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헌법은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전문에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대한민국 공동체의 의지를 천명하고 구체적인 조항으로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명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헌법이 약속한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국민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태어나 생활하든 행복해야 합니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우동기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은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기 무섭게 헌법개정 얘기부터 꺼냈다.
역대 모든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나름의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중단 없는 국가균형발전과 불가역적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개헌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우 위원장은 내달 1일 지방시대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 "지역균형발전, 국민 행복추구권과 기본권 지키는 지름길"
우 위원장은 "국민의 일상을 개선하는 일은 거대한 담론이나 구호가 아니라 서민들의 일상 전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현장에서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권력구조 개편문제에 골몰하고 있는데 국민이 체감할 수 있고 가장 원하는 내용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권한분산"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이른바 '민생이슈 우선' 목소리가 개헌논의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 위원장은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에 살든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삶의 질 측면에서 수도권으로 너무 기운 운동장에서 지역민들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면서 "중앙정부가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과감하게 지방정부에 자기결정권을 넘기고 헌법에 그 방식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을 지역으로 이양해 지방자치제도 도입 30년을 맞은 한국의 지방정부가 명실공히 어엿한 '성년의 지방정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동안 중앙정부의 권한이양을 가로막는 이유였던 지방정부의 '방만한 경영 우려'에 대해선 지방감사원 설립과 지역 언론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방정부의 행정과 살림살이(회계)는 새롭게 설립될 독립된 헌법기관인 지방감사원이 감시하고 권력의 횡포는 지역 언론이 견제하는 방식이다.
우 위원장은 "실패한 잼버리도 있었지만 12년째 승승장구하고 있는 국제정원박람회도 있다"면서 "이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믿고 맡기면서 모자란 역량은 도와주는 모델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특히 지방자치제도 도입 전 만들어진 현재의 헌법에 이미 국민들이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균형발전 철학을 반드시 담아야 하고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구 국회의원 254명 가운데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 비율은 48%(122명)이지만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포함하면 절반이 넘는 국회의원이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역소멸과 수도권 과밀화 추세를 고려할 때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개헌 추진의 '골든타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짚었다.
◆ 지역균형발전 정책수단, SOC중심에서 교육·의료·문화로 변화
우 위원장은 지역균형발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고 국민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정책수단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지역균형발전 척도가 도로·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배분의 적정성이었다면 최근에는 국민들이 자신의 일상공간에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가 잘 구축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우 위원장은 "산업화시대에는 좋은 일자리만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산업생태계가 형성되고 지역발전의 동력도 확보됐지만 지금은 기업이 생산시설 입지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교육·의료·문화 여건을 검토하는 분위기"라며 "교육·의료·문화 인프라의 고른 배분이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이슈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방시대위원회 출범과 함께 이른바 일상과 직결된 소프트웨어(교육·의료·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정책적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그 결과 역대 정부에서 수도권 과밀화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정부 부처로 평가받았던 교육부가 최일선에서 지역균형발전을 돕는 우군이 됐다.
우 위원장은 "교육발전특구 사업을 계기로 지방대 의대 지역인재 전형선발 규모를 법정비율(최소 40%)를 넘어 60% 수준으로 확대함으로써 지역 출신 학생의 의대진학 기회를 확대했고 지역에 정주할 의료인력 양성 체계도 강화했다"고 자평했다.
소멸위기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 대책과 관련해선 지역의 주요 의과대학과 시군의 협업체제 구축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은퇴 의료인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우 위원장은 "전국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대구의 의과대학과 소멸위기를 맞고 있는 경북 북부지역 시도가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필수의료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본이 활용하고 있는 고령 의료인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의 문화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찾아가는 박물관·예술단' 운용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역민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예술작품과 문화콘텐츠를 하나의 프로그램을 묶어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시와 공연을 하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주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문화체육부 산한 문화예술관련 공공기관의 지역이전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구와 경북 성장잠재력 충분, 통합으로 새로운 도약 가능"
우 위원장은 지난 2년 7개월 동안의 재임기간 중 가장 아쉬웠던 일로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완성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 시도 통합은 지역의 미래라는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우 위원장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 달빛내륙철도 구축 등 추진 중인 지역의 굵직한 사업들이 탄력을 받고 기대한 성과를 내려면 이들을 활용할 그릇이 커야하고, 그러려면 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행정통합은 저출생 시대와 인구소멸극복을 위한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소멸위기 지역은 통합하지 않으면 의료, 교육 등 기본적인 생활서비스조차 공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진단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공존의 정신을 기초로 논의를 진척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 위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 이후에도 변호인을 통해 '행정통합은 반드시 완성해 달라고 했다'는 당부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 베이비붐 세대 귀향 등 사회적 분위기를 적극 활용해 소멸위기 지역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 위원장은 "기존의 '상주인구' 개념을 넘어 특정 지역에서 실제 거주·체류하며 활동하는 사람과 지역에 거주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을 뜻하는 '생활인구'와 '관계인구' 확대를 꾀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화시대 대구경북이 지역의 주력산업과 인력공급 체계가 아주 긴밀했던 점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지역의 산업과 교육이 시너지효과를 내도록 하는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우 위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 겨우 본격적으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집행하게 됐는데 제대로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직을 내려놓게 된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 위원장은 지난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이듬해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제9대)을 맡았다. 이후 2023년 9월부터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초대위원장 직을 수행해 왔다.
우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 뼈대와 지방시대위원회 설치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 후 1년 넘게 국회에서 논의되다 2023년 5월에야 본회의를 통과했다"면서 "조직 설치를 위한 근거법안이 통과되고 지난해 관련 예산까지 확보하는 등 제대로 일을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는데 물러나게 돼 아쉽다"고 소회를 밝혔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프로필〉
2023~2025 : 제1대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2022~2023 : 제9대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2022 : 제20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
2021~2022 : 제27대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
2020~2022 : 국가보훈위원회 위원
2019~2022 : 제12대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장
2018 : 옥스퍼드대 성 안토니대학 방문학자
2010~2018 : 제8대, 제9대 대구광역시 교육감
2009~2010 :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학자
2005~2008 :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회의 위원
2005~2009 : 제12대 영남대학교 총장
2002~2003 : 대구·경북지방자치학회 회장
1999~2000 : 대통령직속 지방이양추진실무위원회 위원
1997 :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자문위원
1993~1995 :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 부장
1990~2005 :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1985~1989 : 일본 건설성 건축연구소 객원연구원
1979~1990 : 국토개발연구원(현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1972년 : 대구고등학교 졸업
1979년 : 영남대학교 행정학 학사
1983년 : 태국 아시아공과대학(Asian Institute of Technology) 과학 석사
1990년 : 일본 쓰쿠바대학교 사회공학연구과 학술 박사
2008년 : 미국 볼주립대학교 명예 인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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