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고분을 마주한 자리에 오아르 미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유리벽 너머로 펼쳐지는 고분의 풍경은 시간적 감각의 간극마저 함께 끌어안는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 낯선 조합 속에서, 일본의 라이징 스타 작가 에가미 에츠(Etsu Egami, 1994~)의 개인전 '지구의 울림'이 미술관의 개관전시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시간의 이질적인 결이 조용히 스며드는 분위기 속에서 에가미 에츠의 회화들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건넨다.
작가는 늘 언어의 경계, 그 틈에서 태어나는 감정의 여백에 주목해왔다고 한다. 베이징과 독일에서 유학하며 여러 언어 속에서 살아온 그녀는, 다른 언어의 경계 속에서 느낀 불편함과 미묘한 감정의 결을 회화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17점의 신작들은 비틀즈, BTS 같이 대중적인 인물들을 그려내었다. 캔버스의 표면 위, 선과 색이 중첩되며 만들어낸 유명인들의 초상들은 언뜻 보면 친숙한,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명확한 형태 없이 흩어져 낯선 감정을 풍긴다. 익숙한 실루엣들이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언어의 경계, 소통의 틈이다. 작품 속 섞이지 못하고 평행선을 이루는 다양한 색띠들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시도할 때의 풍경을 닮았다. 겹치고 스치지만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가까워지고자 하지만 끝내 맞닿지 못하는 심리적 거리, 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은 구현했다. 에가미 에츠의 회화들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소통하지만, 결국 융화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이방인의 불완전한 위치를 나타낸다. 그 틈에서 피어나는 건 오히려 말보다 강한 감정이다. 작품을 마주하고 있자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말이 아닌 시선이 닿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감정의 진동들이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다.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 무지갯빛 색채의 일렁임은 보이는 것 너머의 감각을 일깨운다. 작가의 회화는 풍경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것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어본,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감정.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 그 불완전함은 낯설지만 묘하게 편안하기도 하다. 정제된 감정의 색띠들이 관람자의 시선에 닿을 때, 그것은 메아리처럼 전시장에 퍼져 하나의 '울림'이 된다.
전시 제목 '지구의 울림'은 작가의 세계관 그 자체이자 메시지다. 말이 닿지 않는 순간,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에가미 에츠는 그 물음에 대해 조용하지만 강하게 답한다. 언어가 아니어도, 감정의 떨림과 시선의 울림만으로 우리는 이어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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