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북동부 산불 한 달… 집도 못 가고, 농사도 못 짓고 시간만 흘러

임시주택은 일부만 제공… 원래 집과 멀어 불편
농번기 접어들었지만 생계 대책은 '막막'

현재도 여전히 산불 이재민들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경북 안동시 길안중학교 체육관의 모습. 길안지역 이재민들은 농번기에 생계 유지를 위해 불편한 생활여건 속에서도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영진 기자
현재도 여전히 산불 이재민들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경북 안동시 길안중학교 체육관의 모습. 길안지역 이재민들은 농번기에 생계 유지를 위해 불편한 생활여건 속에서도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영진 기자

경북 북동부를 덮친 초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 불길은 꺼졌지만 이재민들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임시 거처를 전전하고 있다.

안동·영양·청송·의성 등 피해 지역 주민 대부분은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농번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농사를 지을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가옥과 농기구가 전소된 데다 주거 불안까지 겹치면서 일상의 회복은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이재민 김경락(70) 씨는 "지금이 농사 준비할 시기인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집도 없고 농기구도 없어 올해 농사는 포기해야 하나 싶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모듈러 임시주택 설치를 진행 중이지만, 제공 대상은 제한적이고, 설치 장소 또한 원래 집과 먼 경우가 많다.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어린이문학관 운동장에 설치된 임시주택에는 18세대가 입주 대상으로 지정됐지만, 이마저도 일부만 입주를 마쳤다.

이번 경북 산불로 불에 탄 주택은 총 4천458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2천679가구가 임시주택을 신청했지만, 안동시 길안면에는 여전히 50여 명의 이재민이 학교 체육관에서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내 다목적 체육관 등에 임시 대피해 있던 이재민 대부분은 인근 여관과 호텔 등으로 이주해 생활하고 있지만, 길안지역 이재민들은 여전히 체육관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들은 농번기에 농사를 짓고자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형편이다.

전모 씨(73·여) 씨는 "한 달이 지났지만 갈 곳이 마땅히 없기도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해서 여전히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임시주택을 신청하고 싶어도 원래 살던 곳과 멀고 차도 없어서 당첨돼도 걱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장 임시 거처를 벗어나 다시 집을 짓고 살아가고 싶어도 현실적인 벽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소 주택에 대해 최대 3천600만원의 주택복구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건축 비용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재비와 인건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복구 예산은 이재민들에게 또 다른 좌절감을 안기고 있다.

이재민들은 집의 철거는 어떻게 됐는지 언제쯤 다시 지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피해 조사는 진행 중이지만 본격적인 복구와 재건은 요원한 상황. 마을 복구 계획과 주택 재건 지원은 구체적인 일정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한 이재민은 "지금 당장 비만 와도 걱정이고, 언제쯤 이 상황이 끝날지 모르겠다"며 "시간은 흐르는데 우리는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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