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세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 많은 인생살이 꿈같이 갔네'. 조명암과 이봉룡이 짓고 남인수가 부른 '낙화유수'는 일제의 핍박과 혼란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0년대를 풍미한 불멸의 서정가요이다. 수상한 시절이나 계절의 봄이 스러져 갈 무렵이면 이 노래가 떠오르는 것은 대구 향촌동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기도 하다.
6·25전쟁 발발과 함께 대구로 피란 온 문화예술인들과 더불어 향촌동은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전쟁의 상처와 가난의 질곡에도 낭만이 있었고, 피폐와 절망 속에서도 술잔이 오가고 음악이 흘렀던 시절이었다. 포연에 이지러진 계절을 여울처럼 흐르다 간 사람들의 낭만적 일화를 찾아 향촌동을 수없이 서성거렸던 무렵의 막바지에 만난 노래가 '낙화유수'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애틋한 삶과 문화예술의 꿈을 부여안았던 향촌동은 퇴락한 거리에 무상한 세월만 맴돌고 있었다. '낙화유수'(落花流水)는 중국 당나라의 시문에서 유래했지만 그 원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표적인 시 구절이 고변(高駢)의 '낙화유수인천대'(落花流水認天臺)이다. '꽃은 지고 물은 흘러가니 세상의 아득함을 알겠네'라는 의미이다. 이군옥(李群玉)의 '지는 꽃과 흐르는 물에 떠나는 옷자락이 원망스러워'(落花流水怨離襟)나 이욱(李煜)의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에 봄이 간다'(流水落花春去也)라는 시 구절도 많이 언급된다. '낙화유수'란 가는 봄의 정경이나 인생의 무상함을 은유하는 문구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꽃이 한때의 영화라면 물은 덧없는 세월인 것이다.
'낙화유의수유수(落花有意隨流水) 유수무의송낙화(流水無意送落花)'라고 했다. '떨어지는 꽃은 지향하는 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물은 무심하게 흘려보낼 뿐'이라는 것이다. 출렁거리는 욕심도 끈적거리는 집착도 세월의 강물 위에선 그저 낙화(落花)일 따름이다. 세상 모든 일이 정해진 이치에 따라 흘러왔거늘, 뜬구름 같은 인생 공연히 아등바등 살아온 것(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인가. 한철의 권세와 부귀를 거머쥐려는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또 시작되었다.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되돌아봐야 할 '낙화유수'의 계절이기도 하다.
joen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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