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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무대 뒤 세계에서 보낸 30년…박병달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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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감독요? 무대 뒤에 있는 또 다른 아티스트죠"

박병달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이 극장 무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박병달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이 극장 무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화려한 조명이 켜진 공연장 무대. 그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무대 뒤편 세계는 낯설다.

그곳엔 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지게끔 부지런히 무대를 조율하는 또 다른 연출가, '무대감독'이 있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조명과 음향, 기계, 무대를 연출가의 의도대로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공연 시작 전까지는 예술감독이나 연출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에서 무대감독이 공연을 이끌어간다.

박병달(57)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은 30년 경력의 대구 1세대 무대감독이다. 그는 대구오페라하우스(국내 유일 오페라 제작극장)와 계명아트센터(대구 최대 2천 석 규모), 대구콘서트하우스(클래식 전용극장) 등 대구를 대표하는 극장 3곳의 무대감독을 지낸 베테랑이다. 이들 공연장의 개관을 함께하며 각기 특색 있는 극장으로 자리 잡는 데 힘을 보탰다.

지난 20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무대감독을 이야기하면서 "무대 뒤에 있는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썼다. 무대에 선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어떤 면에선 예술가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엔지니어이기도 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조명과 같은 기술 요소를 실행하는 시점을 정확히 맞춰야 하는 것도 무대감독의 역할입니다. 특히 해외 오페라 공연의 경우 0.1초의 오차도 없이 큐 사인을 내도록 요구하는 연출가들도 많죠. 특히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성악가 꿈꾸다 무대 뒤 세상으로

그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 무대에 오르며 성악가로 활동하던 20대 후반 그는 한 오페라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연출이 서울예대 교수를 지낸 김효경 연출가였다. 김 교수는 그에게 무대감독을 권했다.

"그때 제가 노래를 못 불렀나?(웃음) 기질적으로 남들 챙기는 걸 좋아하고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하는 제 모습이 무대감독과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 무대감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고, 결국 이 길로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대구에 무대감독이란 게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이 일을 가르쳐줄 만한 이도 대구에 없었다. 서울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김 교수 제자들의 작업 현장을 찾아가서 일을 배웠다. 이후 대구시립오페라단 등의 공연에서 무대감독을 맡는 등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무대감독 인생이 시작됐다. 대구시 임기제 공무원 신분으로 무대팀장을 맡아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무대 업무를 총괄했다.

2008년엔 새로 개관한 계명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정규직으로 전환될 여지가 전혀 없는 1년짜리 계약직 신분이었다. "가족은 물론 주위의 많은 분들이 만류했죠. 당시에는 젊어서 그랬는지 안정된 자리를 지키기보다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었어요."

자체 제작 공연에 참여할 일이 많았던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달리, 이곳에선 한창 붐이 일던 국내외 대형뮤지컬 대관이 많았다. 극장 시설과 안전 관리가 주요 업무였는데, 대관에만 그치지 않고 공연제작사 측이 극장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을 했다.

"공연팀이 원하는 기술적인 부분을 최대한 뒷받침해주는 극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무척 적극적으로 일을 했었죠. 심지어 극장에 설치된 기존 시설물을 뜯어낸 적도 있었습니다. 공립 극장이었다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었을 일이었죠. 공연팀이나 제작사 측에서도 저희 극장을 무척 좋아했었고요."

박병달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은
박병달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은 "무대에 선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무대감독은 어떤 면에선 예술가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엔지니어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도훈 기자

◆성취감은 일의 원동력

2013년 대구엔 클래식 전용극장으로 탈바꿈한 대구콘서트하우스가 문을 연다. 그는 그곳으로 다시 한번 자리를 옮긴다. 그 또한 클래식 전공자였기에 클래식 전용극장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제작에 대한 고민이나 시설을 어떻게 잘 활용해 관객을 만족시킬까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면 대구콘서트하우스에 근무한 10년 동안은 예술가를 대하는 방법이나 태도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공부했었습니다."

처음엔 연주자들을 위해 분장실에 다양한 종류의 웰컴 티를 구비했다. 연주자의 이름을 자수로 새긴 핸드타월을 준비해 테이블에 올려놓기도 했다. 2019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때엔 의자가 낮아 불편을 겪을 단원들을 위해 의자다리 받침을 제작해 설치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지금은 종종 볼 수 있지만 당시엔 전례 없는 풍경이었다.

"작은 정성이지만 연주자들이 무척 좋아해주셨어요. 그분들이 기분이 좋으면 그 무대에서 훨씬 더 많은 무언가를 보여주시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성취감도 컸죠."

그는 2022년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 공연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짐머만은 연주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려는 '완벽주의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특히 공연모습을 촬영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다. 직전 서울 공연에선 공연장 내부에 설치된 CCTV 탓에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실랑이까지 벌어졌고, 결국 CCTV를 검은 천으로 가리고 공연을 해야만 했다.

"짐머만은 공연장의 온도와 습도까지 맞춰달라고 할 정도로 예민한 분이었어요. 우선은 극장 측의 마음을 전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만큼 예의를 갖추고 극진히 대했죠. 그래선지 저희 공연장에선 CCTV를 문제 삼지 않으시더라고요. 예술가들과 교감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무척 많이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박병달(두 번째 줄 오른쪽 네 번째)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이 지난해 2월 이탈리아 페라라시립극장에서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한 오페라
박병달(두 번째 줄 오른쪽 네 번째)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예술팀장이 지난해 2월 이탈리아 페라라시립극장에서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무대 셋업을 함께한 현지 스태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지금도 새로운 도전 꿈꾼다

그는 2023년 대구오페라하우스에 다시 오게 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다. 매년 가을 대구에서 열리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보다 짧은 일정 속에서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축제 기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지는 메인 오페라의 경우 무대 셋업 시간을 감안해 대부분 2주에 한 편 꼴로 무대에 올랐다. 그런 만큼 축제 분위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축제 기간 일주일 정도 대구에 머물면서 오페라 서너 편을 볼 수 있다고 하면 훨씬 강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셋업 시간을 줄이려면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지난해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초청받은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 야외 공연장 한 곳에서 펼쳐지는 다섯 작품을 5일 동안 매일 준비하는 파격적인 스케줄을 소화한 것이다. 컨테이너 6대 분량의 무대를 설치해 리허설을 한 뒤 공연 후 철수까지 하루 2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었다.

그는 하루 수면 시간이 한두 시간밖에 안 될 정도로 고된 일정이었지만 무척 행복했었다고 한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정년이 3년 정도 남았네요. 퇴직 전 오페라 축제에서 무대 셋업 시간을 단축해 짧은 기간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는 시도를 꼭 한 번 해봤으면 합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고 엄두도 못 냈던 것이기에 시작이 어렵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퇴직 후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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