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영 논설위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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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칼럼-김교영] 진흙탕에서 연꽃은 핀다

    [매일칼럼-김교영] 진흙탕에서 연꽃은 핀다

    경북을 비롯한 영남 지역 곳곳이 사상 최악의 산불로 잿더미가 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하늘만 원망한다.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에서 불을 끄던 진화대원들, 진화 헬기 조종사도 순직(殉職)했다. 진화대원들의 장비는 초라했다. 헬기는 '괴물 산불'을 막기에 턱없이 낡고 부족했다. 대형 산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산불의 위험도 커졌다.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은 이 난리통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예비비 삭감'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놓고 정쟁(政爭)을 벌이고 있다. 나라와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다. 권력 쟁탈에만 혈안이다. 그들에게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생각이 됐다. 지난겨울, 영화 '소방관'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슬픔과 분노가 섞인 눈물이다. '소방관'은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 참사'(소방관 순직 6명·부상 3명)를 다룬 영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지옥불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헌신(獻身)이 고맙고 슬펐다. 방수복(방화복 아님) 입고 목장갑(방염 장갑 아님) 끼고, 인명을 구조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소방관들의 장비와 처우가 개선됐다지만, 참사(慘事)가 터지면 아직도 부끄러운 실상이 드러난다. 왜 이런 일은 되풀이되고,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들은 묻고 또 묻는다. 179명이 숨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의대 증원으로 빚어진 진료 공백,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한 가장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 그리고 참담한 '간병 살인'…. 국가의 기능부전(機能不全)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엔 '정치'의 책임이 크다. 정치는 '국회'란 기구, '입법'이란 장치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규정한다. 또 '예산권'을 통해 정부의 살림을 마련한다. 이 체계가 원활하지 못하면? 지금의 나라 꼴이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헌법 제1조 1항을 거론한 것은 '공화주의'(共和主義)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익숙한데, '공화주의'는 다소 낯설다. 여야의 극단적 대결,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소추, 진영의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 등 정치·사회 문제의 뿌리는 공화주의 정신의 결핍에 있다. 공화주의는 '국가란 무엇이냐'란 문제와 닿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화주의는 헌법에 녹인 여러 가치들을 조화롭게 실행하는 것이다. 이는 '함께 잘살고, 더불어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 의미다. 공화주의의 핵심 가치는 자유, 법치, 공공선(公共善), 시민의 덕성(德性)이다. 김경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저서 '공화주의'를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경제 논리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될 때,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공공의 영역은 질식되고 만다. 공공의 영역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동료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활성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주의는 한 가지 논리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해 공공성의 영역을 질식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공화주의의 핵심을 잘 표현한 문장이다. 정치적 내전(內戰), 사법부 불신, 공적 영역의 증발, 공론장(公論場)의 붕괴로 국가가 흔들릴 때,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은 터져 나온다. 너와 나의 생각, 우리와 그들의 가치가 함께 뜻을 모으는 것(共和), 보통 시민들의 바람이다.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고, 쓰레기통에서도 장미꽃을 피워 내야 한다.

    2025-03-31 20:06:42

  • [야고부-김교영] 필론의 돼지

    [야고부-김교영] 필론의 돼지

    이문열 작가의 단편 소설 '필론의 돼지'(1980년 발표)의 대략은 이렇다. 전역 군인들이 탄 열차에 '검은 각반들'(특수부대 군인을 상징)이 등장한다. 그들의 험악한 행동은 객차(客車)를 '공포의 침묵'으로 만든다. 검은 각반들은 노래를 불러 주고, 제대 군인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몇몇의 불한당(不汗黨) 앞에 다수는 그저 무력할 뿐이다. 제대 군인들은 대거리하지 못한다. 서로 눈치만 살핀다. 헌병이나 철도공안원이 그들을 제지해 주길 바란다. 공권력은 필요할 때 나타나지 않는다. 주인공 '그'와 '홍덕동'도 마찬가지다. "아, 나의 팔은 너무 가늘고 희구나, 내 목소리는 너무 약하고, 내 심장은 너무 여리구나, 저들의 폭력을 감당하기에는. 학대받고 복종하는 데 익숙한 내 동료들을 분기시키기에는." 대학물을 먹은 '그'는 자괴감(自愧感)을 느낀다. 마침내 한 사람이 숨죽였던 제대병들을 일깨워 검은 각반들을 응징한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린다. 눈먼 분노가 잔인한 폭력으로 표출된다. 이를 말리는 목소리는 폭력의 광기(狂氣)에 묻힌다. 이성은 사라지고, 증오가 객차를 지배한다. 주인공은 현자(賢者) '필론'이 폭풍우로 흔들리는 배 안에서 봤다는 돼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 소설은 검은 각반의 폭력을 소재로 다뤘다는 이유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얘기를 썼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필론의 돼지'는 고대 그리스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필론의 기록에서 유래(由來)됐다. 폭풍우가 닥친 배는 지옥이다. 사람들은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친다. 필론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지혜로울까 생각한다. 문득 자기가 데려온 돼지가 짐칸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필론은 말한다. "현자는 저 돼지처럼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고. '필론의 돼지'는 중의적(重義的)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나서지 않고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는 게 현명하다는 교훈으로 읽힐 수 있다. 또 현실을 외면하는 '나약한 지식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이 난파(難破) 위험에 놓인 배와 같다. 선과 악이 뒤엉키고, 거짓이 진실을 짓밟는다. 어제의 정의가 오늘엔 불의가 된다.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 용기가 없으면 상식조차 말하기 힘든 세상이다.

    2025-03-26 19:57:46

  •  베트남 응우옌 왕조 일행, 대구시티요양병원 방문

    베트남 응우옌 왕조 일행, 대구시티요양병원 방문

    베트남 응우옌 왕조(응우예 티 탄 투이 공주) 일행은 24일 대구시티요양병원(병원장 박준억)을 방문했다. 양 측은 의료시스템과 병원 경영·시설 등에 대한 상호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2025-03-25 15:31:13

  • [야고부-김교영] 트럼프의 '관세 전쟁'

    [야고부-김교영] 트럼프의 '관세 전쟁'

    대공황(大恐慌) 발발 직후인 1930년 미국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관세 폭탄'을 터뜨렸다.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발동이었다.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의 관세를 부과했다. 명분은 국내 산업의 보호였다. 유럽 국가들은 보복 관세로 맞섰다. 세계 무역량은 크게 줄고, 대공황은 깊어졌다. '관세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기폭제가 됐다. '관세 전쟁=세계 공멸(共滅)'이란 교훈을 얻은 미국은 자유무역주의를 이끌었다.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 제정됐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에 나섰다. 미국은 12일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발효(發效)했다. 다음 달 2일부터는 주요국에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를 매긴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 무역 적자가 많은 '더티(Dirty) 15' 국가의 관세 산정에 집중하고 있다. 교역국을 '더러운 나라'라고 부르다니. 그 입, 참 '더티'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자유무역 질서를 흔드는 걸까? 그는 상·하원 합동 연설 등에서 "우리는 거의 사기를 당했다" "일자리를 도둑맞았다"고 했다. 관세·비관세 장벽을 낮춰 상품·서비스·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좇는 자유무역주의가 미국 제조업을 붕괴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적시(摘示)보다 선동(煽動)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자본은 인건비·세금이 싼 곳으로 옮겼다. 공장이 빠져나간 많은 나라에선 일자리가 줄었다. 트럼프는 실직 노동자들의 분노를 이용해 재집권한 것이다. 세계화 주역인 미국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다니, 가당치 않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에는 양면성(兩面性)이 있다. 선진국은 노동 집약 산업의 생산지를 후진국에 넘겨줬지만, 금융과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을 키워 성장을 이어 갔다. 자유무역은 값싼 공산품을 수입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관세 전쟁은 세계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고율 관세 정책이 무역에 영향을 주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0.8%, 내년 1.3%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노린 '일자리 회복'도 쉽지 않다. 명민(明敏)한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2025-03-20 19:24:49

  • [야고부-김교영] 은행이란

    [야고부-김교영] 은행이란

    돈은 한자로 금(金)이다. 돈을 융통하는 일은 금융(金融)이라고 한다. 그럼 은행(銀行)이 아니라, 금행(金行)이어야 되지 않나? 은행의 어원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명청(明淸)시대부터 중화민국 국민정부 시기까지 은본위제(銀本位制)를 실시했다. '행'은 항렬, 시장, 거리 등을 뜻하기도 한다. '은'을 거래하는 상인들의 '행'(거리 또는 길드)이 금융업의 주체가 되면서 '은행'이란 말이 생겼다. 추억의 대부분은 공간의 기억이다. 공간은 사람과 사건의 무대로서, 뇌리에 각인(刻印)된다. 유년 시절, 은행은 좋은 이웃 같은 공간이었다. '커가는 꿈 밝은 내일'을 지향하는 은행의 지점이 동네에 있었다. 그곳에 가면, 귀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냉수를 마실 수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은 또 어떻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독고탁'이 나오는 연재만화 '비둘기 합창'을 보면서 낄낄대고 훌쩍거렸다. 코 묻은 돈도 환영받았다. '푼돈 모아 목돈 마련', 은행은 그런 꿈을 키워 주는 공간이었다. 지금 어린이들에겐 은행은 스마트폰 '화면'이다. 은행의 좋은 기억은 낭만(浪漫)이 됐다.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점포·직원을 줄이고 있다. 불편은 고스란히 고객들의 몫이다. 은행들이 그렇게 어렵나? 11조7천883억원. 지난해 1~3분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누적 순익이다. 전년보다 4% 늘었다. 그렇게 번 돈, 직원들에게 푸짐한 성과급·희망퇴직금으로 안겼다. 은행의 예대금리(預貸金利) 차이가 2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자료를 보면, 올해 1월 기준 5대 시중은행에서 취급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差)는 1.29∼1.46%포인트다. 은행들이 기준금리 하락분을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에 더 빨리 반영한 결과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에서 2.75%로 인하했다. 금리를 내려 침체된 내수(內需)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정책 효과가 시장에서 실현될지 의문이다. 내수를 진작시키려면 기준금리 인하가 바로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져야 하는데…. 은행들이 혁신으로 돈을 벌었다면, 배가 아파도 참아야 한다. 그러나 은행 순익의 대부분이 '이자 장사' 결과다. 서민들은 호구(虎口)가 된 기분이다. 환장하겠다.

    2025-03-13 20:25:23

  • [야고부-김교영] 희한한 뇌 수술

    [야고부-김교영] 희한한 뇌 수술

    옛날 어느 나라에선 두 당파(黨派)의 싸움으로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을 떠올려도 무방하겠다. 각설하고, 그 나라 학술원의 정치학자들은 고민 끝에 정치적 내전(內戰)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처방의 핵심은 "그들의 뇌를 반으로 잘라서 서로 붙여라"이다. 그 묘책을 소개하면 이렇다. 두 정당의 정치인 100명을 골라낸다. 실력이 뛰어난 의사들을 소집한다. 의사들이 이들의 뇌를 반씩 자른다. 자른 뇌를 반대편 정당의 사람들 뇌에 붙인다. 이것으로 희대(稀代)의 뇌 수술은 끝. 다음은 수술 예후(豫後)다. 이들의 머릿속에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장기 이식 후 나타나는 통상적인 거부반응이니, 당황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 다른 뇌는 조화를 이룬다. 곧이어 그토록 미워했던 상대를 이해한다. 마침내 정치인들의 머리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상생의 정신'이 자리 잡는다. 희한한 수술이다. 결과는 훌륭하나, 과정은 섬뜩하다. 이 소설 같은 얘기는 정말 소설이다. 그것도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1762년)다. 소년들에게 모험심을 심어 줬던 '동화'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고? 걸리버 여행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1편 소인국' '2편 거인국' 외에 두 편이 더 있다. '뇌 수술' 부분은 '3편 하늘을 나는 섬'에 나온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이후 무삭제 완역판(完譯版)이 출간됐기에 나머지 두 편은 낯설다. 걸리버 여행기는 동화가 아니다. 탁월(卓越)한 풍자소설이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18세기 영국의 정치적 혼란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거침없이 비판했다. 260여 년 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진부(陳腐)하지 않다. 정치판이 예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다른 게 없어서일까. 어쩌면 그게 현실 정치의 속성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정치 아래 살아야 하는 국민들은 분통이 터진다. 대통령 탄핵 찬반 논란, 대화와 타협이 없는 정치, 이념·정서적 양극화가 나라를 수렁으로 몰고 있다. 이 모든 사태는 양대 정당의 극한 대치에서 비롯됐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떨어지고, 수출길이 막히고, 자영업자의 폐업이 속출해도, 그들은 여전히 대치(對峙) 중이다.

    2025-03-06 20:17:44

  • [매일칼럼-김교영] 서민과 멀어지는 은행

    [매일칼럼-김교영] 서민과 멀어지는 은행

    은행은 일부 국책은행을 제외하면 '주식회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오랫동안 은행을 '금융기관'이라고 불렀다. '기업'(企業)이 '기관'(機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거기엔 '권위'와 함께 '공공성'이란 책임이 따랐다. 그런 이유에서 은행원은 '믿음직한 직장인'의 대명사였다. 은행은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은행은 국민들의 예금을 모아 기업에 빌려줬다. 선량한 국민들은 저축이 경제를 살리고, 애국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고속 성장을 하던 1970, 80년대 은행은 서민들에게 친근했다. 난전에서 생선 팔아서 번 돈, 돼지저금통의 코 묻은 돈도 환영을 받았다. 은행은 편안한 공간이었다. 은행원은 선망(羨望)의 대상이었다. 지금, 은행은 그 시절과 너무 멀어졌다. 국민들은 '빚잔치'로 끙끙 앓는데, 은행들은 '돈 잔치'로 덩실덩실한다. 이런 현상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여파인지, 신자유주의나 금융자본주의 탓인지, 모르겠다. 은행권은 시장금리 하락에도 이자 이익이 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해 이자 이익은 41조8천760억원으로 전년보다 3.1% 증가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 역시 사상 최대인 16조4천205억원이었다. 이익의 대부분은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의 차이인 예대마진(預貸margin)에서 나왔다. 즉 '이자 장사'의 결과다. 자영업자 900만 명이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 소상공인들의 눈물겨운 폐업이 속출한다. 이들의 고혈(膏血)이 은행의 배를 불리고 있다. 은행원 평균 연봉이 억대가 넘고, 희망퇴직금도 억~억~거린다. '춘향전'에 나오는 한시가 절로 떠오른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은행 점포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 뱅킹을 못 하는 어르신들은 돈을 찾기도, 세금 내기도 어렵다. 젊은이들도 은행 업무 보기가 힘들다. 영업점에 가면 기다리다 지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전체 영업점 수는 2023년 말 3천927개에서 올 1월 말 기준 3천790개로 137개 줄었다. 영업점 통폐합(統廢合)은 지속될 전망이다. 금융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방 중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의 주민들이 은행 점포를 가려면 평균 4.8㎞를 이동해야 한다. 은행 콜센터도 연결이 어렵다. 요것 저것 누르라고 해 놓고, 툭하면 '대기 인원 ○○명'이란다. 은행들은 경영 효율화(效率化)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은행이 줄인 비용은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가된다. '불편'이란 이름으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25일 기준금리를 연 3%에서 2.75%로 0.25%포인트 낮췄다. 금리를 내려 돈을 풀어 내수(內需)를 살리겠다는 의지다. 국민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반갑지 않다. 기준금리 인하가 곧장 대출 금리 인하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예금 금리는 쏜살같이 내린다. 금융당국이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하지만, 은행권은 최대한 미적거린다.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조장한 것은 정부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들은 가계부채를 줄이라는 당국의 '지침'에 따라 오히려 금리를 올렸다. 정부의 조치가 정교(精巧)하지 못한 탓이다.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과도한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들에게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당국에 지시했다. 2년이 지났다. 달라진 게 없다. 은행은 철옹성(鐵甕城)이다.

    2025-03-03 20:00:41

  • [야고부-김교영] 대구와 대만의 2·28

    [야고부-김교영] 대구와 대만의 2·28

    "보라, 스크램의 행진!/ 의를 위하여 두려움이 없는 10대의 모습,/ 쌓이고 쌓인 해묵은 치정 같은 구토의 고함소리./ 허옇게 뿌려진 책들이 짓밟히고/ 그 깨끗한 지성을 간직한 머리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경북 경산 출신의 김윤식(1928~1996) 시인의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란 시(詩)의 한 부분이다. 이 시는 '2·28 대구학생데모를 보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시인이 농사지은 땅콩을 대구 중구 염매시장에 팔러 가는 길에 학생 시위대를 목격하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2·28민주운동이 65주년을 맞았다. 2·28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1960년 2월 28일 3·15 대선을 앞두고 대구의 8개 고교 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의 불의(不義)에 항거해 일어난 시위다. 이날 시위는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導火線)이 됐다. 이런 역사적인 민주화 운동이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 2018년 정부는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대만에도 2·28이 있다. 대만 사람들은 '228(얼얼바)사건'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1월 대만 여행을 하던 중 타이베이시 중심가에서 '228평화공원'을 마주쳤다. 대구에 '2·28기념중앙공원'이 있으니, 친밀감이 들었다. 1947년 발생한 대만의 '228'도 민중 봉기(蜂起)다. 양조위가 나오는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담배 행상 여인 구타 사건이 촉발한 228은 국민당 군대의 야만적인 진압으로 2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대학살이었다. 사건의 진실은 40년간 묻혀 있다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졌다. 대만 총통은 1995년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다. 제국주의(帝國主義) 침탈의 아픈 역사를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대구 2·28과 대만 228은 해방 후 암울한 독재(獨裁)에 맞선 민중 운동이란 공통점이 있다. 대만 국민들에게 228은 참혹한 역사이면서 민주화의 역사로 각인(刻印)돼 있다. 역사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열게 한다. 우리의 2·28은 어떤가. 마산의 '3·15의거'나 '4·19혁명'은 잘 알지만, 대구 2·28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에서 2·28을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국정교과서에는 사진 한 장 실린 게 전부다.

    2025-02-26 20:14:46

  • [야고부-김교영] '입진보'와 '입보수'

    [야고부-김교영] '입진보'와 '입보수'

    '입'이란 단어가 접두사로 쓰일 때가 있다. 이 경우엔 '입만 살아 있다' '입으로만 떠든다'는 뜻을 갖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입진보'다. 입진보는 말로는 진보와 개혁을 외치면서, 실천하지 않거나 기득권(旣得權)을 누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입진보는 2010년대 초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치 토론에 처음 등장했다. 진보 논객(論客) 진중권 교수가 입진보의 꼬리표를 달기도 했다. 진 교수가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던 팟캐스트 '나꼼수'와 논쟁을 벌일 때, 나꼼수 지지자들이 그를 입진보라고 비판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도 입진보의 반열(班列)에 올랐다. 그는 강연과 SNS에서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면서 청년 팬덤을 형성했다. 일각에선 그를 '강남좌파' '입진보'라고 비난했다. 현재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교도소에 갇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우리는 원래 진보 정당이 아니다. 진보 정당은 정의당과 민주노동당 이런 쪽이 맡고 있는 데 아니냐"며 "민주당은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中道) 보수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또 "오히려 국민의힘이 극우 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 가고 있다"며 "건전한 보수, 합리적 보수의 역할도 우리 몫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은 실용"이라며 "진보라는 기본적인 가치를 버리지 않고 중점을 실용주의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하다. '보수'를 취하면서 '진보'도 버리지 않겠다니.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는 건가. 민주당이 원래 진보 정당이 아니라니. 그럼 선거 때 진보 진영의 '맏형'이라며 군소 진보 정당들을 끌어안았던 것은 '보수·진보 연합'이었나. 민주당 지지자들은 당황스럽다. 당내 반발도 나온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하루아침에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며 "민주당이 진보적 영역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진의(眞意)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이다. 그는 최근 '실용' '성장'을 외쳤지만, 행동은 반대였다. 반도체 산업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수용할 듯했다가 돌아섰다. '기본사회' '민생지원금'을 고집하지 않겠다더니 번복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입보수'에 가깝다.

    2025-02-20 19:59:37

  • [야고부-김교영] 정서적 내전

    [야고부-김교영] 정서적 내전

    '내전'(內戰)을 다룬 책과 영화가 주목받는 뼈아픈 시절이다. 책의 제목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바바라 F. 월터 지음)다. 정치학자(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저자는 미국에서 남북전쟁에 이은 두 번째 내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이 책을 냈다고 한다. 그는 "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게 될지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고 강조한다. 내전은 완전한 독재(autocracy)나,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나라(아노크라시·anocracy)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2021년 대선 결과에 불복(不服)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건은 '아노크라시'의 사례다. 월터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의 붕괴는 "매우 인기가 높은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내전의 대표 징후로 '종족 사업가(ethnic entrepreneur) 등장'을 꼽는다. 종족 사업가는 특정 집단을 겨냥한 차별(差別)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가다.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사상 최고의 종족 사업가'로 규정한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알렉스 가랜드 감독)는 '미국에 내전이 일어났다'는 허구에 기반한 작품이다. 헌정(憲政)을 파괴한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정부에 반발해 19개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면서 벌어진 내전을 조명한다. 대통령은 내전의 아비규환(阿鼻叫喚)에서도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들을 '적'으로 내몬다. 종군기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참상을 목격한다. 영화는 냉철한 시선으로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비극을 보여 준다. 비상계엄·내란(內亂) 논란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죄 우두머리'로 단죄하고,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은 이를 '내란 공작(工作)' '거짓 선동'이라며 반박한다. 국민들은 두 쪽으로 갈려 광장과 거리에서 외친다. 서로의 주장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야말로 정치·정서적 내전이다. 이 분열과 혼란이 탄핵심판과 내란죄 재판으로 끝날 수 있을까. 판결 이후가 더 무섭다. 내전의 끝은 폐허다. 민주주의 회복력은 극단과 분노에서 나오지 않는다.

    2025-02-13 19:57:32

  • [야고부-김교영] 을씨년스러운 시절

    [야고부-김교영] 을씨년스러운 시절

    을씨년스럽다. 동장군(冬將軍)이 기세를 부려서가 아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스산하다. 나라가 짙은 안개에 갇혔다. 그 안개, 언제 걷힐지 모른다. 열차는 궤도를 이탈한 채 달린다. 뒤집어지지 않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위기 때 복원력이 강한 국민이라고, 곧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속도, 너무 더디다. '을씨년스럽다'란 말은 아픈 역사의 상징이다. '을씨년스럽다'는 을사년(乙巳年)에서 비롯됐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재운 편저)은 "을씨년은 1905년 을사년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조약(늑약·勒約)으로 이미 일본의 속국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당시, 온 나라가 침통하고 비장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날 이후로 몹씨 쓸쓸하고 어수선한 날을 맞으면 그 분위기가 마치 을사년과 같다고 해서 '을사년스럽다'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을사년스럽다'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을씨년스럽다'로 바뀌었다. 다른 을사년에도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1545년 을사사화(士禍)다. 4대 사화 중 마지막인 을사사화는 외척 세력의 싸움에서 사림파(士林派)가 숙청된 사건이다. 1905년 을사늑약 후 다시 맞은 을사년에 획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1965년 한일 협정 체결이다. 국교를 정상화하고, 보상금을 받아 경제 발전의 종잣돈으로 삼았다는 평가와 함께 일본의 명확한 사과와 배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 협정이다. 2025년 을사년도 을씨년스럽다. 을사늑약 후 육십갑자(六十甲子)가 두 바퀴 돌았지만, 그 을씨년스러움이 새삼스럽지 않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국민들은 찬반(贊反)으로 갈렸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만 '진실'이고, 다른 것들을 '거짓'으로 여긴다. 신문과 방송의 기사를 불신하고, 유튜버들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신뢰한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법원, 검찰, 경찰은 모두 엉터리라고 한다. 먹고사는 것이라도 편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얼음장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입춘방(立春榜)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부질없는 부적 같다. 그래도 봄은 기필코 온다.

    2025-02-07 05:00:00

  • [이런일] 대구첨단요양병원 소방훈련

    [이런일] 대구첨단요양병원 소방훈련

    대구 첨단요양병원(병원장 김규종)은 5일 북부소방서(서장 이진우)와 합동으로 소화기 사용, 환자 대피 등의 소방 훈련을 했다.

    2025-02-06 14:24:00

  • [매일칼럼-김교영] '보수 男·진보 女'로 갈라진 2030

    [매일칼럼-김교영] '보수 男·진보 女'로 갈라진 2030

    "페미(니즘) 극혐(極嫌)! 더불어민주당은 여성들과 이재명 살리기에만 관심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는 엉망이 되고 남자들은 더 힘들어진다." "처음엔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가 황당했고 불법이라고 여겼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엄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란 생각이 들어." 얼마 전 선술집에서 들은 20대 남성들의 대화다.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에서 난동(亂動)을 부린 혐의로 체포된 90명 중 절반이 20, 30대였다. 이들 중 여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년층 중심이던 '태극기 부대'에 청년 남성들이 유입되고 있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의 주요 세력은 2030세대 여성이다. 서울 여의도 탄핵 찬성 집회 참석자 중 2030세대 여성은 10~18%, 남성은 5%로 추산됐다. 대신 남성들은 "윤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대통령 관저(官邸)가 있는 한남동에 모였다. 2030은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로 알려졌다. 각종 선거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랬던 2030이 정치 진영의 전위(前衛)로 나선 이유가 뭘까? 그것도 젠더(gender·사회문화적 성) 갈등의 골이 깊어질 정도로 열렬하게. 취업난과 경제 위기 속에 '4류 정치'의 민낯을 직시한 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정치권이 '젠더 갈라치기'로 기름을 부었다. 젠더 갈등이 불거진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남성들의 피해의식이 커진 시점이다. 남성들은 역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9년 위헌(違憲) 판결에 따른 '군 가산점' 폐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뜩이나 여성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군대를 갔다 와야 하는 남성들은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취업난까지 겹치니 불만이 폭발했다. 여성들은 여전히 남녀 불평등이 크다고 생각한다. 2016년 '서울 강남역 20대 살인 사건'은 젠더 갈등에 불을 지폈다.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했다"는 범인의 발언에 여성들은 분노했다. 남성들은 "잠재적 범인 취급 말라"며 반발했다. 정치권은 젠더 갈등을 부추겼다. 통합보다 '표'를 우선했다. 젠더 갈등은 정치적 양극화(兩極化)로 확대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의 환심(歡心)을 샀다. 남성들은 발끈했다. 2022년 대선에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성난 남성을 자극했다. 그는 여성할당제·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다. 이 대표는 '2030 남성의 대변자'란 정치 자산을 챙겼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고,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공언했다. 2030 남성은 투표로 화답했다. 계엄 선포로 위기에 몰린 윤 대통령은 청년 남성의 감성을 또 건드렸다. 윤 대통령은 "2030세대가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데, 유튜브로 지켜보고 있다"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시는 것을 봤다"고 역설했다. 2030의 정치적 행동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진영 논리에 휩쓸린 젠더 갈등은 나라를 망친다. 정치권은 위기 때마다 젠더 갈라치기를 한다. 그런 정치인들은 모리배(謀利輩)다. 다양성 존중과 대화·협상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남녀가 정치적 편향(偏向)으로 양분돼, 서로를 혐오하면 미래는 없다. 이러다간 연애가 깨지고 결혼도 파탄 난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세계관이 달라도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지 않나.

    2025-02-03 19:58:42

  • [야고부-김교영] 한 줌 재 되어 자연으로

    [야고부-김교영] 한 줌 재 되어 자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골분(骨粉)을 바람에 날려보내거나, 강물에 흘려보내는 영화 장면들은 눈시울을 붉게 한다. 고인의 흔적이 사라지는 허무함, 그렇게 보내야만 하는 애절함이 크다. 그러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소나 납골당의 장례보다 더 숙연(肅然)한 이별이다. 설 연휴 일가친지가 모인 자리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비롯한 시국(時局) 관련 얘기가 주종을 이뤘을 게다. 열띤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붉으락푸르락. 그런 분위기를 식히는 화제가 있었는데, 바로 '산분장'(散紛葬)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지난 24일부터 산분장이 합법화됐다. 개정안은 '육지의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해양과 산분을 할 수 있는 장소나 시설을 마련한 장사시설'에서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뿌려 장사를 지내는 산분장을 허용한다. 육지에서 '산분할 수 있는 장소'는 지목(地目)이 묘지로 등록된 곳을 말한다. 가족묘·선산은 가능하나, 일반 임야는 개인 소유라도 안 된다. 장례문화는 매장(埋葬)에서 화장(火葬)으로 빠르게 변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장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화장률이 93.9%다. 문제는 봉안(奉安)시설이 포화 상태라는 점이다. 사망자 수가 2020년 30만4천948명에서 2023년 35만2천511명으로 늘었다. 2072년에는 69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봉안시설을 늘려야 하는데, 민원 때문에 쉽지 않다. 정부는 2008년 수목장(樹木葬) 등 자연장(自然葬)을 새로운 장례 방식으로 제도화했다. 여기에 산분장을 추가한 것이다. 수목장 등 기존 자연장은 유골 안치에 시설과 비용이 든다. 산분장은 그런 부담이 없다. 산분장에 대한 거부감도 줄었다. 2021년 통계청 조사에서 22.3%가 산분장을 선호했다. 자손에게 성묘 등의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산되어서다. 프랑스는 산분장 문화가 보편화된 나라다. 전국의 묘지 등은 의무적으로 골분을 뿌리는 장소를 두게 돼 있다. 특별히 제한된 곳이 아니라면 어디서나 산분을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산분장은 너무 제한적이다. 생태계(生態系)에 미안한 일이 아니라면,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 뒷산이나 추억이 깃든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면 좋으련만.

    2025-01-30 17:47:14

  • [야고부-김교영] 그들만의 '국민 저항'

    [야고부-김교영] 그들만의 '국민 저항'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자,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통령 인준(認准)을 막기 위해 의사당에 난입했다. 사망자도 발생했다.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의사당 폭동 가담자 1천500여 명을 사면·감형했다. 징역 22년형을 받은 주동자도 석방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폭동을 사주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법무부가 기소를 취소했다.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의 민낯이다. 지난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윤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소화기 등으로 법원 유리창과 외벽을 부쉈다. 일부는 판사실이 있는 7층까지 올라가 '영장 판사'를 찾기도 했다. 서부지법은 3시간 동안 무법천지(無法天地)였다. 외신은 이 사태를 긴급 뉴스로 전했다.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는 한국의 수치다. 법원 집단 난동은 몇 차례 있었다. 1988년 12월 전남대·조선대 학생 300여 명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구속'을 외치며, 광주지법을 습격했다. 이듬해 6월엔 조선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조선대 학생이 변사체(變死體)로 발견되자, 광주지법을 점거했다. 1958년 7월 '진보당 사건'으로 기소된 조봉암에게 재판부가 징역 5년과 일부 무죄를 선고하자, 조봉암의 반대 세력이 대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서부지법 난동과 미 의사당 폭동이 오버랩된다. 특정 세력이 국가기관에서 소요(騷擾)를 일으켰다는 점이 비슷하다.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전부터 극우 유튜브에서는 '국민 저항권'이란 말이 나돌았다. 계엄 사태 당시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을 막아선 시민들을 사례로 들면서 저항권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황당한 망상(妄想)이다. 반공청년단(백골단)은 20일 서부지법 난동을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빗대고 있다. 이 단체는 '서부지법 1·19 민주화운동 대한 입장문'에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고 국정이 마비된 국가비상사태에서 청년들이 국민께 경종을 울리기 위해 선택한 처절한 몸부림을 단순 폭동으로 규정짓지 말아 달라"고 했다. 위험한 궤변(詭辯)이다. 그들의 '국민 저항'과 '민주화'가 섬뜩하다. 난세(亂世)다.

    2025-01-23 20:10:14

  • [야고부-김교영] 죽을 때까지 일하는 삶

    [야고부-김교영] 죽을 때까지 일하는 삶

    일하는 노인들이 많은데도 가난한 노인들이 많은 나라. 우리나라 이야기다. 모순형용(矛盾形容)처럼 들린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 노인의 실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OECD가 2022년을 기준으로 조사한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7.3%로 1위를 기록했다. 아이슬란드(32.6%), 일본(25.6%) 등이 우리 뒤를 이었다. 동시에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貧困率)은 40.4%로 OECD 국가 중 1위다. 특히 65~74세의 빈곤율(31.4%)보다 75세 이상의 빈곤율(52.0%)이 훨씬 높다. 젊은 시절의 가난은 노년의 극빈(極貧)으로 이어진다. 모은 재산이 없고 연금 제도는 취약하니, 늙어서도 일을 놓을 수 없다. 한국고용정보원 통계(2023년)를 보면, '계속근로'를 희망하는 65~79세의 비율은 55.7%다. 노인들의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저임금이다. 아파트 경비원 자리라도 차지하면 행운(幸運)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 월수입은 29만~76만원이라는데, 그마저도 취업문이 좁다. 은퇴 후 받는 연금은 생계를 보장하지 못한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 중 공적이전소득(연금소득)은 30%다. 이는 OECD 평균(57.3%)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 연금이 선진국보다 빈약(貧弱)한 것은 제도 도입이 늦었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들은 20세기 초반에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1988년에 도입됐고, 1999년 이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됐다. 현재 75세 이상인 노인들은 노령연금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채우기 어려웠다. 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65세 이상 연금 수급액(2022년 기준)은 월평균 65만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추정한 노후 최소 생활비(개인 124만3천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100세 시대'는 축복일까. 황혼(黃昏)에 건강하게 소일거리를 하는 삶은 행복하다. 죽을 때까지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삶은 짠하다.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끝없이 산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형벌 같다. 정호승 시인의 시, '술 한잔'이 위로가 되려나.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2025-01-16 20:07:44

  • [이런일] 대한요양병원협회‧밀양추모공원 물빛 수목장&봉안당 업무협약

    [이런일] 대한요양병원협회‧밀양추모공원 물빛 수목장&봉안당 업무협약

    대한요양병원협회(회장 남충희)와 밀양추모공원(대표 김도언)은 9일 '합리적 비용의 시설 이용과 자연 친화적인 장례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요양병원협회와 물빛수목장&봉안당(납골당)을 운영하는 밀양추모공원의 이번 업무협약은 친환경 장례문화 확산과 경제적 비용으로 요양 가족의 시설 이용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협약에 따라 협회 소속 전국 요양병원을 통해 수목장과 봉안당의 시설을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받고 필요하면 장례 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날 협약식에는 협회 남충희 회장과 권명길 상근부회장, 최봉주 사무국장, 추모공원의 김도언 대표, 이장희 상임이사, 박창원 사외이사 등이 참석했다. 남충희 회장은 "밀양추모공원과의 협약으로 환자를 모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회원 병원의 요양 가족이 시설 이용을 통한 할인 혜택 등을 보게 됐다"며 "이를 계기로 국민에게 더 신뢰와 사랑을 받는 노인 전문병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5-01-12 13:31:02

  • [야고부-김교영] 품격, 인격, 국격

    [야고부-김교영] 품격, 인격, 국격

    "Manners maketh man."(예의범절이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다. 멋진 정장을 입은 비밀 요원이 악당들을 응징하기 전에 남긴 말이다. 매너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행동이다.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인간 본성의 네 가지 덕목이라고 했다. 사람이 태생적으로 지닌 ▷가엾게 여길 줄 아는 마음(仁)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할 줄 아는 마음(義) ▷사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禮)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마음(智)이다. 이는 성선설(性善說)의 요체다. 사람에게는 '인격', 나라에는 '국격', 정치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인격, 국격, 품격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 국격은 제도와 행정, 정치인의 리더십, 국민성의 총합(總合)이다. 국가 제도가 국민을 존중하면, 국격은 높아진다. 국가가 빈곤한 사람을 지키기보다 가진 자의 이익 증대를 우선하면, 국격은 떨어진다. 그래서 18세기 영국 시인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품위 있는 배려야말로 문명이 거쳐야 할 진정한 시험"이라고 했던가. 국민성과 국격은 선순환(善循環)을 한다. 깨어 있는 시민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일등 국가가 훌륭한 국민을 배출한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보인 이성적인 태도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비통(悲痛)과 황망(慌忙) 중에 나온 행동이어서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지난 5일 무안공항에서 마지막 브리핑이 끝난 뒤 유가족 대표는 공무원들에게 앞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유가족 대표는 "이분들이 저희를 도와주신 겁니다. 집에도 못 가시고 최대한 도와주셔서 정말 빨리 수습을 하게 됐습니다"라며 정중히 인사했다. 이에 박상우 국토부 장관 등 공무원들도 허리를 굽혔다. 유가족과 공무원이 눈물의 포옹을 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제주항공 모기업인 애경그룹 관계자들이 사과하는 자리에서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사고 수습 관계자들은 "유족들이 이성적으로 대응한 게 신속한 수습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순조로운 수습은 당국의 면밀한 대응에 유족들의 협조, 시민들의 위로와 봉사가 더해졌기에 가능했다. 이게 국민의 품격이다. 나라를 도탄(塗炭)에 빠뜨린 정치인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

    2025-01-09 20:03:43

  • [야고부-김교영] 번역의 힘

    [야고부-김교영] 번역의 힘

    학창 시절(1980년대)에 어설픈 번역서(飜譯書)가 숱했다. 독일, 러시아, 프랑스 거장들의 심오한 소설을 읽다가 멀미를 느낄 때가 많았다. 긴 문장은 숨을 가쁘게 했다. 난마처럼 얽힌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를 찾는 일은 고통이었다. 거기에 맥락 없는 표현과 엉뚱한 단어들까지. 책을 읽고 나도 공허(空虛)했다. 번역 기반이 취약했던 시절에는 원전(原典) 번역이 아닌 중역(重譯), 삼역(三譯)이 많았다. 독일어 원전이 영어, 일본어를 거쳐 우리말로 바뀌면서 틀린 번역이 확대됐다. 과거에 읽었던 소설을 최근 번역본으로 다시 읽으면, 느낌이 다르다. 술술 읽히고, 확확 다가온다. 번역의 힘이다. 번역은 직역(直譯)과 의역(意譯)으로 나뉜다. 직역은 원어 문장에 충실한 표현이다. 의역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방식이다. 둘의 우열(優劣)을 가릴 수는 없다. 원전의 장르와 특성, 독자층을 고려해 결정할 일이다. 작품이 해외에서 호평(好評)을 받으려면 번역가를 잘 만나야 한다.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는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의 공신이다. 한강 작가는 그의 번역으로 2016년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에 이어 노벨상을 받았다. 데버러 스미스는 배수아 작가의 몇몇 소설, 안도현 시인의 '연어'도 번역했다. 그는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의역을 많이 활용했다. '노벨문학상 보유국'이 되면서 번역이 주목받고 있다. 'K문학'의 세계화에는 번역의 힘이 필요하다. 정부가 번역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지난 31일 국회에서 문학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정부 지원을 받아 번역대학원대학을 설립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번역 분야에 우수한 교원과 학생들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K문학의 위상 제고는 국격을 높이는 일이다. 이는 백범 김구 선생이 주창(主唱)한 '문화의 힘'이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2025-01-02 19:58:34

  • [매일칼럼-김교영] 저무는 강에 오욕과 통한을 씻고

    [매일칼럼-김교영] 저무는 강에 오욕과 통한을 씻고

    통곡(痛哭)의 세밑이다. 179명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비극은 왜 반복될까.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허망하다. 비통하다. 먹먹하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하자 여당과 야당은 일제히 정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촉구한다. 또 부질없는 말부조인가. 당장 정쟁(政爭)을 멈추라. 여야 따로가 아닌 국회가 정부를 도와라. 그게 진정한 애도(哀悼)다. 암울한 2024년이 저문다. 정치적 내전(內戰)은 소강 상태가 없었다. 끝내 전면전(全面戰)이 터졌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관련 수사,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 경제·안보 위기…. 이 난리통에도 정치권은 제 살길만 찾는다. 국민들의 평온은 정치권의 야욕(野慾)에 짓밟혔다. 오만(傲慢)한 권력에 취한 대통령은 '탄핵의 강'에 섰다. 온갖 불법 혐의로 재판을 받는 야당 대표는 '별의 시간'(독일 문학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 '운명을 가르는 결단의 순간')을 잡았다. 격랑의 탄핵 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달렸다. 파면 여부와, 파면될 경우 조기 대선의 시점에 이목이 쏠려 있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사건 등의 2심 재판도 초미(焦眉)의 관심사다. 그 결말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한다. 이 꼴을 지켜봐야 할 국민들은 참담하다. 민주당은 헌재를 향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신속 결론'을 압박한다. 최상목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라고 다그친다. 안 그러면 탄핵하겠단다. 이 대표의 '대선 꽃길'에 걸림돌이 생길까 속이 타는 모양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헌재의 심판 기한(6개월)을 100% 활용하겠다는 태세다. 국회 탄핵안 가결 직후 윤 대통령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최대한 끌면서, 법원에 이 대표의 신속한 재판을 재촉한다. 나라와 국민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도 자신들의 실리만 챙긴다. 국민들은 먹고살려고 아등바등인데, 정치인들은 권력 놀음에 아득바득이다. 일찍이 유치환 시인은 정치 모리배를 향해 일갈(一喝)했다. "먼 후일 오직 역사만이/ 너희의 곡직을 단죄할 것이라 치더라도/ 쓸개 있거든 듣거라/ 이 오탁(汚濁)과 도탄의 시궁창에서/ 끝끝내 인민만 우롱할 것이냐."(시, '개헌안 시비'의 일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우리 대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섰다. 한류(韓流)는 세계를 물들였다.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차지했다. 정치는 진영과 팬덤에 갇혀 퇴행했다. '4류'도 과분하다. 그냥 '등급 외'다. 정치는 국민을 배반했다. 양대 정당은 '광장'과 '아스팔트' 지지층에만 기대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이 아니면 깡그리 반(反)민주다.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은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 정국 불안과 미국 트럼프 신행정부의 정책 변수는 실물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흥성거려야 할 세밑 거리는 한산하다. 식당 주인과 택시 기사들은 "손님이 없다"며 푸념한다. '나라 안정'이 국민들의 새해 1호 소망이 될 판이다. 민주화 40년 역사에 오점을 남긴 2024년이 막을 내린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은 성찰의 의례다. 저무는 강에 오욕과 통한을 씻어 보내고, 새해의 여명(黎明)을 맞자.

    2024-12-30 20: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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