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전종훈] 세기의 교황, 영원한 이별

고요 속의 마지막 길
형제애로 남은 이름

전종훈 경북부 기자
전종훈 경북부 기자

지난 23일 오전 6시 이탈리아 로마는 아직 새벽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숙소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바티칸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기자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메시지는 큰 울림을 주었기에 그의 별세 소식은 충격적이고 슬펐다. 9천㎞ 떨어진 한국에서 이탈리아까지 날아와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영광스러울 뿐이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이미 전등 불빛만 희미하게 깔린 채,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깃을 세운 외투, 손에 쥔 묵주, 그리고 고요한 침묵.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세기의 교황'이라 불렸던 프란치스코 교황. 그가 남긴 말과 삶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광장에서 만난 마리아라는 이탈리아 여성은 밀라노에서 밤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기자에게 말했다. "이 마지막 인사만큼은 꼭 드리고 싶었어요. 교황님은 늘 우리와 가까운 분이셨어요. 성직자라기보다는 친구 같았죠. 따뜻하고 유머가 있으셨고 무엇보다 우리를 존중해 주셨어요."

성 베드로 광장에 오전 9시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운구가 도착했다. 성직자들과 근위병들이 조심스럽게 운구 행렬을 이끌며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수천 명이 모인 공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성가는 크지도, 슬프지도 않았지만, 묵직하게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붉은 천에 싸인 관에 평온히 누운 교황은 광장을 거쳐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늘 검소했고, 빈민을 먼저 생각했던 그의 삶을 닮은 소박한 관이었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가장 깊은 예의를 담아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누군가는 묵주를 두 손에 감싸 쥔 채 조용히 기도했다. 또 다른 이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조용히 흐느꼈다. 통곡도, 웅성거림도 없었다. 그곳은 슬픔을 넘어선 경외와 감동이 지배하는 자리였다.

운구가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던 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부부, 휠체어를 미는 가족, 국적이 다른 젊은이들, 노신자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기자는 광장 한편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서 있는 한 청년을 발견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20대인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황님은 늘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이제는 그 말을 제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여기서,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박수'였다. 조문을 마친 사람들은 짧은 박수를 보냈다. 어떤 이는 눈물 속에서, 어떤 이는 미소와 함께. 누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박수는 고요 속에서 더욱 큰 울림이 되어 퍼져 나갔다. 그것은 고인의 삶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것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었다. 거리의 노숙인과 마주한 눈빛, 소외된 이의 손을 잡아 주던 손길, 미소 속에 담긴 따뜻한 진심. 그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정치도 교리도 넘어, '사람'으로서의 슬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날 바티칸에는 수천 명이 모였지만, 광장은 하나의 커다란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모두가 그를 기리는 형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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