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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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칼럼]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매일칼럼]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얼마 전 집 근처에 들어선 새 아파트 견본주택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네모꼴 곽 휴지 하나 받으려면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한다는 안내원의 말에 이내 발길을 돌렸다. 전화번호를 남겨 달라는 부동산 아주머니들의 손길에서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가 실감 났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어느새 물러간 것처럼 '미분양의 무덤' 대구 부동산 시장에도 시나브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이달 대구 아파트 분양 전망지수는 11개월 만에 기준선을 회복했다. 거래량 역시 조금씩 늘어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훈풍이 대구 전역에 부는 것은 아니다. 준공 후 10년이 채 되지 않은 새 아파트에만 온기가 퍼지는 중이다. 한여름 내내 외쳤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가 아니라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선호 현상이다. 비단 대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느 부동산 분석업체가 올해 1~7월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률을 파악했더니 입주 1~5년 차 단지는 0.41%, 6~10년 차 단지는 0.31% 오른 반면 10년 초과 단지는 0.13% 상승에 그쳤다. 이는 몇 년 전과 정반대 양상이라 낯설다. 저렴한 구축(舊築) 대신 비싼 신축만 찾는 트렌드를 두고선 해석이 다양하게 나온다. 우선 다주택자 규제 여파로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똘똘한 한 채'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새 고급 아파트는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지적한 '과시적 소비'로 이어진다. 일각에선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3040세대의 가치관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콘크리트 숲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큼 최신 설계에다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새 아파트에만 이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거 기준치 자체가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신축 아파트 투자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하려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세상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적어도 뒤처지진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초로(初老)의 어리석은 고백이다. 아뿔싸! 필부필부(匹夫匹婦)가 트렌드를 이끌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면 남들 따라갈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민 눈높이가 달라졌음을 모르는 척 허구한 날 정쟁(政爭)만 일삼는 우리 정치권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변화에는 고통이 수반(隨伴)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떠밀려서 변화와 개혁 대상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여태까지 그래 왔다는 이유로 현실에 안주(安住)했다가는 인기 없는 구축 아파트 신세를 면치 못할 게 분명하다. 소설가 한강에 훨씬 앞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남긴 어록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To improve is to change, so to be perfect is to change often."(나아지려면 달라져야 한다. 완벽해지려면 자주 변화해야 한다) 곧 썩어 버릴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오늘부터라도 달라져야겠다.

    2024-10-15 18:00:20

  • [매일칼럼] 필리핀 이모와 파독 근로자들

    [매일칼럼] 필리핀 이모와 파독 근로자들

    말 많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 '필리핀 이모' 2명이 숙소를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단다. 이들은 사업주의 '이탈 신고' 뒤에도 소재(所在)가 확인되지 않고, 당국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잠적한 이유로는 현실적 처우(處遇)가 우선 꼽힌다. 숙소비, 세금 등을 빼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24일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급여 수준과 지급 방식에는 불만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사업 효과, 비용 적정성 등 이 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은 차치(且置)해 두자. 지난달 입국 당시 그들의 표정이 기대로 가득 찼던 걸 떠올리면 안타깝기만 하다. 주변에서 부러워한다는 자랑과 함께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다짐들이 선하다. 그러나 필리핀 이모들의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은 물거품이 될 위기다. 시범 사업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꿈속에서나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미국 코미디언 고(故) 조지 칼린의 독설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괜스레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된 것은 60여 년 전 광부·간호사로 독일에 갔던 우리 청춘들이 겹쳐 보여서다. 정부 협약 사업, 타향으로 떠난 목표가 경제적 자유란 점 역시 닮았다. 인구 감소로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당시 서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인 배경은 지금의 한국처럼 노동력 확보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구가 급감한 데다 동서 분단 탓에 옛 동독에서 일손을 구할 수도 없었다. 일자리가 필요했던 한국과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독일의 이해(利害)가 맞아떨어졌다. 1963년 '한국 광부 파견에 관한 한-독 협정서'가 체결된 이래 1977년까지 약 2만 명이 광부, 간호사로 현지에서 일했다. 유럽에 뿌리내린 첫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였다. 그들의 고된 노동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됐다. 딱 60년 전인 1964년 독일에서 이들을 만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은 꽤 인상적이다. "여러분, 나는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섣부른 걱정을 하자면 이번 해프닝이 급속한 고령화, 극단적인 저출산에 대한 해법으로 검토되던 이민(移民) 문호 확대 논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는 편견 또한 심화시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선진국 대부분이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찾은 100만 명의 외노자들이 낡은 이민 장벽에 막혀 경쟁국으로 떠난다면 우리만 손해다. 세케 에르난데스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같은 이들은 이민자 모시기 경쟁이 불붙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만약 그들 중에 제2의 일론 머스크, 젠슨 황이 있다면 진짜 큰일이다.

    2024-09-24 17:27:46

  • [매일칼럼] 미국 대선을 지켜보는 단상(斷想)

    [매일칼럼] 미국 대선을 지켜보는 단상(斷想)

    8년 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자 세계는 충격 빠졌다. 도덕성 결여(缺如)에다 온갖 막말로 지탄받는 초강대국 대통령이라니!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그를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에 빗대기까지 했다. 이런 조롱은 1991년에 나온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동명 소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뉴욕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배층을 극단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자기애성(自己愛性) 인격 장애가 있는 연쇄 살인마 주인공의 우상(偶像)이 바로 트럼프였다. 트럼프의 임기 이후 평가도 박하기만 했다. 지난해 전미정치학회(APSA) 회원 등 전문가 525명에게 역대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을 물은 결과 그는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반면 조 바이든은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했다'는 공로로 무려 14위에 올랐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언론과 정치인의 공세 역시 여전히 거칠다. '거짓말쟁이' '공공의 적'은 점잖은 편이고, '사기꾼' '약장수' '악당' '괴물' '쓰레기' 같은 단어가 난무(亂舞)한다. "역대 대통령이 지닌 최악의 특성을 짜깁기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름 끼치는 표현도 등장했다. 놀라운 것은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가 선거전에서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의 구원투수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나오지만, 간선제(間選制)의 특성상 올해도 결과는 투표함을 열어 봐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트럼프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돼 출마가 좌절되거나 근소한 차이로 패배할 경우를 벌써 우려하기도 한다. 또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호소해 2021년 의사당 폭력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전(內戰)이란 단어는 이미 미국 정치권의 터부(taboo)가 아니다. 트럼프 지지층이 아니라면 현재 상황을 납득하기가 무척 어렵다. 자질이 없다는 국민 판단에 따라 밀려난 전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을 차지한다는 건 전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집단 최면에 걸려 지난 악정(惡政)을 다 잊어버렸다는 말인가? 그러나 최악의 지도자에 의한 지배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다. 트럼프가 참모에게 말했다는 대로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꾸 말하면 사람들은 믿는다"는 인간의 속성 탓이다. 가치관이 전도(顚倒)된 세력에 의해 시나브로 보편타당성에 대한 인식이 무뎌지는 것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이 공공시설의 낡은 독도 조형물 교체·보수를 두고 정부의 독도 지우기 의혹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을 설득하기보다 거짓말로 현실감각을 잊게 만들려고만 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의 말장난이다. 지난 4년간 국회의 정상적 기능을 마비시켰던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도 다수당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미래지향적 어젠다를 제시하기는커녕 공동체가 망가지든 말든 눈앞의 이익만 챙기려는 행태를 보인다. 공공 문제에 대해 선한 사람들이 무관심하면 그 대가로 악한 사람들의 지배를 당하게 된다는 플라톤의 경고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2024-08-27 18:10:09

  • [출향인을 만나다] 이희범 前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출향인을 만나다] 이희범 前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우리 역사의 뿌리인 대구경북이 K-컬쳐 견인차돼야"

    제33회 하계올림픽이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했다. 코로나19 탓에 관중 없이 진행된 직전 도쿄 대회와 달리 지구촌 최대 스포츠축제다운 위상을 되찾았다. 6년 전 세계의 이목은 한국에 집중됐다. 92개 나라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특히 남북 선수단 개회식 동시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치러진 '평화 올림픽'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환희와 감동을 선사한 평창 대회를 진두지휘했던 이희범(75·부영그룹 회장) 조직위원장에게 올림픽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최근 '성화는 꺼져도 올림픽 정신은 이어가야'(사람과삶 출판)라는 제목의 비망록을 낸 그를 만나 솔직한 감회를 들었다. -스포츠계와 인연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개막 1년 9개월을 앞둔 2016년 5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자기 물러나면서 조직위원장을 대신 맡아달라는 연락이 국무총리실에서 왔다. 하지만 당시 LG그룹에 몸담고 있기도 했고, 스포츠에는 문외한이어서 극력 고사했다. 그래서인지 격려해주신 분도 계셨지만 염려와 걱정을 한 분이 더 많았다. 하하하. -취임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제 책 추천사에서 "어려운 여건과 심지어 정치적 긴장이 높은 시기에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도전에 맞서 싸웠다"고 저를 평가했다. 실제로 그랬다. 대통령 탄핵과 북한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내우외환의 연속이었다. 해외 언론들이 한반도 위기론을 쏟아내면서 각국의 불참 움직임마저 있었다.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 ▶재정 문제였다. 사업비는 예상보다 늘어나는데 돈은 부족하다 보니 각종 공사가 중단됐다. 하도급 대금과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조직위를 찾아와 아우성을 쳤다. 취임 직후 새로 재정계획을 만들면서 아무리 쥐어짜봐도 3천억원 적자가 불가피했다. '적자 올림픽=실패 올림픽'이란 각오 아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편 끝에 흑자 올림픽을 달성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조직위 수입을 늘리려면 기업 후원금이 확대돼야 하는데 많은 기업 총수들이 당시 논란이 됐던 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얻은 별명이 '울고 다니는 위원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조직위에서 봉급을 받지 않았고, 수행비서도 두지 않았다. 직원들과 식사할 때도 거의 대부분 제 개인카드를 썼다. 이런 일이 알려지면서 한 번은 익명의 독지가가 조직위에 3천만원을 보내왔다. 알아보니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의 친형인 권오성 씨였다. 너무 고마워서 언론에 실명을 공개했는데 그는 언론사를 찾아가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잊지 못할 추억도 많았을 것 같다 ▶2016년 8월 리우 올림픽 때는 차기 대회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지구 반대편 브라질을 한 달 새 3차례나 가야 했다. 개·폐회식과 이어진 패럴림픽에 성화 주자로 참여했다. 고생은 했지만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배울 것과 배워선 안 될 점을 빼곡히 메모했다. 한국에 이어 2020 도쿄 하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예정돼 있어서 평창이 맏형 노릇을 했다. 도쿄와 베이징 조직위 직원 200여 명이 한 달 이상 평창을 견학했고, 평창 직원들은 도쿄와 베이징 조직위에 파견돼 우리 경험을 전수했다. 폭설이 잦은 대관령의 2월이었는데도 대회 내내 날씨가 좋았던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쉬운 점은 없었나 ▶2017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서자 조직위를 흔드는 움직임이 있었다. 사표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국가 대사를 팽개치는 것은 공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대회가 끝난 뒤 자원봉사자, 유공자, 조직위 직원 등에 대한 포상을 건의했는데 정부는 감사원 감사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1년 6개월이 지나고서야 기대보다 적은 인원만 상을 받았다. 책을 낸 것도 대회 성공의 주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장이라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사죄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지난 1월 강원도에서 동계청소년올림픽이 열렸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무척 기뻤다. 평창 올림픽의 소중한 경험이 도움 됐길 바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6년 전 첫 만남에서 업무 얘기만 나눴을 정도로 일벌레인 그는 나와 찰떡궁합이었다. 평창 대회 당시 실무 협의에서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난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도 달라졌으면 한다. 국제 사회에서 벼락치기식 인맥 형성은 통하지 않는다. 해외 인사들과 오랜 시간 우정을 쌓으며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국제통을 양성해 일관성을 갖고 현장에 투입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관계, 재계, 학계를 두루 거쳤다. 자리 운을 타고 났다는 말이 따라다닌다. ▶과분하게도 상공부 사무관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의보다는 타의로 옮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산업자원부 장관이 될 때는 서울산업대 총장 취임 직후여서 고사했는데도 '부안 사태' 탓에 본의 아니게 중책을 떠안았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경북 경주로 결정된 뒤 대학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무역협회장을 맡아달라고 당부했다. 자리 욕심 없이 직무에만 매진한 게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게 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비록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 양성 등 봉사하고 싶다. 2020년 초대 경북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았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69세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안동으로 낙향한 퇴계 선생이 롤 모델이랄까. 대부분의 직책은 그만뒀으나 경상북도, 안동시 투자유치위원장과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직함은 계속 갖고 있는 이유다. -대구경북 발전을 위한 고언을 부탁드린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가장 큰 이슈이다. 결국 기업이 있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인구 감소에도 대응할 수 있다. 대구경북은 우리 역사의 뿌리이고 산업화의 선봉장이었다. 이제 문화강국, K-컬쳐의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각 지역이 자존심만 내세울 게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융합, K-컬쳐의 선봉이 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 기회발전특구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한다. ◆프로필 △1949년 경북 안동 출생 △월곡초-안동중-서울사대부고-서울대 전기공학과(학사)-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 경영학과(석사)-경희대 경영학 박사 △행시 12회-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산업자원부 차관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 서울산업대 총장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무역협회장 △STX에너지·STX중공업·STX건설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경상북도 문화재단 대표 △부영그룹 회장

    2024-08-13 10:55:06

  • [매일칼럼] ‘국뽕’에 차오르려면 기도를 해야 하는 나라

    [매일칼럼] ‘국뽕’에 차오르려면 기도를 해야 하는 나라

    숱한 스포츠 스타가 명멸(明滅)한 이번 올림픽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유도 여자 대표 팀 허미미(21·경북체육회) 선수의 수상 인터뷰였다. 우승 뒤 시상대에서 부르려고 애써 외운 애국가를 못 불러서 아쉽다는 소감이 찡했다. 그는 재일 교포 3세다. 6일 5대 조부인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 기적비(紀跡碑·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를 참배한 그의 첫 메달은 극적 요소가 많았다. 결승전 상대는 일본계 캐나다 선수였고, 석연찮은 판정패였다. 일본 기자들은 한국 국적 선택에 대해 집요한 질문 공세를 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여검객 올하 하를란의 분투(奮鬪)는 버금가는 감동이었다. 앞선 대회들에서 이미 금·은메달을 목에 건 그는 개전 이래 자국의 첫 메달을 따낸 뒤 "조국을 위하여"라며 울먹였다. 그는 러시아 선수와의 악수 거부 사건으로 파리에 오지도 못할 뻔했다. 모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나서면 특별한 감정이 드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없는 한국인에게 '국뽕'이 차오르는 무대를 꼽으라면 아마 독도라는 응답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시인 고은이 노래한 대로 "그 누구에게도 끝내 고향"인 그곳! 올림픽의 감동과 환희에 묻혀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국방부는 지난 1일 군 정신전력 교육교재를 보완해 새로 내놓았다. 독도를 영토 분쟁지역으로 표현하고, 한반도 지도에 독도를 넣지 않아 질타받은 지 8개월 만이다. 다만 기존과 달리 집필·감수진 명단은 뺐다. 눈에 띄는 점은 한일 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왜곡된 역사 인식과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처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지난해 교재에는 "신뢰 회복을 토대로 공동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하는 미래 협력과 동반자적 관계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만 돼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다. 일본이 방위백서에서 20년째 억지 주장을 펴고,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도 늘 '강력한 항의'에 그치고 있는 탓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 전시 공간에 '강제성' 표현이 담기지 않아 불거진 용인(容認) 논란에 대해서도 정부는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때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뜨거웠다. 일본 시마네현(島根県) 의회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안을 가결했던 2005년 3월도 그랬다. 곳곳에서 일본 규탄 대회가 열렸고, 정부는 입도(入島) 완화 조치로 독도로 가는 길을 활짝 열었다. 당시 이의근 경북도지사와 허준영 경찰청장,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독도 방문을 취재했던 기자는 독도가 국민 품으로 온전히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독도를 찾는 민간인 편의 시설은커녕 접안 시설 보강마저 매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독도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연간 60일 안팎에 그치는 원인이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보여 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관광 활성화일 것이다. 이는 외교적 부담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무책임 행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도대체 우리 땅을 찾아가는 게 음덕(陰德)을 쌓고 하늘에 기도해야 할 일인가?

    2024-08-06 16:54:19

  • [매일칼럼] 볼커의 실수가 두려운가

    [매일칼럼] 볼커의 실수가 두려운가

    한국은행이 3년 만의 통화정책 선회를 내비쳤다. 이창용 총재가 "차선(車線)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을 전환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밝힌 것이다. "깜빡이를 켤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던 지난 4월 발언보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그러나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 뒤 계속돼 온 고금리와의 이별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수도권 아파트값 급등, 가계 부채 폭증, 불안한 외환시장 등 발목을 잡는 요인이 많다. 물가 상승률이 당국 목표치에 접근하고 있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도 처지는 비슷하다. 대선과 맞물려 인하 기대감이 크지만 현 상황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또한 적지 않다. 물가 상승 장기화를 뜻하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에 금리를 내리더라도 소폭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총재는 특히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경계했다.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줘서 주택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금융통화위원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역시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집값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비수도권 입장에서 금리 인하 연기(延期)는 달갑지 않을뿐더러 억울한 소식이다. 집을 갖고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높은 금리가 지역 경제의 실질적 주역들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줄폐업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방은행들의 올해 1분기 연체 대출액은 1조3천771억원에 이른다. 금감원이 관련 통계를 공개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 개인사업자 대출 평균 연체율은 0.86%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의 0.84%를 웃돈다. 제1금융권조차 이러니 '코로나보다 고금리가 더 무섭다'는 말마저 나온다. 정부의 대출 자제 압박 와중에 지방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수익은 적지만 부실 가능성이 낮은 주담대라도 늘려 위기를 넘기겠다는 몸부림이다. 한은의 고민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고금리가 내수 회복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나라 안팎의 지적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수출 호조와 달리 서비스업 등 지방의 체감경기는 바닥이다. 몇 달째 '내수 회복 조짐'이라는 정부 발표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한은의 선제적 금리 인하가 어렵다면 정부가 신용보증기금, 지방자치단체별 신용보증재단 등을 통해서라도 소상공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일자리·복지 취약계층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더 늦기 전에 추진해야 한다. 고통의 아우성을 '읽씹'해선 안 된다. 완벽한 금리 인하 시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고심 끝에 악수를 둔 경우가 여럿이었다. 강력한 규제의 대명사인 폴 볼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1980년 성급하게 금리를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볼커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가 훗날 대학 강단에 섰을 때 전설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초청 강연에서 "시장에 균형상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의 트렌드를 잘 살펴야 한다"고 했다. 볼커의 맞장구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의 조언이 연준 시절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24-07-14 17:16:40

  • [부고]김치영 전 경북도청소년육성재단 대표이사 모친상

    [부고]김치영 전 경북도청소년육성재단 대표이사 모친상

    ▶권말분 씨 26일 별세. 김치영(전 경상북도청소년육성재단 대표이사)·치규(경운대 교수)·지미(재미)·선미 씨 모친상, 김태식(재미 교수)·이성문(대경영상의학과의원 원장) 씨 장모상, 박경순·이보은 씨 시모상. 빈소=대구 성심요양병원 장례식장. 발인=28일(금) 오전 10시. 장지=경산공원묘원. 010-2520-0076.

    2024-06-27 08:49:34

  • [매일칼럼] 대왕고래가 서해에 있다면?

    [매일칼럼] 대왕고래가 서해에 있다면?

    요즘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반도체 기업은 단연 엔비디아이다. 비록 일일천하에 그쳤으나 지난 18일에는 시가 총액 3조3천350억달러(약 4천600조원)를 기록, 몸값이 최고로 비싼 회사가 됐다. 이는 국내 코스피 전체 총액의 약 2배다. 최근 5년 3천450%라는 놀라운 주가 상승에 '젠새니티'(창업자 젠슨 황+Insanity·광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급여 절반을 주식으로 받아 직원 상당수가 백만장자라는 외신도 눈길을 끌었다. 물론 해당 없는 이들에겐 근로의욕을 떨어뜨렸겠지만. 엔비디아의 성공은 사실상의 독점 덕분이다. 거센 인공지능(AI) 열기 속에 반도체 칩 제조사 가운데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거품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AI 혁명은 이제 막 시작한 파티"라는 낙관론 역시 만만치 않다. 독점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기업인의 대표 격은 '석유왕' 존 록펠러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에너지 회사였던 그의 '스탠더드 오일' 때문에 미국 반독점법이 만들어졌다. 당시 그의 재산은 미국 전체 GDP의 3%에 이르렀다고 한다. 피터 콜리어, 데이비드 호로위츠가 쓴 '록펠러가의 사람들'에 따르면 엄청난 재산 축적의 계기는 클리블랜드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다. 그의 나이 26세 때다. 제임스 딘의 영화 '자이언트'가 이 시대 미국 재벌들의 탄생 과정을 잘 보여준다. 소도시에 불과했던 클리블랜드는 이후 대호황을 맞았다. 이리 호수(Lake Erie)의 수운(水運)에 힘입어 정유·제철·자동차산업이 꽃을 피우면서 미국 제조업 중심지로 떠올랐다. 2만5천달러짜리 땅이 석 달 뒤 150만달러에 팔릴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 심해 석유·가스 개발을 밝힌 이후 경북 동해안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추정 가치가 최대 2천조원 안팎에 이른다니 엄청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국내 증시에도 관련 테마가 빠르게 형성됐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산유국 반열에 오르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한 에너지 안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돼 버렸다. 향후 석유 수요가 감소, 국내에서 유전이 발견되더라도 계륵이 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는 우리 속담처럼 야당은 대통령이 희소식을 발표했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미국 분석 회사에 대한 의구심을 '동문 카르텔 의혹'으로 키웠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인사의 산유국 언급은 '유전 게이트'로 몰고 갈 기세다. 대왕고래 구역을 글로벌 메이저 석유·가스 기업인 엑슨모빌이 검증한 것마저 걸고 넘어진다. 분석 회사 대표가 임원을 지낸 기업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다. 엑슨모빌은 스탠더드 오일의 후신이니 록펠러가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이쯤 되니 대왕고래가 동해 대신 서해에 있다면 야당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시장 왜곡 우려에도 쌀 주산지인 호남 민심만 의식해 양곡관리법을 밀어붙이는 정당 아닌가. 내년 이맘때 장밋빛 시추 결과가 나오면 덮자고 하려나? 물론 국민 혈세를 성공 가능성 낮은 자원 개발에 무한정 쏟아부을 순 없다. 국회의 예산 검증이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 다만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프랑스 전문 기업의 낙제점 평가가 철저히 무시됐던 기억을 떠올리면 우리 정치권을 믿어도 되나 싶다.

    2024-06-23 16:50:08

  • [매일칼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매일칼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고금리, 고물가로 서민경제 어려움이 커지면서 현금서비스 등 신용카드 대출연체율이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카드 대출연체율은 지난 2월 말 기준 3.4%로 10년 만에 가장 높다. 20년 전 카드 사태 때의 역대 최고치(3.8%)를 경신할 가능성도 있다. 40조원에 이르는 카드론 잔액은 이미 역대 최다를 기록 중이다. 신용점수가 낮은 취약 계층이 제2금융권 대출마저 막히자 어쩔 수 없이 카드대출로 내몰린 탓이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위험이 시나브로 확대되고 있다. 신용카드의 개념은 에드워드 벨라미가 1888년 쓴 베스트셀러 '뒤돌아보며'(Looking backward)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공상소설에선 자본주의가 아니라 계획경제의 결제 수단으로 등장한다. 1인당 연간 배급 규모 안에서 쓴 만큼 차감되는 방식이다. 신용을 기반으로 돈을 빌리고 갚는다는 설정도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20세기가 되면 과학기술 발달로 유토피아가 이뤄져 화폐는 개념만 있지 유통되진 않는다고 묘사한다. 요즘 역대급 이자 수익으로 비판받는 금융 관련 직종은 모두 사라진다. 소설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자면 미국 보스턴에 사는 주인공은 깊은 최면에 빠졌다가 113년 뒤인 2000년에 깨어난다. 세상은 24시간 음악방송 등 온갖 첨단 문명의 이기로 풍요롭다. 심지어 비가 오면 거리마다 방수 지붕이 펼쳐져 우산을 쓸 필요가 없다. 이 '멋진 신세계'의 근간은 사회주의다. 기업들의 무한 경쟁 끝에 단 하나의 자본만 살아남아 모든 산업은 국유화되고, 노동 조직은 군대 방식으로 운영된다. 시민들은 45세까지 같은 임금을 받고 일한 뒤 은퇴해 즐거운 인생 2막을 산다. 물론 사회주의를 장밋빛으로 그린 벨라미의 상상은 옛 소련을 통해 실패한 아이디어로 판명 났다. 폭력적 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지만 국민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그의 복지 이상(理想)만이 여전히 유효할 뿐이다. 인간이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것은 현실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벨라미나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이나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조선에 율도국(栗島國)이라는 이상향을 만들어 낸 허균 역시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을 터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인을 위시한 우리 사회 지도자들은 원대한 목표는커녕 소박한 꿈조차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빈부 격차 등 사회 갈등 해소에 애쓰기보다 자신과 소속 정파의 이익을 키우는 데에만 골몰한다. 한마디로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각 정당이 발의한 22대 국회 1호 법안들은 참으로 가관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해병대 채 상병, 한동훈 특검법 어디에 표류하는 민생을 구하겠다는 고심이 담겼나! 기존 정책을 그러모은 여당의 '5대 분야 패키지 법안'은 궁금하지도 않다. 벨라미는 "다음 천 년 동안 인간이 어떤 발전을 이룩할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지난 100년 동안 이룬 진보를 뒤돌아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고 믿는다"고 했다. 100년 뒤 후손들이 우리에게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당장 내년조차 예견하기 힘든 판국에 100년 뒤 모습을 대비한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2024-06-02 17:39:03

  • [매일칼럼] 역사의 암흑기를 넘어

    [매일칼럼] 역사의 암흑기를 넘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의 그리스어 원래 제목은 '삶의 비교'(Bioi Paralleloi)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줄리어스 시저처럼 공통점이 있는 로마와 그리스 명망가를 묶어서 대비시켰다. 물론 그리스인 취향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저자는 애당초 인물 각자가 성취한 업적의 크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의 본성을 비교함으로써 후세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닮아야 하는지를 말하려 했다.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추구한 중국 사마천의 '사기 열전'(史記 列傳)과도 일맥상통한다. 과문한 탓에 훗날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는 모르지만, 요즘 각국 지도자 가운데 쌍(雙)으로 기록될 만한 이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스트롱맨'들이다. 집권 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실제로 푸틴이 3선에 오른 2012년 러시아 한 일간지는 그를 톨스토이의 소설 속 목각 인형에 빗댄 만평을 실었다. 러시아판 피노키오인 '부라티노'의 머리 윗부분이 왕관 모양으로 자라는 그림이다. 전임자 보리스 옐친의 '인형'이 차르(황제)로 거듭난 걸 꼬집었다. 같은 해 최고 지도자에 오른 시진핑은 이미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 체제를 완성했다. 지난해 중화인민공화국 사상 첫 3연임에 성공, 2028년 3월까지로 임기가 늘어났다. 하지만 추가 연임을 위해서라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이들이 자국뿐 아니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국가들의 지도자란 사실이다. 특히 최근 북한과는 더욱 밀착하고, 한국은 대놓고 적대시한 경우가 잦다는 점에서 우려를 거둘 수 없다. 이달 중에 이뤄질 두 정상의 중국 회동을 주목하는 이유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우리 정부는 경색 국면 해소에 애쓰는 모양새다. 주요 국가들이 보이콧한 푸틴 대통령의 다섯 번째 취임식에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가 참석한 게 이런 맥락이다. 또 조태열 장관은 13일 한국 외교 수장으로선 6년 반 만에 중국을 찾는다. 이달 말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둔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한·러 관계 개선을 시사했다. "불편한 관계"라면서도 "가급적 원만하게 잘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질문이 없었던 까닭에서인지 중국 관련 언급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정부의 이 같은 외교 스탠스 변화는 바람직하다. 지난 2년간 한·미·일 공조를 다져 놓은 만큼 이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게다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소원해진 관계 회복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우리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을 정도로 국제 정세는 꼬일 대로 꼬여 있다. 총선 승리로 기세가 오른 야당이 '일본 라인 사태'를 두고 민족감정 공세에 나서는 등 국내 정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역사와의 대화'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주변 열강(列強)들이 또다시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국익을 챙기는 외교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남은 3년 동안 좀 더 유연해진다면 이 정권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결코 박하지 않을 것이다.

    2024-05-12 16:50:18

  • 매일 탑리더스아카데미13기 대마도 단합대회

    매일 탑리더스아카데미13기 대마도 단합대회

    매일신문 탑리더스아카데미 13기(회장 김혜정) 회원들은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일본 대마도로 단합여행을 다녀왔다. 2020년 2월에 아카데미를 수료한 원우들은 4월 월례회를 겸한 이번 행사에서 대마도 곳곳을 둘러보며 우의를 다졌다.

    2024-04-22 15:02:00

  • [매일칼럼] 아뢰옵기도 송구하오나…

    [매일칼럼] 아뢰옵기도 송구하오나…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한 여고생의 무용담이다.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스즈메가 평화를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 간다는 내용이다.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여"로 시작하는 주문(呪文)이 꽤 인상적이다. 앞으로 한반도에 펼쳐질 대재앙의 문은 인구 절벽이 아닐까? 국가 소멸 위기까지 거론되는 각종 통계들을 보면 섬뜩하기만 하다. 심각한 저출생 고령화 현상의 지속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에 따르면 2050년 세계 204개 국가 중 155개 나라가 인구 감소를 겪을 전망이다. 최근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100년 안에 자국 인구가 현재 1억2천만 명에서 3천만 명대까지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외신들이 큰 관심을 보일 정도로 한국의 국가로서 지속가능성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수도권 쏠림까지 심화하면서 그야말로 사라질 처지에 몰린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다소 '웃픈' 뉴스들에서조차 절박함이 느껴진다. 제22대 총선에서 여야 역시 저출생 관련 공약을 쏟아 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나란히 인구 대응 부처 신설을 내걸었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저출생 정책을 부총리급의 인구부로 통합해 국가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인구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 구성에 정치권이 동의한다는 의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기능에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저고위는 집행권, 예산권이 없어 각 부처 정책의 나열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저고위는 조만간 저출생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핵심은 역대 최저치를 매년 갈아 치우고 있는 합계출산율을 현재 0.72명에서 1명대로 끌어올리는 중장기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쥐어 짜내기 식 아이디어로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인구부 신설에 합의하더라도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부처 간 업무 조정을 통해 새 부처의 역할을 설정하고, 관련 법률·제도를 정비해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 중복에 따른 비효율, 옥상옥(屋上屋) 논란만 이어질 터이다. 특히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려면 정부조직법을 고쳐야 하는 만큼 여야 합의가 필수적이다. 여성가족부의 존폐 여부가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존 저출생 정책에 대한 재평가를 놓고서도 여야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각 정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저출생 대책 상당수 또한 법 개정과 재정 투입이 전제이다. 육아기 유연근무 및 근로시간 단축, 신혼·출산 부부를 위한 주거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대변화를 두고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매몰돼 맞선다면 저출생 극복은 요원해진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제1 야당 당수와 곧 회동한다. 국가 소멸 위기에 대한 논의야말로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의제가 아닐까 싶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현실성 있는 저출생 대책을 제시한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 시각을 바꿀 기회가 될 것이다.

    2024-04-21 16: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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