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끊임없이 요리를 재해석하는 나라. 정통은 없고, 매일 무언가가 새로워진다"
지난해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목받았던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Edward Lee)의 책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책은 요리책도, 음식 비평서도 아니다. 요리를 통해 이민자의 삶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르포이며 에세이다.
에드워드는 책 제목인 '버터밀크 그래피티'를 자신의 삶을 시적으로 함축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에드워드가 애용하는 미국 남부의 식재료 '버터밀크'와 방황하던 10대 시절 몰두했던 '그래피티', 낯선 이 두 가지가 만난 제목에는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미국 이민자의 요리와 그들의 삶을 담고 있다.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피자나 햄버거를 먹고 집에 와서는 게장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혼란스러워했다. 이 책은 이민자의 나라,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리가 2년 동안 16개 도시를 여행하며 셰프, 식당 주인, 어부, 이민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록이 담겨있다.
미국 요리는 다양한 식재료가 아궁이 속에서 뒤섞여 펄펄 끓고 있는 것처럼 여러 문화권이 새롭게 조합되고 변형되는 '멜팅팟(Melting Pot)' 문화가 만연해있다.
그는 멜팅팟 레시피들을 직접 전수받기 위해 스타 셰프가 아닌 푸드트럭 주인이나 작은 레스토랑의 셰프들을 만나고 그들의 주방에 들어가 질문한다.
"당신에게 요리란 무엇인가?"
그의 여정은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한다. 발자취를 따라가면 '베녜'라는 프렌치 도넛과 커피 한 잔 사이에 베트남 이민자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발효한 생선과 내장을 으깨 만드는 '툭 프로혹'에서는 캄보디아 요리의 특별한 짜임새를 발견한다.
양고기 국물에 끓인 국수 '라그만 수프'에서는 축축한 흙과 피가 섞인 듯한 강렬한 맛과 더불어 핏줄이 튀어나온 노쇠한 요리사의 손놀림이 느껴진다.
에드워드는 이슬람교도가 많이 사는 지역에 갔다가 금식에 동참하기도 하고, 모로코의 비밀스런 버터 '스멘'레시피를 전수받기 위해 처음 보는 젊은 모로코 여성의 부엌에서 발효 버터 만드는 법을 배우고 교감하기도 한다.
미시간, 캘리포니아, 메사추세츠 등 미국 전역을 도는 그의 여정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퓨전 요리와도 같다. 에드워드는 그곳의 음식을 먹고, 요리사를 만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요리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어떤 정체성을 반영하는가? 그리고 결국은 "도대체 미국 음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에드워드에게 요리란 정체성의 혼종을 드러내는 가장 진실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수많은 이민자가 뒤섞여 살아가고 있고, 그들은 정체성의 모호함을 느낀다. 그러나 음식만큼은 다르다. 고향의 향신료와 타지의 재료를 섞고, 낯선 이웃과 나누는 식탁에서 그들의 삶은 분명히 드러난다.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요리계를 넘어 문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 책이 2019년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요리뿐만 아니라 정체성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음식과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여정을 통해 독자들은 한 그릇의 음식이 단순한 식재료의 조합이 아닌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 문화,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전 세계의 도시가 안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과 다양성에 공감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416쪽. 2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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