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용 논설주간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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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칼럼] 통장이 호구조사 온 까닭은?

    [매일칼럼] 통장이 호구조사 온 까닭은?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왔다. "마을 통장입니다. 조사할 게 있는데 집에 계시능교?" 찾아온 통장은 이것저것 캐물었다. 왜 혼자 사느냐, 가족은 어디에 사느냐, 한 달 수입은 얼마쯤 되나, 아픈 데는 없나, 급한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받을 데는 있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 있냐 등등. 보아하니 고독사 예방 모니터링 프로그램인 듯했다. 필자가 주민등록상 1인 가구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 사정을 말하자면 장성한 자식들이 취업해 나가 살고 있으며, 아내도 일 때문에 몇 년 전 다른 도시에 거처를 마련해 일주일에 이틀 정도씩 지낸다. 요즘 유행어로 '핵개인' 가족인 셈이다. 내가 고독사 우려 대상자로 분류돼 있었던 사실을 알고 나니 황당했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 복지 시스템이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고 있구나. 구청 열일하네.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1인 가구 고독사는 출산 기피·고령화가 낳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화 사회 진입이 확실시되는 나라다. 65세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면 초고령화 사회로 분류되는데, 2026년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서게 된다. 2023년 6월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0%다. 압도적 세계 최저다. 2017년 한국을 방문한 라가르드 당시 IMF 총재는 저출산율과 관련해 "한국은 집단자살 사회"라고 진단한 바 있다. 당시 출산율은 1.05명이었다. 지금의 한국 상황을 본다면 라가르드는 어떤 말을 할까? 더 강렬한 어감의 단어가 안 떠오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풍요를 누려 왔다. 현대의 중산층 소비는 조선시대 왕후장상 못지않다.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이 있어서 가능한 풍요이지만, 꾸준한 인구 증가가 주요 원동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많은 것이 바뀐다. 인구 정점을 지난 대한민국은 경험하지 못한 상황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만성적 인력난에 내수 소비의 급격한 위축이 기다리고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해 부동산 가치도 장기적 상승 기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부양받아야 할 사람이 늘고 부양 의무를 짊어져야 할 사람이 줄면서 세대 간 갈등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재원 조달 문제도 해법이 잘 안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출산율 감소 그래프 기울기를 완화해 보겠다며 수백조 원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헛돈만 허공에 날렸다. 인센티브를 통해 출산율을 높인 나라는 없다. 일본도 40년 동안 갖은 저출산 대책을 시행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실패가 뻔히 보이는 길을 뒤따라 걸었다. 우리는 적은 수의 젊은이가 많은 수의 노인을 부양하는 모습의 미래상을 그려 왔다. 그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일할 수 있는데도 일정 나이가 되면 은퇴하는 게 규범인 사회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다. 원한다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사회가 되어야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고 세수 기반을 그나마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 사회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고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해야만 추진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치가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야 하는데, 지금껏 한 행태를 보면 잘할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2023-10-29 22:03:56

  • [매일칼럼] 중도층 마음을 얻지 못하면

    [매일칼럼] 중도층 마음을 얻지 못하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여당 참패로 막을 내렸다. 17.15%포인트(p) 격차다. 여권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내년 총선이 암담할 것이라는 우려가 당내에서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려만 만연할 뿐 쇄신책은 딱히 잘 안 보인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이기려 해서는 안 된다. 주권자가 회초리를 들면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도 잘 안 보인다. 애먼 임명직 당직자들만 사표를 던졌다. 그들이 책임 선상에 있지 않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번 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보수 언론들조차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위도 꽤 매섭다. 지난 1년 반 동안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으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언론들은 늘 그래 왔다. 언론이 주야장천 '외람되오나'를 외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비판의 칼날은 진영을 안 가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보수 언론의 화력이 좌파 언론보다 셌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표 차이가 왜 이리 벌어졌는지 냉정히 분석해 보자. 사실, 우리나라 선거는 중도층 20%의 마음을 얻는 경쟁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각각 30% 정도씩인 보수·진보 핵심 지지층은 웬만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나머지 국민이 40%인데, 20%는 투표소에 가지 않으니 남은 20% 표심이 캐스팅 보트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 표 격차가 17%p를 넘었다. 적어도 강서구에서는 투표하는 중도층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집권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총선 승부처는 수도권인데 이번 보선으로 나타난 표심이 내년까지 이어지는 것은 국민의힘으로서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에서 0.73%p 표 차 신승을 거뒀다. 정부 정책과 이념을 안정적으로 추진해 나가려면 국정 지지율이 중요하기에 중도층 마음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은 지지층으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았지만 중도층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 참모진과 여당 지도부의 조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보선만 해도 이렇게 판을 키울 일이 아니었다. 행정 일꾼 뽑는 선거로 조용히 치러도 됐을 법한데 공천 과정에서 '윤심'이라는 말이 오가고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는 등 난리를 피웠다. 이번 총선을 미니 대선급으로 키운 것은 여당이었다. 국민들이 이번에 보낸 첫 신호를 여권은 엄중히 여겨야 한다.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공천해서는 안 된다" "눈도장 찍겠다고 강서구에 출동하는 당 지도부를 말려야 한다"는 식으로 조언한 대통령실 참모 또는 여권 인사가 혹여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이런 인물이 있다면 중용함이 마땅하다. 입에 발린 달콤한 말로 대통령 심기 경호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할 일이다. 듣기엔 쓰지만 옳은 소리에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 정책의 실패 확률이 적다. 대통령 중심제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고통'과 동의어이다. 이는 진영을 따질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시간은 길지 않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정책 추진 동력은 약해질 것이다. 윤 대통령은 실리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 미래로 나아가기 바란다. 그래야만 중도층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경제가 중요하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면 백약이 무효다.

    2023-10-15 20:01:15

  • [매일칼럼] 야당 대표의 단식

    [매일칼럼] 야당 대표의 단식

    3일 굶으면 사람은 남의 집 담을 넘는다고 했다. 식욕은 그만큼 강렬한 욕구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떤 이는 곡기(穀氣)를 스스로 끊는 선택을 한다. 1981년 아일랜드 단식투쟁은 최대·최장 규모 단식 사례로 꼽힌다. 아일랜드의 무장단체(IRA) 활동 혐의로 체포된 양심수 수십 명은 당시 영국 정부를 향해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며 극한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아사(餓死)했다. 사망은 55~75일 사이에 발생했다. 이 사례를 근거로 의학계에서는 인체의 단식 한계를 72일로 본다. 기적을 바란다 해도 75일은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관현 씨가 5·18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1982년 50일간 단식을 벌이다가 숨진 사례가 있다. 강의석 씨가 사립학교 종교 교육을 반대하며 46일 단식을 했으며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도 46일 단식을 했다. 앞서 밝힌 72일은 의학적 한계치일 뿐이다. 단식이 2주일을 넘으면 당사자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만큼 단식은 사회적 약자나 정치적·종교적 소수자 등이 자기 목숨을 걸고 선택하는 최후의 카드다. 그렇다고 해서 단식투쟁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무릅쓴다는 각오가 없다면 단식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힘 있는 자의 단식도, 자기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단식도 그렇다. 목하 대한민국에서는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이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18일로써 19일째다. 그는 무기한 단식 돌입의 이유로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일본 오염수 투기에 대한 국제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 등을 내세웠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 명분에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만한 대의가 있을까? 그의 단식과 거물 정치인의 역대 단식을 비교해 보자. YS는 1983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했다. DJ는 1990년 내각제 반대 및 지방자치제 실현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했다. 요구가 분명했고 대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요구에는 그러한 선명성이 결여돼 있다. 윤 대통령이 응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이 대표의 단식에는 '사법 리스크 방탄용' '민주당 내부 결속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게다가 '출구'도 안 보인다. 명분이야 어찌 됐든 단식은 길어질수록 효과가 극적으로 커진다. 야당 대표의 단식 장기화는 정치에 부담이다. 처음에는 비판적 거리를 두던 여권도 대응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6일 SNS에 "저는 며칠 전 이재명 대표께 단식 중단을 요청한 바 있다"며 "이 대표께 단식 중단을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식 초기 철부지 어린애 밥 투정 같다고 했던 말을 사과드린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목숨 건 단식을 조롱한 건 잘못"이라며 단식 중단을 권고했다. 이 대표로서는 단식투쟁을 통해 이미 그 나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민주당 내부 단속을 이끌어 냈고 뉴스 중심에도 섰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홍준표 시장이 권언했듯이 세상사는 '신외무물'(身外無物) 즉, 몸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이 대표는 단식을 멈추기 바란다. 대한민국을 위해 필요한 행동이며, 그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2023-09-17 19:06:48

  • [매일칼럼] ‘9월 경제위기설’, 과장된 위험이지만…

    [매일칼럼] ‘9월 경제위기설’, 과장된 위험이지만…

    폭염이 물러가면 경제 비관론이 고개를 들곤 한다. 이른바 '9월 위기설'이다. 올해도 그렇다. 사실, 9월에 경제적 변고가 여럿 있었다. 1997년 9월에 우리나라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있었다. 세계 금융 시장을 패닉에 빠트린 9·11테러도 2001년 9월에 벌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과 2015년에 9월 위기설이 나돌았다. 2008년에는 외국인 단기외채 매도 및 환율·금리 급등이, 2015년에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및 중국 경기 불안이 9월 위기설을 키웠다. '예고된 위험은 위험이 아니다'라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빼면 9월 위기설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2023년 한국 경제 9월 위기설 역시 기우(杞憂)로 치부해도 될까? 위기설의 면면을 짚어보자. 위기설의 진원지 중 하나는 코로나19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지원금 9월 만기 도래다. 하지만 이 우려는 과장됐다. 전체 대출 잔액의 92%(78조8천억 원)가 만기 연장(2025년 9월)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위험이 있는 차주(借主)는 1천100명 정도다. 한국 경제를 흔들 만한 악재는 아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은 어떤가. 3월 말 현재 연체율이 2.01%다. 늘어나고는 있지만 2012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연체율(13.62%)에 비하면 걱정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 역전세 물량과 보증금 미반환 충격이 9월에 닥치며 그 규모가 24조~300조 원에 이른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정부도 이 사안을 그리 중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9월 위기설은 흰소리일 뿐인가? 9월을 특정한 데에는 무리가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다. 특히 대내외 경제 환경이 너무 안 좋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사상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졌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 및 원화(貨) 하락을 부를 수 있는 변수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11개월째 내리막이고 생산·소비·투자가 '트리플' 감소세다. 중국 리오픈에 기대를 걸었지만 중국 대형 부동산 업체 디폴트 사태 암초를 만났다. 가계 부채, 고물가 여파로 소비마저 위축되고 있다. 물가를 잡아야 하지만 금리를 올릴 형편이 아니다.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하고 있어 정부가 경기 부양하겠다고 돈을 풀 수도 없다. 국가의 경기 관리 두 축인 통화 및 재정 정책 모두 손이 묶인 셈이다. '과도한 걱정이 게으른 안심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부 경제팀의 긴장감은 잘 안 보인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가 발표 때마다 바뀌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 상반기는 어렵지만 하반기에 좋아질 것)일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대로라면 내년 경기도 장담 못 할 지경이다. 작금의 경제 상황은 불쏘시개가 산적한 형국이다. 섣부른 우려로 경제 활동을 위축시켜서 안 되지만 그렇다고 낙관론에 안주하다가는 크게 실기(失機)할 수도 있다. 정부의 선제적 위기 대응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정쟁(政爭)을 벌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닌데 정치는 구태를 못 벗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 자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경기 회복을 국정 최우선순위로 올려놓기 바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강성 지지층 결집에 기대는 '방탄용 단식 쇼'를 당장 멈춰야 한다. 노조도 파업하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접어 둘 때다. 경제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2023-09-03 19:24:27

  • [매일칼럼] 달성공원, 이대로 둘 텐가

    [매일칼럼] 달성공원, 이대로 둘 텐가

    센트럴파크 없는 뉴욕은 상상할 수 없다. 매년 2천50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1856년 조경가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는 뉴욕시로부터 습지 땅을 사들여 센트럴파크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뉴욕에 그렇게 큰 공원이 필요하냐는 목소리가 있자 그는 말했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오." 마천루가 즐비하다 해서 일류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녹지 공간이 많아야 좋은 도시다. 녹지 공간에 전통까지 더해져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면에서 서울은 부러운 도시다. 빌딩숲 때문에 막힌 숨을 경복궁·창경궁·서울숲 같은 도심 공원이 뚫어 준다. 금싸라기 땅이라서 개발 유혹이 컸을 터인데 서울은 전통 공간과 숲을 잘 지켜 냈다. 시선을 대구로 돌려 보자. 자랑할 만한 도심 녹지 공간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규모가 작다. 민간 테마파크가 부지 절반을 차지한 두류공원은 대구를 대표할 도심 녹지 공간이라 부르기에 부족하다. 이대로 단념해야 하나? 다시 한번 살펴보자. 후보지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달성공원이다. 달성공원의 면적은 12만6천576㎡다. 넓이는 합격선이다. 접근성도 아주 좋다. 공원 안에 희귀 수목과 조경수가 많다. 달성토성이 공원 외곽지를 둘러싸고 있어 역사성도 충분하다. 달성은 대구의 뿌리다. 하지만 애로 사항도 많다. '대구 12경' 중 하나라지만 솔직히 이름값 못 한다. 게다가 국내 최악의 동물원이라는 오명까지 듣는다. 단칸방 수준의 콘크리트 철장 안에서 동물들이 초점 잃은 눈빛으로 축 늘어져 있다. 동물 우리 주변은 냄새가 진동한다. 아이들이 견학 갔다가 동물이 불쌍하다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탈출한 침팬지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포획 과정에서 마취총 후유증으로 숨져 전국 뉴스를 탔다. 달성공원은 시민 관심 못 받는 공원이 된 지 오래다. 보존 가치 높은 토성은 산책로로 쓰이는 바람에 사람 발길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선, 동물부터 시급히 공원에서 빼내야 한다. 대구시가 이곳 동물들을 향후 조성할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대구대공원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지 오래지만 진행은 함흥차사다. 동물을 빼내고 난 뒤 달성공원을 어떻게 꾸미겠다는 밑그림도 잘 안 보인다. 이런 가운데 대구 국악계 한 인사가 낸 아이디어에 관심이 갔다. 달성공원을 '(가칭) 대구전통문화공원'으로 꾸미자는 것이다. 외국에 가 보면 해당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보여 주는 전통 공간이 대부분 준비돼 있는데 대구에는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달성공원을 한국식 정원으로 조성하고 우리 전통음악 공연이 상시 열리는 기능을 겸하게 한다면 대구를 찾은 외국 관광객의 방문 필수 코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그 아이디어에 나는 십분 공감한다. 달성공원의 잠재적 가능성은 크다. 면적과 입지, 역사성 면에서 이만큼 훌륭한 공간도 잘 없다. 달성공원을 대구의 전통과 문화, 숲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도심 근대골목, 서문시장으로 이어지는 도심 관광 벨트로서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난관이 있을 것이다. 달성공원을 대구 대표 녹지 공원으로 만들려면 대구시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홍준표 대구시장 특유의 추진력을 기대해 본다.

    2023-08-20 21:11:16

  • [매일칼럼] 잼버리 개최 마이너스 경제 효과

    [매일칼럼] 잼버리 개최 마이너스 경제 효과

    전북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이하 잼버리)가 부실 운영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 대회 가운데 이번만큼 논란을 빚은 행사가 또 있는지 기억이 없다. 대회 경제 효과가 6천억 원이라는 장밋빛 기대는 무색해지고 나라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근본적으로 간척지인 새만금은 대규모 야영 대회를 치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다. 땅 높이를 대대적으로 높이거나 배수시설 공사가 필요했지만 잼버리 개최 이후 부지를 반납해야 했기에 대규모 공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전해진다. 최근의 최악 폭우로 행사장 곳곳이 물웅덩이, 진흙밭이 됐으니 진 자리 많아도 마른 자리가 부족했다. 사진상으로 현장에는 온열질환으로부터 스카우트 대원들을 보호할 나무도, 그늘막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습한 땅인지라 벌레들이 득실댄다. 화상벌레 등에 의해 온몸을 물린 스카우트 대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의료진 및 의료시설이 태부족하고 식사 부실 논란, 코로나19 감염, 바가지 상혼, 보도 통제 등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다.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떤 연유로 새만금이 대회 장소로 결정이 났으며 준비 과정은 왜 이리도 구멍이 난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여러 논란이 있기 때문에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새만금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9월 잼버리 국내 유치 후보지로 결정 났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8월 16일 아제르바이잔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개최지로 확정됐다. 하지만 새만금이 잼버리 국내 후보지로 거론될 때부터 간척지에서 국제 야영 대회가 가능하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새만금 간척지 개발론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새만금 개발을 위한 명분과 재료로 잼버리 유치가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시선마저 없지 않다. 이왕 새만금으로 장소가 정해졌다면, 핸디캡 극복 대책에 더 많은 공을 들였어야 했다. 간척지에서 대규모 야영 대회를 성공시켰다면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회 준비에는 6년여 시간(문재인 정부 5년, 윤석열 정부 1년 3개월)이 주어져 있었다.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준비 부족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위정자들은 잘 차려진 밥상에는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 그러다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수상하면 발을 빼고 남 탓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런 모습이 엿보인다. 목하 '현 정부 VS 전 정권'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앞 정권들에 잘못이 있더라도, 대회 준비 부실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더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게다가 대회 조직위원장 5명 가운데 3명이 현직 장관이 아닌가. 일단,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급한 것은 남은 기간이나마 잼버리를 무탈하게 치러내는 것이다. 정부와 조직위, 전북도는 여기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어렵사리 잼버리를 유치해 놓고 "마이너스 6천억 원짜리 행사를 했다"라는 소리를 들어서야 쓰겠는가. 아울러 수천억~수조 원 경제 효과 운운해 가면서 보여주기성 국제 이벤트 유치에 매달리는 강박증에서 이제 벗어날 때도 됐다. 막대한 돈을 쓰고도 실속이 없거나 국격이 추락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2023-08-06 19:33:01

  • [매일칼럼] 교사라는 이름의 감정노동자

    [매일칼럼] 교사라는 이름의 감정노동자

    필자가 중학교 시절 있었던 일이다. 까까머리 학생들은 쉬는 시간은 물론이고 수업 중에도 소란스러웠다. 담임교사는 수업 태도가 불량한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서 제출하라고 반장·부반장에게 지시했다. 북한의 5호담당제도 아니고 급우가 급우를 감시하는 일이 빚어졌다. 뒷자리에 앉은 반장·부반장은 매의 눈초리로 급우들을 감시했다. 걸린 사람은 방과 후 청소 등 벌칙이 아니라 벌금을 내야 했다. 가난하던 시절인지라 벌금 내기가 벅찼다. 게다가 반장과 부반장은 공정한 심판이 아니었다. 자기와 친한 학생들은 떠들고 소란을 피워도 눈감아 줬다. 주먹 세고 성질 사나운 학생들 이름도 적지 않았다. 타깃은 키가 작거나 반장·부반장에 줄을 안 선 아이들이었다. 떠든 횟수보다 이름이 더 많이 적혔다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소명 기회도 없이 벌금을 내야 했다. 벌금 낼 돈을 달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어서 부모님 돈에 손을 대는 아이도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벌금을 걷기 시작한 이후 반장과 부반장의 교내 매점 씀씀이가 커졌다. 학생들은 반장과 부반장을 의심했고 담임교사를 원망했다. 반장·부반장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등장인물 '엄석대'를 연상케 한다. 교사로부터 부여된 역할을 사적 권력인 양 남용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조장한 이는 담임교사였다. 비교육적이고 부당한 일이 자기 학급에서 벌어질 줄 몰랐는지, 알고도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당시만 해도 교권이 서슬 푸르던 시기였다. '아이들은 원래 맞으면서 큰다'는 식의 무지한 인식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기성세대들이라면 중·고교 시절 교사로부터 폭언 또는 구타를 당하거나 목격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 사회는 이런 부조리에 둔감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뀌었다. 학교도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폭언과 구타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시대가 됐다. 사랑이란 이름의 훈육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당한 지시에 제자들이 반항을 해도 교사가 어찌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단도 없다 해도 틀리지 않다. 사회가 학생 인권을 챙기는 사이 교권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교직은 우리 사회의 감정노동 직군이 됐고, 교권은커녕 교사 인권이라도 보호해 달라는 절규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여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려 왔다는 동료 증언이 제기되면서 현장 교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말마저 나온다. 그동안 억눌리고 쌓인 것이 본격적으로 분출되는 양상이다. 교사들이 교권 및 인격권 침해를 호소할 정도라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이는 국가 미래가 걸린 일일 수 있다. 요즘 교실은 교사에게 권한은 안 주고 너무나 많은 짐을 부여하고 있다. 우선 급한 문제점부터 해결해야 한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 의견은 교내 전담 창구를 통해 수렴하면 된다. 교권 회복을 위한 여러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된 채 낮잠 자고 있다는데, 참으로 정치권만 한가하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둘 사이의 절묘한 지점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놓쳐서 안 되는 두 마리 토끼인 까닭이다.

    2023-07-23 19:25:29

  • [매일칼럼] 대구은행, 1967년 그날의 기억

    [매일칼럼] 대구은행, 1967년 그날의 기억

    1967년은 대한민국 발전에 변곡점이라 할 만하다. 이 해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됐고 포항제철 기공식이 열렸으며 현대자동차가 설립됐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1967년은 우리나라에 지방은행이 처음 설립된 해다. 이 해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은행 설치를 검토·추진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지역 경제 발전 구심점으로서 지방은행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구가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지역 상공인들이 힘을 모은 끝에 이 해 10월 7일 대구은행은 창립 기념식을 열었다. 대한민국 1호 지방은행 탄생 소식에 박 대통령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축하의 의미로 그는 대구은행에 예금 가입 신청서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그렇게 대구은행 제1호 정기예금 고객이 됐다. 한때 대구에는 대구은행 말고도 은행, 종금사, 투신사, 생보사 등 금융회사가 11곳 더 있었지만 IMF 외환위기 여파를 넘지 못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대구은행도 몇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자본금 1억5천만 원으로 시작한 대구은행은 56년이 지난 지금 납입 자본금 6천806억 원 규모 회사로 성장했다. 지역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DGB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정부 방침에 맞춰 대구은행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국 6개 지방은행 가운데 전환 자격을 갖춘 곳은 대구은행이 유일하니 이변이 없는 한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1호 타이틀도 대구은행 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결심에는 숙고가 있었을 것이다.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과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역외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만 대구은행의 미래가 있다"는 지론을 꾸준히 펴왔다. 지역 경제 상황과 인구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지방은행 타이틀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격변하는 금융 및 산업 환경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면 현상 유지는커녕 도태될 수 있다. 시중은행이 됨으로써 대구은행은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은행인 지금도 전국 영업망 확충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지만, 시중은행 타이틀을 달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파심도 없지 않다. 앞으로도 본사를 대구에 계속 둔다는 입장은 확고하다지만, 시중은행이 되고 나면 지역 밀착 경영에 쏟는 공이 아무래도 예전만 못하지 않을까 하는 일부 우려가 있다.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서 브랜드 이름도 대구은행 대신 'iM뱅크'로 바꾼다고 하니 더 그렇다. 지금까지 대구 시민들과 대구은행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를 형성해 왔다. 대구은행에 대한 지역민들의 유대감은 매우 끈끈하다. 대구은행의 몇 차례 경영 위기 때마다 지역민들은 자기 일처럼 나섰다. 대구 상공인들은 외환위기 직후 대구은행 주가가 5천 원을 크게 밑도는 상황에서도 액면가 유상증자에 기꺼이 참여해 은행을 퇴출 수렁에서 건져 냈다. 대구은행 임직원들은 고객들이 대구은행을 '우리' 은행이라고 불러주면 아주 좋아한다. (시중은행인 우리은행은 '워리은행'으로 부르면 헷갈리지 않는다는 식이다) 대구 사람들로부터 '우리' 은행으로 계속 불려지기를 원한다면 대구은행은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과 공을 지역에 들여야 한다. 전국 단위 은행이 되더라도 유전자에 '대구'가 깊게 각인돼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23-07-09 21: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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