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부리로 쪼을 듯한 수탉의 날카로운 눈매와 발톱이 생생하다. 연보랏빛 국화 아래 고양이의 털 한 올, 방아깨비의 더듬이 하나까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 작품 속으로 빠져들 듯한 몰입감을 더한다.
진경산수화뿐 아니라 화조화에서도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첩' 전체가 2년 간의 수리복원 이후 최초로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공개됐다. 화훼영모화첩은 정선이 16세기 초충도 소재와 17세기 화조화 구도 감각을 계승하면서도 사실성을 중시하던 18세기 화단의 흐름을 반영해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작품은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2019년 국내 최초로 뱅크오브아메리카 예술 작품 보존 프로젝트(Bank of America Art Conservation Project)에 선정되기도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예술 작품 보존 프로젝트는 루브르박물관 소장 니케상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소장한 중요 예술작품의 수리복원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이 4월 30일부터 처음으로 선보이는 기획전시 '화조미감(花鳥美感)'은 이렇듯 조선 중기에서 말기에 걸쳐 시대적 미감을 대변하는 화조화 37건 77점을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화조화를 통해 문인정신을 표현한 조선 중기, 세심한 관찰과 서정미로 황금기를 맞이한 조선 후기, 탐미적 미감이 반영된 조선 말기까기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부 '고고(孤高), 화조로 그려진 이상'에서는 조선 중기 문인화풍의 화조화가 전시된다. 고결한 삶의 가치를 새와 꽃 등 자연에 투영해, 작은 화면 안에 담은 고요하고 맑은 분위기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을 비롯해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이징의 '산수화조도첩' 등 진경시대 화조화의 정수도 감상할 수 있다.
2부 '시정(詩情), 자연과 시를 품다'는 조선 후기 화조화의 다채로운 흐름을 조망한다. 심사정, 강세황 등의 간결한 문인화풍과 변상벽, 김홍도 등 실재감을 표현한 사생풍의 채색 화조화를 함께 볼 수 있다.
특히 대구간송미술관은 김홍도의 화조화를 마치 정원과 같은 단독 공간에서 펼쳐보여, 관람객들이 작품 속에 깃든 한국적 미감과 서정미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공간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병진년화첩'의 '추림쌍치', '백로횡답'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3부 '탐미(耽美), 행복과 염원을 담다'에서는 삶의 바람을 꽃과 새에 빗대어 표현한 19세기 화조화를 전시한다. 길상적 의미와 장식성을 겸비한 장승업, 안중식, 조석진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요소들이 더해졌다.
세계 3대 아트 출판사로 꼽히는 '파이돈 프레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100인'에 이름을 올린 양태오 공간 디자이너가 전시 설계를 맡았고, 배우 임수정과 방송인 마크 테토가 국·영문 오디오가이드를 녹음했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했던 선조들의 일상과 이상을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꽃과 새를 담은 그림들을 통해,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4전시실에서 볼 수 있으며 관람료는 성인 1만1천원, 청소년·학생 5천500원이다.
댓글 많은 뉴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확정…TK 출신 6번째 대통령 되나
김재섭, 전장연 방지법 발의…"민주당도 동의해야"
이재명 "함께 사는 세상 만들 것"…이승만·박정희 등 묘역참배
안철수 "한덕수는 출마 포기, 김문수·한동훈은 결단해야"
'국힘 지지층·무당층' 선택은? 김문수 29.2% 홍준표 21.4% 한동훈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