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팝콘/유종인

팝콘/유종인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꽃,

꽃은 열매 속에도 있다

단단한 씨앗들

뜨거움을 벗어버리려고

속을 밖으로

뒤집어쓰고 있다

내 마음 진창이라 캄캄했을 때

창문 깨고 투신하듯

내 맘을 네 속으로 까뒤집어 보인 때

꽃이다

뜨거움을 감출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속을 뒤집었다, 밖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꽃은

견딜 수 없는 嘔吐(구토)다

나는 꽃을 집어먹었다

요컨대 꽃이 '견딜 수 없는 구토'라는 거지. 꽃=구토, 이런 정의도 성립할 수 있구나. 참다 참다 끝내 참을 수 없는 순간, 내 마음 진창이라 아주 캄캄할 때, 어쩔 수 없이 까뒤집어 보여주는 것이 '꽃이다'. 이 단호한 정의. 하긴 그 부드러운 꽃잎이 딱딱한 목질을 뚫고 피어오를 수 있는 건 이 정도의 가열함이 있어야 가능할 터.

꽃의 이 생리를 시인은 팝콘에서 발견했구나. 희고 부드러운 팝콘이 돌보다 딱딱한 옥수수 씨앗에 숨어있었단 걸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그나저나 팝콘 모양이 꽃을 닮긴 닮았다. 이 지하에는 얼마나 큰 팝콘 기계가 묻혀 있는가. 봄이 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펑펑 터져 오르던 그 숱한 흰 꽃들, 다 뜨거움을 견딜 수 없어 속을 까뒤집어 쏟아져 나온 것이라니.

장옥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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