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의 캄보디아
"황열 예방주사 맞았나?" "맞았지"."말라리아 예방약은 처방받았나?" "일주일 째 먹고 있어""광견병 예방주사는 좀 조심스러운데….?" " 그러게 안 다치길 바래야지…"
마치 오지 탐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중년의 수의사 다섯이서 걱정 반 설레임 반, 캄보디아 오지 동물의료봉사를 준비했다. 캄보디아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필드>(1984)를 통해서 안타까움을 접한 것이 전부였다.
폴 포트(1928~1998)는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인물이다.일명 킬링필드(killing field)라 불리는 대학살을 주도한 인물로 세계사를 통틀어 봐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창설한 크메르 루즈 정권은 극좌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고 계급없는 사회를 이루고자 했다.사유 재산과 종교를 폐지하고 일상을 잔인하게 억압하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그 결과 지식인, 전문가, 도시 거주자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척결하기 시작했다.심지어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은 1975년부터 4년 간 약 300만 명의 국민들이 전국 곳곳의 '킬링필드'에서 학살을 당했다.전체 인구의 약 30%에 달하는 규모였다.수 십년이 지났지만 캄보디아 국민들은 그 악몽같은 과거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중년의 다섯 수의사 캄보디아 동물의료봉사
캄보디아 동물의료봉사를 기획하게 된 시작은 '안나 스쿨'이었다.안나 스쿨은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지난 2013년부터 캄보디아 중부 푸르사트지역 학생들의 열악한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성 안나 교육센터'를 모태로 하는 교육시설이다. 2019년 많은 한국분들의 후원으로 안나 스쿨이 신축되어 지금은 공부방과 기숙사, 운동장 등을 갖추고 있다. 현지 학생들을 위한 교육지원 뿐 아니라, 캄보디아 전통 문화 계승의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그 안나 스쿨에 다니던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다.순박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은 무척이나 수줍어했다. 동네 조차 떠나본 적 없던 아이들이 낯선 나라에 온 탓인지 적응이 힘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체하기 일 수였고, 한국인들의 바쁜 일상에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작은 키에 왜소한 모습을 바라보면 우리들 어릴 적 모습이 그려졌다.그들의 일상을 듣다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초등학교조차 다니기 쉽지 않다고 했다.무엇보다 고기를 먹을 기회가 적다보니 왜소하고 잔병치레가 많다고 했다.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수의사로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가축을 잘 키울 수 있는 기술을 전하면 어떨까?
우리나라 축산기술 수준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있다. 뛰어난 질병 예방 관리능력으로 전염병 청정국이며, 동물복지 분야에서도 축산 선진국이라 자부한다.그중에서 경북은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축산업을 선도하는 대(大)동물진료 수의사들의 전문성이 필요했다. 다행히 경북수의사회 박병용회장과 대구시수의사회 박준서회장도 기꺼이 힘을 보태기로 했다. 돼지사육 전문의 곽신욱 수의사도 합류가 결정되었다.
동물 영양학 전문의인 오원석 수의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안나스쿨 수녀님과는 어릴적 성당 친구다 보니,두 분이서 수개월 전부터 현지 상황을 고려해서 의료봉사 스케줄을 하나하나 잡아주셨다.

◆열악한 사회간접자본시설
4월 2일 늦은 밤 우리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Phnom Penh) 공항에 도착했다.수도 프놈펜을 잠시 벗어나면 금새 70년 대 초반 한국의 풍경이 펼쳐진다.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캄보디아 1인당 국민소득은 2천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거 농업 국가 였던 한국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안나 스쿨은 프놈펜에서 약 170km 떨어진 프루사트 지역에 위치하는데, 열악한 도로사정으로 4시간 정도를 차로 달려야 했다.
캄보디아 푸르샤트 시골마을을 방문했다.집집마다 소와 닭, 개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캄보디아의 땅은 호수나 바다와 고저차가 별로없다. 우리나라라면 대평원 곡창지대라 각광을 받을텐데 이곳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관개수로가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우기에는 집까지 물에 잠겨 버린다.
반대로 건기에는 농업용수로 쓸 물이 부족하다.침수와 가뭄이 반복되다 보니 동남아 국가임에도 시골은 자급자족할 쌀마저도 부족한 형편이었다.우리나라가 과거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며 치수정책, 제방축조, 도로개발 등의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캄보디아 농림수산부(MAFF)가 펴낸 2022년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전 국민의 단백질원 70%를 민물고기에 의존해왔는데, 최근 들어 축산물 내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을 태국, 베트남, 인도 등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캄보디아 정부도 자국 양돈과 양계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려고는 하나 자본부족, 유통 인프라 부족 문제로 여전히 답보상태다. 무엇보다 축산농가를 교육하고 사육정보를 제공할 마을 단위 지도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병들지 않기만을 고대
우리가 동물의료 봉사를 하는 동안 캄보디아 농업축산부 소속 수의사와 공무원이 동반해주었다. 덕분에 마을 이장격인 주민들의 도움도 원활해졌고 현지인과도 원할한 통역이 가능해졌다.대부분의 농가에서 소를 키우고 있었다. 농가의 제일 중요한 소득원이지만 관리는 방목 수준이었다. 소들이 평화롭게 들판을 거닐며 풀을 뜯는 모습이 목가적인 풍경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속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양이 없는 풀을 먹는 소는 마르기 마련이며 질병에는 취약하다.소가 건강해질려면 양질의 건초가 필요하다.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의 영양소들이 함유되어 있는 벼,카사바,옥수수 등의 건초가 필요하다. 들판의 풀은 뜯어봤자 배꼴만 커질 뿐 영양 가치는 별로 없다. 그래서 소들은 대부분 말라있다.사람들 먹을 것도 부족한데 소에게 양질의 풀을 제공하라는 말을 차마 내뱉을 수 조차 없었다.
캄보디아는 소 전염병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격리하거나 살처분하지 않는다.백신 접종으로 소가 병들지 않기만을 고대한다.그러다보니 소 전염병은 더 만연해지기 마련이다.그나마 백신마저도 대부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며 그 공급도 원활치 않다고 한다.

캄보디아 정부도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동물보건생산법을 제정하여 가축 질병관리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든 그러한 인프라 구축이 이 나라에서 잘 진행되기를 희망하며, 필요하다면 경북수의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닭은 모든 가정에서 키우고 있다.가족들의 수입원이자 주단백질 공급원이었다.하지만 기생충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개체수가 많은 집일수록 피부병은 더 심했다. 벼룩, 옴 등의 닭 피부병은 가족에게도 옮는다. 심한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버즘같은 피부질환이 주민들에게도 만연해 있었다.
돼지를 키우는 집도 있었다. 일부 사료를 급여하며 돼지를 사육해 수익을 내는 농가도 있었다.그 규모는 작았지만 나름 이 나라의 풍부한 노동력을 고려한다면 농가의 적합한 수입원이 될 수도 있을 듯 했다.3일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매일 날이 밝으면 농가들을 돌며 해가지면 라이트를 켜고 농가를 방문했다. 방문 첫날 아이들과 방문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질병관리 시급
눈병으로 고름이 가득한 병아리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세척하고 항생제 주사맞히고, 닭장을 전체적으로 외부 기생충 구제를 실시했다. 농가에서 스스로 닭 질병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들도 설명해주었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닭이 건강해야 함을 당부드렸다.
아픈 소를 주사 맞히고, 내외부 기생충 예방약을 피부에 발라주고, 직접 약물을 소에게 다치지 않고 도포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며 가져간 약물들은 농가에 나눠주었다. 소문을 듣고 화물차에 아픈 소를 싣고 오는 분들도 있었다. 똥범벅이 되며 화물차에 뛰어올라 소들을 치료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과지만 동물에게 그렇게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에 주민들은 신기해 하기도 하고 당황해 하는듯 했다.
집집마다 개와 고양이도 많았다.목줄을 하거나 산책을 함께하는 문화는 아니었지만 동물을 배려하는 정서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불교 문화권의 생명 존중 정서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개 고양이 중성화수술을 위한 수술기구와 약물들을 많이 챙겨갔지만, 정작 이 나라에서는 예방접종, 기생충약, 피부약 처방하기에 경황이 없었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한 복지보다는 당장의 질병관리가 더 시급했다.

집집마다 개와 고양이도 많았다. 대부분 개선충(개옴) 피부질환이 만연했다, 이 개는 15살이다. 피부병에도 아랑곳없이 개를 안아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겨웠다. 동물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해질 수 있다. 사람이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라 동물 복지를 논하기는 민망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열악한 캄보디아에서도 희망은 존재했다.바로 프놈펜의 동물보호단체였다.

◆프놈펜 PPAWS 수의사들과 함께
PPAWS (Phnom Penh Animal Welfare Society)는 동물병원이면서 NGO 단체다. 영국인이 대표자로 있는데 현재 40여 마리의 고양이와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다. 이곳의 주요활동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조활동과 함께 중성화 수술을 통해 개체수를 조절하고 광견병과 기생충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다.
캄보디아에서도 개를 키우다가 힘들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재미있는 점은 불교 국가답게 사찰 앞에 그렇게 많이 버린다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서 버리긴하지만 불교 사원 앞에 버리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지'하는 마음이란다. 그래서 PPAWS에서는 정기적으로 매달 불교 사원들을 순회 출장가서 강아지 중성화 수술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데 곳간이 넉넉하지않은 캄보디아에서 이렇게 동물 복지에 힘을 쓰는 PPAWS 소속 수의사들이 존경스러웠다. 동물복지가 바로 인간복지로 이어진다는 점을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PPAWS는 축산 기술을 습득하고 개발해서 일반농가에 전수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이 바로 캄보디아의 희망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작지만 귀한 씨앗. 미래의 국가 성장을 이끌 씨앗이 캄보디아 곳곳에 뿌려지길 희망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자라게 될 때 킬링필드는 힐링필드로 다시 태어날 것임을 믿는다.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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