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칼럼] 헌재의 '윤석열 파면'이 쓸 '미래 역사'
정치인의 정치적 행동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돌프 히틀러의 맥주홀 폭동에 대한 법원의 온정적 판결이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맥주홀 폭동으로 바이에른주 정부를 전복하려 한 혐의(반역죄)로 기소됐다. 재판은 자신을 '독일의 구원자'로 각인시키려는 히틀러의 선전장이었다. 재판장 게오르크 나인하르트가 판을 깔아 줬다. 히틀러에 공감하는 독일 민족주의자로, 히틀러가 4시간에 걸쳐 자신의 반역죄를 합리화하는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도록 했다. 선고도 반역죄 처벌을 위한 공화국수호법의 최저 형량(징역 5년)에 그쳤다. 그것도 몇 달 후에는 형 집행을 유예한다는 단서까지 붙여 히틀러가 8개월 남짓 복역하고 풀려나도록 했다. 히틀러가 1922년 정치적 라이벌인 오토 발러슈테터의 연설을 방해하며 동조자와 함께 폭력을 휘두른 혐의(난동죄)로 기소돼 징역 3개월을 선고받고 1개월 복역한 뒤 보호관찰 4년 처분을 받은 사실도 무시됐다. 정상적 판결이라면 당연히 가중처벌해야 했다. 그 재판의 판사도 나인하르트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나인하르트가 독일 내에서 반역죄를 저지른 외국인은 추방토록 한 공화국수호법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히틀러같이 독일인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히틀러의 국적(國籍)은 오스트리아였다. 이런 사실(史實)을 꺼낸 이유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이 우리의 어떤 '미래 역사'를 그려 갈 것인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법원이 히틀러를 봐 주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적 질문은 흑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히틀러 재판은 '제3제국' 출현으로 이어져 법치의 파괴, 도덕과 윤리의 총체적 타락을 길을 열었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은? 법치가 만개하고 상식이 존중받게 될까, 아니면 정치 이념에 오염된 '법 기술자'들이 판을 치는 법치의 파탄을 초래할까. 탄핵 재판은 돌이켜 볼수록 가슴 쓰리지만 그래도 돌아봐야 한다. 파면 결정이 법과 원칙에 따른 판결인지 진영 논리와 편향된 이념의 결과물에 법률의 외피(外皮)를 씌운 사기극이었는지 말이다. 그런 의심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빼겠다는 야당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탄핵심판을 강행한 것이다. 내란죄는 결정적인 탄핵소추 사유였다. 이를 빼면 각하(却下)해야 했다. 탄핵 재판은 형사소송절차를 준용(遵用)해야 하고 형사소송에서 공소장(탄핵 재판에서는 탄핵소추안) 변경은 기본적인 공소사실이 동일한 경우에만 가능한 '공소사실 동일성' 원칙이라는 법리(法理)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내란죄로 탄핵소추했는데 내란죄를 빼는 것은 대국민 사기다. 그게 상식 아닌가? 이런 문제 제기에 헌재는 말장난으로 빠져나갔다. "내란죄가 없다면 탄핵안이 통과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객관적 근거가 없는 가정적 주장에 불과하다"며 배척했다. 헌재의 논리 역시 객관적 근거 없는 가정적 주장이긴 마찬가지다. 내란죄 없는 탄핵안을 표결하지도 않았는데 통과됐을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말장난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1심 판사의 '위증은 있었지만 교사(敎唆)는 없었다'는 무죄 판결이나 공직선거법 2심 판사의 '백현동 용도 상향은 국토부의 협박 때문'이라는 이 대표의 말은 거짓말이 아닌 '의견 표명'으로 무죄라는 판결과 한데 묶을 수 있는 자의적·독단적 판단이다. '대통령을 파면해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이익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이익인가?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어느 법 어디에 그런 기준이 있나? 헌재 결정은 계엄령 선포를 유도한 민주당의 '입법 폭주' '탄핵 폭주' '행정부 마비' 기도(企圖)에 분노했던 중간적 입장의 국민들에게도 정당한 판결인가라는 의심을 품게 했을 것이다. 그 의심은 '이런 사법부하에서 우리의 법치는 제대로 기능할 것인가'라는 의심으로 확대되면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2025-04-06 19:14:34
판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국민이 직접 뽑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민주주의 체제의 권력의 토대는 없으면서 인신(人身) 구속을 포함한 국민 개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에서 '양심'은 법관의 '사적(私的) 양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판사 개인의 정치적·이념적 소신이 철저히 배제된 공평무사(公平無私)여야 함을 의미한다. 법정은 양심을 빙자한 판사 개인 또는 그 판사가 소속된 사조직-이를테면 우리법연구회-의 정치적 신념을 실천하는 공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 기본법이 "판사는 독립해 법률에만 구속된다"며 '양심'을 배제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 판사의 판결은 자의적 권력 행사, 법치와 민주주의에 사멸(死滅)의 구멍을 내는 망동(妄動)이다. 판사의 망동은 윤석열 대통령 체포에서 확인됐다. 서울서부지법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의 내란죄를 적시해 청구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기각해야 했다. 특정 장소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 압수하지 못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관련 조항 적용을 임의로 배제한 수색영장 발부도 망동이긴 마찬가지다. 모두 '법률'을 뭉개고 '양심'을 좇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망동에 서울중앙지법이 제동을 걸었다. 윤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한 것이다. 그 사유로 검찰의 구속 기간 계산 오류와 함께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지 명확한 규정이나 판례가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를 구속 취소 결정의 더 근본적인 사유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구속 취소 결정문은 매우 절제된 표현이지만, 공수처의 '법원 쇼핑'에 호응한 서부지법의 우리법연구회 출신 영장 전담 판사의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사법부 내부의 경고라고 읽는 것 역시 '오버'는 아닐 것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 사법부가 아직은 자정(自淨) 능력이 있다고 안도(安堵)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너무나 큰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이다. 헌재는 어떤 의미에서 최고 권위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 전체의 직접 투표로 선출돼 최고의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대통령을 탄핵할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이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로버트 달) 한국어판 해설에서 헌재를 '제왕적'이라고 한 이유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심판하고, 그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헌재는 존재 자체가 삼권분립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민주적 정당성'의 부재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헌재가 그나마 존립의 정당성을 가지려면 공평무사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언제부터인가 헌재는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해 판단하지 않고 '당파적'으로 판단하는, 자신을 헌재 재판관으로 만들어 준 정파(政派)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들의 집합소가 됐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이 '4(인용)대 4(기각)'로 결론난 것은 이를 극명히 보여 준다. '검수완박' 법안 권한쟁의심판에서 국회 의결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면서도 '5대 4'로 기각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 심판에서 이른바 진보 재판관들은 한 몸이 돼 기각해야 할 것은 인용했고 인용해야 할 것은 기각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어떨까? 편파, 불공정, 불법으로 점철된 변론을 보면 '인용'을 결정해 놓고 형식적인 절차를 진행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빼겠다는 야당 측의 요청을 받아준 것부터 그랬다. 내란죄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핵심 사유인데 이를 제외하겠다고 하면 마땅히 탄핵 심판 청구는 각하(却下)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변론을 강행하면서 '내란 혐의' 부각(浮刻)에 집중했다. 내란죄를 심판 대상에서 빼 놓고 내란 혐의를 다룬, '사기 탄핵'을 헌법의 이름으로 합법화한 '사기 변론'의 망동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절차적 흠결과 불법으로 이미 정당성을 잃었다. 기각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헌재가 그나마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길이다. 탄핵 찬성 측의 반발이 걱정되긴 하지만 이런 아포리아를 타개하는 길은 있다. 각하다.
2025-03-09 18:42:17
우리는 독립한지 2년만인 1950년 6·25전쟁으로 3년간 아군과 적군 민간인 등 약 300만 여 명이 사망하고 전 국토가 파괴되는 등 처절한 전쟁을 치룬 나라이다. 1960년대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 북한은 240달러, 필리핀은 800달러로 전 세계 167 개 국가 중 165위로 극히 못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70여년 만에 신생독립국가 중 경제규모 11위, 국민소득 3만5천 달러 시대를 만든 가장 모범 국가이다. 우리는 여기에 머물며 만족 할 수 없는것이다 . 반드시 제4차 산업혁명을 성공, 선진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근면· 자조·협동 정신과 '하면 된다'는 새마을 운동으로 땀 흘려 노력해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이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새마을운동은 국가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국민정신 운동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세계에서 우리만이 갖고 있는 유일하고 소중한 역사인 것이다. 박정희 시대, 70년 경부고속도로를 완공하고 73년 중화학공업시대를 선언 산업화와 무역입국을 성공하고 이어서 제3차 산업혁명 (IT:전기통신)까지 성공한 바탕은 새마을운동 정신과 민족의 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세계는 2016년부터 시작한 제4차 산업혁명(ICT)이다. 전 세계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고 있다. 이것 역시 우리 앞에 놓인 엄중한 역사적 소명이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제4차 산업혁명을 성공해야 선진국 대열에 진입 할 수 있다고 했다. 허허벌판에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구미에 전자단지를 건설한 것은 당시 지도자의 절실한 상상력이었다. 이 시대 역시 민족의 혼이 절실한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점에서 새마을 운동과 제4차 산업혁명은 대단히 유사하다. 우리에게는 아이러니한 역사의 운명 같다. 제4차 산업혁명(ICT)이란 시대적 가치는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민족의혼을 일깨워야 한다. 현제보다 더 나은 미래, 상상력을 높이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업이며 선진국 되는 길이다. 새마을 지도자들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개념과 역사적 소명을 교육해, '새마을정신'은 이 시대에도 역사의 중심에 서있다는 자존심을 불어 넣어주는 교육이 중요하다. 새마을 지도자들 교육은 지도자들의 생활을 변화를 시키고 시민들에게도 빠르게 확산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위대한 한강의 기적을 만든 새마을 정신을 여기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은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이 한강의 기적을 만든 힘이 된 것처럼 민족의 혼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성공 시켜야한다. 우리 한국은 디지털 (Digital)강국으로 인터넷도 강하다. 국민의 손재주는 천부적이다. 4차 산업혁명의 속성상 우리 국민은 어떤 나라보다 타고난 재능이 월등하다. 이런의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새마을 지도자들에게 '제4차 산업 혁명시대 미래의 변화' 를 교육, 새마을 지도자들의 눈높이를 한 단계 더 높 혀 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황무일 대구시 교육청 제4차 산업혁명 교육 강사.
2025-03-06 06:30:00
'독립된 사법부'는 이의 제기가 허용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절대 가치이다. 문제는 '독립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이다. 대답은 자명하다. 법관이 아니라 법관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와 그 판단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법관을 위한 것이 될 때 독립은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나, 정치권력을 포함한 사법부 밖의 모든 권력에 순응(順應)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 추구 행위를 법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성곽(城郭)으로 전락한다. 사법부가 '성역'(聖域)이 되는 것이다. 이런 가치 전도(顚倒) 현상을 계엄·탄핵 정국이 잘 보여 줬다. 법원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내란죄를 적시해 청구한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해 줬다. 수색영장에서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나 '공무상 비밀에 관한 것임을 신고한 장소'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 압수하지 못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조항의 적용을 예외로 했다. 법원이 불법에 '합법' 도장을 찍고, 법을 판사 마음대로 주무른 오만(傲慢)이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이유가 있다'는 달랑 15자(字)짜리 구속영장 발부 이유 역시 오만이 철철 넘쳤다. 어떤 이유로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지 않나? '네 죄를 네가 알렷다'고 하는 '사또 재판'과 무엇이 다른가. 헌법재판소는 비상계엄에 연루된 군과 경찰 지휘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 기록을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증거로 채택했다. 윤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면서 증거로 계엄 관련 언론 보도 60여 건만 낸 야당이 검찰의 수사 기록을 추가 증거로 채택해 달라고 하자 탄핵 재판 절차 진행을 맡은 이미선 재판관이 이를 수용했다. 이는 '재판·소추 또는 범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은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재법 제32조의 명백한 위반이다. 그러나 이 재판관은 관련 헌재 규칙을 들면서 헌재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상위 법령인 헌재법이 안 된다는데 하위 법령인 규칙으로 된다는 것이다. 누가 그런 권한을 줬나? 헌재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검찰 등의 수사 기록에 의존해 심리(審理)가 이뤄져 탄핵 사유가 인정된다는 선입견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주장대로 검찰 수사 기록은 윤 대통령의 반대 신문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어서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게다가 야당이 제출한 계엄 관련 언론 기사 60여 건은 전문(傳聞) 증거에 불과하다. 탄핵 심판은 형사소송절차를 준용해야 하고, 전문 증거는 형사소송법상 증거 능력이 없다. 야당이 검찰 수사 기록을 추가 증거로 내겠다고 한 이유다. 이 재판관이 야당의 요청을 수용한 것은 증거가 될 수 없는 증거를 증거랍시고 채택한 것이자, 그것도 야당이 해야 할 증거 수집을 헌재가 대신 해 준 것이다. 헌재가 야당의 대리인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도 헌재는 똑같이 했다. 헌재는 법을 어겨도 되는 '성역'의 선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헌재 공보관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정치 성향이 논란이 되자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해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의해 좌우되는 건 아니다"고 했다. 국민을 희롱(戱弄)하는 오만한 말이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은 '기각 4 대 인용 4'로 결정 났다.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한 게 아니라 '당파적'으로 적용한 결과 아닌가? 이 위원장 탄핵소추 사유인 '방통위 2인 체제'는 이 위원장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국회가 방통위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위원장은 출근 이틀 만에 탄핵소추됐다. 법률을 위반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헌재 재판관 4명은 인용에 가담했다. 이들 중 3명은 정치 성향이나 이런저런 혈연·지연으로 보아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공정을 기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양심과 상식이 있다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빠져야 한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 이미 헌재는 윤 대통령 측의 정계선 재판관 기피(忌避) 신청을 기각했다. 이 역시 재판관의 정치 성향이 어떻든,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혈연·지연에 얽혀 있든 국민이 상관할 바 아니라는 성역의 선언이다.
2025-02-09 17:31:29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온 구호다. 최순실(이후 최서원으로 개명) 국정 농단은 대통령에 무한 권력을 부여한 현행 헌법 때문이며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소추를 전후해서도 똑같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와 한계가 재확인됐다며 대통령 권력을 축소·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 체제하에서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소추됐으니 그럴듯하게 들린다. 과연 그럴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탄핵당하는 제왕도 있나? 제왕이 탄핵당한다면 그 자체로 제왕일 수 없고, 제왕을 탄핵하는 세력(1인이든 집단이든)이 진짜 제왕이 아닌가? 제왕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과 권한을 가진 지배자라는 뜻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함의(含意)가 그런 것이라면 윤 대통령은 계엄을 할 필요도 없었다. 계엄을 마음먹을 상황까지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탄핵소추당할 일도 없고, 내란 수사권이 없는데도 공수처가 체포·수사하겠다고 날뛰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러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가 제왕인가. 대통령인가? 국회인가? 국회다. 국회는 대통령과 행정·사법 공직자들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어떤 이유로도 탄핵소추되지 않는다.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돼도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런 특권이 탄핵소추 남발을 낳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29건의 탄핵소추를 발의해 13건을 일방 통과시켰다. 그 대부분이 '직무 정지'를 노린 '정치 탄핵'이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을 탄핵소추해 놓고 정작 헌재 탄핵 심판에는 국회 측 신청인인 정청래 법사위원장과 변호인 등이 '노쇼'한 것은 이를 잘 보여 줬다. 세계에서 이런 식의 탄핵소추를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반면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주지 않는다. 이로 인한 대통령의 국회 견제 기능 약화를 보완하는 장치는 기껏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뿐이다. 그러나 '야당 단독 법안 통과→대통령 거부권 행사→야당의 재발의' 도돌이표가 보여 줬듯이 재발의를 무한 반복할 수 있다. 또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는 엄격한 요건을 부과하면서 국회에는 '지체 없는' 계엄 해제 요구권을 줬다. 무엇보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수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인정했다. 그는 퇴임 후 4개월 만인 2008년 6월 지지자들 모임에서 "해 보니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 있는 정책은 몇 가지가 안 된다. 국회를 상대로 따져도 막상 법안으로 올라오는 건 다른 방향으로 굽어져 간 일이 많았다"고 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개헌의 산물이다. 개헌의 바탕에는 대통령 권력만 제한하면 독재나 권한 남용은 사라진다는 소망적 사고가 깔려 있었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는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착각(錯覺)이었는지 뼈아프게 말해 준다. 87년 개헌은 '제왕적 국회', 언론인 선배 배병휴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1인 헌법기관의 집합으로 집단적 제왕'이라는 새로운 괴물을 낳았다. 그런 점에서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개헌론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대통령 권력을 축소·분산하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대통령 권한 축소와 함께 국회 권한을 강화하자는 것도 있다. 한마디로 지금도 제왕인 국회를 더 힘센 제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21, 22대 국회를 거치면서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의회는 독재를 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근거 없는 맹신(盲信)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과 국회의 건강한 견제와 균형이다. 그러자면 대통령 권한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를 꼽자면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부활이다. 국회해산권이 있었으면 실행에 옮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윤 대통령은 계엄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협치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퇴임하면서 "협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한 당도 전체 의석의 과반을 넘지 않게 선거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인 자신이 보기에도 자당의 폭주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소리를 했겠나 싶다.
2025-01-12 18:21:25
[정경훈칼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범죄혐의자의 대선 출마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윤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가 파면 여부를 180일 이내에 결정하게 된다. 탄핵안 기각이든 인용이든 엄청난 정치·사회적 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인용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바로 15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 혐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에 출마하는 사태가 불러올 윤리적·도적적·법률적 혼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은 중대한 시험을 맞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의 혐의 중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는 1심에서 각각 당선 무효형과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선 전에 대법원이 각각 당선 무효형과 금고형 이상을 확정하면 이 대표는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 전에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골치가 아파진다. 헌법 제84조는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 재임 중 대통령은 형사소추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 재판이 계속되는지 중단되는지, 계속돼 유죄가 확정됐을 때 대통령직을 유지하는지 못 하는지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헌법은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다. 제정 당시 상정하지 못했던 사태들이 속출하는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다. 이를 미국 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스는 이렇게 갈파(喝破)했다. "신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완전하게 작동하는 통치 체제를 개발하는 지혜를 그 어떤 정치인이나 철학자에게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 지혜의 부재를 메우는 것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 즉 상식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 상식이란 '갖은 지연 전술로 재판을 질질 끌어온 범죄 혐의자가 대통령 탄핵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을 유죄인지 무죄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악해서는 안 된다'쯤 될 것이다. 이 상식이 실천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가치관의 대전환(도덕과 윤리의 타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가다듬어 온 도덕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되면 그만'이라는 새 가치관으로 대체될 것이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앞선 세대의 '바르게 살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는 가르침은 '꼰대'들의 물정 모르는 헛소리가 될 것이며, 윤리 교과서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도덕적 아노미로 빨려 드는 것이다.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이 접수됐지만 한 달이 거의 다 되도록 변호인을 선임(選任)하지 않고, 소송기록접수 통지도 수령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재판을 시작할 수 없다. 명백한 재판 지연 의도이다. 이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정치 검찰의 창작'이라고 해 온 그간의 주장과 배치되는 행태다. '정치 검찰의 창작'이 사실이라면 신속 재판을 자청(自請)하는 게 상식에 맞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없음을 본인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범죄 혐의자의 대권 도전이라는 혼돈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하려면 법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이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소요 기간(63일, 91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차기 대선은 앞으로 150일 이내, 즉 내년 5월 중순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준수를 강조하는 선거법 규정(1심 6개월, 2·3심 각 3개월)대로 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 2·3심이 진행된다면 대법원 판결은 내년 5~6월에 나올 수 있다. 최종심이 대선 전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범죄 혐의를 안고 대선에 출마하는 사태가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이는 국민에게 큰 부담이다.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만큼 유죄나 무죄 심증만으로 지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자 무엇보다 심각한 오판을 낳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 대표 재판을 속도전으로 치러야 한다.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사건은 대선 전 대법원 판결이 어렵다면 2심만이라도 빨리 선고돼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위한 최소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2심을 무제한 미룬다는 풍문이 돈다. 풍문이 사실이라면 법치는 무너진다.
2024-12-15 17:52:34
[정경훈 칼럼]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는 무죄'라는 자기 최면(催眠)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의 말이다. 1953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전복(顚覆)하려 몬테카를로 병영을 습격했다 체포돼 15년 형을 선고받은 법정 최후 진술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후 카스트로가 역사를 만듦으로서 그 말은 실현됐다. 그 역사란 폭력 혁명과 독재정권 수립이다. 그런 점에서 카스트로를 무죄로 만든 것은 역사가 아니라 카스트로 자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카스트로의 이 말은 비장미(悲壯美)가 넘친다. 지금 불의(不義)한 현실의 법정에서는 유죄이지만 정의가 살아 숨 쉴 훗날에는 반드시 무죄가 될 것이며 그날이 올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묻어 난다. 이렇게 '폼'이 나서인지 '현실의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국내 좌파들은 이 말을 다양하게 변형해 즐겨 차용한다. 전형적인 사례가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이다. 그는 2007년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의 확정 판결을 받고 만기 복역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 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는 나는 무죄"라고 했다. 당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한 총리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한다"며 이를 거들었다. 한명숙은 수감 직전에는 오른손에 성경, 왼손에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들고 구치소 앞에 나타나 역시 "결백하다"고 했다. 2021년에도 자서전 '한명숙의 진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에서 "난 결백하다. 그것은 진실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희생자 코스프레' '자서전 감성팔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남지사를 지낸 김경수가 대선 여론 조작 혐의로 202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도 같은 소리가 쏟아졌다. 그가 "법원을 통한 진실 찾기는 더 이상 진행할 방법이 없어졌다.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며 대법원 판결을 비난했다. 이에 당시 친문 홍영표 의원은 "김경수 지사의 결백을 확신한다"며 "대법원이 눈감은 진실이 양심과 역사의 법정에서는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진보 진영 경쟁 후보에게 2억원을 건네 매수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확정받고 10개월가량 복역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도 한통속이다. 재판에서 "진실이 오해보다 강하고 선의가 범의(犯意)보다 강하다는 것이 드러나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상대 후보에게 돈을 준 것이 '매수'가 아니라 '선의(善意)의 지원'이라는 것이다. 지난 9월 재출마를 선언하면서는 "대법원 판결이 다 옳은 건 아니다. 제 양심의 법정에서 당당하고 떳떳하다"고 했다. 이런 '역사와 양심의 법정' 타령은 억누를 수 없는 궁금증을 낳는다. 첫째 현실의 법정과 역사와 양심의 법정은 무엇이 다르고 그 차이는 무엇인가이다. 현실의 법정에서 유죄라도 양심과 역사의 법정에서는 무조건 무죄란 것인가? 둘째 정말로 결백하다면 언제 열릴지 기약(期約) 없는, 아니 열릴지조차 알 수 없는 '역사와 양심의 법정'을 무작정 기다릴 게 아니라 당장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 그게 해원(解冤)의 가장 빠른 길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양심의 법정 타령' 역사에 한 페이지를 기록했다. 그는 선고 직후 "현실의 법정은 아직 두 번 더 남아 있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고 했다. 2심과 대법원 상고심에서 1심 선고가 뒤집어지기 어려울 것이란 불안감이 읽힌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 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기적처럼 무죄가 됐다. 'TV 토론에서 돌발적 질문에 대한 답변은 거짓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권순일 당시 대법관의 희한한 논리 덕분이었다. 그 이면에는 김만배를 통한 '재판 거래' 의혹이 있다. '조희대 대법원'에서도 이런 거래가 가능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1심 선고가 2, 3심에서 뒤집어질 가능성도 낮을 것이다. 이 대표도 명색이 변호사 출신인 만큼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는 말이 이런 깨달음의 표현이라면 기자의 상상일까.
2024-11-17 17:43:13
[정경훈 칼럼] '한국전쟁은 대리전'? 지적 게으름인가 오만인가
"그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해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 중 일부 주제에는 완벽하게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그가 우연히 들춰보게 된 책 몇 페이지에서 끌어낸 견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럼에도 어느 경우에나 권위자의 풍모를 풍기기는 마찬가지였다"('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토머스 소웰)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동료 경제학자로 케인스의 전기를 쓴 로이 해로드(Roy Harrod)의 케인스 평가이다. 케인스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아는 척 '폼'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인 일반에 해당하는 문제다. 제 분야에서 거둔 우수한 능력과 성과를 다른 분야에서도 통달한 듯 행동해도 되는 면허증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도 그 대열(隊列)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노벨문학상, 프랑크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인 영국의 맨부커 상을 받은 다음 해인 2017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을 보면 그렇다. 맨부커상을 받아 문학으로는 인정을 받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유아(幼兒)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한강은 '한국전쟁은 인접한 강대국들에 의한 대리전이었다고 했다. 과거 좌파들이 퍼뜨린 악성 선전의 반복이다. 이런 요설(妖說)은 소련 붕괴(崩壞)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소련 비밀 문서가 대거 공개되면서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을 설득해 일으킨 한반도 적화 남침 전쟁'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를 몰랐나? 그렇다면 절망적인 지적 게으름이요 무지다. 알고도 그랬다면, 사실(史實) 자체는 물론 그것을 밝혀낸 수많은 사람들의 지적 성과를 몽땅 부정하는, 더 질 나쁜 오만이다. 무엇보다 이는 김일성의 전쟁 책임을 희석(稀釋)시킨다는 점에서 도덕적 파탄이다. 기고문이 논란을 빚자 한강은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거시적, 복합적인 인식은 북한이라는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를 궤변(詭辯)이다.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인식'은 도대체 어떤 인식인가. 한국전쟁이 '대리전'이면서 '김일성의 남침 전쟁'이란 것인가?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한국전쟁에 대한 모호한 인식이 어떤 점에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조지 오웰은 "명료한 언어의 대적(大敵)은 불신실(不信實)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관용구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이"라고 했는데 딱 그 꼴이다. 평화 근본주의(根本主義)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그는"우리는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에 의한 해결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도대체 승리라는 것은 공허한 구호일 뿐 아니라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했다. 철부지 평화주의자들의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허위적 구호(口號)의 재연이다.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물음의 답은 당연히 평화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이미 갈파(喝破)한대로 평화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복이다. 항복의 대가로 얻은 평화가 과연 진정한 평화일까? 그렇다면 대한제국이 전쟁 없이 나라를 일본에 내준 것도 평화이다. 한강은 이 땅의 사람들이 이런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하나? 기고문을 보면 그렇게 보이는데 "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제1야당 대표와 한 줌의 그 추종자 무리 말고는 그런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단언컨데 없을 것이다. 의문은 그치지 않는다. 승리라는 것이 과연 "공허한 구호이고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일까? 2차 대전 중 영국 총리 처칠의 트레이드 마크, 'victory'(승리)를 뜻하는 'V' 사인이 '공허한 구호'였고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이었나? 공산권 붕괴를 일궈낸 레이건의 빛나는 승리도 그런 것이었나? 한강은 "한국은 몸서리 친다" 운운하면서 평화를 갈구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자가 누구인가? 남한인가? 미국인가? 북한 김정은인가? 그의 글은 미국을 지목하고 있는 듯 한데 노벨문학상이 여기에 정당성을 부여해줄까? 지금도 그 때와 같은 생각인지, 그의 작품에 그런 생각이 녹아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2024-10-20 17:57:25
[정경훈 칼럼] '통일 말자' 임종석, 자각인가 추종인가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자율성 없는 말초(末梢) 조직이었다. 이런 소련의 '지도'(指導)를 담당하는 기구가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이다. 중앙집권적 관료 체계와 절대적 상명하복의 '철의 기율(紀律)'을 갖춘 볼셰비키의 복사판이었는데 1928년 제6차 대회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적 위기와 혁명적 격변'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정세 판단을 내렸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와 뒤이은 세계 대공황은 이런 판단에 확신을 부여했다. 이에 들떠 코민테른은 극좌(極左) 노선을 채택하고 각국 공산당에 비타협적 투쟁을 독려했다. 투쟁 대상에는 보수 진영은 물론 폭력혁명에서 온건한 합법 투쟁으로 방향을 바꾼 사회(민주)주의자도 빠지지 않았다. 코민테른은 이들을 '사회 파시스트'(social fascist)라고 비난하며 그들과 모든 관계를 단절하라고 각국 공산당에 지시했다. 당시 유럽 공산당 가운데 가장 전투적이었던 독일 공산당은 이를 충실히 이행,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서구의 하인'이라고 비난하고, 나치가 프로이센의 SPD 주(州)정부에 대한 불신임 국민투표를 발의하자 나치를 편들었다. 그러나 레닌이 '좌익 소아병(小兒病)'이라고 비판했던 이런 극좌 노선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집권하고 공산당이 박살 나면서 치명적인 오류로 판명 났다. 이에 따라 코민테른은 1935년 제7차 대회에서 '반파시즘 통일전선'-파시즘 척결을 목표로 하는 모든 정치 세력과 연대(連帶)해 공산당의 혁명 역량을 보전하고 기회를 보아 연대 세력을 제거하고 공산당이 단독으로 권력을 잡는다-이란 수정 전술을 채택했다. 연대 대상에는 우파도 포함됐는데 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의'의 배신이었지만 서구 공산당은 이에 전적으로 호응(呼應)했다. '극좌 노선'에서 '우익 기회주의'로 급선회한 것이다. 히틀러에 의해 SPD가 와해되면서 가장 중요한 유럽 공산당이 된 프랑스 공산당은 이를 잘 보여 줬다.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피에르 라발의 보수 정부에 협조해 극렬히 반대했던 군 의무 복무기간 연장과 군 예산 증강을 지원했다. 이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스탈린은 불·독(佛·獨) 개전(開戰) 시 프랑스가 독일을 붙잡아 놓아 독일이 총부리를 소련으로 돌리는 것을 막으려는 계산에서 그런 지시를 했던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은 철저히 소련의 이익에 봉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씨가 딱 그 꼴이다. 그는 '9·19 공동선언' 6주년을 맞아 "통일을 하지 말자"고 했다.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제3조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했으며,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자"고도 했다. 임 씨는 민족해방(NL)계 운동권 출신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목표로 내건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냈으며, 1989년 임수경 씨 방북을 주도했다. 2019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할 만큼 통일에 '집착'해왔다.(그 통일이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통일을 말자'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변심'의 이유가 무엇인지-지령(指令)을 받았는지 자각(自覺)인지-모르겠으나 북한 김정은의 '통일 포기' 노선의 추종(追從)임은 분명하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 관련 조직을 없앤 것은 물론 북한 국가의 '통일' 표현도 지웠다. 할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아버지 김정일이 내걸었던 '적화 통일'이 점점 멀어지는 현실에 대응하려는 생존 전략이자 김일성·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입지를 굳히려는 방향 전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그렇다면 임 씨의 통일 매진은 매진대로, 통일 포기는 포기대로 우리 민족 전체가 아닌 철저히 북한의 이익을 위한 추종인 셈이다. 남한 친북 단체들의 '통일 지우기' 뇌동(雷同)도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인민의 뇌수(腦髓)'가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괴뢰(傀儡)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을 것이다. 임 씨를 '의장'으로 '결사 옹위'했던 전대협 사람들 중 '통일'을 버리지 않은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임 씨의 '통일 포기'에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2024-09-22 17:40:09
[기고] 디지털(Digital) 시대, 우리는 무엇이 시급한가?
제4차 산업혁명은 상상력을 디지털(Digital)로 해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전 세계인들은 디지털 문화에 앞장서려고 불꽃 튀는 경쟁을 하고 있다. 삼성이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임원 1만7천여 명에게 200만원 상당의 스마트폰을 선물한 것도 디지털 잔치라고 할 수 있다. 세계 10대 기업 대부분이 디지털 기업이다. 이 기업의 창업자 대부분은 20대에 창업했다. 자기만의 상상력(호기심)을 디지털로 해결하여 세계에 우뚝 선 기업이 된 것이다. 기업 순위 1위인 MS(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21세, 2위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22세, 3위 앤비디아의 젠슨 황은 31세 등등. 이들은 평소 미래를 상상하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청년 시절 정력을 다 쏟은 사람들이다. 우리 중·고생들의 교육은 어떤가? 3D프린터 등 단편적 디지털 교육이 전부이다. 우리 아들 딸들의 손재주는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가장 뛰어난 수준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교실에서는 전자 칠판으로 수업한다. 필자는 교육 콘텐츠를 담은 USB를 전자 칠판에 세팅해서 교육한다. 전자 칠판마다 특성이 있어 처음 대하는 전자 칠판은 학생들에게 세팅해 달라고 요청하면 어느 학생이든지 전문가처럼 잘해 준다. 우리 자녀들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는 솜씨는 놀랄 정도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제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대답을 못 한다. "반도체요"라고 대답하는 학생이 가끔 있다. 필자가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전화기와 컴퓨터를 합쳐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전화기와 컴퓨터를 어떻게 사람의 한 손에 적합하도록 작게 만들까" "그것은 반도체 때문이다"라고 설명해 주고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며 우리가 만들어 세계에 공급해 준다"고 하면 반도체에 대한 자부심과 궁금증이 용솟음치는 표정들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든 원동력은 상상력과 높은 사고력이다. 상상력을 혁신(Innovation)해서 가치를 창출해 낸 결과물이 스마트폰인 것이다. 기억의 반대는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우리는 대부분 '망각'이라고 대답한다. 우리 중·고생에게 미래를 생각하는 '상상'이라고 답변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금 중·고생의 미래는 오직 수능이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미래와 관련한 교육을 하면 학부모들은 내 아들은 수능이 중요한데 왜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을 수업하느냐"라고 항의가 빗발친다고 한다. 수능이 중고생 교육의 중심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수능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지식을 외워야 하는 '암기식 교육'이다. 과거 지식을 외우느라 밤을 새운다. 학생들이 미래를 생각하는 상상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흙으로 덮어 꼭꼭 밟아 버리는 형국인 것이다. 중·고생 때부터 높은 상상력과 궁금증을 디지털로 혁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을 거머쥔 주인공은 대부분 20대 전후의 '삐약이'들이다. 20대가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능이 되도록 우리 교육의 대변화가 시급하다. 앞으로 다가올 생명공학 산업혁명을 개척할 인재의 양성도 지금 우리 중고생의 교육에 달려 있다.
2024-08-26 14:50:44
[정경훈 칼럼] '친일 세력'이란 허깨비 보고 떼로 짖고 따라 짖는 군상들
'읍견군폐'(邑犬群吠·'동네 개가 떼로 짓는다'는 뜻).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 시인·정치가 굴원(屈原)의 글에 나오는 표현으로, 소인배가 떼로 남을 비방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묻지마 따라하기'라는 의미도 있는데 후대 문인들이 즐겨 차용했다. "개 한 마리가 뭔가를 보고 짓자 백 마리 개가 그 소리만 듣고 짓는다. 한 사람이 거짓을 퍼뜨리면 온 사람이 진실이라고 퍼나른다."〈일견폐형(一犬吠形), 백견폐성(百犬吠聲), 일인전허(一人傳虛), 만인전실(萬人傳實)〉 후한(後漢)의 은둔 사상가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에 나오는 말이다. 동시대의 도학자들을 향해 "겉으로는 도를 말하나 속으로는 부귀를 바라며, 유학자의 고상한 옷을 걸쳤으나 행동은 개·돼지나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고, 논어(論語)·맹자(孟子) 등의 유교 경전들도 진정한 도학이 아니라고 비판하다 탄핵돼 옥중에서 자진(自盡)한 명대(明代)의 반항적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의 '수폐'(隨吠·따라 짖음) 비판은 더 가열(苛烈)차다. "나는 오십세 전에는 한 마리 개였다. 앞에 있는 개가 뭔 가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었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실실 웃기만 했다"(是余五十以前眞一犬也, 因前犬吠形, 亦隨而吠之, 若問以吠聲之故, 正好啞然自笑也已) 이탁오의 저서 '속분서'(續焚書)의 한 대목으로, 젊은 시절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해 온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은 무리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이런 사실을 소개하는 것은 광복 79주년을 맞아 좌파와 좌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쪽으로 붙은 것 같은 군상(群像)들이 뱉어 내는 '친일파' '친일사관' 타령 때문이다. 이들은 신임 독립기념관장을 '뉴라이트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여 사퇴를 요구했고, 수용하지 않은 대통령을 일제(日帝)의 밀정(密偵)으로 비유하거나 더 직설적으로 "조선총독부 10대 총독" "왕초 밀정" "정신적 내선일체(內鮮一體) 매국정권"이라고 했다. 이런 친일 몰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에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소리가 진동했다. "완전하게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나라의 슬픈 자화상"(송영길),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김두관),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의 부당한 공세"(더불어민주당 의원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15명) 등등. 그 단순 논리가 참으로 용감했다. 용감하면 무식하다고 했나? 친일파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도 없이 '윤미향을 비판하면 친일 세력'이라니. 윤미향의 자기방어 논리도 기가 막혔지만 윤미향의 주장을 그대로 주워섬긴 군상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었다. 떼로 짖고(群吠), 따라 짖는(隨吠) 개꼴 아닌가. 이들의 친일파 타령은 실체가 없다. 우리가 문화, 경제, 산업에서 일본을 앞서거나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지금 그 어디에 일제하의 '친일파' 같은 배역자가 있다는 말인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라. 못 할 것이다.(그들은 이런 말하는 기자를 친일파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친일 몰이'는 허깨비에 홀린 몽유병(夢遊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쓰임새는 '우리 편의 방어와 상대편에 대한 공격'이다. 문 정권 때 집단 발작처럼 좌파 진영을 휩쓴 '죽창가' '노노 재팬'은 이를 잘 보여줬다. 좌우 정권을 넘나들며 국회의원 네 번에 국정원장까지 지내며 '양지'만 좇아 왔고, 조부가 독립유공자라는 것 말고 내세울 게 뭐가 있느냐는 소리를 듣는 광복회장의 '친일사관' 타령도 영락없는 '수폐'(隨吠)이다. 그는 광복회가 자체 진행한 광복절 기념식에서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친일사관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친일파가 없는데 어떻게 친일사관이 되살아나나? 광복회장이 말한 '식민사관'은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난센스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하에서도 부분적인 근대화는 이뤄졌음을 인정할 뿐이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합법화하지 않는다. 이게 사실이 아니면 증거로 논박(論駁)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식민사관' 운운하는 것은 허깨비에 홀린 몽유병이기는 마찬가지다.
2024-08-18 19:19:31
[정경훈 칼럼] 좌파들의 애처로운 '박정희 지우기' 선동
기자의 집에는 TV가 없다. 몇 년 전 이사하면서 없애 버렸다. '바보상자'라는 지론 때문이다. TV를 없애 '바보'가 되지 않았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불편한 게 하나 있다. 요즘 어떤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드라나마 영화에 대한 정보는 신문 지면에서 얻는다. 7월 17일 자 조선일보 김윤덕 칼럼 〈경제개발 원조가 민주당? '삼식이 삼촌의 거짓말'〉도 그중 하나다. 지난달 19일 종영됐다는 송강호 주연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을 비평(批評)한 칼럼인데 그중 한 대목을 옮겨 본다. "문제는 세끼 밥 먹게 해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박정희가 아니라 민주당이 설계한 것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산업단지를 세우고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인천을 잇는 고속도로를 만들어 중국 7억 인구에게 신발을 수출하면서 14억 켤레를 팔 수 있다'고 외치는 주인공이 민주당 정치인이다." '삼식이 삼촌'의 주장은 절대 빈곤 탈출 발판 마련의 공헌자가 박정희가 아니라 민주당 장면 정권이라는 것이다. 좌파들의 전형적 선동이다. 드라마까지 이런 선동을 퍼 나르는 현실이 참으로 경악스럽다. 그런 선동은 두 개의 주장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장면 정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베낀 것이다'이다. 장면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만든 것은 맞다. 이승만 정부의 3개년 계획안을 참조해 1961년 5월 10일 마무리됐다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안(1961~1965)이다. 그러나 이 안은 인쇄 과정에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발표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안이 박정희의 지침으로 성안(成案)돼 1962년 1월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골간(骨幹)이라는 게 박정희 폄훼론자들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장면 정부안과 군부안을 비교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운석장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장면 정부 경제개발계획 원본(原本)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 정권의 경제정책과 장면 5-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수립, 결론') 기자도 두 계획을 직접 비교 분석한 자료를 찾아봤는데 불민(不敏)하고 천학(淺學)한 때문인지 찾지 못했다. 기자가 찾은 자료는 신문 기사나 미국 국무부의 평가 자료 등 '2차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박정희가 장면을 베꼈다'고 단정하지는 않지만 그런 주장을 비중 있게 소개하거나 5·16 군부의 안이 장면 정부안과 동일하다고 기술한다. 2차 사료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의식적 가공(加工)이나 배제(排除) 등 왜곡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가 장면을 베꼈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더구나 장면 정부의 계획을 검토했지만 참고할 내용이 없어 새 계획을 짰다는 군부 측의 주장도 있다. '박정희 지우기' 두 번째 논리는 '5·16 쿠데타가 없었다면 장면 정부가 경제개발을 했을 것이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좌파가 아닌 온건한 '리버럴'도 이에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역할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현대사 연구자로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박정희가 없었어도 경제성장이 성공적으로 되었을까'라는 질문이다.(중략) 만약 다른 사람이 정권을 잡았거나 민주당 정부가 계속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의 내용은 군사 정부나 박정희 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원형과 변용-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 박태균) 이런 주장이 입증되려면 5·16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진압돼 장면 정부가 계속 집권하거나 다른 정권이 집권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불가역(不可逆)이다. '박정희가 아니라도 경제개발은 가능했다'는 소리는 관념의 유희(遊戱), 상상의 비약(飛躍), 무용(無用)한 '역사의 가정'이다. 무엇보다 이런 주장의 오류는 계획을 성공과 자동으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계획만 하면 성공한다면 경제개발에 실패한 나라는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음은 우리처럼 경제개발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한 중남미 국가들이 잘 보여 주고 있지 않나? 사회주의 천국을 계획한 소련의 붕괴는 또 어떤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갖고 있지, 처맞기 전까지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다.
2024-07-21 17:47:22
[정경훈 칼럼] 법의 탈을 쓴 무법적 폭거 '이재명 방탄법'
유권자 1인 1표제 보통 선거를 기반으로 한 의회 체제하에서도 독재는 가능하다. 그것은 외양은 의회 민주주의이지만 실상은 '합법적 독재'다. 이는 기존 법률을 개폐하거나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국민의 대표들의 표결이라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법의 지배'(Rule of law)의 허울을 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법이 지배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헝가리 최장수 총리인 빅토르 오르반이다. 그는 2010년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피데스당이 52.7% 득표로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자 장기 집권을 위한 법률 '정비'에 착수했다. 그 첫 수순은 사법부 장악이었다. 헌법을 수정해 헌법재판소 판사를 11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늘어난 4자리를 자신의 측근들로 채웠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법률을 바꿔 대법원장 자격 조건으로 '헝가리 내 사법부 경력 5년 이상'을 신설했다. 이는 독자적 행보로 눈엣가시였던 안드라스 바카 대법원장을 축출하기 위한 공작이었다. 바카는 유럽 인권재판소에서 17년간 근무한 권위 있는 판사였지만 헝가리 내 판사 경력은 5년이 안 됐던 것이다. 오르반의 의도대로 바카는 물러나야 했다. 이어 오르반은 판사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낮추고 62세 이상 판사는 즉각 물러나도록 법을 바꿨다. 이에 따라 모두 274명의 판사가 물러났다. 이 법은 나중에 유럽연합의 압박으로 폐기됐지만 물러난 판사는 복직하지 못했다.('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 그 자리를 어떤 판사가 메웠을지는 짐작이 간다.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도 이에 못지않다. 오르반의 권력 강화를 위한 피데스당의 도구가 법이었듯이 7개 사건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적 방어를 위한 민주당의 도구도 법이다. 수사 검사를 무고죄로 처벌한다는 법, '특정인'을 '표적 수사'하지 말라는 법,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한 검사를 수사한다는 특검법, 수사와 판결에서 법을 왜곡한 판검사를 고발 처벌한다는 법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들 법률 조문에 '이재명'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지만 '이재명 방탄법'임은 누가 봐도 안다. 이재명 1인을 위한 법이다 보니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버젓이 법이란 이름을 가진다. '표적 수사 금지법'이 그런 예다. 이는 수사의 본질에 대한 의도적 외면이다. 수사는 본질적으로 '특정인(들)'에 대한 '표적 수사'다. ('표적 수사'라는 표현이 거부감이 있다면 '집중 수사') 범죄가 의심되는 인물을 특정해 첩보와 정보를 수집·검증해 사실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확실한 것으로 판단되면 혐의로 전환하는 것이 수사다. 특정하지 않으면 수사 자체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적 수사 금지법'은 이재명과 그 공범이라는 '특정인'을 수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런 법들은 '무엇이 법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법철학은 법률의 속성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일반성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적 행동 규칙이 법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추상성이다. 모든 사람들의 특수한 이해관계에서 중립적이어야 하는, 바꿔 말하면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한) 목적이나 동기를 내포하지 않은, 탈목적적인 사회적 행동 규칙이 법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재명 방탄법'은 이들 원칙을 모두 배척한다. 범죄 혐의자에 대한 수사와 재판의 방해라는 목적과 동기(추상성의 파괴), 이를 통해 모든 범죄 혐의자에게 적용돼야 하는 사법적 판단에서 이재명을 제외(일반성의 파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방탄법'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국회가 만든다고 무조건 법이 될 수 없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저서 '자유의 헌법'(1960)에서 이를 예리하게 갈파(喝破)했다. "입법부가 정한 법이면 무엇이든, 이런 법 아래에서 정부가 내리는 명령은 무엇이든, 이를 법이라 부르는 것, 이런 것만큼 웃기는 코미디는 없다. 이는 무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하이에크, 자유의 길', 민경국) 민주당은 듣고 있나?
2024-06-23 17:56:25
[정경훈 칼럼] '총선 민심'이라는 의회 독재 가짜 면허증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서문의 첫 문장이다. 이를 22대 총선 이후 한국 정치 상황에 대입하면 이렇게 패러디할 수 있겠다. '하나의 유령이 여의도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총선 민심이라는 유령이'.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은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압박하는 자신들의 언행의 정당성을 '총선 민심'에서 끌어낸다.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도, 해병대 채 상병 특검·김건희 특검 추진도, 양곡법 개정안·민주유공자법 국회 통과도 '총선 민심의 명령'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이를 거부하면 '국민과 역사에 대한 거역'이라고 거품을 문다. 이런 정신 구조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은 개나 물어갈 말라비틀어진 뼈다귀에 지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위헌적"이며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은 단적인 예다. 대통령 거부권(법률안 재의 요구권)은 헌법(제53조 2항)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이게 어떻게 '위헌적'인지 모르겠다. 대통령 거부권은 1987년 개헌 때 '대통령 국회 해산권'의 삭제에 따른 행정부의 입법부 견제 기능 약화를 보완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마저 없으면 현행 헌법하에서는 대통령과 행정부는 입법부, 구체적으로는 다수당의 집행부에 지나지 않는다. 야당이 추구하는 것은 이런 입법부 시녀로서의 행정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회 독재'이다. 그런데 이는 '상식'과 배치된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의회가 어떻게 독재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당연한 것 같지만 근거 없는 맹신일 뿐이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입법 폭주는 이를 잘 입증한다. 22대 총선에서도 175석을 얻었으니 다음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회 독재'는 '국민 다수의 집단지성(集團知性·collective intelligence)은 정의롭다'는 독단의 소산이다. 이는 참으로 위험하다. '정의로워서 다수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다수가 결정했기 때문에 정의롭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잠복해 있다고 경고한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논리 구조에서는 다수의 결정은 그 어떤 것도 정의롭고 무오류(無誤謬)이다. 민주당의 '총선 민심' 타령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생각의 연원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따르면 프랑스 계몽주의이다. 계몽주의자들의 초미의 관심은 국가 권력의 제한이 아니라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오느냐'였다. 그들은 한 사람의 왕이나 소수의 귀족에게 집중된 정치권력을 국민의 집합적 의지로 대체하면 인간의 '자유'는 자동적으로 확보되며, 국민의 집합적 의지는 의회의 다수의 의지를 통해 수렴된다고 봤다. 그 논리적 귀결은 무제한적 의회 권력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의회는 국민의 의지를 대표하는 곳이니 의회의 권력을 제한할 필요도 없고 제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하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운 사법부 독립이라는 당위도 실상은 허구이다. 법관은 원칙적으로 독립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판결은 의회가 제정하고 의회가 필요한 경우 언제든 변경할 수 있는 법을 기초로 이뤄진다. 물론 위헌 심판 같은 무분별한 입법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있긴 하다. 하지만 헌법도 의회 다수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그만큼 현대 민주주의에서 의회 권력은 막강하다. 문재인 정권 이후 지금까지 한국 국회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 권력의 원천은 '국민의 뜻'이다. 그런데 그 국민의 뜻은 어떻게 확인하나? 말도 안 되는 법을 밀어붙이고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것이 총선 승리에 내포된 민심의 명령이라면 똑같은 논리로 그런 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역시 대선 승리에 내포된 민심의 명령이다. 어느 민심이 정확한 민심일까? 개개인의 국민은 있어도 100% 지지를 받지 않은 다음에야 전체로서의 국민과 국민의 뜻은 없거나 최소한 확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총선 민심'은 왜곡 과장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추상적인 가공물이자 의회 독재 합리화를 위한 가짜 면허증이다. '국민의 뜻'을 참칭하지 말라는 것이다.
2024-05-26 19:13:12
[정경훈 칼럼] 우리의 장미꽃은 다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나
나치 독일 항복 후 승전국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탈나치화'였다. 그러자면 나치에 동조한 모든 독일인들을 공적 생활에서 추방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미국을 당황케 했다. 그 실상을 미 군정청장 루시어스 클레이는 이렇게 전한다. "우리 행정의 주된 난제는 상당히 유능한 독일인 중 어떤 식으로든 나치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연루되지 않은 자를 찾는 일이었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공직자인 경우가 많았는데…그중 상당수는 나치당 활동에서 단순 가담자 수준을 뛰어넘었다."('포스트 워 1945~2005' 제1권, 토니 주트) 나치 가담과 동조는 범독일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 원인을 기술하려면 책 몇 권으로도 모자라겠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도덕적 자폭'이다. 히틀러는 집권 전부터 "유대인은 병균, 제거해야 할 존재"라고 했다. 집권 후 유대인을 어떻게 '처리'할지 예고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권력을 안겼다. 그리고 히틀러는 예고대로, 유대인 '훈증(燻蒸) 살균'을 실천에 옮겼지만 독일인들은 모른 체했다.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은 유대인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밤마다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열차나 화차를 보고 들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저 빌어먹을 유대놈들은 밤잠마저 설치게 한다'고 투덜댔다."('모던 타임스Ⅱ', 폴 존슨) 사설이 길었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난 총선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도덕적 무정부 상태의 징후 때문이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은 이를 압축해 보여 준다. 조국혁신당은 24.25%의 득표율로 12명의 비례대표 당선자를 냈다. 이 중 5명이 전과자 또는 피의자·피고인이다. 한 여론조사는 이들이 배지를 달 수 있게 된 이유를 보여 준다. 조국혁신당을 찍었다는 이들의 80.2%가 '조국 대표의 윤리의식이 약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윤리의식의 마비 말고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도 마찬가지다. 아니 윤리의식 마비가 광범위해 보인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당 대표는 정치범도 양심범도 아니다. 민간사업자에게 천문학적 이익을 안긴 대장동·백현동 비리 의혹을 포함해 7개 사건, 10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잡범이다. 국민은 그의 '사당'(私黨)에 압도적 다수 의석을 안겼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과연 그럴까? 중우(衆愚)의 어리석은 선택은 아닐까? 이런 '승리'로 대표의 어떤 재판도 1심 선고가 다음 대선 전에는 나오기 어려울 가능성은 더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잡범이 2번이나 대통령을 넘보는 도덕적 아노미가 '뉴노멀'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 아노미는 이미 그 흉한 몰골을 드러냈다.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이대생을 미군 장교에게 성 상납시켰다는 김준혁 당선인의 주장을 '사실'로 만들려고 자신의 이모를 매춘부로 몬 것이 그렇다. 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이모도 매춘부로 만드는 패륜이 그쪽의 도덕임을 현시(顯示)한다. 야당의 압승 제1 원인으로 좌파 언론부터 여당과 보수 언론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을 꼽는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기 나름이다. 덴마크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이 고안한 '루빈의 꽃병'이란 그림이 있다. 보기에 따라 꽃병일 수도,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옆얼굴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불통'은 '신념', '독선'은 '의지'일 수도 있다. 설사 그런 관점 이동을 인정할 수 없다 해도 '불통'과 '독선'이 야권 인사들의 도덕적 파탄에 눈을 질끈 감고 표를 몰아줄 만큼 더 큰 잘못인지는 의문이다. 1951년 영국 더 타임스는 한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전하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았다. 그런 모욕을 딛고 우리는 장미꽃을 피워 냈고 그렇게 자부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실정(失政)과 비정(秕政)으로 점철됐던 문재인 정권 5년, 그럼에도 민주당의 21대 총선 압승, 대통령 거부권으로 간신히 버텨왔던 윤석열 정권 2년, 민주당이 압승하고 조국혁신당이 약진한 22대 총선은 이런 물음을 던진다. '우리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게 맞나? 장미를 쓰레기통으로 다시 던져 버린 게 아닐까?'
2024-04-28 17: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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