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빛이 나에게도 비치기는 하였으나 직접 내리쬘 수도, 순수한 광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전달될 수도 없었다. 빛이 그에게 다다르려면 혼란스런 방해물을 거쳐야 했다. 나의 영혼에 자리한 무거운 음울함 때문에 빛은 굴절되고, 어두워지고, 색 바랜채 다다랐으므로 나의 앞길을 인도하기에는 충분했을지라도 나의 기운을 돋우기에는 너무나 희미했다."
불현듯 우울함을 증가시킨 어느 오후의 햇살에 이끌려 나는 정처 없이 길을 걷는다. 호텔에서 나와 무작정 길을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지만 나에게 길들여져 있는 것은 오직 내 그림자와 긴 한숨 뿐. 하지만 외롭다고 생각하기에는 이곳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소리아지랑이가 너무나도 경쾌하고 맑기에 나는 웃으며 다시 길을 나선다.
더위를 날려주는 바다 바람에 샤워라도 하듯 나를 흠뻑 적시며 페리에 올랐다. 나는 갑자기 잭 스패로우가 돼 배의 선장을 위협하고 키를 돌려 세상의 끝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항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페리의 이름도 블랙펄호로 바꿔야겠지. 하지만 생각은 저만치 멀어져만 가고, 나는 어느새 반대편의 홍콩섬에 당도한다. IFC 몰(mall)로 연결된 길을 지나 다시 거리로 나왔다.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꺼내 들었지만 이내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등의 간지러움을 해소시켜 주는 등긁이처럼 나는 지도에도 없는 골목 구석구석을 시원하게 돌아볼 참이었다. 또한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나는 그들과 같은 아시안임을 이용, 현지인처럼 행동해 볼 참이었다. 결심이 서고 난 뒤 나는 어설프게 배운 광둥어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길을 물어보고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해보았다. 유일하게 외국인이 돼야 했던 곳은 바로 만다린 호텔. 장국영이 자살한 그 장소에서 조의를 표하고 그를 기리는 묵념을 하면서 만났던 어느 한국 여성과 모국어로 의사 소통을 하던 그때를 제외하고.
남아 있던 빛이 사라지면서 지나가는 풍경들이 내 얼굴로 바뀌어 질 무렵, 나는 빅토리아피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빅토리아피크는 홍콩에 가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홍콩의 야경을 담기 위해 저마다의 플래쉬 세례를 터트린다. 그들에겐 과연 이곳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 기억에 저장될 것인지, 혹은 저마다의 사연이 만들어진 기록보관소가 될 것인지가 궁금했다. 불현듯 건조함에 갈증을 느끼며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자금 출혈을 감수하며 트램에 올랐다. 모세의 엑소더스(Exodus)보다 더 장엄한 탈출이었다. 홍해를 가르듯 트램도 산을 수직으로 가로질러 나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뭐지? 이 벗어날 수 없는 공허함이 나의 갈증을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전쟁에서 돌아와 갈 곳을 잃어버린 존 람보가 돼 버렸다. 트로피컬 네온사인 사이를 고독과 외로움을 씹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귀환했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마는 존 람보가 된 것이다.
그래서 걷고 걸었다. 그러다 멀리서 들리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이곳, 란콰이퐁으로 흘러들었다. 코로 흡입되는 담배 한모금과 입으로 주입되는 맥주의 마리아주는 비로소 내가 갈증을 멈추게 하고 살아있다는 감흥에 젖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모여있는 무신경한 사람들의 알코올 냄새는 "이방인이 되지 않아도 좋아"라고 나에게 살며시 읊조린다.
"그래, 어제는 역사일 뿐이고 내일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오늘을 소중하게 받아 가진 것에만 만족하며, 내가 있는 곳에만 충실하자." 몇 분 후면 오늘을 마감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나는 전혀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나에게 오늘날의 여행은 현실 도피도, 삶의 일탈도 아닌 삶 속의 진정한 삶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도환(27'대구 수성구 신매동)
Tip-홍콩 100% 즐기기
드래곤에어는 부산 출발 19:50-홍콩 도착 22:25, 홍콩 출발14:25-부산도착 18:20의 스케줄이 매일 있다. 경상도 여행객은 부산 김해공항에서 홍콩을 갈 수 있다. 홍콩 첵랍콕공항에 도착, 입국심사 과정을 거치고 짐을 찾은 후 홍콩 시내까지 공항고속기차(AEL)를 이용한다. 공항을 출발, 칭이'구룡을 지나 홍콩섬의 센트럴까지 기차로 24분만에 도착한다. 매 12분마다 공항을 출발하는 'AEL ticket'은 여러 명이 함께 발권 할 경우 가격을 할인해주는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다. AEL이용 시 시내 주요 호텔 간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그 밖에 공항버스로 시내까지 소요시간은 약 1시간 내외. 홍콩시내의 중심부인 센트럴, 코즈웨이베이, 노스포인트는 A11번 버스를 이용한다. 요금은 HK이다. 침사추이 방향은 A21번 버스를 이용하며, 요금은 H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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