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구분 기준에서 경험의 단절(斷絕)은 상당히 중요하다. 물론 절단면이 깔끔한 구분이라기보다 역사적 변곡점에 따라 뭉뚱그려진 묶음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64년까지 인구 폭발 시기의 베이비부머, 1965~1979년생으로 대입시험이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고, 외환위기로 취업대란을 겪은 X세대, 1980~1994년에 태어나 디지털 기기를 본격 수용하고 새천년을 연 M세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Z세대부터는 구분이 더 모호하고 출생 기간의 간극(間隙)도 크다. 20대 전문 연구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18년 11월 발간한 보고서 '트렌드 MZ 2019'에서 MZ세대를 처음 사용했는데, 1980~2004년생으로 정의했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4년생이 된다. 그런데 Z세대를 처음 소개한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Z세대를 1997~2012년생으로 구분한다. 미국 주요 매체들도 마찬가지다. M세대와 Z세대를 명확히 구분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MZ로 묶어 부르기를 좋아한다. 연령 구분으론 20~40대가 해당하는데, 쓰임새는 매우 젊은 세대를 특징짓는다. MZ세대 카테고리가 사실상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2010년 이후 출생인 알파(α)세대까지 등장했고, Z세대와 합쳐 '잘파세대'라고 부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신세대다. 특징짓기 편리하도록 초중고생부터 잘파라고 가정해 보자. 이들은 모바일 세대다.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바일과 일체형이다. 세계를 무대로 동호인들과 관심사를 연결하고, 게임 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들을 적극 소비하며 직접 생산도 한다. 이른바 숏폼 형태의 영상을 올리며 타인의 흥미에 적극 공감한다. 명품에 솔깃하기보다 개성 발현에 주목한다. 얽매이기보다 상황을 공유하며 느슨하게 함께하는 대인관계를 즐긴다. 온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인기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경험 따위는 없다. 고도성장 시대의 단물을 맛보지도 못했는데 기성세대 부양의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기성세대는 이들의 미래를 조언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과거 답습(踏襲)의 속도보다 미래 변혁의 속도가 훨씬 빨라서다.
2024-11-19 19:49:44
"내년 여름에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갈 거야. 일정 짜서 알려줘."[이용자] / "휴가 일정에 맞춰 일주일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브리핑을 시작할까요?"[인공지능(AI) 비서]. 여행사에 전화를 걸거나 항공·호텔·식당·렌터카 앱을 켜 예약하며, 더 싼 가격을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이 사라진다. 검색어 입력 대신에 인간 비서와 대화하듯이 지시를 내리고, 검색과 동시에 가격 비교와 예약까지 가능한 서비스가 등장한다. 10년 전만 해도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며 일축(一蹴)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자비스' 정도의 인공지능 서비스는 아직 없지만 조만간 비슷한 수준까지 구현될 수 있다.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최신 뉴스를 섭렵(涉獵)하고 있으며, 냉철하고 예리한 판단까지 가능한 비서의 등장이다. 이동통신사들은 미래 먹거리로 인공지능 비서(AI 에이전트)에 주목하고 있다. SK텔레콤은 한국어 기반의 AI 개인 비서 서비스 '에이닷'을 지난해 9월 출시했고, 1년 만에 가입자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음악, 증권, 영화 예매 등 영역별 전문 비서 서비스도 제공하며, 이용자 개인의 일상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 7일 자체 개발한 비서 '익시오'를 출시했다. 통화 녹음과 요약이 서버를 거치지 않고 가능해 보안에 강점이 있고, 통화 내용을 글자로 바꾸며 보이스피싱 감지 기능도 갖췄다. 통신사들이 비서 서비스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까닭은 새 구독 모델이어서다. 당장은 별도의 요금을 받지 않지만 일정 수준의 충성 고객이 확보되면 유료화는 수순(手順)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지난달 22일 생성형 AI 서비스 '카나나'를 공개했다. 비서가 아니라 AI 친구 서비스로 보면 된다. 네이버는 통합 검색 기능에 AI와 개인화 추천 기술을 결합한 'AI 브리핑'을 내년 상반기 중 선보일 계획이다. PC는 물론 스마트폰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생성형 AI 탑재 스마트폰 점유율이 2028년엔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을 넘어선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 문득 걱정이다. 온갖 복잡한 일들을 AI가 처리하면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구독료에 따라 AI 비서의 역량이 천차만별(千差萬別)로 커지면 양극화가 심화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도 AI 비서가 해줄 수 있을까.
2024-11-12 19:02:19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에 돈의 흐름이 보다 원활해지고 내수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금리 인하 효과는 시장에 미리 반영된 탓에 경제활동 상승 작용을 못 했고, 오히려 3분기 성장률은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부동산과 가계대출 정책 때문이다. 애초 정부는 올 들어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저금리 정책대출을 확대했다. 여기에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한동안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보태져 앞다퉈 집을 사려는 이들이 몰렸고, 특히 수도권과 서울 대출이 폭증했다. 주택담보대출에 가산금리를 붙이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 시점을 7월에서 9월로 늦춘 새 대출 총액은 역대급으로 불어났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대출 억제(抑制)에 사활을 걸었고, 대출금리는 높아졌다. 기준금리가 떨어졌지만 은행들은 줄줄이 예금금리만 낮췄고,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에 대출금리를 꾸준히 올리면서 예대(預貸)마진, 즉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는 더 커졌다. 돈 잔치 비판을 받던 은행권은 예대마진 덕분에 조(兆) 단위 수익을 거두고 있다. 국내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6조5천억여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15조6천억여원)보다 6%가량 늘었다. 5대 은행 순수익만 12조6천억여원이다. 1분기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수익은 더 커졌다. 10월 시중은행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춤해졌지만 금융권 전체 증가 폭은 6조6천억원가량으로 커졌다.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2금융권 대출만 2조7천억원에 이른다. 상호금융권이 집단대출(중도금·잔금대출 등)과 주택담보대출을 늘려서다. 이자 부담이 큰 생계형 대출이 증가하면서 서민 대출의 질은 더 떨어졌다. 정책적 뒷받침과 함께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져야 기업과 서민들의 금융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변수로 차질(蹉跌)이 우려된다. 미국발 통화 완화 기조가 1년을 못 버틴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공약대로 10~20%의 보편 관세와 60%의 대(對)중국 관세를 부과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대거 내쫓아 인건비가 치솟고, 정부 재정지출을 늘리면 물가는 오르게 된다. 물가만 안정된다면 미국 기준금리는 현재 연 4.50∼4.75%에서 내년 말 연 3.00∼3.50%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지만 물가 불안이 가중되면 금리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 한국은행 금리 정책도 영향을 받는다. 미국이 금리를 다시 올릴지 모르는데 우리만 낮추면 1.50%포인트(p)인 금리 격차(隔差)가 더 커져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우려된다. 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면 건설투자나 소비 진작(振作) 효과가 있겠지만 부작용이 걱정이다. 당장 집값이 뛸 것이고 가계부채 규모는 더 커진다.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해 금리를 내리는 것도 위험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도 추가 인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경제의 심폐소생술은 아니며, 돈줄만 죈다고 가계대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줄이고, 기존 대출자에 대한 금리 인하나 중도 상환 수수료 면제, 서민과 자영업자 지원 특례 대출 등 상생안을 내놔야 한다. 정부 대출 정책이 금융권 돈 잔치로 끝나선 안 된다.
2024-11-11 20:42:41
지난달 30일 외신에 따르면 12월분 금 선물(先物) 가격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장중 한때 사상 최초로 온스당 2천800달러 선을 넘어섰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제 금 가격은 1천870달러였는데, 1년 새 온스당 1천달러가량 오른 셈이다. 올 들어 현재까지 34% 이상 올랐고, 내년엔 3천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지금이 가장 금값이 쌀 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금협회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에 유통 중인 금의 총량은 대략 21만t(톤) 정도다. 금 총량(總量)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국제 금 가격 단위는 '온스(ounce)'인데, 일반 무게 단위와는 다르다. 귀금속 단위에는 '트로이온스(troy ounce)'를 쓴다. 줄여서 온스라고 표기할 뿐 무게도 다르다. 1온스는 28g 정도, 1트로이온스는 31g 정도다. 한 돈(3.75g)쯤 차이가 난다. 복잡한 계산을 생략하기 위해서 골드바 가격을 이용해 보자.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지만 1㎏ 골드바 가격은 현재 1억5천만원 정도다. 지난 8월만 해도 1억2천만원이었다. 현재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골드바 1t은 1천500억원이다. 여기에 21만을 곱하면 전 세계 보유 금값을 추산할 수 있는데, 대략 3경1천500조원이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을 630조원으로 잡았을 때 50년치에 해당한다. 골드바처럼 판매 상품이 아니라 국제 금 시세로 계산하면 이보다 훨씬 적지만 어차피 현실감 없기는 마찬가지다. 발견됐지만 아직 채굴(採掘)하지 못한 금이 6만t쯤 된다고 한다. 전 세계 금의 양은 27만t으로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연간 채굴량은 3천400~3천500t으로, 해마다 세계 금 보유량의 1.8% 정도가 늘어난다. 세상이 불안해지면서 금 수요는 폭발적으로 커지는데 채굴량이 워낙 적은 데다 총량도 정해져 있으니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금 수요는 폭증세다. 올 들어 10월까지 금 거래대금만 2조원에 육박하고, 거래량도 18t이 넘는다. 지난해 연간 전체 거래량이 13t이었다. 중국에선 내수 부진 등으로 10월 금 거래가 연초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부담 없이 한 돈짜리 돌반지를 구입하던 때가 아련하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진 못해도 금반지 끼고 인생 첫출발 할 수 있었는데.
2024-11-05 18:48:05
동물 건강을 보살피는 수의사(獸醫師) 인기가 치솟는 까닭은 반려동물 증가 덕분이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천500만 명에 육박한다. 양육 가구(600만 추정)에 평균 가구원 2.4명을 곱한 수치다. 이들에게 반려동물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아프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물병원을 찾아간다. 그런데 소비자로선 부담이 크다. 사전에 동물병원 진료비 정보를 제대로 알기 어려워서다. 동물병원마다 진료비 차이가 있지만 비교 선택할 수도 없고, 비용 부담 탓에 병원 여러 곳을 다니기도 쉽잖다. 우리나라 반려동물(펫·pet) 보험 가입률이 1.7%에 불과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11개 손해보험회사의 올 상반기 보유 계약 건수는 13만3천 건, 원수보험료(元受保險料: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는 328억원에 이른다. 업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14만4천여 건까지 늘었다. 그럼에도 전체 가입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반려동물 개체수를 799만 마리(2022년 농림축산식품부 국민의식조사 기준)로 추산할 때 가입률은 1.7%로, 스웨덴(40.0%), 영국(25.0%)에 비해 크게 낮다. 동물병원 이용자들은 1회 평균 진료비로 8만3천원을 지불하는데, 80% 이상이 진료비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펫 보험은 실손의료보험처럼 지출한 병원비의 일부를 보험사가 돌려주는 방식이다. 대개 의료비의 50~70%를 돌려주고, 일정액의 자기부담금(自己負擔金)도 있다. 영양제, 백신, 건강검진 등은 대상이 아니다. 소비자 체감 보장률은 수술·입원비의 경우 70% 미만이고, 외래진료비는 50%를 조금 웃돈다. 처치에 따라 다르지만 부담이 큰 경우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데, 보험 혜택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낀다. 카카오페이에 이어 네이버페이도 펫 보험 비교 추천 서비스를 출시한다. 보험 상품의 비교 선택이 가능해져 가입률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반려동물 등록률을 높이고, 동물병원 진료수가제를 도입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개 물림 사고에 대비해 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반려동물이 현대인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감은 금전적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펫 보험 활성화를 통해 양육 부담을 줄여야 안타깝게 버림받는 반려동물도 줄일 수 있다.
2024-10-28 21:11:34
경제 상황이 심상찮다.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단기 처방으론 실효를 거둘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봉착(逢着)했다. 고도성장 시기엔 박차고 뛰어오를 힘이 충분했지만 저출산·고령화라는 모래주머니를 잔뜩 차고선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렵다. 풍부한 노동력과 뛰어난 인재, 쉴 틈 없는 기술 개발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고성장 시대를 지나왔는데 그런 동력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위기감마저 든다. 방심하다간 '저성장의 늪'에 빠질 판이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년 연속 2.0%로 추정됐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을 총동원해 물가 상승의 부작용 없이 이뤄낼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말한다. 잠재성장률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오래전부터다. 1970~80년대 9%대를 유지하다가 1990년대 6.7%로 낮아졌고, 2000년대엔 4.4%로 떨어졌다. 박근혜·이명박 정부 시절 3%대에 머물다가 문재인 정부 때 처음 3% 이하로 내려앉았다. 잠재성장률 하락을 정부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가 있다. 생산 인구의 감소, 즉 저출산 영향이 큰 탓이다. 다만 설비투자 등 자본·자원의 투입을 따져보면 하락세 반전(反轉)은커녕 가속화했다는 추론은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2.1%로, 이명박(4.8%)·박근혜 정부(7.2%)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누구 잘못이 더 크다고 결론을 내기는 억지스럽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잠재성장률 하락이 현 정부 탓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온갖 악조건을 감안해도 잠재성장률이 미국에 뒤처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지난해에 이어 2.0%로 나타났다. 그런데 미국은 2020∼2021년 1.9%에서 2022년 2.0%, 2023년 2.1%로 올라섰다. 지난해부터 우리를 추월한 것이다. 미국 GDP 규모는 우리의 15배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총요소생산성(總要素生産性) 증가율, 즉 노동·자본·자원의 총동원 능력이 떨어진다. 역량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보다 낮다는 것은 허투루 여길 문제가 아니다. OECD가 예측한 2030~206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 평균치는 0.8%대다. '0%대 저성장 시대'가 현실이란 말이다.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저출산 해결에 국운이 달려 있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71.1%(3천674만 명)에서 2072년 45.8%(1천658만 명)로 떨어진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로 생산연령인구는 가파르게 줄어든다. 노동력 부족을 자본·기술 투입으로 채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세수(稅收) 부족 상황에서 기술개발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도 없다. 반도체·2차전지·인공지능 등에 전 세계가 기술 보조금 경쟁을 벌이는데 우리는 2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구조개혁이 답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뜯어고쳐야 한다. 고령 인구의 노동력을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자본의 합리적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현 정부가 내놓은 역동 경제 로드맵, 즉 혁신 생태계, 공정한 기회, 사회 이동성은 바로 구조개혁의 틀이다. 다만 여전히 뭔가 제대로 이뤄진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추진력을 가지려면 기업 밸류업, 정년 연장, 교육 개혁 등이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 명분조차 희박한 정치 다툼으로 허송세월을 보낼 겨를이 없다. 이대로 가다간 저성장의 늪에 빠진 정권이라는 오명(汚名)을 쓸 판이다.
2024-10-22 20:01:01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격 부담이다. 충전 시설 부족과 긴 충전 시간, 배터리 열폭주(熱暴走)도 걱정이지만 내연차보다 월등하게 비싼 탓에 구입을 망설이게 된다. 그런데 2026년이면 전기차와 내연차 가격이 비슷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골드만삭스는 배터리 평균 가격이 지난해 ㎾h(킬로와트시)당 149달러에서 올해 말 111달러로 떨어지고, 2026년엔 82달러까지 내려간다고 봤다. 원소재 가격 하락 영향이 크다. 양극재 핵심 원료인 리튬 가격은 2022년 최고치에 비해 88% 떨어졌고, 니켈도 60%가량 내려갔다. 망간, 코발트도 마찬가지다. 배터리 가격은 원소재가 60%를 차지하고, 전기차 가격의 40%는 배터리 값이다. 저가(低價) 전기차도 잇따라 선보인다. 유럽에선 3천만원 미만 소형 전기차 출시 계획도 나왔다. 주행 중 배터리가 소진(消盡)될까 봐 걱정이라면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도 있다. 평소 모터로만 달리다가 배터리 전기량이 떨어지면 소형 엔진이 충전을 돕는다. 발전기를 탑재(搭載)한 전기차의 등장이다. 엔진이 주동력이고 단거리만 모터로 주행하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와는 전혀 개념이 다르다. EREV가 9월에만 중국에서 11만7천 대가 판매됐다고 한다. 시장성이 있다는 말이다. 현대차도 2026년 말부터 EREV를 양산해 미국, 캐나다, 중국 판매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해 자율주행 성능을 극대화한 전기차도 나온다. 미국 테슬라는 지난해부터 선보였고, 중국 비야디는 올해 안에, 일본 소니혼다모빌리티는 2026년 출시할 전기차에 AI를 넣는다고 밝혔다. AI는 주행 데이터를 계속 축적해 운전 기능을 끌어올린다. 오래 탈수록 똑똑해진다는 말이다. 덕분에 고가의 센서를 미리 장착할 필요가 없다. 세계 굴지(屈指)의 기업들이 전기차 관련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는 시장성이 무궁무진해서다. 결국 게임 체인저는 전기차다. 국토교통부가 제3차 모빌리티 혁신위원회를 열고 '전기차 배터리 교환식 충전 서비스'에 대해 규제 특례를 지정했다. 차량과 배터리 소유권을 분리 등록하는 방식으로, 배터리 교환이 쉽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혁신이 없으면 도태된다. 전기차는 대표적 본보기가 될 것이다.
2024-10-21 20:06:08
미래 자동차의 키워드 중 하나가 자율주행(自律走行)이다. 뜨거운 관심만큼 물음표도 따라붙는다. 필요성과 안전성 때문이다. 안전·편의 장치 발달로 운전 부담이 크게 줄었는데 굳이 자율주행이 필요할까에 대한 의문이다. 며칠씩 장거리 운행을 하는 화물차라면 모를까. 안전성 역시 답을 찾는 중이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완전 자율주행차 시제품 '사이버캡'을 공개했다. 인간 운전자의 개입이 불가능한 로보(무인)택시다. 차량 장착 카메라와 인공지능(AI) 기술로만 작동한다. 2026년 양산 목표를 밝힌 일론 머스크는 안전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수백만 대의 자동차가 컴퓨터를 통해 운전 훈련을 하고 있어 인간보다 안전하다고 했다. 축적된 운전 관련 빅데이터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인간보다 낫다는 뜻이리라. 머스크의 큰소리에도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구체적인 자율주행 기술, 규제 관련 해결책, 수익 창출 방법 등이 모호(模糊)하다는 평가 속에 테슬라 주가는 9%가량 급락했다. 미국인 3명 중 2명은 '가능한 무인 승용차를 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로보택시를 운행했던 크루즈(제너럴모터스 자회사)는 보행자 관련 사고 등으로 결국 퇴출된 바 있다. 완전 자율주행은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답보(踏步) 상태다. 10년 전부터 자율주행 전기차를 개발하던 애플은 올해 손을 들었다. 사람의 개입이 불필요한 '레벨5' 기술을 개발하려 했으나 한계에 봉착했다. 그럼에도 경쟁은 뜨겁다. 선두 주자는 구글 자회사 웨이모다. 미국 내 유일한 상업 운행 로보택시 업체다. 지난 7월 기준 유료 승차는 10만 건을 넘어섰고, 주행거리도 3천540만㎞를 넘겼다. 안전성에서 사람 운전자보다 뛰어나다는 통계도 나왔다. 현대차와 웨이모가 지난 4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6세대 완전 자율주행 기술인 '웨이모 드라이버'를 현대차 아이오닉5에 적용하고, 해당 차량을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인 '웨이모 원'에 투입(投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자율주행으로 음주운전은 사라지겠지만 예상지 못한 신종 범죄와 문제점들도 드러날 것이다. 일이 터진 후 뒤늦게 수습하지 말고 법적·제도적 허점에 대한 대비도 서둘러야 한다.
2024-10-14 22:24:26
플라스틱, 비닐류는 분리배출(分離排出)하면서도 과연 제대로 재활용될지 의심을 품게 마련이다. 심지어 깨끗이 씻어서 내놓는 부지런을 떨기도 하지만 환경 보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 세계에서 매일 쏟아지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대략 100만t(톤)인데 재활용 비율이 9%에 불과하며, 대기업들이 내세우는 플라스틱 재활용은 결국 사기극이었다는 내용이다. 급기야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정부는 수십 년간 '재활용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속여 관련 비용을 시민들에게 떠넘겨 왔다며 세계 최대 플라스틱 제조사 엑손모빌을 고소했다. 플라스틱 오염 관련 최초의 소송인데, 만약 법원이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액수는 수조원에 이를 수 있다. 플라스틱의 완벽한 재활용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기술로선 불가능하다. 우선 플라스틱 종류가 워낙 많다. 음료수병 재질인 PET부터 PVC(폴리염화비닐), PE(폴리에틸렌), PC(폴리카보네이트) 등 널리 쓰이는 것만 수십 가지인데, 이들을 조합해 만들면 종류는 수천 가지가 넘는다. 물성(物性)이 같은 것끼리 간신히 분류해도 화학첨가제나 착색제가 함유돼 재활용이 안 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분리배출된 플라스틱 생활폐기물의 재활용률이 56.7%에 이른다. 여기엔 에너지원으로 소각한 분량까지 포함돼 있다. 엄밀한 기준의 재활용률은 16%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 평균치보다는 훨씬 높다. 우리 국민들이 열심히 분리수거를 해 준 덕분이다. 환경 파괴 비판에다 미세 플라스틱 공포까지 가세하자 관련 업계는 바이오 플라스틱 등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모양만 바꾸는 기계적 재활용이 아니라 원료 단계로 되돌리는 화학적 재활용도 언급되지만 이를 위해 막대한 에너지가 쓰이고 결국 온실가스 배출만 늘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줄여야 하지만 대체재(代替財)를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생수병처럼 잘 찌그러지는 가벼운 페트병에 담긴 먹는샘물이 출시된다. 페트병 무게는 9.4g으로 기존 제품보다 2.2g 가볍다. 덕분에 연간 플라스틱 127t을 덜 쓰게 된다. 과대 포장 금지법만 제정돼도 플라스틱 사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2024-10-07 20:04:23
[매일칼럼] 한계 내몰린 자영업, 경제 체질 혁신 시급하다
"정 안 되면 장사라도 해야지"라는 푸념에는 힘들어도 자영업에 뛰어들면 최소한 생계 유지는 걱정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사장님' 소리 들으며 대박의 부푼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한 축인 자영업이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자영업자(개인사업자) 4명 중 3명이 종합소득세 신고분 기준으로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벌지 못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자영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천146만여 건 중 860만여 건이 월소득 100만원(연 1천200만원) 미만이었다. 자영업자의 75% 정도가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번다는 사실은 상황이 얼마나 열악(劣惡)한지 보여준다. 소득이 전혀 없다는 '소득 0원' 신고분도 100만 건에 육박한다. 물론 자영업 소득 감소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9년 610만여 건이던 월 소득 100만원 미만 신고분이 2021년 800만 건에 육박했다. 무소득 신고도 2019년 64만여 건에서 2021년 83만여 건이 됐다. 소비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거 옮겨 가고 내수 자체가 매우 위축(萎縮)된 탓도 있지만 자영업의 위기는 강요받은 선택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갖고 있다. 실업과 조기 퇴직 등의 이유로 임금근로자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창업을 택했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2차 베이비부머(1965∼1974년생) 세대들이 줄줄이 은퇴한다. 그나마 이들은 정년까지 보장받은 비율이 꽤 높아 운 좋은 세대로 분류되지만 국민연금 수급(受給)까지 남은 기간을 감안하면 마냥 여유로울 수도 없다. 이들 중 상당수가 근로 여건이 열악해도 재취업에 나서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조차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자영업자는 563만6천 명으로 취업자(2천854만4천 명)의 19.7% 수준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내수가 살아나면서 자영업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20% 선은 무너질 전망이다. 한때 40%에 육박하던 자영업자 비중의 축소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는 견딜 수 없이 열악한 자영업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 비중은 OECD 30개 회원국 중 콜롬비아, 멕시코, 칠레, 코스타리카에 이어 지난해 기준 5위다. 일본만 해도 9.5%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 자영업마저 포기한 이들이 양질의 임금근로 시장에 편입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구직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는 나날이 늘어나고, 상당수는 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무급(無給)가족종사자로 남아 있다. 무급가족종사자는 88만2천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3.1%이며,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합한 비임금근로자는 651만8천 명으로 22.8%에 달한다. 자영업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시대는 끝났다. 자영업자들의 대출 연체액(延滯額)이 15조원을 넘어섰고, 사업장 65만5천 곳이 평균 1억원의 대출을 갚지 못한 채 폐업했다. 창업이 쉽지만 동시에 경쟁이 치열한 술집, 카페, 한식, 중식, 패스트푸드 등 외식업과 유통업의 매출 감소가 극심했다. 노후 보장용 퇴직금은 사업 자금으로 사라지고, 제2의 인생을 꿈꾸던 장년층은 빚만 떠안은 빈곤 노년층으로 전락(轉落)하고 있다. 개인의 선택이니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고 방치한다면 국가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대비 정책만큼 시급하고 중대하게 다뤄야 할 분야가 바로 자영업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은 어려워진다.
2024-10-01 20:21:08
담배의 중독성은 니코틴 성분 때문이다. 인체 유해 물질은 타르, 일산화탄소, 폴로늄, 카드뮴, 벤젠 등이 대표적이다. 탄소 10개, 수소 14개, 질소 2개로 이뤄진 니코틴은 다른 물질에 비해 인체 배출이 쉽고 덜 유독하다지만 나쁜 영향을 끼치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의약용으로 쓰이지만 엄격한 규정에 따라 이뤄진다고 한다. 연기를 마시는 형태가 아니라 직접 섭취하면 담배 2개에 포함된 니코틴만으로도 치사량이다. 그런데 이런 니코틴을 따로 떼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만들면 현행 국내법에선 규제할 방법이 없다. 담배사업법이 연초(煙草) 잎을 원료로 포함한 담배만 다루기 때문이다. 합성·유사(類似) 니코틴 담배는 법상 담배가 아니다. 천연 니코틴과 똑같은 화학식으로 제조한 합성(合成) 니코틴은 액상형 전자담배에 들어가면 규제 대상이 아니다.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고 청소년에게 팔아도 된다. 이 때문에 합성 니코틴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유통되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른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7월 청소년 5천여 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학생의 60% 이상이 연초 담배에 손을 댔다. 이런 가운데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 그룹이 오는 11월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규제가 없어 우리나라가 타깃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니코틴 유사물질(유사 니코틴) 담배까지 유통되고 있다. 업체들은 무(無)니코틴으로 광고하는데, 니코틴과 화학구조가 비슷한 메틸니코틴 등을 사용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니코틴 대체물질이 천연 니코틴보다 심신에 미치는 영향이 강하고 중독성이 높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런 제품들이 의약외품인 흡연습관개선제로 둔갑(遁甲)해 판매된다. 실제 의약외품 지정을 받은 제품은 1개뿐이다. 식약처는 내년에 유사 니코틴의 중독성, 분석법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할 예정이다. 합성·유사 니코틴 문제는 담배세 부과 여부를 떠나 국민 건강과 직결된 중대 사안이다. 세금과 세율을 정하기에 앞서 유해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서둘러 근거를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법 개정도 해야 한다.
2024-09-30 21:54:08
당도(糖度)를 나타내는 브릭스(brix)는 독일 화학자 아돌프 브릭스(1798~1870)의 이름에서 나왔다. 복잡할 것은 없다. 용액 100g에 당 10g이 있으면 10브릭스다. 당도를 표시하는 백분율로 보면 된다. 물 100g에 각설탕 1개를 녹이면 3브릭스쯤 된다. 사과, 오렌지, 배 등은 10브릭스면 평균치 당도에 해당하고, 18~20브릭스 정도면 당도 면에선 최상급에 속한다. 고품질 와인 제조용 포도는 20브릭스가 넘는다. 바꿔 말하면 18브릭스 이상의 과일은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의미다. 권장(勸奬) 출하 당도의 기본값이 18브릭스인 과일이 있다. 바로 샤인머스캣이다. 1988년 일본에서 개발된 샤인머스캣의 망고 향이 배어나는 진한 달콤함은 처음 맛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정도였다. 201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본격 재배를 시작했고, 당시만 해도 값비싼 포도의 대명사였던 '거봉'을 가볍게 누르고 포도의 왕좌를 차지했다. 워낙 비싼 데다 생산량도 적어 대형마트나 시장에선 볼 수 없었고 백화점에 가야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 해부턴가 샤인머스캣이 흔해졌다. 여전히 비싸지만 과거처럼 구경만 할 정도는 아니다. 값도 예전보다 훨씬 떨어졌다. 소비자들은 횡재(橫財)라도 만난 듯 샤인머스캣을 구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샤인머스캣처럼 생긴 청포도였다. 품종만 같을 뿐 당도나 향기를 느낄 수 없었다. 소비자들은 당황하고 분노했다. 샤인머스캣을 두고 '뽑기 운'을 말할 정도가 됐다. 운이 좋으면 그나마 옛 맛에 가까운 샤인머스캣이 걸린다는 우스개다. 맛없게 된 이유는 제대로 된 재배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그루에 5송이만 수확해야 당도가 유지되는데 생산량을 늘리려고 10송이 넘게 그냥 둔다. 포도는 과일 솎기 정도에 따라 당도가 결정된다. 올여름 대형마트 샤인머스캣엔 15브릭스 보장 딱지가 붙었다. 한국포도회 권장 당도가 18브릭스인데, 그런 제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보니 기준을 아예 낮춰 버렸다. 중국에 수출하는 국산 샤인머스캣의 인기가 급격히 식었다. 2년 만에 포도 수출액이 6분의 1로 줄었는데, 수출 포도의 90% 이상이 샤인머스캣이다. 중국 재배 면적은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샤인머스캣마저 중국산으로 대체(代替)될까 걱정이다.
2024-09-23 20:00:15
우리나라에 전기 보급이 시작된 1961년 이후 12년간은 전기를 많이 쓸수록 값이 싸지는 '체감(遞減) 요금제'가 운영됐다. 그런데 1973년 10월부터 정반대인 '체증(遞增) 요금제', 요즘 말로 누진 요금제가 시작됐다. 전기가 넘쳐나 많이 쓰라고 장려하던 시기가 무색할 만큼 갑작스레 징벌적 누진제가 시작된 계기는 석유 파동이다. 전기 부족으로 공장을 멈출 수는 없으니 일반 가정에서 전기를 아끼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가전제품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서민층을 배려하자는 취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 누진율, 즉 누진 구간(3단계)에 따른 최고와 최저 요금 비율은 1.6배에 불과했다. 이후 누진율은 국제유가 추이와 전력 수급 여건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다. 한때 1979년 2차 석유 파동 당시 12단계 19.7배까지 커졌던 누진율은 여러 차례 조정을 거쳐 2016년엔 종전 6단계 11.7배를 3단계 3배수로 완화하기에 이르렀다. 전기 요금 폭탄 민원이 들끓었고 과거처럼 저소득층이 전기를 적게 소비하는 것도 아니어서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운 지난 8월 주택 전기 요금이 평균 13% 올라서 고지된다. 한국전력이 밝힌 8월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은 363㎾h(킬로와트시)로, 지난해 8월보다 9% 증가했다. 사용량보다 요금의 증가 폭이 더 큰 이유는 누진제 때문이다. 기본요금뿐 아니라 ㎾h당 요금도 비싸지는 누진 구간에 포함된 가구가 더 늘었다는 의미다. 13%는 평균 인상률일 뿐 가족 수에 따라 체감하는 전기료 상승 부담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폭염이 전기 요금 부담을 가중시켰고, 그로 인해 전기 요금 '정상화' 시기도 다시 조정될 가능성이 대두(擡頭)되고 있다. 한국전력의 부채는 2020년 132조5천억원에서 올 상반기 202조8천900억원까지 꾸준히 늘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는데 물가 안정 명목으로 2021∼2023년 원가보다 싸게 전기를 공급해서다. 전기 요금 인상으로 지난해 3분기부터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에서는 벗어났지만 빚을 갚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규모 정전(停電) 사태를 걱정하며 가정용 전기라도 아끼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여름엔 전기 부족 얘기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비싼 청구서가 날아올 차례다.
2024-09-09 20:01:04
서울대 졸업생들이 동문 여성의 얼굴을 합성한 가짜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서울대 딥페이크'(서울대 N번방) 사건의 공범에게 얼마 전 법원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위 영상물 내용은 입에 담기 어려운 역겨운 내용,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도구화하며 피해자의 인격을 몰살(沒殺), 기록을 남기기 위해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하는 현대인의 일상적 행위가 범죄 행위의 대상으로 조작' 등 판결문을 통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었다. 이들은 2020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상습적으로 허위 영상물 400여 개를 제작하고 1천700여 개를 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는데, 주범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다. 일상의 기록이 음란물로 둔갑하면서 피해자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인공지능(AI)을 악용해 실제 얼굴을 음란물과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물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가해자는커녕 피해자 범위도 확정할 수 없을 정도다. 중·고교생 등 미성년자뿐 아니라 교사, 여군 등도 포함됐고, SNS에 떠도는 '피해 학교 명단'만 1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진원지(震源地)는 텔레그램이다. 다른 SNS보다 높은 보안성·익명성이 특징이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입자가 10만 명을 훌쩍 넘기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채널도 있는데, 특정 얼굴 사진을 올리면 몇 초 만에 나체 사진에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이 올라온다. 피해자는 자기 사진이 성범죄 대상이 되는지도 모르고, 가해자들은 죄의식조차 없이 '장난'을 즐기고 있다. 당국이 엄벌을 천명(闡明)했지만 가해자들은 오히려 비웃고 있다. 외국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 특성상 수사가 어렵고, 꼬리를 잡힐 것 같으면 대화방을 폭파해 버린다. 영상물과 활동 내용이 순식간에 사라져 증거 확보가 불가능하다. 주범 조주빈의 'N번방 사건'을 밝힌 '추적단불꽃'은 경찰과 협조해 가해자 신상, 범죄 행위와 유포 장면 등 증거를 확보했는데, 1년 이상 잠입 취재 끝에 이뤄 낸 결과다. 디지털 성범죄 단속은 치밀하고 끈질긴 추적이 필요하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한국이라는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딥페이크 성 착취물 피해자의 53%가 한국 연예인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짜 성 착취물을 생성·유포하는 텔레그램 기반 네트워크 적발은 한국이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이라고 꼬집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허위 영상물 소지·구입·시청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새로 만들고, 딥페이크물 제작·유통 처벌 기준을 높이는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AI 기술을 악용한 사진이나 영상 등 생성물을 통제할 법안들이 21대 국회에 발의됐지만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22대 국회에 재발의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은 AI 생성물에 '가상 정보'임을 알리는 표식(表式)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딥페이크 식별 자체가 어렵고,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강제하기가 불가능해서다. 기술 개발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고 있는 딥페이크 성 착취물은 AI를 악용한 범죄의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가짜 뉴스, 보이스피싱, 여론 조작 등에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딥페이크가 얼마든 동원될 수 있다.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다. 딥페이크의 무서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2024-09-03 20:18:00
지난달 1일 발생한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 이후 근거 없는 괴담(怪談)성 정보들이 넘쳐 나면서 '전기차 공포증'을 부추기고 있다. 인천 화재 사건의 피해를 키운 가장 큰 원인은 지하 주차장 소방시설, 특히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鎭火)가 훨씬 더 어렵거나 옆 차량으로 옮겨붙는 속도가 월등하게 빠른 전기차 화재여서가 아니며, 스프링클러만 정상 작동했다면 발화 차량의 피해를 막기는 어렵더라도 140여 대 전소는 없었다는 말이다. '전기차 충전은 90% 이하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업계는 조목조목 반박한다. 확실한 검증을 거치기도 전에 일부 지자체는 배터리 충전량 90% 이하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출입 방안을 추진 중이고, 전기차 주차를 둘러싼 주민 갈등(葛藤)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현대차·기아는 배터리 충전량이 화재 규모나 지속성에 영향을 줄 뿐 화재 원인과 무관하며, 대부분 화재는 배터리 셀 자체의 제조 불량이나 외부 충격 때문이며 과충전(過充電)에 의한 화재는 외국 사례도 전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기차 열폭주(熱暴走)도 비슷한 이유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업계 측은 주장했다. 열폭주는 과열된 배터리가 주변으로 열을 옮겨 연쇄 폭발하는 현상인데, 외부 요인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배터리 팩 자체가 고도의 내화·내열성을 갖춰 불이 쉽게 옮겨붙지도 않으며, 최신 전기차에는 열폭주 지연 기술이 탑재돼 있다고 했다. 전기차 화재 시 진압 시간이 길고, 확산 속도는 더 빠르며, 온도도 더 높아서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주장들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팩트 체크가 없었다는 말이다. 가짜 뉴스나 루머가 암약(暗躍)할 수 있는 까닭은 선입견과 정보 부족 때문이다. 소방 당국이 정확한 피해 확산 원인을 규명하기도 전에 추측(推測)이 난무했고, 심지어 이를 근거로 대책 수립까지 이뤄졌다. 물론 자동차 업계의 주장만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위험성의 과장(誇張)은 인정하지만 전기차가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아니어서다. 정부는 전기차 안전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인데, 결코 이해관계를 둘러싼 타협의 산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 전기차 공포를 불식시킬 객관적 정보가 최우선이다.
2024-09-02 20:11:24
학창 시절 주워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은퇴한 서양인들의 평생 소원이 세계 일주 크루즈 여행이라는 말이었다. 호화 유람선을 타고 수개월간 세계 곳곳을 누빈다니 가슴 설레는 꿈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노인들은 은퇴를 앞두고 여행 경비를 모아 부부가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부자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은퇴 자금을 여행 경비로 써 버리면 무슨 돈으로 먹고사나 궁금해졌다. 그때 접한 단어가 '연금(年金)'이었다. 20~30년 근속하면 죽을 때까지 매달 일정액이 나오는데, 호화와 궁핍(窮乏) 사이의 생활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이 시작됐다. 매월 푼돈 정도만 꾸준히 모으면 퇴직 후 월급 못잖은 연금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국민연금을 믿고 퇴직금을 톡톡 털어 세계 일주를 떠나는 사람은 없다. 200일이 넘는 크루즈 여행은 여러 경비를 포함하면 1인당 1억원쯤 된단다. 올해 고령층 취업자와 창업자 비중이 동시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크루즈 여행을 그리던 베이비부머들은 일자리를 그리워한다. 올해 1~7월 월평균 60세 이상 취업자는 639만9천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2.4%를 차지했다. 사상 최대다. 40년 전인 1984년엔 5.4%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4배 넘게 비중이 커졌다. 올해 1∼5월 60세 이상 창업 기업(부동산업 제외)은 6만5천 개로 전체의 13.6%를 차지했는데, 이 수치도 역대 최고다. 노인들이 살기 힘들어져서 취·창업이 늘어났고, 전체 인구가 고령화한 이유도 있다. 전체 인구 중 60세 이상은 1천424만여 명으로 27.8%를 차지한다. 지난 10일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월트 디즈니가 크루즈 4척 추가 건조(建造) 계획을 밝혔다. 크루즈선 한 척을 만드는 데 10억~20억달러(1조3천억~2조6천억원)가 든다. 천문학적 투자에 나선 이유는 크루즈 산업이 호황(好況)이어서다. 올해 크루즈 승객은 3천570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6%가량 늘었다. 불안한 국민연금에 노후를 의탁(依託)하지 못해 취업을 걱정하는 노인들도 한때 크루즈 여행을 꿈꾸던 낭만 청년들이었다. 하기야 여행, 취업은 희망적인 바람이고, 아파도 치료조차 못 받을까 걱정인 시대다.
2024-08-26 20:13:53
세계보건기구(WHO)가 '엠폭스'(옛 이름 원숭이두창)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은 그만큼 위험성이 높고 확산도 빨라서다. 중서부 아프리카의 풍토병(風土病)이었던 엠폭스는 지난 2022년 5월부터 세계로 번져 갔다. 유럽과 미주(美洲)로의 확산세가 주춤해지면서 지난해 5월 비상사태가 해제됐다가 이번에 다시 발효됐다. 확산이 가장 빠른 곳은 콩고민주공화국인데, 올해만 1만4천여 건 확진에 455명이 숨졌다. 아프리카 대륙 55개국 중 최소 16개국에서 발병했고, 전 세계 확산이 우려된다. 현재 확산 중인 엠폭스 1형(클레이드 1)은 2022년 유행했던 2형(클레이드 2)보다 전파력과 치명률(致命率)이 더 높다. 파키스탄과 스웨덴의 확진 사례가 나왔고, 필리핀에서도 19일 확진이 보고됐다. 그러자 프랑스가 최고 경계 태세에 돌입하는 등 세계 각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원숭이두창으로도 불렸던 엠폭스는 1958년 덴마크 코펜하겐 한 연구실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름과 달리 원숭이와는 관련이 크게 없고 오히려 설치류(齧齒類)가 전염원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WHO는 2022년 말 이름을 엠폭스로 바꾸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쉽게 전파되는 데 비해 엠폭스는 비교적 장시간의 밀접한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감염자가 만진 물건도 감염원이 될 수 있다. 엠폭스 2형은 사망률이 0.1% 정도인 데 비해 1형은 치료를 받지 않았을 경우 최대 10%에 이른다. 물론 대부분 국가에선 이보다 훨씬 낮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질병이다.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아도 환자들은 매우 고통을 겪는다. 잠복기 1~2주를 지나면 두통, 발열, 근육통, 피로감을 느끼다가 며칠 뒤 피부 발진(發疹)이 생기고, 물집에 딱지가 생겼다가 떨어져 흉터를 남긴다. 증상에서 알 수 있듯이 엠폭스는 1980년 최종 퇴치(退治)를 선언했던 천연두(다른 말로 두창)와 흡사하다. 같은 바이러스군에 속하는 다른 바이러스다. 천연두 백신은 엠폭스에도 최대 80% 예방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경고했다시피 기후 변화와 자연 파괴 탓에 새로운 전염성 질환은 계속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훨씬 높은 치사율과 전파력을 갖춘 바이러스가 등장할지 두렵다.
2024-08-19 19:55:22
[매일칼럼] 내수(內需) 살아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외식업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 속에 실질임금이 줄면서 소비가 위축(萎縮)된 탓에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한층 가중되고 있다. 2분기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는 75.60으로 1분기보다 떨어졌다. 전반적인 경제 침체와 고용 악화로 외식업 등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져 경쟁 강도가 높아지면서 점포마다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외식업 폐업률은 10%인데, 두 자릿수 폐업률은 2005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선택지가 없어 계속 외식업에 뛰어든다. 상황은 악화 일로다. 배달 앱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 배달의민족이 중개(仲介) 수수료율을 다시 올리자 외식 업주들도 가격 인상에 나섰다. 배달료, 임차료, 카드 수수료도 부담인데 중개 수수료까지 오르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다. 음식값을 올리면 매출이 떨어질 가능성이 훨씬 커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배달의민족 탈퇴 움직임에도 매장 방문 고객이 거의 없는 배달 위주 음식점들은 동참하기 어렵다. 게다가 식재료 가격도 폭염 여파로 연일 오름세다. 폭염에 따른 농산물 작황 부진으로 물가가 오르는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온다. 애호박, 오이, 열무 등도 평년 대비 20~40%가량 올랐다. 수출 회복세와 전반적인 물가 안정세 속에 경제성장률 상향 조정도 이어졌지만 3분기 내수 부진이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동기보다 2.9% 줄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최대 폭 감소다. 2분기만 놓고 봤을 때 승용차, 의복, 오락·취미·경기용품, 음식료품 등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숙박 및 음식점업 생산은 5개 분기 연속 하락세이고, 33개 도소매 업종의 재고율(在庫率)도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늘면서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올 들어 소폭 상승세이던 투자마저 다시 위축세다. 티몬·위메프의 미정산 사태는 소비심리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구매했다가 고생만 실컷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에다 일본은행의 기습적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증시 폭락을 경험하면서 불안감은 훨씬 더 커졌다.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強迫)이 생기면서 소비는커녕 투자마저 조심스럽다. 내수 부진은 경제성장세를 마이너스로 돌려놓았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0.2%로, 이전 5개 분기 성장 기조를 무너뜨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낮췄다. 장바구니 경제는 국민 살림살이의 척도다. 수출이 늘고 통계상 물가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피부로 와닿는 경제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한 서민들은 지갑을 닫게 된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영업자 비율을 줄이기 위한 특단의 구조조정 이야기도 한때 나왔으나 지금은 언급조차 없다. 특히 꽉 막힌 동맥경화처럼 돈이 돌지 않는 비수도권 경제 상황은 갈수록 심각(深刻)해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풀려야 막힌 피가 돌 텐데 정부가 최근 내놓은 부동산 정책에 지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집값 폭등이 우려되자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주택을 공급한다는데, 비수도권은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죽을 판이다. 자영업자와 비수도권이 배제된 경제정책은 반쪽 날갯짓에 불과하다.
2024-08-13 20:39:01
올해도 폭염기에 1시간 평균 10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사용됐다. 전력 총수요가 100GW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8월 폭염 때가 처음인데, 앞으로 '100GW 시대'가 일상화할 것으로 보인다. 총수요가 늘어날수록 전력은 안정적 공급이 중요하다. 수요에 맞춰 적절히 생산돼야 한다는 의미다. 전력을 과잉(過剩) 생산해도 곤란하다. 원전이 온전히 가동되고 태양광 발전 비중도 커지면서 현재 이슈는 전력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과잉 생산, 보다 정확히 말해 들쭉날쭉한 전력 생산량이 문제다. 특히 태양광은 전력 총수요에서 최대 17%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커졌지만 날씨 탓에 일정 출력, 즉 꾸준한 생산량을 보장하기 어렵다. 초과 생산되면 원전 등에 출력 제어가 들어가거나 일부 태양광 시설의 전기 공급을 끊어 버린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하다. 전기가 초과 생산되더라도 수요지로 안정적으로 전달할 전력망 확충이 필수다. AI 확산과 데이터센터, 전기차,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등으로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 분명한데 대비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600조원을 들여 조성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여전히 전력망 때문에 논란이다. 필요 전력은 무려 16GW에 달한다. 수도권 전체 최대 전력 수요가 40GW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전력을 끌어와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관건(關鍵)은 전력 생산량이 아니라 송배전망(送配電網) 건설이다. 오는 2050∼2051년 전력 수요가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더라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역시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송배전망 사업이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늦춰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제정안이 제출됐지만 무산(霧散)됐다. 수요가 폭증해 전기를 달라고 아우성이고, 생산 용량도 충분한데 전력망이 부족해 한쪽에선 대규모 정전 사태가, 다른 쪽에선 발전 중단이 벌어질 수 있다. 애초에 대규모 소비처, 즉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력 생산이 풍부한 지역 인근에 두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효율성의 극대화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문제는 훨씬 복잡해졌다.
2024-08-12 20:06:33
티몬·위메프에서 구매한 수천억원 규모의 상품권과 여행 상품에 대한 피해 구제(救濟)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티몬을 통해 상품권을 구매했는데, 티몬이 여행업체나 판매사 등에 정산금을 주지 않자 판매사들이 상품권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소비자들은 결제 취소나 환불을 요구해야 하는데 일반 물품에 대해선 선뜻 결제 취소와 환불을 결정한 지급결제 대행사(PG사)들이 상품권과 여행 상품에는 난색(難色)을 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일반 물품은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은 이상 PG사에 결제 취소 및 환불 의무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핀(PIN) 번호가 찍힌 상품권. PIN은 'Personal Identification Number', 즉 개인식별번호(個人識別番號)라는 뜻인데, 여기에선 상품권 고유 번호라는 의미다. 핀 번호를 누군가에게 전달했다면 상품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물품의 판매 또는 용역의 제공'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만 PG사 결제 취소 대상이다. 그런데 핀 번호가 찍힌 상품권은 소비자가 아직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구매가 이뤄진 이상 '물품의 판매'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상품권의 경우 핀 번호가 아예 발송(發送)되지 않았다면 용역 및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PG사의 환불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핀 번호가 전달된 경우에는 상품권을 쓰지 않았더라도 판매 절차 완료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품권 미사용 부분에 대해선 PG사가 아니라 상품권 판매업자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상품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쟁점 사안이다. PG사 환불 대상에서 제외된 소비자는 한국소비자원에 집단분쟁 조정을 신청해야 한다. 소비자원은 10일까지 여행·숙박·항공 관련 상품 집단분쟁 조정 신청을 받는데, 3일까지 벌써 3천300건을 넘어섰다. 소비자와 사업자가 동의해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和解)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조정을 신청하지 않은 소비자에 대한 보상도 권고(勸告)할 수 있어 일괄(一括) 해결이 가능하다. 티몬·위메프 미정산 상품권 규모가 1천850억원가량이며, 여행 상품 등을 포함하면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평소 신경조차 쓰지 않던 핀 번호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눈물을 쏟게 생겼다.
2024-08-05 20:10:34
댓글 많은 뉴스
윤석열 '탄핵소추안' 초안 공개…조국 "尹 정권 조기 종식"
尹 회견때 무슨 사과인지 묻는 기자에 대통령실 "무례하다"
"고의로 카드뮴 유출" 혐의 영풍 석포제련소 전현직 임직원 1심 무죄
유승민 "이재명 유죄, 국민이 尹 부부는 떳떳하냐 묻는다…정신 차려라"
대구 수성못 명물 오리배 사라졌다…농어촌공사, 세금부담에 운영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