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끊고 다시 시작하는 삶"…대구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회복 프로그램 진행
대구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센터장 유승훈, 이하 대구센터)는 지난 27일 대구에서 도박 중단을 실천 중인 회복자들을 대상으로 '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단도박(도박을 끊는 일) 실천 기간에 따라 ▷1개월 ▷100일 ▷6개월 ▷1년 ▷2년 ▷4년을 기념하는 소감문 발표와 축하 세리머니로 구성됐다. 회복 프로그램은 개인 상담을 종료한 회복자들이 단도박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정기적인 활동을 통해 회복자와 가족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날 행사에는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이진식 사무처장이 참석해 회복자와 가족을 격려했다. 그는 회복자들의 경험담 발표에 이어 배지 수여식에 참여했으며, '대구센터 이용자와의 대화' 자리를 통해 참석자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무처장은 "회복자로서 당당히 살아가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된 청소년 도박에 대한 경각심도 제기됐다. 이 사무처장은 "청소년이 도박 등 사회의 어두운 측면에 물들지 않고 건강한 성장기를 보낼 수 있도록 사감위가 정책적 대응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대권 수성구청장도 행사에 참석해 학교 밖 청소년의 도박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수성구 내 위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대구센터와의 협업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센터는 계명대가 운영하는 도박 문제 전문 상담기관이다.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 치유뿐 아니라 예방 교육, 지역사회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상담은 전화(1336), 문자(#1336), 카카오톡 챗봇('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친구 추가) 등을 통해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다.
2025-03-30 13:32:15
▶김이규 씨 14일 별세. 김범철(한국수력원자력(주) 규제협력처 사고관리전략부장)‧은주(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교류홍보과 사무관)‧현주(대구MBC 편성제작국 부장) 씨 부친상. 백경열(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대구 주재기자) 씨 장인상. 빈소=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3호실. 발인=17일(월) 오전 4시 30분. 02)2030-7903
2025-02-15 11:16:52
[한국정치 대전환] 정치개혁을 위한 '열린 장'을 열어나가자
1987년 6월 9일. 희끄무레한 최루가스가 도로를 가득 메웠다. 흰 옷차림의 한 청년은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빨간 옷을 입은 다른 청년이 그런 그를 부축했다. 이날 연세대 앞 시위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은 고(故) 이한열 열사는 한 달간 사경을 헤매다 결국 눈을 감았다. 향년 스무 살이었다. 그해 12월 개헌안이 통과되기까지 수많은 국민이 일상을 반납하고 투쟁에 나섰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제9차 개헌헌법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국민은 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민정당과 민주당의 '8인 정치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속기록 같은 자료도 남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87년 헌법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우리 역사의 큰 의미를 지님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지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최근 다시금 불고 있는 개헌 바람의 한가운데 서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어떤 점이 부족했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논의를 시작할 때다. ◆높아진 개헌의 필요성…공론과 합의를 통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여야 간 개헌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7월 31일 국회에서 여야 협의 하에 개헌협상전담기구로 구성된 '8인 정치회담'이 열렸다. 여당에선 권익현·윤길중·이한동·최영철 의원이 참여했고, 야당에선 김동영·박용만·이용희·이중재 의원이 나섰다. 출범 한 달 만인 8월 31일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 협상안이 마련됐다.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헌법 개정안은 10월 12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투표에서 찬성 254명, 반대 4명으로 통과됐고, 같은 달 27일 국민투표에서도 93.1%의 지지율로 승인됐다. 국민의 염원이 컸던 만큼 제9차 개헌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8인 정치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돼 국민이 개헌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던 '닫힌 개헌'이라는 점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이후에도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내각제로의 개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3당 합당을 통해 각서까지 작성되며 본격적으로 이뤄지나 싶었으나 당시 김영삼 총재가 대통령 직선제를 고수해 결국 무산됐다. 1997년 대선을 앞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 외에도 많은 대통령이 임기 중, 혹은 경선 과정 등에서 개헌을 약속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국정농단,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등 정치 이슈 때문에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며 실제로 개헌이 이뤄지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과거 개헌 논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논의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 참여를 확대할 것인지, 나아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지연을 최소화하고 협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논의됐던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처럼 실제 개헌을 위해선 쟁점을 최소화하면서도, 국민의 참여 절차를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정의당 대표를 지낸 김준우 법무법인 덕구 소속 변호사는 "개헌과 관련해 수없이 다양한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2018년처럼 무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그래서 필요하다면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보다는 우선 합의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쟁점들에 한해서 개헌을 추진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참여 방안에 대해선 "원 포인트 개헌을 할 경우 국민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발안제' 도입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2023년 국회 차원에서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하여 공론화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국민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장은 "1987년 이후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확장하는 포괄적인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이 경우 정치권이 개헌을 미루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어 개헌이 상당히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제, 거대 정당 독점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정치개혁 방안에 초점을 맞추되, 국민발안제 등 국민 의견을 개헌 과정에서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추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권 보장 확대…생명·안전권·차별금지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개헌 방향은 기본권 보장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2017년 국회 개헌특위 활동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75.4%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안전권·생명권·정보기본권·건강권·성평등권 등 기본권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 93.9%가 지지했다. 2018년 국회 개헌 자문위원회 최종보고서와 문재인 정부 개헌안에도 기본권 개선안이 우선됐다. 인간 존엄의 전제인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신설하고 평등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남녀평등에 관한 국가의 의무조항을 신설하는 안도 포함했다. 이 외에도 정보화 사회에 대응하는 정보기본권(알권리, 소외계층의 정보접근권)을 명문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아울러 사상과 표현의 자유 명문화, 국민복지 향상을 위한 사회적 기본권을 내세우는 등 기본권 강화가 제시됐다. 제20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한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권력구조의 변화, 정치 갈등의 해소를 위한 개헌에 앞서 헌법의 기본 원칙인 '국민주권'을 다시금 강조했다. 정 원장은 "1987년 체제에서 우리의 최대 관심은 민주화였다. 국민이 직접 지도자와 대표자를 선출하는 직선제가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진영 간의 갈등과 권력을 둘러싼 싸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이를 바꾸기 위해선 이젠 정치권 논리가 아닌 국민을 위한 헌법이 무엇인지, 국민주권을 지키기는 방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소멸 시대, 지방분권 개헌 다시금 불붙은 개헌 논의에서 지방분권 개헌 역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와 함께 중앙권력 개편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1987년 체제는 탈권위주의 패러다임을 반영한 헌법으로 이미 40년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또 다른 사회 문제들이 야기돼 왔다"며 "이를 해소하고 새로운 시대 환경의 가치들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자치분권'이 가장 필요하다.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에만 집중돼왔는데, 이제는 자치분권을 두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앞서 지역에서도 지방분권 개헌과 관련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2017년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 등 대구경북 7개 민관단체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를 통해 ▷헌법 제1조 지방분권국가 명시 ▷지역대표형 상원제 도입 ▷지방의 입법권과 재정권 강화 등의 내용을 국회 개헌안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2021년에는 대구시 지방분권협의회가 전국 최초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방분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방분권 운동도 이번 개헌 논의가 활발해짐에 따라 적극적인 행보를 펼칠 예정이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는 "1987년 체제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민주제도를 갖춘 헌법이지만 이제는 주권자가 각 지역에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게 민주주의에 더 심화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개헌의 방향은 지방분권과 주민자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 정부와 지방의회가 의미 있는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치 법률 재정권이 주어져야 지역이 당면한 청년 유출과 지역 소멸의 문제를 해소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2025-02-02 14:10:07
[청라언덕-서광호]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넘어 협치의 정치로
한국 정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승자독식'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극단적인 정치 문화가 일상이 됐다. 거대한 두 정당이 의회를 독점하는 동안,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는 소외됐다. 현재 선거제도는 무더기 사표(死票)를 낳는다. 민심은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친다. 이러한 왜곡된 정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지난해 제22대 총선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무려 1천222만 표가 '죽은 표'로 버려졌다. 이는 전체 유효 표의 41.9%에 달한다. 경기 화성시을의 경우 57.6%라는 기록적인 사표 비율을 기록했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의 구조적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제도는 단순히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만 당선시키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투표의 효능감을 느낄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국민의 선택이 의회 구성에서 심각하게 왜곡돼 있음을 보여 준다. 소선거구제는 대표성과 비례성을 떨어뜨린다. 대표성은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 실패하고, 비례성은 정당 득표율이 의석수에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한다. 지난 총선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50.6%의 득표율로 63.4%의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45.1%의 득표율로 35.4%의 의석에 그쳤다. 군소 정당은 사실상 배제됐다. 거대 양당 체제는 국민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정치적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 대립과 적대가 일상화된 국회에선 협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해답은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 확대에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을 뽑는 방식으로, 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을 넓힌다. 이를 통해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 이를 통한 대표성 향상은 정치적 안정과 국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정당 내부 계파 갈등과 후보 공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현재 전체 의석 중 15%에 불과한 비례대표 비율도 3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1대 1로 맞추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정수를 400명으로 늘리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200석의 균형 잡힌 구조는 우리 정치의 지평을 넓히는 청사진이 될 것이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2023년 기준 독일 연방의회에선 여러 정당이 10~30%의 의석을 나눠 가지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마치 여러 색이 어우러진 무지개처럼, 정치적 다양성이 민주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증거다. 우리 정치는 이제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은 양당제의 낡은 길이고, 다른 쪽은 다당제라는 새로운 미래다.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 확대는 새로운 길을 닦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한국 정치는 갈등과 대결을 낳는 승자독식 양당제가 아닌 대화와 타협의 다당제로 나아가야 한다.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국민은 더 나은 정치를 원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를 받아들여, 제도 개선을 위한 용기 있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 오직 기준은 한국 정치의 미래, 그리고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여야 한다.
2025-01-30 17:46:59
[한국 정치 대전환] 선거와 정당: 대결에서 합의로…"다당제 정착 여건 마련해야!"
윤석열 정부의 계엄 사태 이후 분열된 정국 속에서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대선거구제로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비례대표제를 강화해 현재의 양당 체제를 극복하고 다당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총선, 1천213만표가 '사표'로 버려졌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지금의 거대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원인으로 오랫동안 지적됐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선거구 크기에 따라 ▷소선거구제 ▷중선거구제(1개 선거구에서 2~4명 선출) ▷대선거구제(5명 이상을 선출)로 나뉜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1명을 뽑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형태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선 다른 후보들보다 1표라도 더 많으면 당선되므로, 사표(死票·낙선한 후보자 표)가 대거 발생하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통계에 따라 지난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54개 지역구 사표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유효표 2천923만표 가운데 41.9%에 달하는 1천213만2천표가 사표로 버려졌다. 선거구별 사표 비율을 보면 57.6%의 경기 화성시을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으며, 경북 경산시가 56.6%로 뒤를 이었다. 이어 ▷경기 고양시갑(54.7%) ▷울산 동구(54.1%)▷경남 창원시성산구(53.6%) 순이었다. 대구에선 전체 유효표(128만8천표) 중 29.8%(38만4천표)의 사표가 나왔다. 세부적으로, 중구·남구가 42.1%로 가장 높은 사표 비율을 기록했고, 수성구갑(34.4%)과 달서구병(32.9%)이 뒤를 이었다. ◆'승자독식'…명확한 소선거구제의 한계 대규모 사표의 발생으로 선거의 대표성과 비례성이 떨어지고, 결국 민의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승자독식 방식은 거대 양당 체제의 강화로 이어진다. 전체 의석 가운데 1, 2당이 차지한 비율은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65.2%였다. 이 비율이 90%를 넘은 적이 2000년대 이후에만 5번(제16·17·19·21·22대)에 달하는 등 거대 양당 체제는 갈수록 심해졌다. 이에 따라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현석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려면, 결국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구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주의 완화, 군소 정당의 의회 진입 효과를 기대하려면 5인 선거구제로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3인 선거구제부터 시작하는 방안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한 정당에서 2명 이상을 후보로 내게 되는데, 이때 후보끼리 갈등이 생기고 정당 내 계파 정치가 심해질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을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도 일부 존재한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중선거구제에서 다수대표제로 선거가 이뤄지면 인물 중심의 선거가 될 수밖에 없고, 거대 정당 후보들이 한 선거구를 가져가거나 거대 양당끼리 나눠 차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낮은 비례대표 의석 비율… "비례대표 확대 필요"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비례대표제 강화 역시 필수 불가결 과제로 손꼽힌다. 지난해 제22대 총선에서 각 정당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6% ▷국민의힘 45.1% ▷무소속 1.4% ▷진보당 1.0% 등이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의석 비율은 63.4%로 득표율보다 12.8%포인트(p) 높고, 반면 국민의힘의 의석 비율은 득표율보다 9.7%p 낮았다. 비례대표 의석에서도 군소 정당들은 기를 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20년 1월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위해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같은 해 4월 치러진 제21대 총선부터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비례대표·지역구 의석 및 정당 득표율과의 연동률 50%)로 변경됐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회의원 중 비례대표 비율은 제11·12대 33.3→제13대 25.1→제14대 20.7%로 떨어지다 제15대에서 20%대가 무너졌다. 이후 10% 중후반대로 유지돼 오다 21대 선거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21·22대 비례대표 비율은 각각 15.7%, 15.3%로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마저도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한 탓에, 소수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은 소수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2대 1이나 1대 1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의원 정수는 제헌 국회 때 200석으로 시작해 증감을 반복했다. 제8~11대 사이 204→219→231→276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제13대부터 299명으로 확대됐고, 제19대에서 300명으로 소폭 늘어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구 의석에 인구 감소분을 반영해 지역구 의석을 줄인 만큼 비례대표 의석으로 이월시켜 비례대표 비율을 늘려야 한다"며 "전체 의원석을 총 400석으로 늘리고, 지역구와 비례를 각각 200석씩 비율을 1대 1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적대적 양당제와 작별을…협치의 다당제로 사회 이슈가 다양해지면서 여러 정당의 의견을 수렴하는 '다당제'가 바람직한 정당구도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으로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양당제 국가로 분류된다. 거대 양당에 표가 몰리는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 방식으로는 다당제가 확립되기 어렵다. 양당제에선 국민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의 폭이 좁고, 상대 정당의 패배가 자기 정당의 승리로 직결된다. 결국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극단적 대치만 남고 타협의 정치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다당제 국가인 독일의 경우 단순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를 적절한 비율로 혼합해 여러 정당이 지나치게 난립하지 않으면서도, 적정 수의 정당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은 연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법정 의원 정수(598명)를 반으로 나눠 단순다수제 방식으로 선거구당 1명씩 299명을 선출하고, 나머지 299명은 16개 주에서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뽑는다. 지난해 9월 기준 독일의 제20대 의회 정당별 의석수를 보면, 733석(법정 의원 정수 598명에 초과·보정 의석 포함) 중 ▷독일사회민주당 207석(28.2%) ▷독일기독교민주연합 196석(26.7%) ▷동맹90‧녹색당 117석(16.0%) ▷자유민주당 91석(12.4%) ▷독일을 위한 대안 77석(10.5%) ▷기타 정당 45석(6.1%) 등으로 분포돼 있다. 거대 양당의 의석 비율이 94.3%에 달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다당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의 여소야대 정국에선 대립할 수밖에 없다. 다당제로 3개 이상의 정당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연합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양당제가 계속된다면 이러한 경색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다당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회장은 "현재 정당법에선 소수 정당을 창당하고, 창당하더라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에 앞서 정당법을 일부 개정해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2025-01-26 15:19:57
[3대 문화권, 그 후] "체류형 프로그램 필요" 3대 문화권 관광지, 어떻게 개선해야?
2조원을 투입한 3대 문화권 사업이 혈세를 낭비하는 '밑 빠진 독'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매일신문 2024년 5월 16~29일 보도)과 관련, 국책연구기관이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하 연구원)은 3대 문화권 사업 관광지 5곳의 활성화 방안을 담은 심층 컨설팅 보고서를 최근 경상북도 등에 전달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원은 관광지별 특성에 맞춰 체류 관광객 유도와 접근성 개선, 콘텐츠 및 참여 프로그램 개발 등을 제안했다. 이번 보고서엔 ▷낙동가람 수변역사 누림길(대구 달성) ▷신라금속공예지국(경주) ▷누정휴 문화누리(봉화) ▷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상주)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고령) 등 5곳에 대한 컨설팅 결과가 담겼다. 이에 따르면 낙동가람 수변역사 누림길(도동유교문화관)은 체류 관광객을 유도하기 위해 한옥 숙박시설을 활용한 '워케이션'의 도입을 제안했다. 워케이션이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 형태를 의미한다. 이곳에는 도동서원 인근에 세워진 서원스테이 4개 동과 한옥 건물 10개 동이 있다. 지난해 6월 첫 투숙객을 맞을 예정이었지만, "숙박 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운영이 지연됐다. 우여곡절 끝에 같은 해 11월 23일 정식 개장했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워케이션 방안으로 복합문화원과 휴게실을 공유오피스와 키친, 무인매점 등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리뉴얼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는 특히 2030 MZ 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관광 트렌드를 반영하는 방안으로,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이다. 신라금속공예지국(신라금속공예관)은 APEC 정상회의 준비로 인해 개장이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건물 전체가 APEC 준비단의 사무실로 사용되면서 2026년 후에나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신라금속공예관에 대해 현재 보유한 금속공예 자원의 부족, 공예촌 내 공방과 판매점의 분산, 낮은 보행 접근성 등이 문제로 지적했다. 누정휴 문화누리 조성사업으로 지난 2020년 문을 연 봉화정자문화생활관에 대해선 핵심 테마인 '누‧정'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내기 힘들다는 지적과 함께 콘텐츠 활성화 전략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관련 학과 및 학회 등을 대상으로 한 단체행사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위해 현재 시설을 대형 연회장 등으로 개·보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경상감영 모습을 재현해 2021년 개장한 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과 관련해선 사업 초기부터 표적 시장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고서는 일관되고 명확한 테마를 설정하고, 이와 연관된 다양한 형태의 고객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 사업으로 2019년 문을 연 대가야생활촌은 ▷주변 관광지들과의 연계 미흡 ▷시설유지보수와 인건비 등 고정 지출액로 인한 적자 ▷부족한 관광상품·기념품 개발 등이 개선해야 할 문제로 지적됐다. 경상북도 관광정책과 관계자는 "이번 컨설팅을 바탕으로 최신 관광 트렌드를 도입한 새로운 콘텐츠 발굴에 각 지자체와 함께 나설 예정이다"며 "앞서 문경 에코월드의 경우 문체부 컨설팅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테마파크 주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선례를 더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5-01-21 15:31:07
[한국정치 대전환] 87년 체제 대통령제 수명 다해…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개헌'
1987년 제9차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제6공화국이 시작됐다. 군사 권위주의 시대를 극복하고 대통령을 직접 국민이 선출하는 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에게서 모든 권력이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을 실현한 것이다. 이후 38년간 여러 차례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권력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대립에서 삼권분립으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후폭풍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87년 헌정 체제에서 대통령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됐고, 특히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한 또 다른 헌법기관인 국회와의 마찰은 노골화됐다. 1987년 이후 국회에 발의된 탄핵소추안을 보면 ▷김영삼(1회) ▷김대중(6회) ▷노무현(4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문재인(6회) 등 극히 제한됐다. 반면 윤석열 정부(2024년 말 기준)에선 29회로, 전체 탄핵 발의(49회)의 59.2%나 집중됐다. 이중 가결된 탄핵안 16회 중 13회가 윤석열 정부에서다. 극단적 대결은 대통령의 거부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38년간 국회의 법률안을 대통령(권한대행 포함)이 거부한 경우는 모두 49회로, 이중 윤석열 정부가 67.3%(33회)나 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노태우(7회) ▷노무현(6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등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견제와 균형의 삼권분립의 실효성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대통령제 내의 내각제적 요소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으로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제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법률안 제출권 ▷대통령의 임시국회 소집 요구권 등이다. 대통령의 위상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대통령은 제3공화국 헌법에서 규정한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유신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의 '국가 원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완성을 위해선 행정부 수반으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역사와 행사 사유'를 통해 "대통령이 법률안거부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해 입법에 과도하게 관여하는 것은 국회를 제치고 실질적인 입법권자로 행위하는 것으로 헌법 구조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타당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국회와의 협치를 통해 신중하게 행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극한으로 치닫는 진영 갈등 지난 2006년 5월 20일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습을 당했다. 서울시장 선거유세를 돕던 중 50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얼굴을 다쳤다. 정치인 테러는 지난해 1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사건으로 재연됐다. 이 대표는 괴한의 흉기에 목이 찔렸다. 두 사건은 진영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달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피해자들은 모두 야당 대표였다. 이외에도 이재명 대표 피습 23일 후에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괴한에게 둔기로 가격당했고, 앞서 2022년 3월에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범인들은 특정 정당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고, 결국 왜곡된 정치 신념으로 인한 사건으로 종결됐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지도자를 향한 팬심이 비뚤어지게 표출돼 상대를 공격하는 등 극단적인 갈등 양상을 보인다. 박진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정치대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외면하고 특정 정당과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포퓰리즘에 따른 문제다"며 "이로 인해 국민의 대표성과 모두를 위한 정책은 왜곡되고 훼손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뉜 '분점정부'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이후 진영 갈등을 낳고 있다. 취임 첫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국정운영에 전념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당내 동교동계와의 갈등이 빌미가 됐다. 급기야 이듬해 3월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등과 함께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대통령과 국회의 마찰이 극에 달한 것이다. 이후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상황을 돌파하고자 내각제적 권력분점의 내용을 담은 대연정을 제안했다. 또 4년 연임 대통령제로 개헌하자고 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김영삼과 김대중 등 2000년대 이전과 이후 대통령들의 리더십은 무게감에서 차이가 난다.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없이 승자독식 제도에서 위임받은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또 반대 진영과 협력하려는 노력 없이 적대시하는 정치문화는 이제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 개편 방향은…4년 중임 or 분권형 이로 인해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필요성과 논의는 꾸준히 진행돼왔다. 특히 5년 단임제를 대신한 4년 중임제 개헌론이 제기됐다. 4년 중임제는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고, 재선을 통해 장기적인 정부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정권에 대해 중간평가를 내릴 수 있어 유권자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진다. 다만 8년 집권으로 대통령 권한이 더 비대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집권 때에 현재 5년 단임제처럼 레임덕이 반복될 우려도 있다. 서보건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5년 단임제는 선거마다 국론과 여론이 분열된다. 팽팽한 대립 관계가 있는 곳에선 정권의 연속성이 짧아진다. 그래서 중간평가를 받고 더 긴 호흡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4년 중임제가 더 필요하다"며 "다만 여야와 좌우 대립이 치열한 현재 상황에선 너무 잦은 정권교체라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기에, 근본적인 권력구조를 바꿀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도 제시된다. 관련해 국회는 2009년과 2017년 각각 자문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구성, 개헌 논의는 이어왔다. 자문위원회는 제1안으로 이원정부제를 내세웠다. 대통령은 현행 그대로 5년 단임으로 하되, 국무총리는 국회(하원)에서 재적 과반으로 선출하자는 것이다. 총리에게 국정 전반의 통할권과 내각 구성권, 국군통수권,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총리에게 국회해산 요청권을, 국회(하원)에는 내각 불신임권을 각각 인정해 견제와 균형을 맞추자는 제안이다. 특별위원회도 분권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4년 중임과 책임총리, 책임장관제 등 내각제적 요소의 강화를 제시했다. 국회에서 추천‧선출하는 총리가 집행기능 일부분을 담당하는 분권형 정부제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7년 체제의 대통령제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고 본다. 인사권, 예산권 등이 몰려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하거나 그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의회의 책임을 높일 내각제 헌법‧정치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의원내각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가 선호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OECD 38개국 중 대통령제는 한국을 포함해 7개국뿐이다. 이중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칠레,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튀르키예) 중 대부분은 권위주의 정권이나 내란, 쿠데타 등 사회적 분열과 내부 갈등을 겪었다. 이에 비해 내각제는 26개국(독일, 영국, 일본,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등)에 달한다. 나머지는 이원정부제 4개국과 집단지도제 1개국이다. 앞서 내각제 논의가 있었다.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의 3당 합당, 19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 모두 내각제를 매개로 했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뒤에는 개헌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는 등 개헌 추진은 1987년 이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은 내각제를 통해 권한 배분과 의원 중심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다변화된 현대 사회에 유연한 정책 실행이 가능해서다. 대표적으로 영국과 독일이 손꼽힌다. 영국은 왕권이 있긴 하지만 의회의 권리장전으로 현재는 왕권은 축소되고 의회가 내각 대부분을 담당한다. 선거를 통해 다수를 차지한 정당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총리는 내각을 구성‧운영한다. 독일은 분권형 내각제로 실질적 행정권은 연방정부가 갖고 국가 원수는 외교와 의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의회는 불신임 권한을 행사할 때 차기 총리 등 대안을 마련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건설적 불신임권'을 갖는다. 정부의 의회해산권 역시 제한을 두는 등 견제 기능을 강화한 내각제다.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우윤근 단국대 석좌교수는 "87년 체제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흘러오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다. 세계적으로도 멕시코, 콜롬비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의원내각제로 향하고 있다. 동서와 남북 등 갈등이 많은 우리나라는 다수결보다는 합의제로 가는 내각제가 더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기획탐사팀
2025-01-19 20:26:58
극단적 갈등 증폭한 '87년 체제'…"역사적 소임 다해"
제9차 헌법개정으로 탄생한 '1987년 헌정 체제'는 올해로 39년째다. 민주화로 비롯된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한국 정치사는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으로 점철됐다. 그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국가 원수'라는 지위의 대통령은 인사권과 예산권은 물론 외교와 국방까지 막대한 권한을 보유한다. 정치권은 이러한 '대권'을 목표로 양보와 대화가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야당은 국정에 협조하기보다 정권의 실패를 통해 대권을 잡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국회의 '이원적 정통성'이라는 헌정 질서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들은 각각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 반복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내 양당의 대립이 일상화됐다. 이제는 여야 대결을 넘어 거대 야당과 대통령 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이로 인해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 빈번해졌다. 1987년 이후 선출된 대통령 8명 중 5명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거나 퇴임 후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 나아가 장관 등 관료들에 대한 탄핵소추 추진도 최근 급증했다. 민주화 이후 국회에 발의된 탄핵소추안을 보면 ▷김영삼(1회) ▷김대중(6회) ▷노무현(4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문재인(6회) 등 극히 제한됐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2024년 말 기준)에선 29회로, 전체 탄핵 발의(49회) 중 59.2%를 차지했다. 지난 38년 사이 실제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안 16회 가운데 13회가 윤석열 정부에서 발생했다. 행정부에 대한 엄포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통령과 국회의 정면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극단적 대결 양상은 대통령의 거부권에서도 드러난다. 1987년 이후 국회에서 마련한 법률을 대통령(권한대행 포함)이 거부한 경우는 모두 49회로, 이중 윤석열 정부가 67.3%(33회)에 달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노태우(7회) ▷노무현(6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등 거부권 행사에 신중했다. 이 같은 상황에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87년 헌정 체제가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지적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는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선거제도와 정당구도에 대한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7년 체제는 국가 원수와 행정부 수반, 군 통수권자 등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낳았다. 또한 대통령과 국회의 이중적 정통성으로 인한 여소야대의 입법 교착이 만성화됐다"며 "정부와 국회가 일치하는 내각제나 대통령과 정부를 분리하는 이원정부제 등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 22명을 대상으로 한국 정치의 현실과 해법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헌을 비롯해 대통령제와 선거, 정당 등 정치개혁의 방향을 담은 시리즈를 4편에 걸쳐 보도한다. 기획탐사팀
2025-01-02 06:30:00
87년 헌정 체제의 종언…대통령·선거·정당 등 정치개혁 급선무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인 현재 헌법은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은 극단적인 갈등을 빚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잦아졌고, 여소야대가 반복되며 입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일상이 됐다. 정치는 협력보다 극한 대립으로 나아갔다. 그야말로 한국 정치의 위기다. 정치 체제를 구성하는 세 요소인 권력구조(정부 형태)와 선거제도, 정당구도 등의 변화가 시급하다. 분권과 협치를 바탕으로 한 정치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 87년 체제를 넘어 새로운 공화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strong〉◆제6공화국 헌정사…대통령 잔혹사〈/strong〉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가 열렸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유권자 중 78.2%가 참여했고, 투표자의 93.1%가 찬성했다. 민주화 운동의 성과인 '87년 헌정 체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 헌정사는 탄핵으로 얼룩졌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이후 대통령 5명 중 4명이 임기 중에 탄핵이 의결‧인용되거나 퇴임 후 구속됐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끌어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를 기점으로 대통령 잔혹사는 극심해졌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회와의 충돌이 본격화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뉜 '분점 정부'가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헌법이 보장한 '이원적 정통성'의 허점이 불거진 것이다. 무엇보다 '여소야대'가 갈등을 부추겼다. 1988년 제13대부터 2024년 제22대까지 국회의원선거 10회 가운데 집권당이 과반에 미달한 경우가 6회에 달했다. 1988~2000년, 2016년, 2024년 등 빈번하게 여당이 야당에 주도권을 뺏겼다. 이는 대통령과 국회로 이원화된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의 독주‧독단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분할 투표' 성향은 정국 불안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고 모든 정부가 1회 이상 여당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전용주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국회 모두 국민이 뽑았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면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내각제는 정부와 의회 권력이 한 몸이고, 또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 등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경우 임기가 고정돼 있어서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 이외에 갈등 해소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strong〉◆'제왕적 5년 단임제'의 한계〈/strong〉 대통령들은 시작부터 치명적 약점을 안았다. 과반도 안 되는 대선 득표율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51.55%) 이외에는 모두 절반에 못 미치게 득표했다. 절반의 반대를 안은 대통령들은 임기 초‧중반 크고 작은 이슈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고, 선거 불복에 가까운 저항에 부딪혔다. 1년차 60~80%의 지지율은 4~5년차에 10~20% 수준으로 떨어졌다. 5년 단임의 한계도 크다. 대통령의 권한 독점·남용을 제어하고자 단임제를 도입한 것이다. 장기 집권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진 짧은 임기로 인해 장기적 국정 과제 추진이 어렵고, 재선 가능성이 없는 탓에 책임 정치를 실현할 동기도 옅다. 여기에 잦은 선거도 부담이다. 5년 임기 중 약 2~3회에 걸쳐 총선과 지방‧보궐선거 등이 진행된다. 이들 선거는 견제와 심판 심리가 작용하는 중간 평가 성격이 강하다. 대통령과 여당보다 야당에 힘이 실리게 결과를 낳아, 국정 동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도 대권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왕적이라 불릴 정도의 집중된 권한 때문이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인사권, 재정권, 행정권, 입법권(법률안 제출권과 거부권, 헌법개정제안권, 국민투표부의권 등), 외교권, 국방권, 국가긴급권(계엄선포권, 전쟁선포권, 긴급명령권) 등의 권한을 가진다. 이중 인사권의 예로 박근혜 정부를 보면, 장·차관급 등 100여 명을 비롯해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 헌법 기관 고위직도 20여 명에 달한다. 여기에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 검찰과 경찰, 외부 공무원, 국립대 총장 등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원은 7천 명에 이를 정도다. 대통령을 '선출된 왕'으로 여기는 정치 문화도 더해졌다. 모든 문제를 마치 왕처럼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결하려는 의식이 여전히 만연하다. 정권 탈환에 혈안이 돼 '반대를 위한 반대'인 비토크라시(Vetocracy, 거부정치)가 정치권에 팽배한 배경이다. 〈strong〉◆극한으로 치닫는 대립과 갈등…양당제‧소선거구 폐해〈/strong〉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 국회는 뗄 수 없는 요소다. 삼권 분립 아래 대통령과 함께 국회는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국회 내 정당구도와 이를 결정짓는 선거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양당제가 핵심 문제다. 두 거대 정당으로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 대립은 극대화된다. 협력과 타협은 실종되고, 대통령과 여당을 정략적으로 공격하는 행태가 반복된다. 우리 제도는 다당제를 표방하지만, 실제는 양당제에 가깝다. 1988~2024년(제13~22대) 국회의원선거 결과를 보면, 전체 의석에서 제1, 2당 비중이 90%가 넘는 경우가 10회 가운데 5회나 된다. 2000년(90.8%)과 2004년(91.3%), 2012년(93.0%), 2020년(94.3%), 2024년(94.3%) 등이다. 2000년 이후 양당 체제가 본격화됐다. 특히 최근 두 번의 총선에선 90%대 중반에 이를 정도로 두 당이 의석을 독식했다. 양당제의 여소야대 상황과 강한 규율의 정당 문화가 결합하면서, 대통령은 야당을 대화로 설득할 여지가 줄었다. 제3당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합당과 해체 등으로 다시 양당제로 되돌아갔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이끌던 1992년 통일국민당(31석, 10.36%)은 반값 아파트 공약 등으로 새 바람을 일으켰지만, 같은 해 치러진 대선 이후 각종 수사가 진행되면서 결국 소멸됐다. 양당제는 선거제도에서 비롯됐다. 바로 지역구 중심의 소선거구 1인 다수대표제의 폐해다. 다수결로 한 명의 당선자를 뽑는 '승자독식' 지역구 선거는 많은 문제를 낳았다. 특히 '표의 불비례성'이 심각하다. 득표보다 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거나, 지지율에 모자라게 의석을 배분받는 것이다. 2024년 총선의 지역구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은 50.6%인데 의석 점유율 63.4%로 더 많았다. 반면 국민의힘은 45.1%를 득표해 의석은 35.4%를 가졌다. 이를 1석당 투표수로 환산하면 더불어민주당은 9만1천표이고, 국민의힘은 14만6천표로 격차가 크다. 소수정당인 진보당(30만2천표)과 새로운미래(20만표), 개혁신당(19만5천표)의 경우 표의 불비례성이 더욱 심했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24년 총선 전체 300석 중 비례대표는 46석(1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지역구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가운데도 비례대표 의석이 상당히 적은 편이다. 결국 비례대표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청년들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대표되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소선거구에선 낙선자에 대한 투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이로 인해 정치 효능감이 떨어진다. 자신을 대변할 제도권 정당이 없는 유권자들은 거리 집회 등 직접 행동 방식으로 정치적 요구를 표출한다. 유튜브와 SNS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정파적으로 극단적인 주장을 담은 콘텐츠를 통해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등 왜곡된 정치 문화가 생겨났다. 헌법·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국 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선 민주주의 모델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승자독식의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분권과 협치의 '합의제 민주주의'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적대적인 양당제를 극복하려면 소선거구 지역구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제도를 바꿔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등 다당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헌법학자인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이긴 사람이 권한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의 문제가 한국 사회에 누적돼왔다. 이제는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하는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며 "거대 양당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소선거구제를 개편해 다당제 연합정치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5-01-02 06:30:00
[정년 그리고 그 후] 대구 시민 2명 중 1명 60세 ↑… 2052년도 머지않았다
지난달 22일 오전 10시쯤 대구 중구 대구중장년내일센터 7층 강의실. 50대 위주의 중장년 여성 29명이 대여섯명씩 모둠을 이뤄 책상에 앉아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전날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생활지원사 취직을 돕기 위한 교육이 진행됐다. 생활지원사는 노인들을 돌보며 간단한 생활 교육과 안전 지원, 사회 참여 지원 등 여러 업무를 수행한다. 수업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심뇌혈관 질환 예방수칙을 트로트 음악에 맞춰 소개하는 영상은 특히 반응이 좋았다. 위급 상황 시 어르신을 도울 수 있도록 하임리히법(기도가 막혔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법) 실습도 이뤄졌다. 수강생은 2명씩 짝을 지어 강사의 지도에 따라 자세를 익혔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조모(59) 씨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하반기에 명예퇴직하고 현재는 생활지도사 1급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조 씨는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내가 직장 생활을 해온 기간 만큼 퇴직 이후의 삶도 길 것이기에 일찍 준비하고 싶어 퇴직을 서둘렀다"며 "50대 후반은 취직하기 어려워 걱정이지만 그래도 일단 도전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후 저출생, 고령화 기조에 따라 60세 정년을 지난 고령층의 노동은 더욱 활성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고령층 일자리 실태를 파악한 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구 60세↑ 취업자, 30년 전보다 7배 증가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 이상 인구 중 학생과 주부, 경제활동 참가 의사가 없는 사람 등을 제외한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11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60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3분기 기준 2014년 36.6%에서 올해 42.5%로 10년 새 5.9%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20~29세는 62.1%에서 53.6%로 감소한 것과는 상반된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실제로 일하는 비율인 고용률 또한 60세 이상에서 뚜렷하다. 대구의 60세 이상 3분기 고용률은 2014년 35.9%에서 2024년 41.5%로, 10년 새 5.6%p 올랐다. 10년 단위로 살펴본 취업자 수 증가세도 가파르다. 매년 3분기 기준 대구 60세 이상 취업자는 1994년 4만3천명에서 2004년 9만6천명, 2014년 15만4천명으로 10년마다 2배가량 뛰어 올해는 28만5천명을 기록했다.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과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대구 전체 인구(235만3천742명)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8.4%다. 이 비율은 2026년 30.7%로 향후 2년 만에 30%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후 빠르게 증가해 2035년(40.5%)에 40%대를 넘어서고, 꾸준히 상승해 2052년 49.5%에 육박할 전망이다. 대구 시민 2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 되는 셈이다. ◆고령층 단시간, 임시직 비율 높아…OECD 최상위 이처럼 60세 이상 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들의 고용 안정성은 취약한 실정이다. 코로나19로 고용 악화 직격탄을 받은 2020년 1분기 실업률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이 시기 대구의 30~59세 실업률은 2.5%로 직전 2019년 4분기(2.1%)보다 0.4%p 상승에 그친 반면, 60세 이상에선 같은 기간 2.9→4.9%로 증가 폭이 컸다. 이는 고령 근로자 대부분이 단기간 임시 근로 형태의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간한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 증가 현황과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임금 근로자(2022년 기준 181만4천명)의 61.6%가 주당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였다. 이 비율은 여성 임금근로자가 78.4%, 고졸 이하 저학력자가 64.0%였다. 65세 이상의 경우 임시근로자 비율이 56.1%로 가장 높았고, 상용근로자 비율은 34.3%에 그쳤다. 일용직 비율은 9.6%였다. 임시근로자는 1개월~1년 미만으로 고용된 사람을 뜻한다. 상용직은 1년 이상 고용계약기간이 설정된 사람 또는 무기계약인 경우다. 우리나라는 특히 중·장년층 임금근로자 가운데 임시 고용 형태로 일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우리나라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임시 고용 비율은 34.4%로, OECD 36국 중에서 가장 높다. 2위인 일본(22.5%)과의 격차도 10%p 이상 벌어졌다. ◆고용불안정성 개선·은퇴 후 재교육 활성화 숙제 저출생으로 청년층의 생산성과 소비력이 갈수록 줄어드면서 60세 이상 인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질적인 노인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정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현 경북연구원 경북RISE사업추진단 단장은 "퇴직 후 자신이 몸 담았던 업계와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하는데, 이러한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고령자들의 일자리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는 우리 노동시장의 정규직·비정규직 이중 구조 때문으로, 근본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완화해야 고령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령층이 몰리는 '미니잡'(주당 15시간을 넘지 않는 초단시간 근로) 등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여전히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만연해 이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며 "특히 대구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은 편이라, 일자리 공급을 위해선 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퇴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리턴십(Returnship)' 현상은 이전부터 주목 받아왔지만, 은퇴 후 재교육에 대한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올해 5월 기준 55~79세 가운데 지난 1년간 직업능력개발훈련에 참여한 비율은 13.1%에 불과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 노동을 부정적으로 보기만 해선 안 된다. 여전히 노동력을 갖고 있다면 소중히 활용하면 되는 것"이라며 "고령 노동자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누적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무엇이 있는지, 지역 산업 구조에 맞춰 이를 어떻게 창출해낼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현재 직장 내에서 퇴직을 앞둔 이들에 대한 재교육도 잘 이뤄지고 있지 않고, 노조가 없는 영세한 직장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며 "지자체에서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대부분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의 경우 더더욱 이러한 정보들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지자체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홍보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2024-12-11 18:30:00
[정년 그리고 그 후] "환갑 지나도 여전히 현역"…대구 60세 이상 고용률 41.5%, 10년 새 7.8p↑
우리나라 법정 정년인 60세는 '환갑'이라 불린다. 육십갑자가 돌아왔다는 의미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땐 환갑잔치를 열 정도로 축하받을 일이었다. 100세 시대인 요즘 60세는 '늙은 청년, 젊은 노인'으로 불린다. 이들은 여전히 자기 일에 몰두하거나, 은퇴 없는 제2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지난달 5일부터 이달 2일까지 60세를 넘겨서도 일하는 대구 시민 6명을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기사에 담았다. 지난달 22일 정오쯤 찾은 대구 중구 향촌동 수제화골목의 한양제화. 가게 안에 들어서니 30㎡ 남짓한 작업실이 나왔다. 장인 최병열(67) 씨는 이곳에서 53년째 수제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작업실은 한쪽 벽면 전체가 가죽들로 빼곡했다. 책상 앞 벽걸이엔 손잡이가 닳은 가위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최 씨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한창 작업에 몰두 중이었다. 날렵한 손놀림으로 선을 따라 가죽을 오려낸 뒤 신발 외피와 내피를 붙이는 박음질을 이어갔다. 최 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이 골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양화 가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른 살에 개업했다. 기술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지금은 혼자 가게를 운영하며 맞춤 수제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갈수록 안경을 껴도 흐릿하게 보이는 등 시력이 나빠지고, 기술을 물려줄 사람도 없어 고민이 많다. 그렇지만 나는 한평생 이 일을 해왔고, 건강이 허락하는 계속할 것"이라며 웃었다. 수제화골목은 1970년대부터 수제화 관련 업체가 하나둘 모여 1990년대에 이르러 지금의 면모를 갖췄다. 올해 기준 45개 달하는 업체가 들어서 있다. 오래된 역사만큼 수제화 장인들은 나이가 많지만, 망치로 가죽 두드리는 소리엔 여전히 힘이 느껴졌다. 이들처럼 일하는 현역인 60세 이상의 지역 인구는 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60세 이상 3분기 고용률은 2014년 33.7%에서 2024년 41.5%로, 10년 새 7.8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취업자 수 역시 15만4천명에서 28만5천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28.4%에서 10년 뒤인 2034년엔 39.6%로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김용현 경북연구원 경북 RISE사업추진단 단장은 "대구의 60세 이상 취업자는 앞으로도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초단시간 근로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며 "현재 우리 사회에 이러한 형태의 근로자들까지 품을 수 있는 고용 안전망이 마련돼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2024-12-03 19:37:55
[정년 그리고 그 후] 5인5색의 고령 노동자들…6070에도 열정은 아직 청춘
일은 생계 수단이자 사회 활동의 장이며, 자아실현의 밑바탕이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정년 이후에도 여러 이유로, 일을 계속하는 대구 시민 5명을 만났다. 정년 이후에도 일에서 보람을 찾는 이들에게서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의 희망을 들었다. 〈strong〉◆50살에 임용고시 도전… 교사 퇴직 후 수어 해설사로 활약〈/strong〉 대구 중구 약전골목에 있는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중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그 시절 대구 피난민들의 삶을 재구성한 문학 체험 전시 공간이다. 71세의 홍순덕 씨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곳을 소개하는 수어 해설사다. 홍 씨는 고령에도 중구청 소속 골목문화해설사로서, 김원일의 마당이 깊은 집과 읍성영상관에서 해설사로 근무 중이다. 20살이 되자 지역 사립 특수학교에 들어간 그는 학교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의 수어를 터득했다. 교사로 일하며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바쁜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남편도 업무로 늦게 귀가하고, 자식들도 서울의 대학에 다니며 따로 살게 되자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왔다. 무료함에 빠져있던 홍 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임용고시 강의를 보고, 50살이란 늦은 나이에 임용고시에 도전하게 됐다. 퇴근 이후 저녁 시간에 학원까지 다니며 2달간 열심히 공부했다. 원서 접수 기간,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대구시교육청은 40세, 경북도교육청은 45세까지로 임용고시 지원 자격이 제한했던 것. 전국 시도교육청을 다 확인한 결과 만 52세까지 지원할 수 있는 강원도에 원서를 넣었다. 이후 짧은 공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정식 임용고시에 최종 합격한 홍 씨는 2003년 3월 1일 자로 강원도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12년 6개월을 강원도에서 보내고 2015년 8월에 퇴직했다. 대구로 돌아와 비닐하우스를 짓고 약초를 키우려 준비 중이었던 그는 우연히 수어 해설사 공고를 접했다. 6개월 교육 기간을 이겨내고 합격한 끝에 2017년 중구청의 골목문화 수어 해설사로 임명받았다. 7년째 해설사로 일하는 홍 씨는 하루 7시간 기준으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홍 씨는 "금액이 중요하진 않다. 지금 이 나이에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일하는 것"이라며 "최근 해설사 활동이 가능한 나이가 75세까지로 제한이 생겼다. 개인적 욕심으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해설사로 일하고 싶기에 아쉽다"라고 말했다. 〈strong〉◆공장장·정보계 형사 출신 택시기사 2人… 제2의 삶 찾았다〈/strong〉 대구 서구 대구택시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설경석(65) 씨와 권천달(68) 씨. 이들은 퇴직 전엔 서로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했지만, 현재는 택시 기사다. 서울에서 태어난 설 씨는 부친이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 판매 업체에서 영업직으로 20년간 근무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며 회사는 문을 닫았다. 1999년 새 자동차 부품 판매 업체를 찾아 대구로 와 영업직으로 8년간 근무했다. 경영난에 또다시 직장을 옮긴 뒤 공장장으로 현장 업무를 총괄했다. 지난 2019년 60세 정년으로 퇴직했다.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해 집에서 마냥 쉴 순 없었다. 주차관리원, 건물 청소, 아파트 경비 등 여러 일 전전했지만, 고강도, 저임금, 구조 조정 등의 이유로 그만두고, 현재 택시 기사 일에 정착했다. 설 씨는 "아내는 현재 몸이 약해 집에서 쉬고 있어 돈을 버는 건 나뿐"이라며 "힘닿는 데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덕 산골 출신의 권 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기보단 나라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꿈을 위해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했고,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처음엔 기동대와 남산1동 파출소 등을 거쳤다. 근무 능력을 인정받아 정보계 형사로 발탁돼 중부서에서만 26년간 근무했다. 퇴근 이후에 비상 호출에 달려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항상 뿌듯했다. 그렇게 33년을 근무하고 퇴직 1년 앞둔 시점인 2018년 2월에 명예퇴직했다. 그다음 달 바로 대구택시협동조합과 계약을 맺고 택시 기사로 근무했다. 이렇게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퇴직 5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한 덕분이었다. 권 씨는 "평생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 은퇴 후 사업에 손댔다가 퇴직금을 다 잃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무조건 안정적인 직업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활발한 성격이라 승객을 상대하는 이 일이 적성에 맞다. 죽는 전날까지도 택시 운전대를 잡고 싶다"고 했다. 〈strong〉◆'호기심 대마왕', 자격증 부자… 사회복지사로 도전 성공〈/strong〉 최근 휴일을 맞아 집에서 쉬는 서혜순(61) 씨를 만났다. 사회복지사인 그는 현재 수성구 범물동의 초심재활주간보호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는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여러 일을 거쳤다. 경남 진주에서 2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서 씨는 부산에 시집간 언니네 집에 살면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제조업에 종사하던 형부가 대구에 영업소를 세웠고, 여기서 서 씨는 20살부터 경리로 일하기 시작, 결혼 전까지 10년 정도 다녔다. 1992년 2월 대구 토박이 남편과 결혼하고 그해 12월 아들을 낳았다. 이후 인구주택총조사 인구조사원, 수성구 드림스타트센터의 취약계층 아동 대상 독서지도사 등으로 근무했다. 또 호프집을 운영하거나 폐쇄회로(CC)TV 관제원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서 씨는 요양보호사, 독서지도사, 조리원, 사회복지사, 직업상담사 등 자격증만 5개다. 이중 사회복지사는 직장 생활 중 만학도로 입학한 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다니며 취득했다. 그러다 2018년 1월 건강이 나빠져 수술을 받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쉬었다. 점차 몸은 건강해졌지만, 일할 곳이 없어 답답해하던 서 씨는 2020년 지역 주간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일은 고단하지만 성실했던 그는 같은 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다시 고용됐다. 이제 사회복지사가 된 그는 어르신 맞춤 사회 훈련 프로그램 기획하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서 씨는 "사회복지사는 나이 제한이 없어 몸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일을 계속하고 싶다. 일을 함으로써 내가 아직 무언가를 배울 능력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다"고 했다. 〈strong〉◆한평생 걸어온 '농업공학' 외길…"사회에 도움이 되고파"〈/strong〉 대구 북구의 미래테크 주식회사 옥상. 스마트팜 사업부 연구소장을 맡은 송재관(67) 씨는 현재 연구 중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소개했다. 살아 있는 눈빛과 밝은 표정의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이곳에서 1년 단위 계약 형태로 일하고 있다. 미래테크는 건축 및 토목용 자재를 생산하는 업체지만, 최근 식물공장 분야로 사업을 넓히고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식물공장은 실내에서 햇빛, 온도, 습도, 물 등을 인공적으로 조절해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1년 내내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시스템이다. 송 씨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팠다. 1982년 경북대 농공학과를 졸업하고,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기계화연구소에서 3년간 일하다 모교 대학원에서 농기계 분야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후 경북의 한 대학교에서 관련 학과 교수로 근무했지만, 정년인 65세가 되기 전 55세에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나왔다. 연구보단 신입생 모집과 취업이 중심이 된 대학 분위기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고, 학령인구 감소로 교수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송 씨는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퇴직 후 지역의 식물공장 관련 중소기업 연구소와 농업법인을 전전하며 유리온실 등 최첨단 시설에서 작물을 효율적으로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연구비 축소 등 회사가 힘들어져 한 곳에 계속 있진 못했지만, 학교에서 교수로 지낼 때보다 연구에 매진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 송재관 씨는 "식물공장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고 아직은 모험이 필요한 분야이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비해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대학 동기도 절반 이상이 여전히 일하는 중이고, 나 또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연구를 계속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2-03 19:37:41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 "식량 안보 지키며, 품질 향상·재배 전환 등 미래 투자도"
남아도는 쌀로 해마다 공공 매입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쌀 재배면적 축소와 다른 작물 전환 등에 나서고 있지만, 쌀값이 떨어지고 고령화 등으로 농민들은 쌀 농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재배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격과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식량 안보의 확보와 함께 미래 농업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재배면적 축소" VS "농업 기반 위협" 우리 쌀은 식량 안보와 재정 부담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과잉 공급 구조를 벗어나고자 정부는 재배 면적을 감축할 계획이지만, 현장의 농민들은 미래 식량 안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58만5천t으로 지난해보다 3.2% 줄었다. 같은 기간 벼 재배면적도 70만8천→69만7천713㏊로 1.5% 축소됐다. 하지만 쌀 가격은 정부 목표인 80㎏ 기준 20만 원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18만2천700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20만1천384원)보다 9.3%이나 떨어졌다. 생산량보다 더 큰 폭으로 수요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는 재배면적을 더 줄일 방침이다. 적정 생산을 유도하고자 내년 벼 재배면적을 8만㏊ 감축하겠다고 밝힌 것. 지난해 대비 올해 줄어든 1만㏊와 비교하면, 8배 큰 감소다. 농민들은 재배면적 감소 이후 콩·밀 등으로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작물 생산 기반 자체가 위협당할 수 있다며 비판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민의 생산 기반인 농업을 파괴하고 식량 자급의 위기를 만드는 벼 재배면적 감축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현장에선 당장 작물 전환이 어렵다는 분위기다. 경북 의성군의 황보경(70) 미소진품 회장은 "현장에선 쌀 농사가 한계에 부딪혔다. 농민들은 농사일을 자체를 그만두려 한다"며 "장비와 설비를 새롭게 갖춰야 해 다른 작물 전환이 쉽지 않다. 재배법도 다시 배워야 한다. 식량 안보와 농업 기반 유지 등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고령화 등으로 농민이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년) 전국의 농가 인구는 275만1천 명에서 208만8천 명으로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북은 44만6천 명에서 33만 명으로 26% 줄었다. 박병진 의성군 진쌀단지 연합회 회장은 "2만 평 농사를 지으려면 기계 설비 등 자금만 5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여기서 보통 평균 쌀 40t 정도를 생산하는데 매출이 1억 원 정도이다. 비룟값과 유류비 등 비용을 빼면 순이익은 3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농가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농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양곡법 개정 갈등…"품종 개발‧작물 전환 등 근본 대책" 매년 쌀 과잉생산으로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선 '양곡관리법(이하 양곡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첫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폐지된 바 있지만 야당에선 당론으로 계속 추진해나갈 방침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양곡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가격이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 매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쌀값 안정은 위태로운 국제 정세 속 식량 안보의 기본이다. 지난달 산지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폭락을 기록한 2022년 평균 가격보다 더 낮다. 늦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쌀 매입·보관 등 비축 비용으로 더 많은 예산이 들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 통과 시 쌀 매입·보관비로 2030년 연간 3조986억원이 들 것을 추산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의무 매입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43만t의 쌀이 초과 생산돼 오히려 쌀값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의무 매입으로 쌀 품질 경쟁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예산이 쌀에 집중된 탓에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다른 작물(밀, 콩) 재배 확대 정책 등과도 상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민들도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의견이 나뉜다. 식량 안보를 위해 농업 생산 기반은 지켜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의무 매입만으로 현재의 위기를 넘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근본적인 농업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식량과 사료를 포함한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쌀 생산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되, 경쟁력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다른 곡물 자원의 재배를 확대하는 등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쌀의 미래는 "경쟁력 강화‧곡물 다변화" 정부와 전문가, 농민들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 우리 쌀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과잉 생산 구조는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정부의 의무 매입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는 품질 개선, 곡물 자원 편향 극복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가격이 치솟아 '쌀 파동'을 겪은 일본이 반면교사다. 일본의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이 지난 9월 제시한 2024년산 쌀의 산지 금액은 1등품 기준 60㎏(현미)에 1만6천~1만7천엔(14만~15만 원) 선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40% 오른 가격이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밀가루 가격이 급등하면서 쌀 소비가 늘어난 가운데 폭염으로 쌀 생육이 저하되고 쌀 생산 농가가 줄면서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재배면적 축소에 불안한 국제 정세, 기후변화 등이 더해진 것이다. 이에 국내 농민단체는 "우리나라도 일정 수준의 쌀 자급률 유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품종 개발과 재배법 보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쌀 재배면적을 급격하게 줄이는 대신 콩과 밀 등 다른 곡물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산해 미래 농업에 투자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경상북도는경북농업기술원과 함께 2007년부터 지역 풍토에 맞는 쌀 품종 개발‧보급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기존 품종보다 수확기가 빠르고 재배 안정성 높은 '다솜쌀' 품종을 자체 개발했다. 현재 포항에 특화 단지를 조성해 이를 보급 중이다. 송영운 경북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연구원은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또 식량 안보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면적은 유지해야 한다"며 "이제는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춘 다수확 품종보다 지역 땅과 기후변화에 대응한 질 좋은 품종 재배가 필요하다.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밥맛이 좋은 신품종 개발에 노력 중"이라고 했다. 다른 작물로의 재배 전환을 위한 제도도 요구하고 있다. 허일용 한국쌀전업농 경북연합회장은 "쌀뿐만 아닌 감자 등 다른 작물들도 정부 수매 품목에 포함하는 방안을 경북도와 논의하고 있다. 안정적 판로를 확보해야 농민들도 다른 작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쌀에만 국한된 비축‧관리 예산을 다른 작물 재배와 미래 농업인 지원 등에 투자한다면 전반적인 곡물 자급률이 높아지고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획탐사팀
2024-12-03 11:42:10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공공 매입 아래 해마다 초과 생산…농업 경쟁력 제자리
쌀은 식량 주권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다. 농민과 우리 쌀 보호를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쌀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반면 양곡 정책과 시장구조, 품질은 제자리걸음이다. 갈수록 쌀 소비량은 떨어지는데 기계화된 생산 구조는 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로 인해 쌀 품질 경쟁력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초과 생산 쌀을 정부가 매입하면서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고령화 문제까지 겹치면서 쌀 재배 기반이 허물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남아도는 쌀…수요감소와 초과 생산 22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서구 한 대형마트 입구. 채소‧과일과 떨어진 한 쪽에 쌀 판매대가 있었다. 한창 햅쌀이 나올 시기인데도 쌀을 사려는 손님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판매 직원이 손님에게 햅쌀을 권했지만 석 달 전 사둔 10㎏ 쌀도 아직 다 먹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 직원은 "대부분 5, 10㎏ 쌀이지 대용량은 잘 팔리지 않는다. 2인 가구가 5㎏ 쌀을 한 달 넘게 먹는다. 자취하는 사람들은 밥솥 없이 즉석밥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대구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쌀 판매율은 큰 변동이 없었고, 올해는 4% 정도 감소했다. 식료품 50여 종 중 매출 규모로 쌀은 22위 정도로 비중이 적다. 우유나 돼지고기, 스낵 등 가공식품들이 상위권"이라고 설명했다. 대구 수성구의 김선우(가명‧47) 씨의 세 가족은 요즘 쌀 20kg 한 포대를 소화하는 데 50~60일이 걸린다. 이는 5년 전 대략 40일 만에 먹던 것보다 느려진 것이다. 김 씨는 "최근 들어 배달 앱을 통해 면 요리와 육류 등 쌀 이외에 다양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며 "아침을 빵이나 선식 등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저녁도 외식이나 간편한 음식을 선호하게 됐다. 밥 이외에도 배를 채울 음식이 너무 다양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쌀 소비량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56.4㎏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쌀 소비량이 가장 많았던 1970년 136.4㎏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1998년(99.2㎏) 100㎏ 아래로 떨어진 이후 줄곧 감소세를 이어왔다. 이는 식문화의 서구화, 외식·가공식품과 육류 소비의 증가 등의 요인에서 비롯된다. 세 끼를 먹던 식습관에서 아침을 거르거나 저녁을 간편식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달라진 가운데 쌀보다 면류나 빵, 육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3대(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육류 소비량 추정치는 60.6㎏으로, 같은 해 쌀 소비량(56.4㎏)을 웃돈다. 반면 생산량은 여전히 수요보다 넘쳐난다. 10년 단위로 보면, 특히 1990~2000년 사이 쌀 생산량이 5.7% 줄어든 가운데 소비량은 21.7%나 감소했다. 이후에도 2000~2010년과 2010~2020년 사이 쌀 소비량 감소율은 20~22%로 생산량 감소 폭(18%)보다 가팔랐다. 최근 농업은 90% 이상이 기계화돼 매년 일정량 이상의 생산이 유지하지만 쌀 소비는 감소하고 있어 남아도는 쌀을 사들이는 데 재정부담은 늘고 있다. 이에 정부는 1인당 쌀 소비량을 60㎏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재배면적 축소와 가공식품 활성, 다른 작물 재배유도 등 생산량을 조절해나갈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줄었다. 쌀 가공식품 개발과 전통주 쌀 제조 조세감면 등을 통한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공공 매입 제도의 명암 국가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생산 초과분 쌀을 매입한다. 국내 쌀 시장 안정과 농가 소득 보전, 식량 안보를 위해서다. 정부의 공공 매입에는 자연재해와 전시 등 비상 상황, 식량 위기 등에 대비한 '공공비축미곡'과 쌀값 안정을 위해 그해 초과 생산분을 사들여 일정 기간 시장에 내놓지 않는 '시장격리곡' 등이 있다. 이 같은 쌀 공공 매입에 들이는 예산은 매년 늘어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예상 초과 생산량은 12만8천t보다 더 많은 20만t을 시장격리곡으로 사들였다. 또한 공공비축미곡 중간정산금(포대/40㎏당)도 기존 3만원에서 4만원으로 올렸다. 이와 함께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 유통업체에 벼 매입자금을 지난해보다 1천억원을 늘려 3조5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에도 지난달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지 쌀값이 80㎏에 18만2천9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산물벼(논에서 바로 수확한 상태의 벼) 8만t을 전량 인수하는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이를 통해 RPC가 민간 보유 벼를 추가로 매입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재정부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공공 매입 등 양곡 관리 적자분을 메우는 일반회계 전입금은 1조7천7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1조1천802억원보다 50%가량 늘어난 수치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공공 매입 비용은 2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도 쌀 생산량이 또다시 수요량을 초과하면 가격 안정을 위한 매입 비용까지 추가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쌀 농가의 소득 안정성이 보장되고 자급률을 유지하는 식량 안보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수급 조절 기능 약화로 초과 생산량의 발생과 재정 소요액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정부의 초과 생산분 의무매입이 이어지면 벼 재배면적 감소 폭이 둔화하면서 수요를 웃도는 과잉생산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시장격리곡 매입을 의무화하면 연평균 초과 생산량이 2024년 38만3천t에서 2030년 64만t으로 67.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의무매입 예산은 61.2%가 늘어난 것으로 전망했다. 정작 원산지 쌀값(80㎏)은 현재보다 낮은 17~18만 원 수준으로 예상돼, 쌀값 하락을 막는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의무매입은 공급과잉을 심화하고 쌀값 하락을 막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재정부담을 키우고, 쌀 이외의 농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다른 곡물로의 재배 전환을 제약하는 문제가 있다"라는 입장이다. 기획탐사팀
2024-11-25 18:23:00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한 해 쌀 비축 비용만 2조 원…재정 부담 완화‧식량 주권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한국 쌀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소비가 갈수록 줄면서 해마다 과잉 생산이 발생하고, 이에 공공 비축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식량 주권 차원에서 쌀 자급률 유지하려면 의무매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합리적인 재정 지출과 농민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해법 마련이 요구되는 것. 우리나라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 생산이 수요를 넘어서면 초과 물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한다. 이로 인해 지난해 쌀 공공 비축 비용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올해도 2조 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 비축 비용(일반회계 전입금)은 1조7천700억 원으로 공공 비축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최대치다. 일반회계 전입금은 정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 식량 안보를 위해 쌀을 매입하는 데 사용하는 '양곡 관리 특별회계'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금액이다. 이처럼 매매 손실을 포함한 공공 비축 비용은 최근에 크게 늘었다. 2015년 일반회계 전입금이 5천968억7천만 원에서 2018년 1조2천962억7천만 원으로 처음 1조 원대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조7천7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예산안 기준)는 2조2천837억9천만 원으로 2조 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쌀 소비가 감소하면서 재정 지출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빚어지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쌀 생산량은 2020년 351만t에서 지난해 370만t으로 5.4%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57.7㎏에서 56.4㎏으로 2.3% 줄었다. 초과 생산으로 쌀값이 떨어지면서 농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산지 쌀값(매월 5일 기준)은 지난달 20㎏에 4만7천39원에서 이달 4만5천675원으로 3% 하락했다. 이달(15일) 기준 80㎏ 쌀값은 18만2천872원으로, 정부 목표인 20만 원에도 못 미쳤다. 여기에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의무매입이 이뤄진다면 재정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법 개정으로 2026년부터 초과 생산 규모가 48만t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했다. 2030년에는 남는 쌀이 64만1천t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매년 조 단위의 예산을 쌀 정책에 쏟아붓지만,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정 부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에 합리적인 재정 지출과 농민 보호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쌀 생산량도 정점에 와 있고 소비는 인구가 줄면서 더 감소할 것"이라며 "배 재배면적을 줄이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쌀 생산기반을 헤칠 수 있다. 다른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등 미래 농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국내 곡물 생산 구조의 전환할 때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1-25 18:19:00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양보다 질로, 기후변화 대응 새 품종 시급
지난 8일 오후 2시쯤 경북 의성군 비안면사무소 인근 창고 앞. 800㎏ 크기의 포대 10여 개가 나락으로 가득 채워진 채 도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병진(74) 의성군 진쌀단지 연합회 회장은 올해 생산량이 예년에 훨씬 못 미친다며 기후변화를 몸소 체험 중이라고 했다. 박 화장은 "4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올해만큼 생산량이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재난 수준의 더운 날이 길게 이어지고 비가 적게 와 벼멸구 같은 해충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상태로라면 내년도 수확량이 예년 수준을 회복할지도 미지수다. 쌀 재배의 최대 위기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3.2%가 감소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10% 이상 감소했다고 체감하고 있다. 이에 과잉생산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쌀 생산의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쌀 재배면적 감소에 초점을 맞추며, 품질 경쟁력은 뒷전에 밀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초과 생산 매입으로 인해 농가는 질보다는 양에 초점이 맞추는 분위기다. 경북은 지난 30년간 '일품' 품종을 주로 재배해왔다. 일품은 즉석밥을 만드는 식품 대기업에 납품할 정도로 생산력이 인증된 품종이다. 다만 품질은 최근 개발된 품종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와 소비자 취향에 따라 양보다는 고품질의 쌀이 선호되면서 품종 다변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 일품을 재배해온 농민들에겐 새 품종 교체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장낙원 의성군 영호진미 회장은 "과거 기후에는 일품이 맞았지만, 지금은 점점 기온이 올라가면서 병이 많아지는 등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우리 지역 기후에 맞고 바뀐 날씨에 강한 질 좋은 품종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1-25 17:27:00
팔공산 자락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이 중 대구 동구 내동의 마을은 교통 오지다. 큰길의 버스 정류장까지 30분 넘게 걸어야 한다. 이곳의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는 몇 달 전 아찔한 순간을 넘겼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어지럼증이 발생했다. 급하게 아들에게 전화해 119구급대를 불렀다. 40분이 넘어서야 구급대가 와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할머니는 지금도 손발이 떨리거나 감각이 없는 등 거동이 편치 않다. 70년 넘게 살아온 마을을 떠날 수도 없다. 이웃도 대부분 고령이어서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또다시 위급한 상황이 생길까 걱정이 크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병원에 제때 갈 수 있을지 염려된다. 동구 매여동의 산골짜기 종점 마을 주민들도 교통 불편을 호소한다. 이 마을의 92세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힘겹게 외출한다. 75분 간격의 버스가 있지만 불편한 다리 탓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1인용 사륜 전동 스쿠터를 타고 왕복 2~3시간을 이동한다. 빠른 차들이 오가는 도로로 다닌다. 위험하지만 혼자 있는 집보다는 공원 산책이 낫기에, 궂은 날씨에도 긴 이동 시간을 마다하지 않는다. 광역시인 대구 곳곳에 교통 오지가 있다. 지난해 편입된 군위군을 제외하고도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지역이 적지 않다. 특히 동구를 비롯한 동북권과 달성군의 서남권에 대중교통 사각지대가 몰려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지난해 대중교통 현황조사에 따르면 '대중교통 서비스 부족 지역'으로 동구는 내동과 용수동, 평광동, 매여동 등 산촌 지역이 대부분이다. 달성군은 전역에 교통이 불편한 농촌 마을들이 있다. 이 외에도 북구와 수성구, 달서구 등지에도 교통 취약지가 있다. 그나마 달성군에는 대체교통수단이 있다. 2018년 농촌형 수요응답형 대중교통(DRT)인 '행복택시'를 도입했다. 올해는 7개 읍‧면 46개 마을에 행복택시를 운행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선버스가 부족하거나 없는 마을들이 있다. 현재 행복택시로는 이동권 보장에 한계가 있다. 달성군 이외 지역은 지난해부터 도시형 DRT가 운행을 시작했다. 대구혁신도시 의료R&D지구와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수성알파시티 등 주로 출퇴근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달 개통한 팔공산 DRT는 관광객을 위해 주말과 공휴일만 운행한다. 소외 지역 주민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의 발'인 시내버스가 또다시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 2015년 이후 10년 만에 노선 개편을 추진 중이다. 준공영제 재정지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군위군 편입과 부도심 확대 등 도시 구조가 달라졌다. 확장하는 도시의 교통수요를 감당해야 한다. 버스 대수는 그대로인 채로 말이다. 이번 노선 개편안에서 벽오지에 대한 대책은 찾기 힘들다. 중복 노선을 줄이거나 없애는 한편 신규 노선은 직‧급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선버스 사각지대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교통 오지에도 사람들이 산다. 대부분 몸이 불편한 고령자로, 대중교통 서비스에서 거의 방치돼 있다. 의료 접근성이 취약하고, 생필품을 구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나아가 교통 불편은 소통 단절로 이어져 정서적인 고립감을 낳는다. 그야말로 '발'이 없는 서민들이다. 아쉽게도 이번 노선 개편에서 이들의 소외가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비용과 효율이 아닌 교통 복지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 최소한 아프면 병원을 찾고, 먹을거리를 구하러 시장에 갈 수 있도록.
2024-11-21 18:28:30
[대구 교통오지] 소외되는 지역 없도록…촘촘한 교통 인프라 구축 방법은?
교통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교통 인프라 구축은 고령층의 이동권 보장부터 고독사 방지와 의료 접근성 증진, 나아가 지역 균형 발전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달성군에서 운영하는 행복택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전문가들의 제안과 다른 지역 사례를 살펴봤다. ◆달성 행복택시, 교통오지와 도심 잇는 다리 될까? 지난달 28일 오전 9시쯤 대구 달성군 현풍읍 개인택시조합 달성군지소. 기사 7명이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이곳은 2018년 달성 행복택시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논공읍, 구지면, 현풍읍 지역을 담당한다. 처음 5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25명의 기사가 행복택시를 운행한다. 20분쯤 지나 김삼훈 달성지소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유가읍 초곡리에서 현풍 농협까지 운행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취재진은 조수석에 동행해 초곡리로 함께 향했다. 10여 분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보통 마을회관이나 마을 입구에서 승하차하지만, 간혹 집 앞까지 운행하기도 한다. 기사가 직접 짐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서비스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이날 행복택시를 탄 문양희(67) 씨는 "은행을 들렀다가 오는 길에 장도 볼 계획이다. 한 달에 10번 정도는 이용한다. 행복택시 없으면 버스도 못 타고 마을 밖을 나가지도 못한다. 내 시간에 맞춰 다닐 수 있고 무거운 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미터기에 6천500원이 찍혔다. 1천700원은 현금으로 받고 정해진 쿠폰에 이용자 서명을 받았다. 이를 모아서 월말에 달성군이 차액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달성군에 따르면 지난해는 5만8천751회 운행에 7만4천583명이 이용해 최고치를 찍었으며, 올해도 9월 기준 4만6천978회에 5만9천764명이 이용 중이다. 이용객은 시장과 병원, 읍사무소 등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오산1리의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매일 등‧하교를 위해 이용하기도 한다. 김 지소장은 "매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척보다 더 가까워졌다. 홀로 있는 주민들의 고독을 덜고, 학생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행복택시가 더 확대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처럼 이용객들의 만족도가 크지만, 운전기사에 대한 지원과 행복택시 대상지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 마련은 과제다. 인근에 버스정류장이 있다는 이유로 행복택시 대상에서 제외된 외딴 마을 주민들이 교통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사 확보도 숙제다. 2020년엔 33명 모집에 48명이 지원했다. 이후 점차 줄어들다 올해는 41명 모집에 37명이 지원, 결국 미달이 됐다. 김 지소장은 "교통사고와 법규 위반 내용, 달성군 지역 거주 이력 등을 고려해 행복택시 기사를 선정한다. 처음에는 경쟁이 심했지만, 최근에는 관심도가 조금 떨어지고 있다. 수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빈면에 대상지를 확대할 때도 기사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택시 대기 장소와 사무실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DRT 이용 목적…도시는 '출퇴근', 농촌은 '병원 진료' 달성군을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들은 교통 소외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대중교통의 노선을 미리 정하지 않고 수요에 따라 운행 구간과 정류장 등을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대중교통 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시군 161곳 가운데 50.3%(81곳)가 DRT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택시형'이 51.9%(42곳)로 가장 많고, 이어 택시+버스 혼합형 등을 포함한 '기타'가 29.6%(24곳), '버스형'이 18.5%(15곳) 순이었다. 보고서엔 지난 2~3월 이용자 1천93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DRT 이용자 만족도 조사 결과도 담겼다. 도시보다 농촌 지역 DRT 이용자들이 갖는 특성이 잘 나타났다. 이용 계기의 경우 도시형은 '원하는 곳에서 승하차 가능'을 가장 높은 순위로 선택했고, 농촌형은 '기존 이용 교통수단의 이용 불편'을 1순위로 꼽았다. 이용 목적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도시형은 '출퇴근'을 위해 이용한다고 밝힌 비율이 45.4%로 가장 높았고, 이어 '여가'(15.2%), '등하교'(10.1%) 순이었다. 반면, 농촌형에선 '병원 진료'(37.8%)가 1위를 차지했으며, '출퇴근'은 16.9%였다. 이어 '시장 보기'가 15.7%로 3위를 기록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도시형 응답자의 대부분이 20~50대 직장인이고, 농촌형은 이용자 대다수가 60대 이상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DRT 이용이 이동 시간을 단축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형 이용자의 평균 이동 소요 시간은 DRT 이용 전 32.3분에서 이용 후 18.9분으로 감소했다. 농촌형에서도 이용 전후로 평균 이동 소요 시간이 34.7분에서 21.6분으로 줄었다. ◆교통 소외 지역 누비는 DRT, 대구도 필요 대구시도 달성군(농촌형) 이외 지역에서 DRT를 운영하지만, 출퇴근과 관광 편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구혁신도시 내 의료R&D지구에 처음으로 도시형 DRT(4대)가 도입됐다. 이어 올해 8월부터는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5대)와 수성알파시티(2대)에 추가로 운행되고 있다. 직장인 출퇴근 편의 증진이 목적이라 평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엔 팔공산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한 관광형 DRT 차량(16인승 이하) 7대가 새로 도입됐다. 주말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만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교통 사각지대 해소 방안으로 교통복지 차원의 DTR 도입을 강조한다. 교통 소외지역 가운데 부지가 협소해 버스 진입과 회차가 어려운 곳이 많은 걸 고려해 기존 버스 노선을 확대하기보다 택시나 승합차 등 소형 차량 형태로 DRT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황정훈 미래도시교통연구원장은 "대중교통 관련 공공정책은 일정 수요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펼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정기적인 서비스에 한계가 있다면 행복택시, DRT 등 비정기적인 서비스 정책들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므로 교통 부서와 복지 부서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구‧군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떨어지는 마을을 지정하고, 정확한 교통 수요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주로 이용하는 시장과 병원 등을 고려해 지역(마을) 맞춤형으로 운행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구 내 교통 사각지대에 놓인 마을에 소형 차량 형태의 새로운 DRT 서비스가 도입해야 할 것"이라며 "기존 버스 노선으로 교통 수요가 충족되는 지역, 기존 나드리콜(교통약자 이동 서비스) 이용자 등과 중복되지 않게 대상 지역과 주민에 대한 세심한 기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 기획탐사팀
2024-11-19 20:54:49
[대구 교통오지] '기다리는 버스'에서 '찾아가는 버스'로… 세종시 '두루타'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 선진 사례로는 세종시의 '두루타'를 꼽을 수 있다. 읍면 지역 주민들의 교통복지 차원에서 도입된 DRT 버스다. 두루타는 주민들이 앱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는 실시간 호출 방식이다. 일부 지역에선 고정된 노선과 정류장에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운행하는 '노선형' 방식도 이뤄지고 있다. 세종시는 지난 2019년 12월 장군면에 두루타를 처음 도입했다. 올해 기준 9개 읍면 지역에 모두 33대의 중소형 버스가 운영 중이다. 연기면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읍면 지역에 도입된 것이다. 세종도시교통공사(세종교통공사)가 6개 지역을, 세종시 공모를 통해 선정된 민간 업체가 3개 지역을 각각 담당한다. 세종교통공사는 ERP(이용 건수, 이동 경로, 운전기사 등 운행 정보와 통계를 자동 조절하는 전산 시스템)를 포함한 DRT 시스템을 전국 최초로 개발해 지난 5월부터 운영 방식을 개선했다. 전화로 1시간 전에 예약하는 방식에서 이용자들이 앱에 출발지와 목적지, 인원 등을 입력하면 즉시 배차 가능 여부와 소요 시간 등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김선호 세종교통공사 교통운영2팀장은 "읍면 지역 버스정류장을 두루타 탑승 장소에 포함하는 등 이용 장소를 확대했다. 요청이 들어오는 즉시 빠르게 도착하도록 지역 곳곳에 차량 대기 장소를 분산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앱 사용이 어려운 노인들이 많은 것을 고려해 교육에도 힘썼다. 지난 7~10월 읍면 지역 마을회관을 방문해 DRT 앱 설치와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덕분에 6개 지역 두루타 이용객은 지난해 6~9월 1만5천163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2만3천239명으로 1.5배 가까이 늘었다. 두루타 모바일 앱 사용률 또한 올해 5월 1.5%에서 9월 20.9%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도순구 세종교통공사 사장은 "현재 DRT가 도입되지 않은 연기면에 대해서도 그간 연기면의 교통카드 데이터를 분석해 이곳에 적합한 운영 방식과 차량 대수 등을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1-19 20:54:35
농촌의 교통 사각지대…'외딴 섬'으로 남은 곳들[대구 교통오지](중)
대구 서남권의 달성군은 신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국가산업단지와 대규모 주거단지 등이 조성됐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마을들이 곳곳에 분포해있다. 이곳들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를 겪는 가운데 대중교통 서비스도 열악하다. 도심 속 외딴 섬처럼 고립돼 있다. 의료 접근성과 식료품 확보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오지 마을들을 찾아 주민들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장 보기가 '큰 모험', 교통사고 위험까지 "장을 보려면 전동휠체어를 타고 30분이니 걸려. 차가 씽씽 다니는 도로도 대여섯 번이나 건너야 해 요즘은 엄두도 못내." 지난달 22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2리에서 만난 박모(84) 씨와 김모(77) 씨, 두 어르신은 시내버스 이용이 불편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마을 주민에게 외출은 큰 모험과 같다. 김 씨는 "나는 전동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지만 나이가 더 많은 노인은 버스 타러 나가지도 못한다"며 "그저께도 전동휠체어로 시장에 다녀오다가 큰 도로의 건널목에서 차와 아찔하게 마주쳤다. 너무 놀라 한동안 서 있었다"고 말했다. 쌍계2리는 테크노폴리스로 끝자락에 인접한 마을이다. 주민들이 도심으로 나가기 위해선 버스 한번 타기 어려운 달성군의 대표적인 교통오지 중 한 곳이다. 지난 2019년 농촌형 수요응답형택시 사업인 '달성 행복택시'가 도입됐지만 2021년 마을 입구 길 건너 급행 8번(-1)이 지나는 정류장이 생기면서 행복택시 대상지에서 제외됐다. 행복택시 대상지는 달성군 조례에 따라 시내버스가 운행되지 않거나 인접 시내버스 정류장과의 거리가 500m 이상인 교통취약지역 마을이다. 급행 8(-1)번이 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지만, 주민들에게 불편하다. 마을회관에서도 10분 넘게 걸어야 해서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조 이동 수단을 쓸 경우는 더 힘들다. 장을 보고 짐까지 있으면 더더욱 버스 이용은 무리다. 일반 택시를 부를 순 있지만 현풍시장 기준으로 왕복에 1만2천 원가량이 든다. 교통비치고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박 씨는 "현풍시장에 가려면 마을 앞 정류장(급행8번)이 아니라 700~800m 떨어진 다른 정류장(655번)을 이용해야 한다. 정류장까지 20분 이상 걸어야 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달성군 구지면의 오설리‧징리도 대표적인 교통오지다.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설리의 경우 달성4번이 다녔지만 2017년 4월부터는 운행이 중지됐다. 대신 달성3번이 있지만 현풍 오일장이 열릴 때만 한시적으로 다닌다. 이곳 버스 정류장과 마을회관까지는 도보로 20분이 넘는다. 길도 차 두 대가 간신히 교행할 만큼 좁고, 경사도 심하고, 가로등도 없어 야간에 걷기 위험하다. 오설리 주민 백상국(68) 씨는 "어르신들이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정류장까지 걷기 힘들고, 가로등이 없어 밤에는 위험하다"며 "그나마 여기는 행복택시라도 들어오니 다행이다"고 말했다. ◆버스 놓치면 '4시간 대기', 옆 마을 가기도 힘들어 이달 6일 정오쯤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앞에는 현장 체험학습을 온 학생 20여 명이 이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자가용차를 이용했다. 학생들은 단체로 관광버스에 올랐다. 2시간여 동안 시내버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1리는 달성3번이 현풍 오일장에만 운행한다. 버스가 없어 옆 마을인 도동2리까지는 걸어야 한다. 잡풀이 무성한 길을 30분 정도 이동하면 도동2리 마을 비석이 나온다. 차나 오토바이 등 개인 교통수단이 없으면 마을끼리 왕래가 어렵다. 성용수 도동2리 이장은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도동서원을 보러오는 외지인들도 버스가 없으니 불편해한다. 무엇보다 방문객 접근이 쉽지 않은 탓에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 크다"고 했다. 도동1‧2리는 그나마 행복택시가 들어온다. 반면 행복택시 대상지가 아닌 마을 주민의 교통 불편은 더 크다. 이달 4일 찾은 유가읍 본말2리는 달성군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있다. 경남 창녕군과 맞닿은 골짜기 마을이다. 마을 중턱에는 달성6번 종점이 있다. 매일 6회 운행하는 이 버스는 현풍 읍내까지 1시간 30분~2시간이 걸린다. 승용차 소요 시간(25분)보다 3~5배가 더 걸리는 셈이다. 본말2리 임모(85) 씨는 "시내버스는 출발 간격이 2시간이어서 한번 놓치면 외출을 포기해야 한다. 버스는 동네마다 다 들르기 때문에 장을 한번 보려면 온종일 걸린다. 읍내에 나갈 땐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배를 쫄쫄 굶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육신사와 사육신 기념관이 있는 하빈면 묘1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곳 주민들은 병원 진료 등을 위해 마을 나서는 것이 어렵다. 성서2번이 있지만, 배차간격이 짧게 1시간에서 길게 4시간까지로 길다. 묘1리 이모(79) 씨는 "버스가 제때 도착하지 못할 때는 날이 덥든 춥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오후에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까지 4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면 1만원이 넘는다. 최근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버스를 놓칠까 싶어 중간에 치료 끝내고 급하게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달성군 버스, "서문시장은커녕 관문시장도 한 번에 못 갈 것" 내년 2월로 예정된 대구시 시내버스 노선 개편을 앞두고 달성군의 대중교통 취약지 주민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시는 지난달 25일부터 달서구와 달성군을 시작으로 시내버스 노선 개편 설명회를 진행했다. 10년 만의 노선 개편을 앞두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앞서 대구시 조사에 따르면 옥포‧유가읍, 구지면 등 달성군의 교통취약지역 민원은 노선 신설‧변경, 배차간격 단축 순으로 요구가 높았다. 이번 개편안(달성군 관련)을 보면 국가산단과 동대구역을 잇는 직행2번 신설이 있지만, 테크노폴리스와 설화명곡역을 잇는 급행4번은 폐지될 예정이다. 아울러 급행2번과 240번, 304번, 449번 등 가창면 일부 구간의 축소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특히 달성 2번의 경우 기존 대곡역~관문시장 구간이 폐지되고, 성서2번도 하빈면‧다사읍에서 서문시장으로 갈 수 있는 구간이 없어지는 안이 제시됐다. 이에 대해 주민설명회에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특히 교통 복지가 아닌 수요에만 집중한 노선 감축에 대한 불만들이 이어졌다. 논공읍 노이리에서 대표로 참석한 한 주민은 "농촌지역은 대부분 노인이 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다. 고령자들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교통 이용할 수밖에 없다. 버스 이용 수요만 보기보다는 교통복지 차원에서 약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성군의회에서도 농촌지역 교통복지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도원 달성군의원은 "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교통약자들이다. 600번의 경우 서문시장까지 갔다가 관문시장까지로 축소되더니 이젠 진천역에서 노선이 짤렸다"며 "교통약자들은 환승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은영 달성군의회 의장은 "달성군 주민들이 이용하는 노선이 축소되는 경향이 많다. 일부 신설 구간이 있지만 서부정류장 둥 도심과 이어지는 노선은 유지해야 한다. 수요만 보면 달성군은 버스 노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버스준공영제의 의미와 지역민 불편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2024-11-19 07: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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