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대구는 '코로나 도시'라는 오명을 감당해야 했다. 서울 지역 병원 출입이 통제됐고, 문턱을 넘어도 무조건적인 PCR 검사 대상이 돼야 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권에서는 희대의 실언도 나왔다. 당시 여당,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대구 봉쇄'를 언급했다. 자발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이던 시민들의 모습을 기적 같다며 세계 유수의 언론도 찬탄하던 때다. 반대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보름 동안 봉사했던 정치인도 있었다. 당시 국민의당 대표였던 '의사 안철수'였다.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도 함께한 재능 기부였다. 총선을 앞둔 야당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다면 자주 노출되고 싶은 사심이 있었다 해도 할 말 없었을 것이나 연출된 영상이나 사진은 없다시피 했다.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산불 피해 주민들이 있는 안동체육관부터 챙겼다. 그의 고향인 예안면민들이 대피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영양과 청송에서 저돌적인 반응을 마주해야 했다. 영양에서는 "보기 싫어"라며 얼굴 앞에 옷을 휘두른 이가 있었고, 청송에서는 "사진 찍으러 왔지. 3일째 불타고 있다"는 핀잔이 들려왔다. 그러자 27일부터 진보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산불 피해 기부 취소 인증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 대표의 봉변 이후 표출된 '기부 취소 행렬'이다. "평생 저 동네에는 기부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날 선 표현들이 붙었다. 기부에는 마땅히 '인도적 지원'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이념·인종과 무관하게 사람부터 살리자는 것이다. 기부자들도 겸허한 마음으로 나선다. 그래서 진보 성향 일각에서 보인, 응당한 예의를 갖추라는 요구는 기부의 자세라 보기 어렵다. 수혜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마음 씀씀이가 '기부'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전달될 리 없다. 심정적 괴리감만 공고해진다.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고 공허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이재민들을 봤다면 이럴 수는 없다. 덧붙이자면 이 대표가 안동체육관을 찾은 그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일찌감치 배식 봉사 등을 하고 있었고 이후 며칠을 더 머무는 중이다. 이런 진심을 현장에서 본 주민들은 안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2025-03-30 17:56:15
기상천외한 작전이 전쟁의 물줄기를 바꾼 사례는 숱하다.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으로 접근하니 '완승'이나 '압승'이라는 결괏값을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전쟁 승률이 높은 이유를 속칭 '선빵(먼저 일격을 가하는 것)'에서 찾는 것도 일리가 있다. 상대도 예측할 정도라면 고전(苦戰)을 각오해야 한다. 만반의 태세를 갖춰 대항하기에 이긴다 해도 '신승(辛勝)'이라는 성적표를 받게 된다. 공중 폭격이나 대량 살상 무기 사용 이전에는 지형 극복이 기상천외한 작전의 대명사였다. '설마 저걸 하겠어'를 실행한 전략들이다. 기원전 216년 2차 포에니전쟁에서 한니발의 코끼리 부대는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군했고, 1453년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세 때도 비슷한 작전이 쓰였다. 메흐메트 2세가 배를 들고 산을 넘은 골든 혼(Golden Horn) 공략이다. 잘 정비된 정규군이 아닌데 전투에서 이기는 것도 예측 불가능 영역이다. 특히 비정규군의 활약이 상대의 정보망에 잡히지 않으면서 위력을 발휘했던 기록이 우리 전쟁사에 있다. 전국시대 내전으로 이골이 난 일본군을 상대로 분전했던 조선의 의병이 대표적이다. 임진왜란에서 임금의 항복만 받으면 끝이라 오판한 것도 있지만, 이순신과 의병의 존재를 몰랐던 탓으로 일본 역사 교과서는 풀이한다. 약팀이 강팀의 약점을 간파해 격파하는 건 스포츠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린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전에서 카메룬은 한 명이 퇴장당하고도 아르헨티나를 이겼다. 영국 스포츠 베팅 사이트 코랄(Coral)은 아르헨티나의 우승 확률을 11:1로, 카메룬은 500:1로 봤다고 한다. 결과론적 분석일 수 있으나 아르헨티나가 상대를 얕본 대가다. 전 대회 우승국으로 자동 출전권을 따냈기에 치열한 지역 예선을 치를 필요가 없었으니 납득할 만한 결과였다. '당연한 승리'란 없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될 때 모든 걸 단박에 정리해 주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이변(異變)'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예상 밖의 이변이란 없다. 누군가는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다수의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로 치부(置簿)한 채 소수설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일 뿐이다. 강하게 믿고 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2025-03-23 18:05:11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거나 반대하는 단식(斷食)이 정치권에서 대유행이다. 뭐라도 해야 지지층이 결집한다는 강박(強迫)이 '단식 정국'으로 이어진 모양새다. 그러나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라던 소설가 김훈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물론 종교적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 단식도 있다. 개신교에는 금식기도가 있고, 이슬람교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는 라마단 기간이 있다. 통상 한 달 정도 이어진다. 올해는 메카를 기준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9일까지라고 한다. 해가 지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동물은 어딘가가 아플 때 먹는 행위를 포기한다. 의사소통이 명확하지 않은 반려동물도 밥을 먹지 않는 행위로 신체적 불편을 호소한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숟가락을 놓으셨다면 이상 신호로 풀이해야 한다. 유명(幽明)을 달리하실 것 같다고 후손들이 짐작하는 때다. 암 환자들도 암세포에 영양분을 덜 준다는 명분으로 단식하는 경우가 있다. 의사들이 소스라치며 극구 만류한다. 암세포 증식이나 전이 때문이 아니라 영양실조로 병원을 찾을 게 뻔하다는 것이다. 단식은 작정하고 곡기(穀氣)를 끊는 것이다. 밥맛이 없어진 김에 하는 게 아니다. 물만 마시며 동선을 최소화한다. 대개 일주일이 고비다. 그 즈음부터는 판단력도 흐려진다. 단식의 부작용은 명확하다. 죽음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3년 단식하던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찾아 "나도 23일 동안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탄핵이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는 한 여당 국회의원의 결기가 한동안 회자(膾炙)했다. 당내 명확한 피아 구분이 됐다는 빈정거림도 있지만 투사(鬪士)적 이미지가 상당 부분 배가된 건 확실해 보인다. 종교적 수행 방식이던 삭발, 삼보일배 등도 비폭력적 투쟁 방식으로 차용된 시대다. 최근에는 함께 걷는 것도 연대를 다지는 방식으로 떠올랐다. 결기를 보이며 단단한 각오를 다지는 비장함은 덜하지만 생명을 담보로 한 혐오감이나 거부감은 적다.
2025-03-16 17:48:49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는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했던 작가의 이야기다. 발단은 미쳐 날뛰는 코끼리에 밟힌 사람이 압사했다는 신고다. 현장에 가 시신을 확인한 작가는 사냥총으로 코끼리를 잡아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주민들은 "영국인이 코끼리 사냥을 한다"고 술렁이고 사냥 장면을 놓칠세라 작가의 뒤를 쫓는다. 막상 코끼리를 발견한 작가는 총으로 잡을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평화롭게 논에서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가 위험해 보이긴커녕 주인만 나타나면 해결될 문제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구경꾼이 된 주민들은 그가 총을 쏘기만을 기다린다. 이를 눈치챈 작가는 발포(發砲)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비웃을 거라는 압박감에 빠진다. 더불어민주당이 또 탄핵을 들먹인다. '코끼리를 쏘다'의 주인공을 민주당으로, 주민들을 열성 민주당 지지자로, 발포를 탄핵이라 치환하면 억지스러운 비유는 아닌 듯하다. 좀체 활용하지 않던 제도 단행이 높은 효용성을 가지려면, '필살기'라는 희소성을 띠려면 에너지가 응축(凝縮)됐을 때 그리고 적절할 때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아름다운 말, '관세'가 있다면 민주당에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만병통치약 '탄핵'이 있는 듯하다. 마치 탄핵의 기치 아래 스크럼을 짠 대오(隊伍)처럼 보인다.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 이유도 예의 그 이유, 내란 동조다. 지난해 말 탄핵소추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심판 결론은 나오지도 않았다. 하물며 스물아홉 번의 탄핵소추 중 결론이 난 네 번도 모두 인용되지 않았다. 탄핵 빈도(頻度)와 국민이 느끼는 효용(效用)의 관계를 증명하려는 '탄핵효용체감'을 소재로 삼은 논문을 아직 찾아내진 못했으나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관련한 논문이 발표되더라도 하등 어색할 게 없을 것 같다. 외려 그걸 궁금해할 정도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때마다 국민의 정권 불만족도(不滿足度)와 비례하는지, 반대로 "또 저런다"는 반응값이 높아지는지 말이다. '내란 우두머리·동조·선동'이라는 '내란 혐의 처단 용어 세트'도 마찬가지다. 적법 절차에 따른 법률안 거부권 행사 등을 '내란 동조'라 매번 규정하고 선동하는 건 민주당이다. 윤 대통령을 향한 분노에 발맞추지 못하거나 처벌 의지에서 벗어나면 '내란 동조·선동'이라는 오랏줄로 묶는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직후부터 '내란 선동·동조'라는 말은 대법원의 최종 선고처럼 어디에나 붙어 효력을 발휘하려 했다. 각성(覺醒) 충만기(充滿期)에 들어간 일부 지지자들은 역사의 죄인이 돼선 안 된다고 일갈(一喝)하며 형법 87조에서 91조까지 명시된 내란 관련 규정 조항을 어디든 적용하려 했다. 묶는 대로 묶이는 판이니 총리고 장관이고 죄다 '내란 동조'로 묶였다. 내란 획책을 알고도 도왔다는 것이다. 정·관계에 한정된 게 아니었다. 가수 나훈아는 양비론(兩非論)을 폈다는 이유로, 가수 임영웅은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몰상식한 공인 취급을 받았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다. 손발을 다 묶고 물에 빠뜨리고는 물에 뜨면 마녀임이 입증됐으니 화형(火刑)시키고, 물에 가라앉으면 마녀 혐의는 없애나 물귀신으로 만든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죽이겠다는 건데 이런 것들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어지럽히는 작태(作態) 아닌가.
2025-03-10 18:46:56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Ghetto·유대인 거주 지역) 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나치의 만행을 사죄하는 의미임을 지켜보는 모두가 알았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각인된 일명 '바르샤바 무릎 꿇기'다. 독일 슈피겔은 "무릎 꿇을 필요가 없었던 그가 정작 무릎을 꿇어야 할 용기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사죄에 인색한 일본이지만 2015년 8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옛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일본의 사과 방식으로 퍼뜩 떠오르는 것 중에 머리를 땅에 찧을 듯,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 '도게자(土下座)'가 있지만 그의 진정성은 옳게 전달됐다. 일회성 사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에도 원폭 피해자들이 모여 사는 경남 합천을 찾아 그는 고개를 숙였다. 말이나 글로 전한다면 구체적이며 간결해야 한다. 모호한 표현은 논란을 부르기 마련이다. 1990년 아키히토 일왕이 내놓은 "통석의 념(痛惜の念)을 금할 수 없다"는 표현은 한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일본에서는 '매우 슬퍼하고 애석하게 여기는 생각'이라 풀이되지만 아랫사람에게 하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사죄의 의미는 휘발(揮發)됐다. 직장인들의 경위서 혹은 시말서에도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과정에 초점을 두지만 복합적 반성과 향후 각오가 들어가야 한다. 작문 실력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다. 여자 친구의 "네가 뭘 잘못했는데?"를 제압할 만큼의 설복력(說伏力)을 갖춰야 한다. '미안하다. 그런데 너도 잘못했다'는 식은 사과가 아니다. 실언이다. 선관위가 최근 내놓은 사과문도 그랬다. 신뢰 회복 방식을 모르는 듯해 측은할 정도였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사과문마저 '검토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체적이지 못한 다짐이 들어 있었다. 2022년 대선의 '소쿠리 투표' 때도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부실 투표 논란에 침묵했고, 선관위는 "법과 규정에 따랐고 부실 소지는 없었다"는 사과문으로 여론을 악화시켰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고 습관이다. 진정 어린 사과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사과하라니 하는 모양새다. 사과받는 입장에서는 괘씸할 뿐이다.
2025-03-09 18:41:25
올해 71세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처음 선출된 2000년, 그는 40대 기수(旗手)였다. 전임 보리스 옐친의 주정뱅이 이미지와 자연스레 차별됐기에 건장한 체구를 드러내지 않아도 건강 리스크(Risk)로 위협받을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상체 자랑은 유별났는데 '굳이 이걸 왜' 싶을 만큼 걸핏하면 웃통을 벗어 근육을 뽐냈다. 국기(國技) 삼보(Sambo)를 하는 모습도 노출했다. 스스로 활력 있는 모습을 드러내 건강이상설도 불식(拂拭)하겠다는 계산이다.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2018년 다시 총리직에 올랐던 때(1981~2003년 22년간의 총리 역임 이후 15년 만) 그는 93세였다. 외과의사 출신인 그가 밝힌 건강 유지법 중 하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산책이었다. 그의 고령을 염두에 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여전히 건강하며 매일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직접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1925년생인 그는 아직 살아 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턱걸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화제가 됐다. 턱이 철봉을 넘어간 게 여섯 차례였다. 팔 힘에만 의존하거나 '배치기(몸의 반동을 이용해 턱을 당기는 꼼수)'를 가미하지 않고 광배근에 힘을 줘 올라가는 정통 방식이라는 엄격한 평가도 따른다. 칠순을 훌쩍 넘긴 1951년생 동년배들에 비해 월등한 체력임은 분명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표현은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가 쓴 풍자시에 등장해 지금껏 유효하게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이 불편하면 만사가 귀찮다. 쉽게 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본인이 움직이기 싫으면 남을 부리려 든다. 본인도 해보지 않고 되는 일인지, 아닌지 가늠하려 하니 무리수를 둔다. 입으로만 떠들면 못 할 게 어디 있겠나. '천수경'의 첫머리에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좋다, 좋다, 아주 좋다, 모두 다 좋아지길)'라는 산스크리트어 주문이 나온다. 말 그대로 '입을 깨끗이 하는 주문'이다. "의식이 지체된 2030 고립" "노인들은 투표장에 안 나와도" 등 실언(失言)으로 곤혹스러워하던 이들에게 고령·건강 리스크에 앞서 관리할 게 뭔지 명확해 보인다.
2025-03-02 18:44:00
대구 동구청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선대 묘소 벌초에 나선 건 2011년부터였다. 손 회장의 MBTI(성격유형)가 F형(감성형)인지 알 수 없지만 감성 호소 접근법임이 분명했다. 20기 넘는 조상 묘소에 지자체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걸 알면 유·무형적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벌초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기까지 했는데 이런 일련의 노력들은 2015년이 끝이었다. 2013년 일본 출장길에 손정의 회장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대구 동구청의 벌초 사연도 화제로 올랐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현지 코디는 입을 쩍 벌렸다. 조부와 증조부의 묘소(墓所)가 있는데 한 번도 그곳을 찾지 않은, 근본을 모르는 사람이라 매도하기 좋은 소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간문춘(週刊文春)'에 제보하면 당장 취재하러 나설지 모른다고 했다. 주간문춘은 일본 연예계와 정치계 탐사보도로 알아주는 매체였다. 황색(黃色) 잡지 같은 이름이지만 유수의 정치인도 꼼짝 못 한다고 했다. 연예인 저승사자 역할의 대명사였다. 특히 불륜 보도는 압권(壓卷)이라 했다. 보도된 유명인이 내용을 전면 부정할 것이라 예상하고 2탄, 3탄을 곧바로 내보낸다고 했다. 일본 국민들은 그래서 주간문춘에 첫 보도가 나오면 사실일 거라 짐작한다고 했다. 요미우리, 마이니치, 아사히 등 유수의 정통 언론사가 아님에도 높은 신뢰도였다. 최근까지도 취재력은 여전한 듯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주름잡던 아이돌 그룹 SMAP의 멤버 나카이 마사히로의 성 추문 보도가 미친 영향력은 컸다. 나카이에게 '다레카 to 나카이' 등 프로그램 MC를 맡겼던 후지TV는 광고 압박의 위기를 맞아야 했다. 소프트뱅크, 도요타, NTT 등 주요 기업들이 광고 보이콧에 나선 탓이었다. 영화 '아저씨'의 아역 배우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김새론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연예인 저격 언론을 향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인을 검증하고 감시한다는 명분이지만 특정 연예인을 못살게 구는 게 뻔해 보이는 매체가 적잖다는 사회적 공분이다. 끝까지 쫓는다고 다 탐사보도는 아니다. 공인이니 대중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알빠노'(내 알 바 아니다)식 주장이 죽음 앞에 용납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2025-02-24 05:00:00
반가촌(班家村)의 인사법은 배례(拜禮)다. 길에서 만난 게 아니라면 동년배들도 맞절로 인사를 대신한다. 도시에서 이렇게 하면 "별나다"는 말을 듣겠지만 반가촌에서 고개만 까딱했다면 별스럽게 여기는 표정을 보게 될지 모른다. 조선의 인사법은 1883년 미국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9월 18일 민영익이 이끈 조선 보빙사(報聘使)는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의 국서를 전하기에 앞서 큰절을 했다. 악수(握手)로 인사를 대체하는 건 19세기 말부터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고종도 1889년 주미 공사로 있다 귀국한 박정양에게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 악수로 예를 삼았는지 물었다. 요즘의 우리는 악수를 하면서 '안녕'과 '근황'을 묻는 메시지를 덧붙인다. 문지혁 작가의 소설 '초급 한국어'에서 주인공은 '안녕하세요'를 어떻게 번역할지 한참 고민하다 'Are you in peace?'라고 가르치는데 아랍어 인사말인 '앗살라말라이쿰(당신 위에 평화)'처럼 평온을 바라는 의미로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메시지가 없더라도 손동작은 감정 전달에 효율적이다. 손으로 어깨를 토닥이거나 포옹하는 행위는 몇 마디 말보다 우호적 신호를 크게 전한다. 문상(問喪)을 가 보면 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라는 위로의 말도 있지만, 아무 말 없이 손만 잡아도 상주의 눈물샘은 폭발한다. 보건(保健) 측면에서 악수는 권장할 만한 인사법이 아니다. 세균 전염 통로가 손인 탓이다. 낙선하면 건강이 상하기에 세균 전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선거운동이다. 출마 경험자들은 악수의 효능을 낮잡아 보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지만 유권자에게 내민 손이 순순히 잡히면 승기(勝機)를 잡은 것이고, 유권자가 악수를 받지 않으면 "내 표가 아닌" 게 확실하다는 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변론기일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도 안 쳐 주고, 악수도 거부했다"며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은 것은 야당이라고 주장했다. 승기를 잡지 못하고 내 편이 아닌 걸 확인한 셈이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라 하지만 감정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다. 상대를 멀리하는 합리적 혐오 논리도 잘 만든다. 악수 거부, 허투루 볼 게 아니다.
2025-02-16 18:24:35
[매일칼럼-김태진] '국민소환제', 민주당이 시범 도입하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와 길항(拮抗)하는 문구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다. 흑역사 반복의 치욕을 겪지 말자는 전자의 다짐이 무색하게 오욕의 전철을 밟는 무한궤도가 숱하다는 것이다. 평행 이론처럼 반복되는 역사를 피하고, 막으려 법률 등 여러 장치를 둬도 그렇다.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바로잡아 나간다는 건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지 못한다. 외려 권력을 잡기 위해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바꾸는 것도 부지기수다. "악마도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성경 구절을 들먹이기 마련"이라고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지적하지 않았나. 역사 교과서에 실린 '민주적' 정치 제도 중 하나는 고대 아테네의 '도편추방제'다. 기원전 487년 시행된 것인데 독재 가능성이 보이는 자를 아테네 시민들이 지목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제도였다. 6천 명 이상의 지목으로 추방되는 거라서 여러 정치가가 대상이 되진 않았으나 페르시아 전쟁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정의로운 자'라는 별칭이 있던 아리스테이데스 등이 쫓겨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제도는 70년 동안 존속되다 없어졌는데 정적 제거 수단으로 악용된 탓이었다. 2천500년의 시간을 넘은 역사가 반복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도록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며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을 임기 중에 국민투표로 파면(罷免)할 수 있는 제도다. 임기 중이라도 검증을 거쳐 솎아 내는 권한을 '국민'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국민 주권주의의 효능감을 높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제안 취지를 곱씹자니 지속될 제도일지 의뭉스럽다. 제안 취지에 있는 '광장 민심의 요구'라는 표현 탓이다. '광장 민심'이라는 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정의하는 '국민 전반의 민심'과 동일한지부터 모호(模糊)하다. 민주당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 결과 대통령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고 국회의원도 바뀌었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국민들의 인식"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광장 민심'은 곧 '촛불 민심'이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른다.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도배된 '깨어 있는 시민들의' 화력을 익히 겪은 터다. 떼로 선동하면 중의(衆意)는 대의(大意)가 돼 법률을 위협하고 그에 우선할 수도 있음을 지켜봤다. 국민소환제가 정적 제거용 제도로 얼마든지 악용돼 '여론 재판'으로 흐를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다. 2007년부터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제'의 선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환 대상이 돼 물러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소환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온갖 정치적 중압감에 시달리는 게 수순이다. 운 좋게 직을 유지해도 재선 도전은커녕 건강을 잃기도 한다. 정치생명 유지에 진력하다 실제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제안컨대 당내 권리당원 영향력 확대 조치를 시행한 바 있는 민주당에서 시범 실시해 보면 어떨까. 국민소환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비례대표만 대상으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솔선수범해 당내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뒤 제도를 확대하자면 국민들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2025-02-10 18:50:05
'군주론'에서 "아부의 친구는 자기만족이고 그 시녀는 자기기만"이라 썼던 마키아벨리도 아부의 대상에게는 영혼을 실어 아부했다. '군주론'의 헌정 대상이던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그는 "시대가 위인을 찾고 있는데 오직 로렌초만이 시대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기댈 언덕(阿)에 바싹 붙는다(附)는 풀이에 적확한 헌사다. 걸출한 아부력은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고 경쟁자들의 입길에 자주 오른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사내(社內) 정치력'으로 통칭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편집장 출신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아부를 "거짓이 탄로 나도 처벌이 없는 무공해 웰빙 푸드"라 정의하며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말라'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치켜세워라' 등의 기술을 일러 준다. 아부의 흡착력을 높이려면 '진심'이 실려야 한다. 옷 가게 점원의 "옷이 주인을 만났다" 정도는 구매 유도 공식쯤으로 통용된 지 오래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 태양 같은 존재로 부상(浮上)한 부장, 국장 등에게 "평소 흠숭(欽崇)해 왔다"고 접근하면 진정성을 의심받는 게 일반적이다. 시선 처리나 표정 관리도 진심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연말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 대사를 만나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이웃 국가와 적대적 관계를 맺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데 이어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의 국방력 강화에 대해 "현재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으므로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을 향한 유화 제스처다. 외교적 아부에 가까워 보이는데 문제는 급격한 태세 전환을 우리 국민들도 진정성 결여라 미심쩍어한다는 것이다. 그간 이 대표와 민주당이 선동했던 구호들은 '반일 구국의 대오'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100년 친일(親日)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나 "총선은 한일전, 투표는 독립운동"이라던 구호로 총선에서 잇따라 재미를 본 민주당이었다. 더구나 성남시장으로,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면서 반일 활동에 앞장섰던 사람이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일본을 사랑해 왔다'는 식으로 말하면 뒤통수부터 챙기는 자세를 취하는 게 정상 아니겠나.
2025-02-09 18:24:0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끈 알렉스 퍼거슨은 선수들이 소셜미디어에 에너지를 허비(虛費)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선수들이 자신을 팔로잉하는 이들의 반응을 주기적으로 살피려 했고 때론 언쟁도 벌였는데 이로 인한 정서적 불안정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퍼거슨의 지론이었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한 이유였다. 소셜미디어는 소통과 교류를 지향하는 선한 의도와 달리 가짜 뉴스의 주요 창구 역할을 하는 중이다. 미국 대선을 두 달 앞둔 2016년 10월 "워싱턴 D.C.의 피자 가게 등에서 아동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고 그 조직을 힐러리 후보 캠프 쪽 사람이 운영한다"는 글이 소셜미디어에 부유(浮遊)했다. 이른바 '피자 게이트'다. 대선이 끝나고 2주 뒤 "힐러리 캠프 당국자들이 아동 성추행과 학대를 동반한 악마 숭배에 연루됐다는 소셜미디어의 게시물을 믿느냐"고 물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의 46%, 힐러리 지지자의 17%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2022년 대선 기간 가짜 뉴스로 판명된 허위 정보 115건을 SNU팩트체크가 추적해 봤더니 개중 77.5%가 정치권에서 나왔다고 한다. 1995년작 영화 '세븐(Seven)'에는 연쇄살인마를 잡으려는 형사들의 특이한 수사 방식이 나온다. 유력한 용의자의 도서 대출 기록을 살핀다. FBI의 비공식 관리물로 소개됐는데 지금으로 치면 포털사이트에서 어떤 키워드를 검색해 봤는지 추적하는 것과 비슷하다. 용의자가 대출한 책들은 단테의 '신곡-지옥 편', 밀턴의 '실낙원' 등으로 칠죄종(七罪宗·Seven Deadly Sins), 즉 교만·탐욕·욕정·질투·식탐·분노·나태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형사들은 힌트를 얻어 용의자의 다음 행보를 예측해 낼 수 있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이라 여겼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팔로잉이 최근 들어 집중 조명되고 있다. 그가 방송인 김어준 씨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한 것 등을 문제 삼은 정치 편향성 의혹 제기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의 특정 사안을 보는 식견, 친소 관계를 알 만한 네트워크로 향후 어떤 판단을 내릴지 유추한 것이다. 억지라 폄하(貶下)하는 게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2025-02-02 19:46:11
기력이 쇠하면 노인이라 불려도 역정을 내기 어렵다. 반박할 힘이 없어서라기보다 애써 역정 내 봤자 아무 득 될 게 없음을 간파(看破)했기 때문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서 그런지 요즘은 반백 살도 청년이라 추켜세운다. 듣기 좋으라 하는 소리임을 모르지 않는다. 곧대로 믿고 '영포티'라며 스웩(swag) 부리다 눈치 없는 사람 취급 당했다는 제보는 익히 들었다. 미리 준비해서 무익한 게 있겠냐만 노년 경험은 그렇지 않다. 시중에 나온 '노인 체험복(80세 기준)'의 주요 기능은 그 나이대 신체 특성을 반영한 것일 텐데 ①쇠약한 손·발목 근력 ②둔감한 촉각 ③굽은 등·허리 ④흐린 주변 시야 등이 있다. 몇 걸음 내디디면 앉고 싶고, 종국에는 눕고 싶은데 집에만 있으라는 형(刑)을 받은 듯 우울해진다. 40대의 20대 흉내는 추종(追從) 가능한 영역인지 모르나 80대가 50대처럼 보이면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출연 제의가 온다. 80대의 건강에는 내밀한 상태도 감안돼야 한다. 소화가 잘 안 되는 건 애교 수준이다. 요의(尿意)가 있어도 의지만 있고, 의도는 방귀 분출인데 뜻밖의 현상에 놀라는 건 사소한 질환 축에 속한다. 주변의 따뜻한 배려를 갈망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1956년생 배해주 씨는 색다른 방식으로 우울을 떨친다. '노인을 반납합니다'라는 편지에 기부금을 넣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4년째 보냈다. 기부 취지는 이렇다. 노인이라 받은 혜택들을 남을 돕는 데 돌려주는 게 도리라 생각했고,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생겨 매일이 즐겁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만 65세가 되는 해부터 받은 노인 혜택, 예컨대 지하철 무료 이용이나 무료 예방접종 등 요금 감면을 현금으로 치환한 것이다. 올해는 21만7천원을 기부했다. 흔쾌히 노인이 되는 것도 여생(餘生)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노인에게 주는 혜택이 과도하다 할 수준은 아니다. 외려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쌓아 온 무형자산, 인생의 지혜와 경험을 공유해 주는 게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강호의 고수를 찾는 수련자처럼 노인의 내공을 체계적으로 전수받으려는 시도도 의미 있어 보인다. 뭐든 데이터로 쌓을 수 있는 시대니까.
2025-01-26 17:36:14
"백인의 짐을 져라. 너희가 기른 최선을 최전선에 보내라… 반은 악마요, 반은 아이인 자들에게." '정글북' 등으로 190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쓴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의 일부다. 20세기를 바투 앞둔 1899년 발표됐다. 형식은 시(詩)이나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된다. 화자는 미개한 이들을 바르게 이끄는 게 백인의 짐, 의무라고 말한다. '제국주의 합리화'라는 평가를 부정하기 어렵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고, 12·12의 주역인 전직 대통령 둘을 재판정에 세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직후부터 재연되고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대정신으로 설파(說破)하는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과 그 지지자들이다. 민주화 세력임을 자부하는 이들의 입장을 키플링의 시에 대입하면 어색하지 않다. 이들의 개념 정리에 따르면 속칭 '내란동조세력'은 교정하든, 처단하든 정리해야 할 대상이다. '싹 쓸어버리자'는 구호가 당연시된다. 적국(敵國)인 독일 나치에 협조했던 비시(Vichy) 정부(1940~1944년) 관련자들을 프랑스 정부가 처단했던 것처럼 매조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프랑스 정부는 1944년부터 1953년까지 10년 동안 35만 명을 나치 부역 혐의로 조사해 12만 명을 재판정에 세웠고 이 중 1천500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공감하기 힘들다. 이들이 지칭하는 내란선전·내란동조세력의 대표 격이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들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날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披瀝)하지 않고 비상계엄이 실행될 수 있도록 방치했다는 게 이유다.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들이 매국(賣國)에 앞장서기라도 했는지, 대한민국을 옥죄어 적국인 북한에 갖다 바치겠노라며 내부 결속을 다지기라도 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런데도 때가 되면 반복되는 기상나팔처럼 누가 내란동조세력인지 확인시킨다. "네가 심판받을 차례도 곧 오니 자중하고 있으라"는 식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현 권한대행에게는 민주당이 내란동조세력으로 분류해 놨다고 수차례 확인시켜 줬던 터다. 이런 겁박 정치의 말로는 예측이 가능하다. 여론의 우세로 정국 주도권을 쥔 것은 참작할 만하지만, 상대의 궤멸을 목표로 삼은 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공존 가능성을 없다고 보는 듯해서다. 이런 무도함은 자신들이 더 청렴하고 정당하다는 선명성(鮮明性)에서 나온다.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국면마저 내란선전의 불순한 목적을 가진 무리가 꾸민 자작극으로 풀이한다. 설문 문항이 이상하거나 설문 대상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았다는 반론이다. 20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밖 우위였는데 민의가 왜곡될 문항은 없었다. '정당 지지도'(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약간이라도 더 호감을 가지고 계십니까?)와 '차기 대선 집권 세력 선호도'(만약 대선 정국이 조기에 열린다면,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십니까?)만 담백하게 물었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체제가 시작된 뒤 기사나 칼럼에 좌표를 찍어 맹폭하는 등 민주당의 투쟁력은 한층 높아졌다. 당원 정치를 슬로건으로 앞세운 민주당이다. 당원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수박'이라 공격받던 기억이 선하다. 강성 당원의 목소리가 과표집(過標集)된 게 민주당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2025-01-20 20:14:18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전을 '이변(異變)'으로 받아들인 건 일본 국민뿐이었다. 패망의 신호음은 1943년부터 지속적으로 울렸다.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있은 1945년 8월 15일까지 2년 동안 일본 국민들은 제대로 된 전황을 듣기 어려웠다. 언론, 특히 신문은 정부의 통제 아래 있었다. 국민적 단결을 강조했던 일본 언론이었다. 일본군의 활약상은 눈부시게 보도됐다. 1944년 10월 필리핀 레이테만(灣) 전투에 등장한 가미카제(神風)의 자살 공격마저 신성한 전술로 포장했던 일본 언론은 희망찬 전황만을 전했다. 1945년 3월부터 120차례 넘게 이어진 미 공군의 도쿄 대공습으로 일상이 흔들렸지만 언론의 보도 태도는 여전했다.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5일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을 선언한 지 나흘이 지난 19일에야 폐허가 된 히로시마의 '진짜 모습'이 전국적으로 공개됐다. 학교폭력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은 간혹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아이를 잘 모르는 학부모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한다. 사건을 수임하면 "우리 아이가 피해자"라는 정황을 듣고 시작하는데 학교 측 설명과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학부모 앞에서 직업적 고충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진실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수나 배우의 팬클럽이나 정치인 지지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별처럼 빛나는 나의 우상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반대 세력은 거악(巨惡)이며 척결할 대상이 된다. 반대 세력을 다룬 기사에 악의적 댓글을 다는 건 정당한 훈계(訓戒)의 기능을 한다고 착각한다. 여론조사 결과 분석 자세도 그렇다. 탄핵 정국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는 여론조사를 두고 "질문이 잘못됐다"는 풀이가 일각에서 나왔다. 역으로 지난해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여론조사꽃'이 내놓은 총선 판도를 국민의힘 지지층은 믿지 않았다. '이변'은 설명하기 힘든 걸 단박에 정리해 주는 마법의 단어다. 부작용이 있다. 반복해서 쓰면 진실과 멀어진다. 마주하기 싫겠지만 마주해야 해답에 가까워진다.
2025-01-19 17:31:24
10년 전쯤 '착한 식당'을 찾아내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착한'이라는 수식을 받는 기준은 명확했다. 인공·화학조미료 MSG를 안 쓰는 곳이어야 했다. 선정된 곳들은 한동안 '착한 맛'을 보려는 이들로 바글거렸다. 그러나 이들의 입소문은 거칠었다. 한마디로 "맛없다"였다. 미식가들마저 '맛집'이라 부르길 주저(躊躇)했던 건 이질적인 맛과 비현실적 선정 기준 탓이었다. 'MSG는 건강에 안 좋다'는 구호를 전파하려는 게 기획 의도인 듯했다. 과도한 사용은 염도를 높이기에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다만 소량을 쓰는 것도 금기시하면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입맛을 돋워 미식을 즐기게 하니 스트레스 해소 등에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솔푸드(Soul Food)'에 MSG 한 스푼 들어갔다고 자격을 박탈할 수는 없잖은가. '대통령 탄핵'으로 돌진(突進)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시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유리하게 만드는 기사, 여론조사, 주장 등은 MSG나 마찬가지다. 내란 동조, 내란 선전 혹은 그걸 거드는 행위를 가차 없이 걸러내는 '착한 식당 지정자'는 민주당이다. 이제는 카카오톡 등 메신저로 퍼트리는 행위도 고발한다고 한다. 반(反)탄핵 세력 준동(蠢動) 저지(沮止)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만 눌러도 내란 동조가 될 판이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목표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에 생긴 종기(腫氣)를 제대로 짜야 깨끗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짜다 말면 뒤탈이 난다는 것이다. 1948년 제헌국회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작금의 행태가 반복된다고 한다. 이번에 부역자들을 깡그리 정리하는 '바른 숙청'으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위원 모두를 내란 공범으로 규정했던 민주당이다. 비상계엄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내란 공범으로 본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 대상으로 삼자마자 그와 부인을 무속과 무능으로 칠갑(漆甲)했다. 조리돌림하듯 구태(舊態)의 전형이라 몰아세운 게 얼마 전이다. 확인하기 어려운 '카더라'식 의혹도 반복된다. 탄핵만이 정의라던 광기(狂氣) 어린 8년 전의 살풍경이 겹친다.
2025-01-12 18:20:21
공기놀이와 딱지치기·비사치기·팽이치기·제기차기 등 우리의 옛 놀이 방식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중이라고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에 생존 게임으로 소개되면서다. 소셜미디어에도 주요 콘텐츠로 떠올랐다. 숏폼 알고리즘에 맞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40대 이상 세대들에겐 추억 소환(召喚) 도우미다. 아파트가 주거 형태의 대세가 된 시대에 층간 소음을 고려하면 공기놀이 정도가 자유로운 축에 든다. 실내라면 어디든 앉아서 할 수 있는 경기 규칙 덕분이다. 휴대가 용이한 공깃돌 덕분에 저비용 고효율 재미도 자랑한다. 덕업상권(德業相勸)이 따로 있나. 재미있는 건 애써 전파하려 하지 않아도 널리 퍼진다. '만물 기원설' 주창자인 중국이 곧 끼어들 태세지만 인도, 네팔,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에 비슷한 놀이가 있다고 한다. 고증 가능한 기록물 중에 1733년 윤덕희('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의 아들)의 그림 '공기놀이'가 우리에겐 남아 있다. 국내에서도 지역별 용어가 다르다. 예컨대 점수가 나는 단계는 '판'이라 불렸는데 1895년 미국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이 쓴 '한국의 놀이'에는 '알 품기'로 적혔다고 한다. 기본 규칙은 대동소이하다. 손바닥과 손가락의 유기적 대응이 수반돼야 한다. 공깃돌 중 한 알을 집어던져 올린다. 동시에 바닥에 놓인 나머지 알을 순차적으로 거둬들인다. 던져 올려졌던 알이 내려오는 걸 잡아야 한다. 동체 시력이 우수할수록 유리하다. 당황스러운 건 합의를 거쳐야 하는 세부 규칙이 너무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가 쌍피인가를 두고 상호 수긍해야 하는 고스톱과 결이 비슷하다. 자리 옮기기 금지는 기본이고 움찔하는 동작(야구에서 투수의 보크만큼이나)도 반칙으로 간주됐다. 이런 세세한 합의는 고수들의 범람(氾濫)과 무관치 않다. 반복은 완벽에 수렴되고, 승부욕이 부른 몰입마저 극단에 오르면 실수가 승부를 가르는 지경에 가까워진다. 상대가 있는 게임의 승리 공식은 상대성에 있다. 상대방보다 실책을 줄이고 기회를 살려야 이긴다는 것이다. 2024년의 마지막 한 달은 급변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정치가 게임처럼 다뤄져선 안 되는 때인 것이다. 공동의 위기를 지날 때는 너의 실수로 내가 돋보이지 않는다. 나도 위험해진다.
2025-01-05 21:54:02
박완서 작가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주인공은 삼혼(三婚)의 중년 여성이다. 남편들은 하나같이 속물이다. 이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못 잡은 건 적절한 도움을 못 받은 탓이다. 출세와 생재(生財)에 도움이 될 만한 이들과 교류하는 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주인공도 고위층의 부인이 된 친구와 일본어 학원에 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인 관광객들과 뒤섞인다. "여러분, 이 부근부터 소매치기를 조심하십시오"라는 안내원의 말에 왈칵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는 어디에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고전(古典)은 부끄러움의 각성(覺醒)을 강조하며 반복한다. 성경 잠언(30장 12절)은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열반경에는 중생을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참괴(慚傀)'를 다룬다. 스스로 죄를 짓지 않으며 남을 가르쳐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맹자는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논어 자로 편에서 공자는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알고 사신으로 사방에 가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부를 만하다"고 한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자신이 속한 곳이 뒤처지면 낙오되는 경쟁사회라 인식하면 더욱 그렇다. 과오 인정은 곧 약점을 드러내는 자학(自虐)이 되기에 부인(否認)부터 하기 바쁘다. 자책과 겸손이 순진한 구도(求道)적 자세인 양 윤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심성이 된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남을 탓하기 바쁜 군상들 사이에서 진심 어린 반성으로 용서를 구하는 인간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지난 22일 이른 아침 한 여성이 40년 전 무임승차했던 일을 사죄하며 200만원이 든 봉투를 부산역 매표창구에 두고 사라졌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을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니 자기합리화는커녕 후회와 반성으로 당시를 수차례 반추했을 거라 짐작한다. 스스로에게 엄했을 양심에 '부끄러움'이 뭔지 곱씹는다. "다들 그렇게 산다" "국가가 해준 게 뭐 있나" "이렇게라도 내가 낸 세금을 회수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정상처럼 보이는 시대에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일화다.
2024-12-29 17:36:05
노태우 정부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던 때였다. "광주의 5·18을 아느냐"고 고교생들에게 물은 건 교생실습에 나섰던 대학생이었다. 표준어와 다소 다른 억양에는 이질감이 있었다. 그는 광주 출신이라고 했다. 차분히 5·18을 이야기하는 게 외려 비현실적이었다. 역사 교과서 어디에도 실리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10년이 지나서야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게 놀라웠다. 충분히 당황할 만한 이야기와 주장이었으나 언제 어디서든 구글링으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언뜻 수긍하기 힘들었던 간증(干證) 같은 얘기들이 역사의 장면이 된 건 대학 입학 후 5월이 됐을 때였다. 혐오감이 이는 강렬한 시각적 자료와 함께였다. 분명 일어났던 일인데 알려지지 않았던 일이었다. 역사 교과서가 전부가 아니고, 다르게 보는 시각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인지한 때였다. 지금이야 일단락됐지만 경산 문명고의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 당시 착잡한 심정이었다. 역사를 보는 눈이 교사와 교재에 따라 고정될 수 있다는 주장 탓이었다. 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만으로 학생들이 역사를 인식할 것이라는 우려는 억지에 가깝다. 문명고 역사 교사들이 역사의 한쪽 면만 가르칠 것이라거나 학생들이 역사 관련 콘텐츠의 주입형 학습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이건 시험에 나오니 꼭 외워라"는 식의 1980, 90년대 교수법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교육부 검정을 받은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 채택으로 문명고 학생들이 우파가 되는 일은 없다. 반대로 '깨어 있는' 역사 교과서로 배우면 올바른 시민의식이 싹틀 거라는 것도 편협한 기대에 가깝다. 더구나 그렇게 자리 잡은 역사적 시각이 고정불변이라 보는 건 기우(杞憂)다. 역사관은 살아가며 여러 차례 바뀔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모태(母胎)로 한 사학재단이 세운 학교에서는 채플(Chapel) 수업이 들어가 있다. 학생 중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이를 적극적으로 전도(傳道)하려는 목적도 아니고, 교리를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하여 퇴학 등 극단적 조치를 내리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시각과 시선도 있음을 소개하는 계기로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일 거라는 오판은 학생 역량을 무시하는 폭력일 수 있다.
2024-12-22 18:35:44
17세기 일본 에도막부는 세를 넓혀 가던 가톨릭 신자를 색출하는 방식으로 '후미에(踏み絵)'를 썼다. 십자가상(像)이 새겨진 금속판 위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 밟기를 거부하는 건 물론 심적 동요(動搖)가 있어 보이기만 해도 신자로 판단했다. 종교적 양심에 기대면 분간할 수 있을 거라 봤다. 이런 풍경이 유럽인의 눈에는 희한했을 것이다. 19세기에 발간된 '걸리버 여행기'에도 후미에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구가 실렸다. 선장이 일본 군관에게 '걸리버가 아직 십자가를 밟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이 10일 세계 인권의 날 기념식에 가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막아서며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개인적 입장이라도 밝히라"고 요구했다. 전쟁통에 아군 식별 암구호도 아니고 색깔 논쟁과 다를 게 뭔가 싶다. 만일 안 위원장이 "비상계엄 선포는 내란 기도다"라고 답했다면 문제시되지 않는 것인가. 헌법 19조 '양심의 자유'를 들먹이지 않아도 '양심인지감수성'이 의심되는 답변 강요다. 대관절 헌법 정신은 깨어 있는 시민들도 공감할 수 없는 문구에 불과했단 말인가. 비슷한 살풍경은 인사청문회에서도 목격된다. "5·16이 혁명이냐" "건국일이 언제냐"는 질문들이다. 재깍 답하지 못하면 호된 질책(叱責)을 받고, 원하는 답을 말하지 못하면 낙마도 감수해야 한다. 어느 쪽도 아닌데 목숨이 위태로운 때가 있었다. 70여 년 전 지리산 자락은 밤낮으로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에 떨어야 했다. 빨치산은 밤의 지배자였고 군경토벌대는 낮의 지배자였다. 빨치산 토벌에 나섰던 차일혁 총경은 광기의 시대를 자서전에 남겼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물어봐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과연 몇 사람이 이를 알겠는가?" "너는 어느 쪽이냐"는 물음은 환대 혹은 배제로 귀결된다. 차별하겠다는 포고(布告)다. 정치 이슈가 안주로 나왔을 때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답하는 게 불문율인 줄 알았는데 이젠 안 먹힌다. '무개념'이라고 찍힌다. 가수 임영웅이 그렇게 당했다. 비슷한 정치 성향끼리 모였다고 온전히 같은 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르고 나누는 게 습성이 된 이들은 또 계파별로 나뉘어 죽일 듯이 싸운다.
2024-12-15 22:22:24
요즘에야 많이 바뀌었지만 일본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모습 중 하나는 식당 내 흡연이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 흔했다. 민폐를 죄악시한다는 일본인들이 밥을 먹다가 담배를 피워 무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휴대용 재떨이에 재를 떠는 건 얼핏 상대를 배려하는 '쇼'처럼 보였다. 속마음인 혼네(本音)와 겉으로 드러내는 다테마에(建前)가 다르다지만 드러난 행동이 민폐에 가깝다면 속마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파업을 권리로 보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톨레랑스(tolerance)'라는 개념이 국내에 유행처럼 번진 건 고(故) 홍세화 작가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공이 컸다. 철도 등 공공 운수 노동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에 나서도 프랑스 국민들은 톨레랑스를 견지해 함께 견딘다는 게 요지다. '얼마나 힘들면 불편이 예상됨에도 파업을 했겠냐'는 심정적 연대로 읽혔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역이 윤석열, 김용현 등 충암고 출신들로 드러나면서 충암고 학생들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교무실로도 "도대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친 거냐"는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학생들에게 계란을 던지거나 폭력적 언동을 한 것인데 17세 남짓인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큰 상처다. 학교 측은 6일 교복을 입고 등하교할 때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임시 복장 자율화를 단행했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화풀이다. 학생들의 수모(受侮)는 선배를 잘못 둔 탓이 아니다. 작변(作變) 감행을 학교가 부추긴 것도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정에 책임 있는 동문 선배들의 오판으로 벌어진 사태다. 후배의 수모를 보고 고통스러워하라는 의도인지 모르나 후배들이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는 등식은 연좌제와 다를 바 없는 무지와 저열함일 뿐이다. 비상계엄의 정당성에 충암고 학생들이 찬동한 것도 아니다. 연대 책임 요구하듯 분노를 충암고로 분출한 건 미성숙을 넘어 미개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당 의원들의 소셜 미디어에 남긴 욕설도 그렇다. 다짜고짜 자신들의 정의로운 논리를 설파(說破)하는 공간으로 쓴다. 탄핵 투표에 불참한 것을 내란에 동조한 것으로 몰아붙인다. 30대 젊은 의원인 김재섭 의원마저 소셜 미디어를 폐쇄하다시피 했다. 그는 "가족사진에 악성 댓글이 달려 일단 다 비공개로 해놨다. 지역 학생들 팔로워가 많아서 원래도 정치 악플은 제한했었는데 심한 말이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서다.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도 비슷한 고초를 겪는 중이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져 업무 연락도 겨우 할 정도라 한다. 수만 개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이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탄핵 찬성 촉구 문자 보내기 운동'이 일어난 결과다. 마구잡이식 감정 배설에 가까운 말과 글이어도 탄핵 찬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애국적이고 정의롭다고 포장될 수 있는 건가. 혈연·지연·학연 등이 있는 이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쏟아붓는 건 한편으로 측은지심을 부른다. 누군가를 뭉개거나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건 무시를 당해 본 경험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얼마나 분노했으면 그랬겠냐고 삭(削)칠 수 없다. 진정한 '톨레랑스'의 영역에는 공격적 욕설과 비난이 머물 공간이 없다. 민주적 시민 의식과 의사 결정이 중요하다면서 겉으로는 집단 폭력을 당연시하는 이들의 현주소다. 이런 이들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목청을 돋운다. 모골이 송연(悚然)해진다.
2024-12-09 20: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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