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은 오월. 오월의 여왕은 장미! 장미의 계절이다. 월전 장우성이 장미를 그렸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살짝 놀랐다. 모란이 아니라 장미라니? 동양화가들은 보통 모란을 그린다. 그런데 장우성은 장미를 즐겨 그렸다. 화중왕(花中王), 부귀화(富貴花)의 상징이 있어 동양화 애호가들은 모란도를 좋아하고 따라서 수요도 많기 때문이다.
채색 화조화의 소재인 모란이 조선에서는 먹색의 묵모란으로 그려졌다. 모란의 아름다움에 수묵의 격조미를 결합한 묵모란도가 탄생한 것이다. 컬러가 없는 모란꽃이라니? 사실 좀 모순적이다. 그러나 18세기 현재 심사정에서부터 19세기 소치 허련에 이르기까지 묵모란도가 그려진다. 절제의 유교이념을 숭상한 조선의 구성원들에게도 현실의 부귀는 중요했다. 20세기 사군자류 병풍에 묵모란이 빠지지 않은 것은 그 여풍이다.
조선 말기에는 모란에 석수만년(石壽萬年)의 괴석을 더해 부귀와 장수를 함께 기원하는 화려한 채색의 궁모란도가 유행하며 궁중에서 민간으로 확산된다.
근대기에는 장우성의 스승 김은호가 백모란을 섬세한 화풍으로 비단에 많이 그렸고, 일본 유학파로 오랫동안 교토와 도쿄에서 작가생활을 했던 박생광은 흑모란으로 유명했다. 동양화에 모란화가가 있는 것은 서양화에 장미화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란과 장미는 화조화, 정물화의 대표로 꼽힌다. 꽃그림은 누구나 좋아한다. 장우성의 '장미'는 소재의 상투성을 넘으려는 동양화가의 의도적 선택이었다.
장우성은 초상화, 인물화, 산수화, 사군자화, 영모화, 화훼화 등을 다 잘 그렸다. 장미도 많이 그렸지만 수선화, 연꽃, 목련, 진달래, 개나리, 나팔꽃, 창포꽃, 등꽃 등도 그렸다. 꽃과 새를 좋아하는 자신을 스스로 '소극적인 작가'라며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바뀌어도 보석처럼 제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자신을 심취하게" 한다고 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는 장우성의 꽃그림을 모아 '월전식물도감: 월전 장우성'(2022년)을 열었다.
'장미'는 작고하기 2년 전인 92세 때 작품이다. 다 묘사하지 않는 함축의 여운과 다 채우지 않는 비움의 여백을 귀하게 여긴 장우성의 조형의식이 대담하게 표출된 작품이다. 흰 종이에 연짓빛 장미는 단 한 송이, 서명은 호 월전(月田)을 줄인 '월(月)' 단 한 글자, 인장은 '월'자와 비슷한 크기인데 이름 우성(遇聖)을 고풍스럽게 새겼다. '장미'와 '나'의 가장 간결한 표현이다.
그래도 조금은 섭섭하셨는지 문인화가인 자신의 정체성을 유인(遊印) '다숙향온차자간(茶熟香溫且自看)'으로 드러냈다. 중국 명나라 학자로 수장가, 감식가, 화론가인 이일화(李日華)의 시 '제화(題畵)'에 나온다. 서재 생활을 하며 그림과 글씨, 전각을 좋아한 문인화가들이 사랑하는 시구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댓글 많은 뉴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확정…TK 출신 6번째 대통령 되나
김재섭, 전장연 방지법 발의…"민주당도 동의해야"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이재명 "함께 사는 세상 만들 것"…이승만·박정희 등 묘역참배
文 "이재명, 큰 박수로 축하…김경수엔 위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