은유적 재현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개별 서사가 아닌, 굴욕적인 폭력과 역사, 기억과 망각의 거대한 역사의 알레고리로 확장된다. 이러한 알레고리적 구조는 사진이라는'정지된 이미지'가 가진 역사의 시간성과 맞물린다. 사진은 과거의 순간을 현재에 불러오는 장치이며, 그 자체로 과거를 소유하려는 욕망과 불가능성을 내포한다. 이처럼 <어둠상자>의 사진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이 인화되지 못한 필름과 같은 알레고리이다. 사진 한 장은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종의 실물 주체와 사진의 객체를 동일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실체이며, 그 사진을 제거함으로써 굴욕의 역사를 지워내고자 하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내면을 작동시키는 실제의 역사인 것이다.

◆ 사진 한 장으로 유전된 역사와 몸의 기억
4막으로 구성된 이강백 작 <어둠상자>는 1막에서 1863~1933년까지 해강 김규진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직전, 경운궁 중명전에서 앨리스에게 전달할 고종의 사진 촬영부터 앨리스의 방문, 한일병합(1910), 3·1 만세운동으로 촉발된 고종의 승하(1919.1)와 독살설, 통감부 설치, 그리고 "치욕적인 사진을 대를 이어 없애 달라"는 김규진의 유언까지가 그려진다. 2막은 대를 이어 경성사진관을 운영하는 2대 김석연(1893~1942)의 서사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육손으로 태어나 아버지로 믿는 김석연의 아들 이야기, 첼로 연주자 김혜영과의 결혼, 제2차 세계대전과 진주만 공습,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 천황의 항복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김석연의 죽음까지이다.
3막은 할아버지 손을 닮아 육손으로 태어난 3대 김만우(1926~1989)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시점부터 파동되는 김만우의 서사는 카투사 병으로 입대하면서 치욕적인 고종의 사진을 없애기 위한 분투기로 전개된다. 미 육군 캠프 험프리스 시절부터, 제대 후에도 결혼하지 않은 채 '식스 핑거 사진관'을 운영하며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있는 고종의 사진을 찾기 위한 여정이 펼쳐진다. 그는 미혼으로 살다가 대리모를 통해 얻은 아들에게 1대 김규진의 유언을 대물림한다. 1대부터 고종의 사진을 찾아 대를 이어가는 <어둠상자>는, 4막에서 4대 김기태(1984~2012)를 통해 역사적인 고종의 굴욕적인 사진이 망치로 제거되는 결말에 이른다. 2012년은 실제로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전(1880–1989)'이 개최된 해이기도 하다. 해강 김규진에 의해 중명전(重明殿)에서 촬영되어 앨리스에게 전달되었던, 미국 뉴어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고종의 마지막 사진도 이 전시에 포함되어 있었다.
88올림픽 시절, 암 병동에서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바라보며 암투병을 하던 중 다섯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유품으로 남겨진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유언의 마지막 구원투수로 나선 4대 김기태는 우연히 국립현대미술관 직원을 만나, 미국 박물관에 있는 고종 황제의 사진을 가져올 수 있는 대한제국 황실 사진 전시회를 제안하게 된다.'엄마'라고 부르는 미술관 직원 강윤아(홍자연 분)와의 소소한 사랑 이야기, 그리고 대한제국 황실사진 전시회 날, 채색되어 있는 고종의 사진이 담긴 유리 전시대를 망치로 내리치며 고종의 치욕의 역사를 4대에 걸쳐 끝낸다. 그러나 전시 마지막 장면에는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같지만 다른 고종 황제의 사진이 다시 걸리며 역사의 여운을 남긴다.

<어둠상자>는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허구가 공존한다. 황실 사진사이면서도 근대 서화가였던 해강 김규진의 존재, 고종 황제의 마지막 사진과 앨리스, 2012년도 덕수궁 현대미술관의 대한제국 황실전, 2018년 미국 뉴어크박물관에서 한국문화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채색된 고종의 흑백사진은 팩트다. 육손으로 설정된 김규진과 가부장제 중심으로 고종의 굴욕적인 사진을 찾으려는 4대의 이야기, 같지만 다른 고종의 마지막 두 장의 사진(극에서는 두 개의 원본이 존재한다. 그중 한 장은 앨리스에게, 또 다른 사진 한 장은 김규진이 보관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작가적 상상으로 서사화된 허구이다. 작가는 고종 황제의 사진과 미 사절단의 방문 사실을 기점으로,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의 폐망은 앨리스에게 전달된 굴욕적인 사진 때문일 수 있다는 작가적 상상을 토대로 <어둠상자>의 플롯을 구조화한다. 사진 속 고종은 창백한 얼굴, 움츠린 어깨, 텅 빈 시선 등으로 묘사되며, 외부와 단절된 덕수궁 안에서 정치적으로 무력화되고 외교적으로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아가는 고독한 '대한제국 황제'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폐위된 황제로서, 대한제국의 몰락과 식민지 시대의 비극을 상징하는 역사적 이미지의 알레고리로 상징화된다.
작가는 "이 사진 한 장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민족적 경험을 상징하는 객체로서, 사진이 사라질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임을 기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진은 같지만 다른 사진으로 박제화되면서, 한국 사회는 대한제국 고종의 역사적 평가와 식민지 시대의 잔해들이 여전히 <어둠상자>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상자>에서는 극 중 인물 1대 김규진과 3대 김만우를 육손으로 설정했다. 특히 3대의 육손은 1대 김규진의 환생적 이미지로 설정되어 있다. 육손은 고종 사진의 이미지처럼, 대를 이은 역사적 굴욕을 배어내지 못한 유전과 아픔을 은유하면서도, 식민 권력의 폭력으로부터 근대화된 기형적 모순을 함축한다. 해방 정국을 거쳐 한국전쟁 시기에 카투사가 된 김만우의 육손 또한, 유전된 몸에 새겨진 육손으로서 기억해야 할 역사로 환기되고 있다.

◆ 알레고리와 메타극 사이: 이수인 연출의 연극적 환기 장치
무대는 여백과 침묵이 만들어내는 <어둠상자>의 긴장감으로 절제되어 있다. <어둠상자>의 서사는 역사의 시간을 교차한다. 극중 인물들은 고종 황실 사진사 1대 김규진부터 4대 김기태까지 시간이 교차하거나 맞닿지 않은 채 각자의 시대를 살아가며, 증조부 김규진 대부터 시작된 굴욕적인 고종의 사진을 없애기 위한 4대 가족 이야기를 이수인 연출은 서사의 인과성을 해체하고, 시대의 역사성을 병렬적인 장면으로 배치한다. 이수인 연출은 물리적 장치보다 최소한의 무대 구조화된 미니멀한 장면 배치를 선호한다. 조명, 음향, 배우의 동선과 앙상블로 무대를 정동의 이미지로 극대화한다. 극중 인물의 다층적인 캐릭터, 장면과 장면 사이에 배합되는 메타적 놀이성, 앙상블의 허밍과 연극을 뻔뻔하면서도 유쾌하게 환기시켜내는 코믹성은 여전하다. 비극적인 장면에서는 웃음으로 치환시키고, 고종 황제가 승하할 때는 장송곡의 멜로디를 현대적인 앙상블로 시각화한다. 이수인 연극에서 한 발, 두 발, 뒤로 세 발로 툭툭 거리며 한두 바퀴 스윙으로 턴하고 유연하게 치고 빠지는 코로스(앙상블)들은 장면을 연결하는 이수인표 재료이면서도, 여전히 연극이 허구임을 알리고 환기하는 장치로서 서사의 몰입을 경계하고 감정 이입을 최소화하는 거리두기 방식이다.
첫 장면에서 4대가 가족 소개를 하는 장면에서는, 4대가 등장할 때면 "아직 등장할 때가 안 됐는데"라는 대사에 관객은 연극임을 인지하고, 장면마다 연극적인 환상을 현실화하는 대사와 장면에 웃음이 끊이지 않게 된다. 관객은 이수인 연출의 트릭에 의해 역사적 사실과 연극적 허구의 경계를 유람하며, 때로는 과장된 연기와 캐릭터, 진지하면서도 황당한 설정, 의외적인 장면 구성과 동작,'황성옛터','봄날은 간다', 윤심덕의'사의 찬미'등 허밍의 멜로디로 앙상블을 배치하는 무대에서 일루전을 무력화시키며, 비극성과 희극성을 오가면서도 극이 균열되지 않도록 뻔뻔함으로 진지함을 유지하는 것은 이수인 연극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이수인은 4막까지 고종의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역사성이 소멸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반복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환기시켜낸다. 전주시립극단과의 작업을 통해 이수인 연출은 작품에 다양한 '조미료'를 더하면서도 예술성과 대중성이 적절히 결합 된 무대로 전환한다.
특히 무대의 '암전' 혹은 빛이 투사되는 공간과 어둠의 상태는 단순한 장면 전환의 틀을 넘어, 사진기처럼 어둠 속에서 빛의 흔적을 기억하게 만드는'기억의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연출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죽음의 전조(punctum)'개념과도 연관된다. 무대 위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역사의 죽음을 품은 정지된 순간이며, 관객은 그 순간을 응시함으로써 고종 시기의 대한제국부터 현재까지 4대에 걸친 역사 변화를 실감 있게 체험하게 된다.4대에 걸친 인물들의 사진사 설정은 각기 다른 시대 상황(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현대)에 대한 증언이자, 정치 권력에 대한 은유적 재현으로 작동된다. 이를 통해 <어둠상자>는 어둠 속에서 여전히 배회하는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에 대한 알레고리로 확장되며, 작가 이강백과 연출 이수인의 장점이 융합된 작품이다. 그만큼 이수인 연출은 이강백의 알레고리를 이수인표 언어로 중화시켜 무대 전체에 역사적 진실의 편린들을 구성하고, 을사늑약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산업화, 88올림픽과 민주화 시대까지 102년의 반환점을 돌며, 굴욕적인 고종의 사진 한 장을 단순한 '기억의 인화지'를 넘어, 기억해야 할 식민의 비극적 역사이자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는 어둠의 근현대 역사로 그려낸다. 어두움을 교체하고 도려냄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전환의 계기를 희망하게 된다.

◆ 에필로그, 끝나지 않는 근대
특히 전주시립극단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의 리듬감과 연출의 공간 구성은 전주 한옥처럼 형식미가 돋보였고, 전주비빔밥처럼 무대의 맛을 풍부하게 살려냈다. 고종의 마지막 어진을 찍은 황실 사진가 집안의 4대에 걸친 102년간의 이야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서사임에도, 이수인 연출의 비극적 코미디 감각이 장면을 유연하게 뒤집고, 캐릭터를 만화적으로 비틀어 웃음을 유도했고, 관객은 웃음과 진지함으로 보답했다. 장면 사이의 허밍, 트로트와 가요를 교차 배치하며 108년의 서사를 빠르게 따라가게 만드는 연출의 감각은 2시간의 러닝타임을 5G의 속도감처럼 완주하게 만든다. 2018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0주년 기획공연 초연보다 완숙한 인상을 주었다. 연출 구조가 크게 변화된 것은 없었으나, 전주시립극단의 특성상 배우들을 중심으로 대중성을 보완한 것이 주요했다.
고종 역을 맡은 전주시립극단의 이병옥 배우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그는 고종 사진에 내포된 연약함의 이미지보다는 대한제국의 역사성과 평가에 당당하게 맞서며, 제국을 지키려는 인물로서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1층 객석은 만석이었고, 연령층은 다양해 보였다. 초·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관객층이 작품을 집중해서 본다는 것은 국공립극단에서의 낯선 풍경이면서도, 작품들이 대중친화적으로 개발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관객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국공립극단들이 대체로 실험적인 작품성과 예술성만을 부각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시민들을 위한 연극예술의 보편성을 위해 예술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작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수인 연출의 <어둠상자>나 고선웅 연출이 이끄는 서울시극단의 작품들, <트랩>, <퉁소 소리>, <코믹> 등은 대체로 시민을 위한 대중친화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으며, 이는 시극단이 그 방향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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