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마을! 지금은 비록 떠나 살고 있지만 언제나 소중한 꿈이 서려 있는 내 생명과 정신 세계의 모태요, 또한 언젠가 이승의 육신을 뉘어야 할 영원한 내 안식의 품이다.
낙동강 상류의 두 물줄기 중 하나인 내성천은 발원지로부터 영주시 평은면 소재지(금광1리)까지는 평이한 흐름이다가 용강 평은유원지를 돌아 흐르면서 심한 곡류천으로 바뀌며 운치 있는 풍광을 만들어낸다. 이곳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금광2리, 아름다운 금강마을이 있다. 서책에서는 "문수산지(文殊山支)인 불로산이 북으로 뻗어들어 천개조산(天蓋祖山)하여 와우(臥牛) 형국의 명당 터이다.(중략) 내성천은 마을의 주산인 불로산 밑 남쪽으로 입수하여 북으로 거슬러 흐르다가 서로 돌아 흐르면서 수태극을 이루었다. 잔잔히 흐르는 냇물이 모래와 같이 반짝이니 은빛 되고 한 폭의 비단을 펼친 것같이 아름답다하여 금강(錦江)이다.(후략)"라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 금강마을은 들어선 지 380여 년이 흘렀으며 마을 곳곳에도 지정문화재인 '금광리 인동 장씨 고택' '장석우 가옥' 등과 문화재 신청 중이거나 문화재급인 '심원정' '만연헌' '직방제', 대원군 때 훼철된 '운곡서원 유허' 등이 산재해 있어 유서 깊은 전통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떠나 다소 적적해 보이지만 내 어릴 적에는 집이 100호에 이르는 활기 넘치던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 금강마을이 사라진단다. 어느 날 시작된 영주댐 건설로 금강마을은 머잖아 물속으로 사라지고 대대로 400년을 이어온 우리 인동장문(仁同張門) 후손들은 뿔뿔이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자손으로서 조상님들의 유지를 지키지 못함에 그저 송구스럽고 죄스러울 뿐이다.
영주댐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계획이 발표되었으나 지자체를 포함한 지역민들의 반발로 유야무야 되는가 싶더니 현 정부 들어 다시 돌출되며 주민들 의사와 상관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왕 당하는 수몰인데 위치가 어디냐는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댐은 우리 마을 바로 엉덩이 부분에 설치된다. 내 고향이 댐 한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 묻힌다는 말이다. 애초의 계획은 송리원댐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상류 쪽, 중앙선 철교 위쪽이어서 우리 금강은 수몰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더 억울한 기분인지 모르겠다.
설마설마 하던 중 2009년 6월 말, 막상 고시가 되고 보니 남의 일로만 듣던 '실향'이라는 현실에 눈앞이 아득하고 힘없는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럽고 억울한 심경을 토로한다. 하지만 결국 나라 일이라 안으로만 소리 없이 잦아드는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 뿐이다.
몇 년 전부터 가끔 고향에 들를 때마다 허전하고 답답한 마음에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곤 한다. 어릴 적 동무들과 지나새나 뛰놀던 정잣걸로 탈막등으로, 마을을 감돌아 그림같이 펼쳐진 희고 깨끗한 백사장으로, 여름이면 발가벗고 물장난하던 집너머 방구 아래로, 할머니 어머니 땡볕에서 호미질하시던 갓골밭으로, 어디든 발 가는 대로 가슴 아린 추억의 그림자를 찾아다닌다.
지난봄 어느 날 봉화 오전댐 부근 내성천 발원지를 출발,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본 줄기와 만나는 예천 삼강리까지 109.5㎞의 물길을 따라 3일간 걸었다. 내성천의 무심한 흐름, 그리고 그 무심을 품은 수변공간은 아름답고 명상적이다. 맑은 물길 여기저기에 하얀 모랫벌을 펼치며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다. 우리 인간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터전으로서의 강, 그 침묵의 흐름은 천년만년 어떤 꾸밈도 없이 이어져 왔고 그 자연성으로 인간의 무지를 깨우치고 보답하고 함께해 왔다. 강물은 '댐'이니 '보'니 하는 억지 개발논리에 따라 멈추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야 한다. 그것이 물의 속성이며 존재 이유이다. 내성천은 자연 그대로 흘러야 한다.
장준문 조각가'전 동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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