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맘때, 경북 북부의 하늘은 검은 재로 뒤덮였다. 의성에서 시작된 거대한 불길은 안동과 청송을 거쳐 영양과 영덕까지 집어삼키며 10㏊에 가까운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4천 채 넘는 집들이 사라졌고, 지역사회는 급속히 무너져 갔다. 경제적 피해는 1조원을 넘어섰다.
피해 규모만큼이나 지역 주민들의 삶은 참담하다. 가족들의 터전을 잃고 눈물 짓는 노인들, 꿈꾸던 미래를 잃고 떠나는 주민들의 뒷모습이 그날의 참혹함을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재난은 때때로 변혁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북부는 오래도록 '낙후된 변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농업과 축산업에 의존하는 단순한 산업 구조, 제조업 부재로 인한 일자리 부족, 젊은 층의 이탈과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한계가 지역 발전을 막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 혁신의 혜택은 대도시에 집중됐고, 경북 북부 지역은 그 흐름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역이 안고 있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번 재난은 지역의 근본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다.
피해 지역의 재건은 이제 단순히 피해를 복구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 산업과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와 같은 현금 지원이나 단기적 복구 사업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 경북 북부가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과 변화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인재를 돌아오게 하는 비전을 세워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유사한 재난 속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2021년 딕시 화재로 큰 피해를 본 캘리포니아 북부는 지역의 노후화된 전력망과 낡은 인프라를 완전히 재구성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주민과 기업, 정부가 힘을 합쳐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 태양광과 배터리 저장 시설 등 재생에너지 기술을 도입하며 친환경 미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 지역은 재생에너지 산업의 상징이자 기후 위기 대응의 선도적 모델이 됐다.
경북 북부 지역도 캘리포니아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한다. 산불 피해 지역을 재생에너지 산업 클러스터로 조성하고,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에너지 자립 마을로 전환할 수 있다. 단순한 산림 복원을 넘어 주민 참여형 생태복원 사업을 전개하고, 산림 자원을 활용한 바이오매스 에너지 사업 등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교육과 기술 훈련을 통한 인적 자본 강화도 필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센터를 설치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술과 환경 복원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재건 사업은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단순한 복구를 넘어 장기적이고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한 국가 전략의 하나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별법 제정과 더불어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기술 지원, 제도적 인센티브 제공 등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다가오는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할 만큼 중요하다.
산불이 남긴 것은 절망만이 아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할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과감한 발상과 강력한 추진력이 요구된다. 잿더미 위에서 재생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경북 북부가 재생에너지와 지속 가능한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를 때, 비로소 재난은 혁신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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