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기획재정부에서 '예산편성권'(豫算編成權)을 떼내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하는 정부 조직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민주당이 검토 중인 정부 조직 개편이 실현될 경우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 예산까지 마음대로 주무르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갖게 된다.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더 제왕적인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 축소·분산이라는 시대적 요구의 정면 거부이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획재정부가 정부 부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며 기재부 개혁에 불을 붙였다. 지난 9일 민주당은 기재부를 둘로 나눠 예산 기능은 기획예산처로 이관(移管)하고, 축소된 기재부의 명칭을 재정경제부로 변경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재부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최근 민주당 의원 주최 토론회에서도 기재부에서 기획예산처를 떼내 국무총리실이나 대통령실에 두는 방안이 거론됐다.
정부 수립 이후 예산권은 주로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 등 경제 부처에 있었다. 현재의 기재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통합된 것이다. 기재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 개편의 대상이 되곤 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1년 뒤 기획예산처로 통합)을 신설, 기존 재정경제원이 갖고 있던 예산권을 넘겼다. 그때도 대통령실이 아닌 국무총리 산하(傘下)였다. 예산편성권을 행정부 내 부처에 두는 것은 국가 예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기재부 분리 방침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부의 경쟁력 강화보다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키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 인사들은 기재부가 소극적인 재정 운용(運用)을 한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문 정부 5년 동안 국가부채는 400조원이나 늘었다. 기재부가 욕을 먹으면서 나라 곳간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부채 규모는 더 커졌을 수도 있다. 기본소득, 전 국민 지원금 지급 등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 이 후보는 기재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통령(실)이 예산편성권을 행사하면 대통령·여당의 국정 과제 추진이 원활할 수 있다. 그러나 선출된 권력은 선심성(善心性) 사업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하물며 170석 거대 정당의 이 후보가 대통령이 돼 예산을 좌지우지한다면, 누가 이를 견제할 수 있겠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예산을 짤 경우 야당의 정치적 반발을 초래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가 재정의 모범적인 운영은 재정을 풀려는 정치인과 재정을 관리하려는 관료들 사이의 '균형'에 있다. 기재부 조직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편의와 효율보다 중요한 게 재정건전성이다. 힘의 균형과 민주적인 조직 운용이 더 중요하다. 민주당은 기재부 역할이 재정 운용뿐 아니라 국가 전략과 밀접하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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