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논설실장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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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부-김수용] 신종(新種) 아동학대

    [야고부-김수용] 신종(新種) 아동학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 처방 환자가 4년 새 2.4배나 급증했는데, 10대 이하가 45%를 넘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환자는 33만8천 명으로, 의료용 마약류 동향 집계를 시작한 2020년 14만3천 명에서 2.4배 늘었다. ADHD에 대한 인식이 바뀐 데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이유도 한몫한다. 그런데 청소년 집중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 탓에 일부 치료제는 공급 부족까지 생길 판이란다.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상위 40∼60% 가구의 여윳돈이 70만원에도 못 미친다는 자료가 나왔다. 여윳돈은 소득에서 이자·세금과 소비지출을 뺀 돈이다. 4년 전만 해도 100만원에 육박했다가 급감했는데, 이유는 집값과 교육비 지출 탓이 크다. 교육비 지출만 13% 이상 늘었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29조2천억원)과 초·중·고 학생 사교육 참여율(80%) 모두 역대 최고다. 정부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한발 빼지만, 의대 증원 여파로 수험생 사교육비 지출이 늘었음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알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유아 사교육비를 조사했더니, 6세 미만 영어유치원 비용은 월평균 154만5천원으로, 연간 1천900만원에 달했다. 초·중·고 학생보다도 훨씬 많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선 '초등 의대반'에 이어 '4세·7세 고시'까지 등장했다. 유명 영어유치원에 들어가려면 4세에, 영어학원에 등록하려면 7세에 초고난도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국책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영유아 2천150명을 조사했더니 조기 사교육은 학업 능력 향상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고, 삶의 만족도는 더 떨어졌다. 그런데도 사교육 시장이 갈수록 팽창하는 배경에는 불안 마케팅이 도사리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이 부모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학원들은 경쟁적으로 레벨 테스트 난도를 높인다. 7세 아이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까지 먹어 가며 '추론'에 몰두한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뇌는 망가지고, 중고교를 무사히 마쳐도 성인 이후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진다. 거창하게 국가 경쟁력을 운운할 것도 없다. 불안 마케팅이 불러온 신종 아동학대로 미래가 무너지고 있다.

    2025-03-25 19:51:04

  • [야고부-김수용] 달걀 대란(大亂)

    [야고부-김수용] 달걀 대란(大亂)

    미국 달걀 가격이 1년 전보다 60% 가까이 올라 12개 기준 1만원에 육박(肉薄)한다. 그나마 최고점보다 10% 이상 내려간 가격이다. 검역상 이유로 공식 경로 외의 달걀 반입이 금지돼 있는데도 멕시코로부터 달걀 밀수는 오히려 더 기승이다. 멕시코 달걀값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조차 달걀 문제에선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세계 2위 달걀 수출국인 폴란드부터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을 요청하고 나섰지만 상황은 마뜩잖다. 미국산 달걀 파동은 다른 나라 달걀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고, 유럽연합에선 지난해 12월보다 10% 이상 올랐다. 깨지기 쉬운 달걀은 수출 자체도 쉽잖다. 최근 수년 동안 미국인 체감 물가, 특히 식료품값이 급등하면서 불만이 극에 달하자 트럼프는 식료품값 안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가 달걀 가격 안정을 위해 2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기로 했는데도 달걀값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급기야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 탓을 하고 나섰고, 농무부 장관이 "뒷마당에서 직접 닭을 키우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달걀 대란의 원인은 '조류 인플루엔자(AI)'다. 지난 2022년 AI 발병 후 닭과 오리 등 가금류 1억4천8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AI가 확산하면서 살처분도 더 광범위해졌다. 지난 2월까지 4개월간 폐사한 산란계(産卵鷄)만 4천600만 마리로, 전체 산란계 3억400만 마리 중 15%가 넉 달 새 사라졌다. 이처럼 산란계가 급격히 줄고 사재기까지 기승을 부린 이유 외에 달걀 산업의 과점(寡占) 구조가 비상식적인 수준의 달걀 가격 폭등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회사가 달걀 시장의 20%를 장악한 칼메인 푸즈(Cal-Maine Foods)다. 칼메인 푸즈는 AI 발병이 없었던 2023년에도 달걀 가격을 2년 전보다 2.8배 높여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덕분에 매출은 80% 이상, 순이익은 5배 이상 급증했고, 창업주 일가는 돈방석에 앉았다. 급기야 정치권과 당국이 가격 담합(談合) 의혹을 제기했고, 미국 법무부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기소 여부는 불투명하다. 앞서 달걀 업체들은 가격 담합으로 5천만달러 이상의 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수익에 비해선 새 발의 피였다.

    2025-03-18 20:05:09

  • [매일칼럼-김수용] 경제 뿌리 제조업이 보내는 위기 신호

    [매일칼럼-김수용] 경제 뿌리 제조업이 보내는 위기 신호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조업은 경제의 뿌리다. 소비와 유통도 탄탄한 제조업의 토대(土臺) 위에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수출 확대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 오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1월 제조업 생산지수는 지난해 1월보다 4% 이상 줄었다. 18개월 만에 최대 감소다. 정부는 설 연휴와 지난해 12월 물량 밀어내기 탓이라며 위기 신호를 외면하고 있지만 실상은 훨씬 심각하다. 1.5%대 경제성장률 달성마저 위태롭다는 의미다. 1월 제조업 제품 출하(出荷)는 지난해 1월보다 7.4%나 줄면서 2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 얼어붙은 내수 출하도 2.4% 줄었고, 믿었던 수출 출하는 10% 넘게 감소했다. 제조업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도 흔들린다. 16개월 만에 수출이 감소로 돌아섰고, 주력 품목인 범용(汎用)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하락세다. 설상가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법 폐지 방침을 밝혔다. 관세 보복으로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감 우려가 커지는데 신규 투자에 대한 보조금마저 사라지면 반도체 업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12일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가 부과됐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월가의 큰손들은 환영하는 모습이다. 제조업을 성장시켜 장기적 경제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공동 창립자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관세가 궁극적으로 미국 제조업 활동을 크게 증진할 것이라고 평했다.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한 25% 관세 때문에 미국 제조업계는 단기적으로 해당 제품의 가격 상승과 비용 부담을 우려하지만, 트럼프는 외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늘어 제조업 부활과 고용 증대를 이뤄내고 이를 통해 소비 진작과 경제 성장도 도모할 수 있다며 정책 기조를 고수한다. 이런 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비난도 거세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노동력에 대한 제조업 의존도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반론이다. 반도체 공장만 해도 고급 엔지니어 수요만 발생할 뿐 대규모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철강·알루미늄 등 중간재에 대한 관세도 일시적으로 미국 내 관련 산업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1979년 1천950만 개에서 현재 1천290만 개로 줄었고,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의 비중도 8%밖에 안 된다. 1939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데,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등장과 세계화 기조, 무역 확대로 생산 거점들이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철강·석탄·방직 등을 중심으로 융성했다가 지금은 쇠락한 북동부와 북중부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표심이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를 택했다. 2020년 대선에선 바이든에 기울었던 노동자들의 마음을 돌린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제조업 부흥을 외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관세 장벽에 수출이 흔들리면 제조업은 더 위축(萎縮)된다. 2022년 기준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은 한국이 28%로, 미국·일본·독일보다 월등히 높다. 제조업 위축은 곧 경제 위기라는 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5%로 다시 낮췄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 이조차 장담할 수 없다. 제조업을 지켜낼 특단(特段)의 대책이 없으면 성장은 멈추게 된다.

    2025-03-17 18:19:52

  • [야고부-김수용] 사라지는 곤충

    [야고부-김수용] 사라지는 곤충

    지구에서 벌, 나비, 귀뚜라미 등 곤충이 자취를 감추면 당장 새들이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다. 1만 종 중 절반가량이 멸종할 정도다. 꽃과 열매로 가득한 정원은 사라지고, 사과·배·딸기·복숭아 등 과일도 볼 수 없게 된다. 세계 식량 작물의 3분의 1 이상이 벌과 나비 등 곤충의 수분(受粉·꽃가루받이)에 의지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지구는 수많은 생물종이 절멸(絕滅)하는 황폐한 땅으로 변한다. 환경 전문 기자인 올리버 밀먼이 쓴 '인섹타겟돈[곤충(insect)과 종말(armageddon)의 합성어]'이 그린 암울한 미래다. 어설픈 상상이 아니라 수십 년 관찰에 바탕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시나리오다. 유럽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27년간 동물보호구역에서 날아다니는 곤충이 75% 이상 감소했고, 곤충의 평균 몸무게는 1989년에 비해 4분의 3이 줄었다. 세계 곳곳에선 사라진 곤충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최근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빙엄턴대 연구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나비 개체수가 20년간 22% 감소했고, 일부 종은 50분의 1 미만으로 급격히 줄었다. 342개 종을 관찰했더니 107개 종은 50% 이상 감소했다. 나비가 줄어든 이유로는 서식지 파괴, 살충제, 기후변화 등이 꼽혔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작물 100종 중 70종 이상이 꿀벌의 수분에 의존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꿀값이 문제가 아니라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다. 하버드대 연구 팀이 꿀벌이 사라졌을 때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연간 142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지 10년이 흘렀다.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 일로(惡化一路)다. 단순히 식량 문제를 넘어 생태계 교란(攪亂)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꿀벌 등 곤충이 담당하는 수분의 경제적 가치는 217조원에 달한다는데, 인류가 대체 수단 마련을 위해 이보다 몇 배의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문제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4억 년간 5차례의 집단 멸종을 이겨 낸 곤충이 어느 때보다 빨리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농약과 살충제 사용을 줄이자니 당장 작황이 걱정이다. 반나절만 동네를 돌아다니면 여름방학 '곤충 채집' 숙제를 해결하던 때도 있었는데, 나비 구경조차 쉽잖은 세상이 됐다.

    2025-03-11 19:56:29

  • [야고부-김수용] 광물 전쟁

    [야고부-김수용] 광물 전쟁

    핵심 광물은 에너지 기술에 필수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희토류(稀土類) 등을 말한다. 배터리와 미사일 시스템 등에 반드시 필요한데, 중국이 세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지질조사국(USGS)이 지정한 50개 중요 광물 중 41개 광물의 50~100%를 수입하는 주요 수입처인 데 비해 중국은 29개 광물의 최대 생산국이자 희토류, 흑연, 리튬, 코발트, 구리의 40~90%를 정제(精製)하는 주요 공급처다. 중국이 광물 자원의 수출 제한이나 금지 등을 통해 무기화를 시도할 때마다 미국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이런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겨냥하고 있다. 세계 광물 자원의 5%를 보유한 자원부국인데 특히 철, 망간, 우라늄 등 100여 종의 자원은 전략적 핵심 광물로 꼽힌다. 세계 원자재 생산 현황 조사 기관인 '월드 마이닝 데이터'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 40위 광물 생산국이다. 러시아 침공 전 철 생산량은 세계 10위권, 배터리 핵심 재료인 망간은 8위, 흑연은 14위에 올랐고, 티타늄도 11위 생산국이다. 우크라이나 광물에 대한 약탈(掠奪)적 탐욕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 대가로 5천억달러(720조원)를 갚으라"고 요구했는데,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영원히 경제적 식민지로 삼는 것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따지면 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에 부과됐던 것보다 더 크다고 비난했다. 게다가 독일은 침략국이지만 우크라이나는 피해국이다. 광물 협정 내용은 독소조항(毒素條項)들로 가득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자원 채굴로 얻는 수입이나 제3자에게 주는 모든 신규 허가에서 나오는 경제적 가치의 50%를 차지하고, 수출 가능한 광물에 대한 우선 매수(優先買受) 청구권뿐 아니라 생필품과 자원 경제에 대해 거의 전면적 통제권을 얻는다. 특히 법적 분쟁이 생기면, 무조건 미국 뉴욕주의 법을 따르게 돼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1천750억달러(252조원)를 지원했다지만 700억달러(100조원)는 미국 내 무기 생산에 쓰였다. 지난달 28일 쫓겨나듯 백악관을 떠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겐 아무런 패(card)가 없다."

    2025-03-04 19:58:47

  • [야고부-김수용] 텅 빈 콩나물시루

    [야고부-김수용] 텅 빈 콩나물시루

    '좁은 입구에서 밀고 밀리는 아우성이 마치 귀성열차의 개찰구(改札口)를 연상케 한다. 오후반인데도 아침부터 집에서 쫓겨 나온 아이들이 운동장을 차지해 가뜩이나 힘든 체육 시간을 망쳐 놓는다.' 46년 전인 1979년 봄 한 신문에 실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부제 풍경을 담은 기사인데, 점심시간 무렵 오전반과 오후반이 바뀔 때의 대혼란을 묘사하고 있다. 30년이 흘러 2010년 2월엔 이런 기사가 실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현상 심화로 올해 학령인구(學齡人口)가 1천만 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학령인구가 1천만 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경제개발 시기인 1964년(992만5천 명) 이후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5년이 더 흘러 올해 2월에 나온 기사다. '올해 문 닫을 예정인 초·중·고교가 전국에 49곳이나 된다. 게다가 올해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이 열리지 않는 초등학교는 전국 170곳, 경북에만 무려 42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국민학교 시절 한 반에서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면 맨 끝이 70번을 훌쩍 넘겼다. 도시에선 그런 반이 학년마다 10~20개나 됐다. 필자의 기억 속 국민학교 전교생은 4천500명 정도였는데, 대도시 학교에 비해 결코 많은 편이 아니었다. 넓디넓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던 아이들은 퇴직 무렵 중년이 됐고, 하루 종일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던 학교는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거나 황량한 폐허로 변했다. 초등·중등·대학생 연령대인 만 6~21세의 학령인구는 1965년 처음 1천만 명을 넘기고 1980년 1천440만여 명까지 치솟았으나 2015년 800만 명대, 2018년 700만 명대, 2022년 600만 명대로 급격히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2040년엔 400만 명대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사라진 학교는 희망 없는 미래다. 국민연금 개혁안의 소득대체율(所得代替率) 1%포인트 차이를 두고 여야가 날 선 대립을 하는 근본 원인은 인구 감소다.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던 아이는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됐고, 해마다 수십 곳씩 학교가 문을 닫던 시절의 아이는 국민연금을 낼 나이가 됐다. 이런 인구구조에선 국민연금의 존속이 불가능하다. 저출산 심각 기사가 나온 지 40년이 흘렀는데, 국민연금은 산소호흡기를 달 지경이 됐다.

    2025-02-25 20:20:18

  • [야고부-김수용] 해저 케이블

    [야고부-김수용] 해저 케이블

    지구에는 아시아와 미(美) 대륙을 연결하는 2만㎞ 길이의 케이블을 비롯해 500개가 훨씬 넘는 통신선이 평균 수심 3천600m 바다 아래에 깔려 있다. 전체 길이 140만㎞에 이르는 해저(海底) 케이블은 세계 인터넷 통신량의 99% 이상을 처리한다. 인공위성이 처리하는 통신량은 해저 케이블의 1%도 채 안 된다. 세계적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해 앞다퉈 해저 케이블 설치에 나서는 이유다. 영상 스트리밍 시대가 열리면서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하자 올해까지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해저 케이블 44만㎞를 추가 설치한다고 밝혔다. 세계 해저 케이블 시장은 2022년 49억달러에서 2029년 217억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인 메타플랫폼은 14일 세계 최장 해저 케이블 구축(構築) 프로젝트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프로젝트 워터워스'(Project Waterworth)가 완료되면 5개 대륙에 걸쳐 지구 둘레보다 긴 5만㎞ 길이의 세계 최고 기술을 사용하는 세계 최장 해저 케이블이 깔리게 된다. 이처럼 방대한 해저 케이블망이 국가 간 새로운 분쟁 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해저 케이블은 매우 굵고 튼튼하게 제작되지만 의외로 끊김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어선이나 고래, 지진과 해저 산사태 등 불가피한 원인뿐 아니라 고의적(故意的) 절단 사고도 있다. 이를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부르는데, 군사적 충돌 없이 상대국에 사이버 테러, 경제 압박 등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북유럽 해저 케이블 2개가 절단됐는데, 유럽 당국은 중국 선박 '이펑 3호'가 고의로 닻을 끌어 케이블을 끊었다고 의심한다. 2023년 10월 발생한 해저 가스관과 케이블 파손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저지하려는 러시아 소행으로 의심된다. 지난달 3일 대만해협에서 발생한 해저 케이블 손상은 중국 화물선 '순싱 39호' 때문으로 추정된다. 강대국들은 해저 케이블 도청과 절단 임무를 수행하는 원자력 잠수함까지 보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해저 케이블 시장 참여를 적극 견제(牽制)하는데, 지난해 3월 미 하원은 자국 해저 케이블 기술의 중국 수출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송유관 가스관보다 해저 케이블 보호가 더 절대적인 시대가 됐다.

    2025-02-18 18:20:40

  • [매일칼럼-김수용] 일자리가 사라지면 미래도 사라진다

    [매일칼럼-김수용] 일자리가 사라지면 미래도 사라진다

    일자리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고용지표는 경기 후행지표(後行指標), 즉 경제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자료다. 지난해 수출 호조에도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던 내수 부진이 고용시장에 그대로 반영됐고, 특히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충격은 3년 10개월 만에 취업자 감소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줄어든 일자리는 구매력 감소로 이어지는데, 대내외 악조건과 맞물리면서 내수 부진이 예상보다 훨씬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 중추인 40대 취업자는 2003년(605만 명)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2014년 689만6천 명이던 40대 취업자는 지난해 617만9천 명으로 줄었다. 10년 새 70여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40대 인구 자체가 같은 기간 90만 명 줄기는 했지만 일자리 감소 폭도 마찬가지로 크게 줄었다. 건설, 도소매, 부동산 등 내수 업종 부진에다 조기 퇴직도 한몫했다. 지난해 일자리 증가 폭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고, 급기야 12월엔 취업자 감소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연간 취업자는 2천857만6천 명으로, 1년 전보다 겨우 15만9천 명(0.6%)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경제활동에 심각한 지장(支障)을 초래한 2020년 이후 최악이다. 정부 전망에도 크게 못 미쳤다. 지난해 7월 내놓은 전망치 23만 명뿐 아니라 12월 발표한 예상치 17만 명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우려대로 건설업 취업자 감소(4만9천 명)의 영향이 컸다. 201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감소다. 도소매업과 제조업 취업자 감소는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일자리 증가의 속내는 더 암담하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26만 명 늘었는데, 20·40대에선 20만5천 명 줄었다.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 월평균 취업자는 314만6천 명으로, 전년보다 5만8천 명 증가에 그쳤다. 2022년 18만2천 명 증가에서 가파르게 줄고 있다. 질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 취업자는 재작년 4만2천 명, 지난해 6천 명 줄었다. 반면 택배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속한 운수·창고업 취업자는 5만6천 명 늘었다. 공공기관 채용 일반 정규직은 2만 명 선이 무너졌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세수 펑크에다 긴축재정 기조가 이어지자 공공기관 신규 채용은 갈수록 줄어든다. 낙담(落膽)한 청년들은 구직시장을 떠난다. '쉬었음' 청년만 지난해 42만여 명으로, 재작년보다 2만1천 명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44만8천 명 이후 역대 최대치다. 청년층 실업률이나 실업자의 수치상 호조와 달리 체감실업률은 악화 일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단기 일자리에 매달리고 있다는 말이다. 고령층이 생계형 고용시장을 이끌고 청년층은 갈수록 구직을 포기하는 '불황형 취업구조'가 고착화(固着化)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올해 전망은 더 어둡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12만 명 증가를 전망했는데, 증가 폭이 지난해보다도 4만 명가량 줄었다. 정부가 상반기 중 민생·경기 사업 70% 이상의 신속 집행과 18조원 수준의 경기 보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회 이동성 개선 방안·2025년 경제정책 방향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부분 취업 맞춤형 프로그램 등 지원책에 그친다.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데 지원책만으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자리도 없는데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획기적인 내수 진작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일자리 겨울은 더 혹독하고 암울해질 것이다.

    2025-02-17 20:07:19

  • [야고부-김수용] 세수(稅收) 펑크

    [야고부-김수용] 세수(稅收) 펑크

    지난해 '세수 펑크' 규모가 무려 30조8천억원에 이른다. 국세 수입이 336조5천억원에 그쳤는데, 예상 수입과의 오차율은 8.4%나 된다. 기획재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회·전문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참여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모델 활용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딱 맞다. 재작년 56조4천억원에 이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缺損) 사태가 벌어졌는데, 더 큰 걱정은 올해도 세수 결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국세 수입 예산안은 382조4천억원이다. 지난해 세수보다 45조9천억원 더 늘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3분기까지 실적이 양호해 법인세 증가를 예상했다는데, 기적에 가까운 극적 반전이 없다면 세수 흐름은 예상을 크게 벗어날 것이다.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유발한 '관세 전쟁' 탓에 예상 성장률 달성도 힘들어서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가 올해 예산안을 짤 때만 해도 세수가 44조원 이상 더 걷힐 것을 상정했다. 법인세만 25조원 이상 늘어나고 소득세 10조원 이상, 부가가치세가 4조원 이상 늘어난다고 가정(假定)해서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올해 성장률을 2.2%로 내다봤는데, 주요 기관들이 내놓은 수정 전망치는 1%대 중반에 머문다. 관세 전쟁이 시작되면서 기업들은 피해 최소화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법인세 증가는커녕 오히려 감소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경기 침체는 일자리 감소를 가져오고 소득세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내수가 얼어붙다 보니 부가가치세나 부동산 관련 세금을 더 걷기도 어렵다.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내수 부진을 벗어나야 할 판인데, 지난해 결산상 불용액(不用額), 즉 쓰지 못한 돈만 20조1천억원에 달했다. 국세 수입이 줄면서 지방교부세도 6조5천억원이나 감액하는 등 정해진 예산만큼도 집행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재난·재해가 적어 예비비가 적게 쓰인 탓이라는데, 이처럼 대규모 불용액은 내수 진작과 직결된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을 통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을 부어야 하지만 여전히 정치권은 주판알을 튕기며 잇속 챙기기에 골몰하고 있다. 경제가 문제인지 몰라서 이러는 걸까.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주인공의 절규가 떠오른다. "이러다 다 죽어!"

    2025-02-11 20:12:25

  • [야고부-김수용] 1인당 GDP 착각

    [야고부-김수용] 1인당 GDP 착각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6천달러를 넘어섰다는 추계가 나왔다. 올해도 정부 전망치만큼 경제 규모가 커진다면 3만7천달러대 진입도 가능하다. 한 국가에서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 총액을 합친 GDP는 국가 경제 규모 측정과 비교에 쓰인다. 물가 변동을 감안한 실질(實質) GDP와 이를 반영하지 않은 명목(名目) GDP로 나뉘는데, 1인당 GDP는 명목 GDP(2천542조여원)에 지난해 평균 원·달러 환율(약 1천364원)을 적용해 달러로 바꾼 뒤 전체 인구(5천175만여 명)로 나눈 값이다. 지난해 1인당 GDP 상승 이유는 수출 증가와 물가 인상 때문이다. 생산량이 같아도 물가가 오르면 명목 GDP가 커진다. 환율 상승은 반대 효과를 가져온다. 1인당 GDP가 일본이나 대만보다 높다는데, 이를 두고 국민 개개인의 소득 수준도 높다고 해석해선 곤란하다. GDP에는 기업·정부가 번 돈도 합쳐져서다. 1인당 소득은 국민총소득(GNI)으로 비교하는데 이것 역시 벌어들인 돈만 합산한 것이어서 처분가능소득, 즉 국민들이 체감(體感)하는 소득과는 거리가 있다. 2022년부터 물가 상승이 근로자 평균 소득 증가를 앞질렀다. 월급은 찔끔 올랐는데 물가는 연이어 껑충 뛰었다는 말이다. 2022년 세금 부담 경감을 위해 세법을 바꾸자 이듬해 1인당 평균 결정세액이 6만원 줄었다. 그런데 평균일 뿐이다. 소득 9억6천만원인 최상위 0.1%의 세금은 1천800만원 이상 줄었고, 소득 3천300만원인 중위 50%의 세금은 오히려 늘었다. 물론 세 부담 자체는 최상위권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소득에 대한 연말정산 신고자 기준 평균 임금은 4천332만원인데, 같은 해 1인당 GDP보다 850만원 정도 적었다. 월급 명세서 소득과 국가 경제 비교에 쓰이는 통계상 소득과의 괴리(乖離)가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즉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빈곤층 소득은 거의 불변인데 초고소득층은 경제성장이나 물가 상승폭보다 훨씬 소득이 늘어난다. 국가 경제의 덩치가 커져도 중산층 이하의 평균 소득은 도리어 감소할 수 있다. 1인당 GDP 증가가 애국심을 고취(鼓吹)시킬지 몰라도 가벼워진 지갑과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을 계속 잠재울 수는 없다.

    2025-02-05 05:00:00

  • [야고부-김수용] 탄소세(炭素稅)

    [야고부-김수용] 탄소세(炭素稅)

    탄소세는 상품과 서비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排出)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꽤나 진보적 친환경 정책으로 꼽힌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탄소세 도입을 언급하면서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철강과 자동차 산업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뜩이나 중국산 철강 제품의 덤핑 공세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철강 제품은 미국 수출 쿼터(수입 물량 할당제)에 묶여 일정량만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는데, 탄소세까지 도입되면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미 수출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는데, 자동차 수출 비중만 27%에 육박한다. 중국 자동차의 미국 진출을 막아 한국 자동차 및 부품 업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유리한 해석만 갖고 방심(放心)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취임 첫날 '불공정 협정'을 내세우며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파리기후협약'에서 재탈퇴한 트럼프가 탄소세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얼핏 이중적으로 보인다. 사실 탄소세 때문에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린 인물은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다. 캐나다는 화석연료 구매 시 탄소세를 포함한 비싼 값을 치르게 한 뒤 모인 돈을 나중에 소비자에게 환급금(還給金)으로 준다. 화석연료를 적게 쓰면 세금보다 환급금이 더 많아 이익이다. 합리적 정책으로 보이지만 국민들 반응은 달랐다. 환급금보다 당장 연료비가 비싸졌다는 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캐나다 보수당 대표 피에르 폴리에브는 탄소세가 경제를 위축시키고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현재 분위기라면 캐나다의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결국 탄소세는 사라질 운명을 맞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친환경엔 관심이 없다. 미국 내 화석연료 개발을 촉진시켜 에너지 가격을 낮추겠다고 했는데, 태양광이나 풍력에 관심을 둘 리가 없다. 트럼프에게 탄소세는 무역장벽을 공고히 쌓는 명분일 따름이다. 탄소세 부담이 싫다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면 된다는 뜻이다.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지구가 뜨거워지건 말건 미국에 공장이 생겨나고 일자리만 늘어나면 끝이라는 의미다. 바야흐로 지구는 극한 이기주의에 내몰리고 있다. 대가(代價)는 미래 세대가 치러야 한다.

    2025-01-21 19:52:16

  • [야고부-김수용] 조용한 초개인화(超個人化)

    [야고부-김수용] 조용한 초개인화(超個人化)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조용하다'는 '말이나 행동, 성격 따위가 수선스럽지 않고 매우 얌전하다'는 뜻이다. 적극적·외향적·주도적 성격의 역할은 극히 소수로 수렴(收斂)할 것이다. 집단적 목소리는 개인적 취향들로 대체되고, 급기야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의 시대로 옮겨 가게 된다. 이런 흐름은 오래전부터 조용히 진행돼 왔다. 우선 공유된 경험이 매우 드물어졌다.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으로 영상, 음악, 텍스트를 망라한 콘텐츠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면서 '초대박'이 아니면 감상 경험을 공유하기 어렵게 됐다. 고도성장을 이끈 산업화 시대가 저물고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집단주의는 개인주의로 대체되고 있다. 얼굴을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이며 의견을 내는 문화는 사라지고 초연결 시대의 인공지능(AI), 스마트폰, 컴퓨터가 조용하게 사람들을 이어 준다. 조용함이 트렌드가 되면서 소비, 패션, 생활, 문화까지 바꾸고 있다. '내향성 경제(Introvert Economy)' 시대에 사람들은 집 안에 은둔한다. 하루 종일 안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재미와 인간관계, 먹는 문제까지 해결된다. 대인관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여행지 대신 자연과의 교감과 사색이 가능한 외딴곳을 애써 찾고, 취향에 맞춘 소도시를 선호한다. 얌전하고 조용하다는 뜻의 '드뮤어(demure)'가 패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특히 AI는 내향성과 소극성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멋진 도구가 될 수 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홀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 복잡한 문제 해결뿐 아니라 창의성, 분석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AI는 강력한 조력자가 된다. 굳이 동료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한 사회성 탓에 더 이상 불이익을 받을 필요가 없다. 통계에 매몰(埋沒)되지 않고 개인의 감정과 취향, 심지어 표정까지 읽어내 적확(的確)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개인화 시대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기업들은 적응을 위한 잰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사회는 굼뜨기만 하다. 조용한 초개인화는 이질적 목소리들의 불협화음이 아니다. 그동안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진정성의 표출이다.

    2025-01-14 20:28:37

  • [매일칼럼-김수용] 깊어진 양극화와 극단주의

    [매일칼럼-김수용] 깊어진 양극화와 극단주의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가구 간 소득 격차(隔差)가 2017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연 2억원을 넘어섰고, 자산 격차는 15억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소득 상위 10%의 연평균 소득은 2억1천51만원, 하위 10%의 연평균 소득은 1천19만원으로 집계됐다. 두 계층 모두 6%대 소득 성장을 보였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상위 10%는 1천304만원 증가, 하위 10%는 65만원 증가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커지고, 고소득자는 금융소득과 자산 가치까지 오르면서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 것이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11월까지 대기업 제조업 생산지수는 114.8로 역대 최대치였지만 중소기업은 98.1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고환율, 국내 정치 불안 등은 취약한 중소기업에 더 큰 어려움이 된다. 이런 생산성 격차는 고스란히 근로자의 소득 격차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서민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인 보험계약대출 규모가 70조원을 넘어섰고, 중도해지(中途解止) 환급액도 40조원을 넘겼다. 2023년에 이어 역대 최대액 기록을 잇달아 깰 것으로 보인다. 물가는 더 불안하다. 달러 강세 때문에 휘발유·경유의 주간 평균 가격은 13주 연속 상승했다. 명절을 앞두고 농산물 가격은 다시 출렁인다. 배추와 무 가격은 1년 전보다 1.5~2배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주요 국정 과제로 양극화 타개(打開)를 선언했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추가 논의는 사라졌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수 침체가 장기화·고착화함에 따라 소득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양극화 해소는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다. 양극화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근본적 경쟁력의 격차 때문인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출발점의 차이는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특정 산업의 도태(淘汰)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 역량 역시 경제 수준에 따라 인공지능을 비롯한 정보 습득 방법에 제한이 생기고, 결국 새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는 경쟁력에서 현격한 차이를 만든다. 부의 대물림은 경쟁력의 대물림을 가져오고, 양극화의 확대 고착을 만든다. 소득 양극화는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지속 가능 성장을 저해한다. 양극화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출로 이어진다. 헌법 11조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양극화가 확대 지속되면 헌법 가치조차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정치와 종교에서 극단적 주장에 심취(心醉)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를 통한 갈등이 확대 재생산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반드시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처럼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까지 가세하면 극단주의가 판치는 심히 두려운 세상이 올 수 있다. 양극화는 결코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이 인내심을 갖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장기적 안목의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 저성장의 그늘이 드리우는 시점에 이런 논의가 시작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양극화의 해악은 마약처럼 사회에 번져 도저히 자력(自力)으로는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2025-01-13 19:24:11

  • [야고부-김수용] CES 2025와 인공지능

    [야고부-김수용] CES 2025와 인공지능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5'는 인공지능(AI)의 각축장(角逐場)이다. 컴퓨터와 휴대폰 AI에서 벗어나 일상생활로 찾아든 친구와 비서 같은 AI의 등장이다. 가정용 AI가 곳곳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주인의 말과 행동, 주변 환경을 감지해 사물인터넷(IoT)이 탑재된 가전제품을 최적 상태로 제어한다. 잠자는 고객의 심박수, 호흡, 기침 등을 감지해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한 뒤 따뜻한 물 한 잔을 권하기도 한다. 냉장고, 세탁기, 로봇 청소기 등에 탑재된 AI 음성 비서는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까지 가능하다. 심심하면 냉장고, 세탁기와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유통기한이 임박(臨迫)한 식재료가 무엇인지 냉장고가 알려 준 뒤 고객이 원하면 알아서 부족한 식재료를 주문해 주며, 해당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도 순서대로 보여 준다. 로봇 청소기는 주인 없는 시간대에 먼지통을 비우고, 가족이 모두 떠난 빈집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면 집 안 상황을 살펴 보안업체에 알리기도 한다. TV는 사용자 취향까지 분석하는 초개인화 시대로 넘어간다. TV가 날씨, 시간에 맞춰 인사를 건네고 사용자 선호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대화로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다. 외국어 콘텐츠 자막이 나오면 실시간으로 번역해 준다. 공 모양의 AI 집사(執事) 로봇은 사용자 패턴을 학습해 진화한다. 가전제품을 컨트롤하고, 아이와 반려동물에 이상이 발생하면 주인에게 알려 준다. 이름을 부르면 굴러서 오고, 프로젝터까지 탑재해 벽이나 천장에 화면을 쏴서 원하는 영상을 보여 준다. 공상과학영화가 현실로 다가온다. 그런데 미래를 그린 영화가 마냥 유토피아는 아니다. 주인을 관찰하는 AI는 감시자로 변할 수 있다. 사용자 패턴 학습은 민감한 개인 정보 수집의 다른 말이다. 특히 건강과 관련한 예민한 정보가 동의도 구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AI가 뚫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울 정도다. 게다가 편리함은 공짜가 아니다. 인간 집사나 비서를 두는 비용보다는 저렴하겠지만 매달 적잖은 구독료를 부담해야 가정용 AI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이 AI가 시나브로 일상에 스며들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2025-01-07 19:58:23

  • [야고부-김수용] 희망(希望)

    [야고부-김수용] 희망(希望)

    희망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단어로 여겨진다. 국어사전에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풀이돼 있다. 소소한 일상부터 공동체, 국가, 세계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다. 그러나 희망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제우스에게 선물받은 상자를 열자 질병, 슬픔, 가난, 전쟁, 증오 등이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에 희망이 남았다. 이를 두고 흔히 인류가 갖은 역경을 딛고 결국 행복을 쟁취한다는 키워드로 희망을 언급하지만 지극한 불행 가운데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을 바란다는 비관적 의미도 담고 있다. 희망의 본질 중 하나는 실현 시간의 불명확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것은 '희망 고문'일지 모른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장래 희망'을 강요받았다. 당차게 답하는 어린이는 될성부른 나무이고, 머뭇거리면 노란 싹수 취급을 받았다. 현재 젊은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과연 뭐라고 답을 할까. 희망은 성취를 위한 노력을 전제로 한다. 더 나은 삶을 꿈꾸라고 윽박지르지만 노력이 반드시 후한 결과물을 가져온다는 담보도 없다. 철학자들은 희망의 이중성을 간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쓸데없는 환상 탓에 현실 감각을 해친다며 '깨어 있는 사람의 공상(空想)'으로 불렀고, 스피노자는 희망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이 두려움과 슬픔을 가져오기 때문에 희망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희망은 비관주의의 산물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희망을 놓칠 수 없다. 막연한 기대와 바람이 아니라 처절한 현실 인식에서 오는 몸부림, 삶의 밑바닥에서 차고 올라가려는 굳은 의지가 희망이어서다. 프랑스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와 저널리스트 모니크 아틀랑은 저서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에서 "희망을 포기하고 버리려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책이 출간된 2016년 방한한 저자들은 한국의 독특한 정서인 한(恨)과 희망이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둘 다 원하는 바를 실현하고픈 열망에서 출발한 만큼 슬픔의 한에서 기쁨의 희망으로 이동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2025년을 희망해야 한다. 척박(瘠薄)한 현실을 깨부수려는 불굴의 희망을.

    2024-12-31 19:54:19

  • [야고부-김수용]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야고부-김수용]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수석(首席)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얼마 전 글로벌 저성장 시대의 도래와 관련한 기고에서 고속 성장 시대의 종말 가능성과 경제 성장 둔화가 초래하는 정치적 양극화를 언급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은 3~12배에 이르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를 경험했다. 그러나 가파른 성장은 1차 석유 파동이 벌어진 1973년까지였다. 이후 50년간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등을 겪으며 세계 경제는 느린 저성장의 시대로 옮겨 갔다. 경제 강대국들에 기회로 비쳐지던 중국의 급부상은 급기야 강대국들의 위기감만 고조시켰다. 세계화 물결 속에 교역 확대를 디딤돌 삼아 끝없이 성장할 것만 같던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게다가 미국은 관세 장벽을 쌓으며 탈세계화를 주도할 태세다.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역사는 극히 짧다. 인간의 순수한 동기에 기반한 두 시스템은 상호보완적으로 20세기 성장을 주도했지만 과연 100년 뒤에도 지배적 이데올로기일지는 의문이다. 경쟁적 시장경제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고, 탄탄한 민주주의 기반 위에서 자본주의는 성장을 거듭했다. 이상적으로 보였던 두 시스템의 결합은 오히려 쉽사리 파국(破局)으로 치달을 수 있음도 보여 주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이 붕괴된 국가에선 민주주의가 훼손됐고, 망가진 민주주의는 경제 회복의 덜미를 잡고 말았다. 저성장, 역성장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다. 마틴 울프는 저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허울뿐인 키메라(서로 다른 동물이 한 몸에 결합된 괴물)에 불과하다고 했다. 국가 통치자가 정치와 경제까지 통제해 정치권력과 경제활동의 공정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시진핑과 중국 경제의 위기가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 민주 국가에서 경제적 파탄을 경험한 민중은 우매(愚昧)할 정도로 극단적 주장에 쉽게 빠지고,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포퓰리즘을 잉태하게 만든다. 경제 붕괴를 가져온 남미와 유럽의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고도성장을 이루게 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21세기에 위협받고 있다. 망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2024-12-24 19:49:43

  • [야고부-김수용] 송년회

    [야고부-김수용] 송년회

    10여 년 전 송년회와 술에 얽힌 기사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회사 직원 A씨는 송년회를 마치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버스와 부딪쳐 숨을 거뒀는데, 유족들이 송년회 비용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만큼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보상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B씨는 송년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후배에게 손찌검을 했다가 상해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C씨는 옆자리 손님들과 싸움이 벌어져 폭행죄로 철창신세를 질 뻔했다.' 송년회는 으레 술을 떠올리게 된다. 만취하지 않으면 송년회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때도 있었다. 아직 두주불사(斗酒不辭)를 외치며 술 실력을 뽐내는 사람도 있지만 음주문화는 변하고 있다. Z세대(1990~2000년대 출생)를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은 '미코노미(Me+Economy·나를 위한 소비)'를 추구한다. 음주가무 대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곳에 지갑을 연다는 말이다. 술만 마셔 대는 송년회가 아니라 취향에 따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임을 선호한다. 한 카드회사가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했더니 노래방·유흥주점·나이트클럽 결제는 급감했고, 실내테니스장·스크린골프장·볼링장은 늘었다. 송년회 유형은 점심을 선호했고, 저녁 송년회보다는 차라리 상품권을 희망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2008년부터 11월을 '음주폐해 예방의 달'로 지정한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기념행사를 가졌는데, 올해 주제는 '술을 따르지 않았다. 나의 생각을 따른다!'였다. 계명대 '절주연인' 팀이 인공지능(AI) 활용 절주(節酒) 노래 제작 등 참신한 아이디어로 최우수 절주 서포터즈 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건배사를 시키거나 억지로 잔을 비우게 하는 행위를 '음주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를 정도로 과음을 경계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올해 송년회에선 술을 조금 마셔 보면 어떨까. 내수가 얼어붙으면서 송년회마저 사라진다는 소식에 시름이 깊어진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라도. 오죽하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자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해 달라"고 당부했을까. 술이 싫다면 함께 식사하며 갑진년(甲辰年)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표현이 전혀 식상하지 않은 한 해가 저물어 간다.

    2024-12-17 21:36:29

  • [매일칼럼-김수용] 최악의 서민 금융이 보내는 위험신호

    [매일칼럼-김수용] 최악의 서민 금융이 보내는 위험신호

    카드론, 보험계약대출, 저축은행 신용대출 등은 서민·취약계층이 급전(急錢)을 끌어 쓰는 대표적 통로다. 법정 최고 금리인 연 20%에 육박하는 이자 부담을 떠안거나 알뜰살뜰 모아온 보험의 원금 손실까지 감수해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11월 9개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42조2천억여원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8월 말 최다 기록을 3개월 만에 갈아 치웠다. 10월 말 은행 대출과 카드론 등을 연체(延滯)한 사람은 무려 614만 명, 연체 잔액은 50조원에 육박한다. 올해 대출금을 제때 못 갚아 경매에 넘어간 부동산도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다. 11월까지 벌써 13만 건에 근접했다. 돈줄이 말라서 집까지 뺏기는 사람들이 한 달에 1만 명도 훨씬 넘는다는 뜻이다. 보험 해약도 급증세다. 올 들어 9월까지 22개 생명보험사의 누적 해약환급금은 39조3천억여원으로, 2~3년 전보다 2배 치솟았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보장성(保障性)보험마저 깨 버렸다. 생보사 해약환급금 중 보장성보험 비중은 지난해 2분기 29.8%에서 올해 동기 40.0%로 급증했다. 보험 효력상실 환급금도 늘었다. 보험료를 2개월 이상 못 내 해지당한 경우다. 생보사 효력상실 환급금은 3분기 기준 1조3천억원에 육박하는데, 올해 말 역대 최대치를 넘길 전망이다. 대표적 '불황형 대출'인 보험약관대출 이용자는 88만3천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었다. 연체 시 보험료와 이자를 이중 부담해야 하는데도 이렇다. 카드론이 막히고 보험약관대출까지 끌어 쓰면 남은 곳은 대부업체다. 그런데 대부업계 신용대출은 계속 줄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가 24%에서 20%로 낮아져 수익을 내기 힘들어지자 저신용자 대출을 대폭 줄여서다. 지난 9월 기준 대부업권 신용대출 잔액은 8조원 선으로, 2년 전보다 2조원 넘게 줄었다. 서민들 이자 부담을 줄여 주겠다며 법정 최고 금리를 낮췄는데 역효과만 낳았다. 대부업 신용대출 잔액은 평균 1인당 300만~700만원대로, 최고 금리를 조금 낮춘다고 해서 큰 차이가 없다. 제도권 금융은 대부업체가 마지막이다. 막장은 불법 사금융이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는 최대 9만1천 명으로 추정된다. 피해도 커지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의 불법 사금융 상담은 4만2천409건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상담 1만130건의 4배를 넘어섰다. 이에 정부는 불법 사금융 의존을 막겠다며 정책금융 상품인 소액생계비대출을 만들었다. 연체가 있거나 소득 증빙 확인이 어려워도 최대 100만원까지 당일 즉시 빌려준다. 그런데 이조차 연체율이 10월 기준 30%에 육박한다. 1인당 평균 대출액 55만원 기준 월 이자는 최대 7천300원인데도 이를 못 갚는다. 불법 사금융이 기승을 부릴 판인데 나라의 대응은 거꾸로 간다. 내년 서민 정책금융 공급액이 올해보다 6천100억원 줄어든 1조2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원래 금융위원회가 증액하려 했으나 기획재정부가 긴축 재정을 내세워 이를 막았다. 결국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 예산을 증액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으로 여야 대치가 극심해지자 국회는 정부가 처음 내놓은 감액 예산안만 통과시켰다. 나라 곳간을 채울 방법을 찾고, 추경 예산도 속히 편성해야 한다. 이자를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속출하는데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서민 경제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도 없다.

    2024-12-16 19:18:47

  • [야고부-김수용] 노쇼와 예약보증금제

    [야고부-김수용] 노쇼와 예약보증금제

    '노쇼'(no-show·예약 부도)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눈물짓고 있다. 90명 단체 예약을 한 초교 총동문회의 노쇼 때문에 회 300만원어치를 손해 봤다는 제보가 방송에 등장했다. 예약자는 꼼꼼한 준비를 신신당부해 놓고는 당일 나타나지 않았고, 주인이 항의를 했지만 횟집이 헷갈렸다며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은 뒤 급기야 주인 전화까지 차단했다. 수십만원 상당의 음료와 다과를 주문해 놓고 연락이 끊긴 손님도 있고, 예약제 미용실에선 노쇼 때문에 3시간 동안 손님을 받지 못했는데 취소 문자만 달랑 남긴 사례도 있다. 심지어 군 간부를 사칭(詐稱)해 식당에 단체 주문을 넣은 뒤 연락을 끊거나 돈을 가로채는 범죄가 전국적으로 76건이나 발생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노쇼는 가뜩이나 불경기에 힘든 시기를 보내는 자영업자들을 좌절시키는 악질 범죄다. 음식점·미용실·병원·고속버스·소규모 공연장 등 5대 서비스 업종의 예약 부도로 인한 매출 손실이 연간 4조5천억원, 고용 손실이 연간 10만8천170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었는데 무려 7년 전 통계다. 관련 기관이 없어 정확한 피해 집계도 못 한다. 정부는 지난 2018년 개정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통해 외식업장의 경우 예약 1시간 전까지 취소하지 않으면 이용 금액의 10% 이내의 위약금(違約金)을 내도록 했다. 그러나 분쟁 시 합의·권고 기준일 뿐 강제성은 없다. 최근 예약금을 내야 예약이 가능한 앱이 등장했는데, 이를 도입한 식당들의 노쇼 비율이 1%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자구책(自救策)도 유명 식당이나 가능할 뿐 소규모 동네 식당이나 카페에서 도입하기는 쉽잖다. 소상공인 생업을 위협하는 4대 피해 중 하나로 노쇼가 꼽히자 정부가 나서서 개선을 약속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노쇼 방지를 위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개정하기로 했는데,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구체적인 위약금 기준과 부과 유형을 세분화한다는 방침이다. 정국(政局)이 혼란스러워도 서민을 위해 필요한 조치는 지체 없이 이뤄져야 한다. 의무를 강제하기에 앞서 소비자 의식 개선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경제적 피해 보상은 현실적 문제다. 비록 실수라도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면 처벌을 받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노쇼도 마찬가지다.

    2024-12-10 19:33:17

  • [야고부-김수용] 사과 재배지

    [야고부-김수용] 사과 재배지

    기후변화로 사과 재배지가 북상(北上)한다는 소식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변화를 보면 속도가 심상찮다. 농협중앙회가 2일 발표한 '사과 주산지와 품종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도 사과 재배면적이 13년 만에 7배가량 넓어졌다. 경북 사과 농가 수는 같은 기간 22% 줄었다. 여전히 경북은 생산량, 재배면적, 농가 수 모두 국내 최대 사과 산지다. 모든 수치에서 절반 이상을 경북이 차지한다. 그런데 이런 시기가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022년 농촌진흥청이 작성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 지도'에 따르면, 2030년대가 되면 영호남 대부분이 사과 재배지에서 이탈하고, 2050년대엔 강원도 백두대간 고원 지역 일부만 남는다. 사과는 생육기 평균기온이 15~18℃ 정도의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과일 맛이 들고 예쁜 색깔로 변하며 일정한 크기로 자라는 데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변덕스럽고 지나치게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면 수확량이 크게 줄면서 '금사과' 사태가 벌어진다. 과일에 까만 점이 생기면서 썩어가는 탄저병(炭疽病)이 과수원을 휩쓴다. 지난해 3월 전국 평균기온이 9.4도로, 기상 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는데, 사과꽃이 평년보다 열흘 이상 빨리 피었다. 그런데 갑자기 4월에 냉해가 닥치면서 꽃이 얼어 죽고 말았다. 앞으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할 수 있다. 사과값이 올라도 농민들은 울상이다. 유통 구조상 중간 마진이 워낙 크다 보니 농민들 몫은 없다.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극단적으로 줄이지 못하면 기후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강원도 사과를 먹으면 된다는 안이(安易)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강원도는 냉해(冷害)에 취약하고 일조량도 적다. 북한이 사과 주산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 일제강점기 당시만 해도 황해도 황주·서흥·송화, 함경남도 북청 등이 사과로 유명세를 떨쳤다. 외국산 사과 수입도 현재로선 쉽잖다. 우리나라는 한 차례도 사과를 수입한 적이 없다. 병해충 유입을 막으려는 까다로운 방역 기준 때문이다. 하기야 모든 것이 격변하는 시기이니 언젠가 바나나, 망고를 재배하고 사과, 배를 수입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정도의 기후변화가 온다면 과연 인류는 무사할지다.

    2024-12-03 20: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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