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이상준] 산불 대재앙(大災殃) 그 이후…

폐허가 된 경북 북동부 산림. 지난달 22일 의성군 야산에서 시작돼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인접 시·군으로 번진 화마(火魔)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면적(약 10만㏊)의 산림을 불태웠다. 연합뉴스
폐허가 된 경북 북동부 산림. 지난달 22일 의성군 야산에서 시작돼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인접 시·군으로 번진 화마(火魔)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면적(약 10만㏊)의 산림을 불태웠다. 연합뉴스
이상준 국장석 부장
이상준 국장석 부장

경북 북동부 5개 시군을 초토화(焦土化)한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지난달 22일 의성군 야산에서 발화해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인접 시·군으로 번진 화마(火魔)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면적(약 10만㏊)의 산림을 불태웠다. 이전까지 가장 큰 피해를 낸 2000년 동해안 산불(약 2만4천㏊)의 4배, 서울시 면적(약 6만㏊)의 1.5배가 넘는 산림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산림 피해액은 4조원, 재산·시설 피해액은 1조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초대형 산불 발생과 피해 복구 과정에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상상을 초월한 대재앙과 맞선 21세기 대한민국의 산불 진화 시스템은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산불은 고온 건조한 날씨에 태풍급 돌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지만, 그나마 보유한 진화 인력과 장비조차 적시 적소(適時適所)에 투입하지 못했다. 숲속 도로, '임도'(林道)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었다. 우리나라의 임도는 산 1㏊당 4.1m 수준으로, 독일(54m)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디든 빠르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산불 진화 헬기는 안전상 야간에 투입하기 힘들다. 이번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들은 "낮에 애써 잡은 산불이 헬기를 투입하지 못하는 밤만 되면 다시 번지는 일이 반복됐다. 소방차를 대고 밤에도 물을 뿌릴 수 있게 해 주는 임도가 있었다면 초기 진화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번 산불 진화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형 헬기' 부족이었다. 현재 산림청이 보유한 헬기 50대 중 32대가 담수용량 5천ℓ 미만, 11대가 1천ℓ 미만인 중·소형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뿌리며 결정적 역할을 하는 5천ℓ 이상의 대형 헬기는 고작 7대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미국은 1만~3만ℓ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소방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군용 항공기에 모듈식 소방 시스템을 장착해 산불 대응에 활용한다.

기후 변화 시대에 산불의 파괴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기존의 모든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함에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이번 산불을 비롯한 국내 대형 재난의 원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안전불감증이 낳은 예견된 인재(人災)로 귀결(歸結)된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국가적 대참사에 대한 재발 방지 노력이 그때만 반짝 하고 끝날 뿐이다. 앞서 2019년과 2022년, 강원 고성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당시에도 임도 확충, 소방 항공기 도입 논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다만, 이번 산불 피해 복구 과정이 여느 때와 다른 점은 '특별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국회가 발의하는 특별법에 산불 진화 장비와 대응 체계 등 전 분야 대책까지 함께 담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피해 지역인 경북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 공은 정부와 여야 정치권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번 만큼은 산불 대응 시스템 혁신에 손을 맞잡아야 한다. 신속한 예산 편성과 집행을 통해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산불 악순환(惡循環)의 고리를 근본적으로 끊어 내는 특별법 제정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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