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고양이가 숨겨 놓은 보석

우리 집의 두 고양이는 좋아하는 낮잠 장소가 서로 다르다. 늘 폭신하고 어둡고 따뜻한 곳을 잠자리로 선호하는 체셔와는 달리, 앨리샤는 바닥이 차고 딱딱한 장소라도 사람과 가깝고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면 늘 책상 위로 뛰어올라와 모니터 뒤에 자리 잡고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모니터 아래로 발을 삐죽이 내밀고 내가 발을 만져도 모를 정도로 한잠에 빠진다. 종이를 침대 삼고 책을 베개 삼아 세상 모르고 쿨쿨 자고 있는 녀석을 볼 때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이렇게 앨리샤가 모니터 뒤에서 잘 때 내 몸을 기울여 모니터 뒤에 숨겨진 앨리샤의 얼굴을 마주하면 '냥' 하면서 보란듯이 몸을 발라당 뒤집는다.

이런 앨리샤의 행동과 부드러운 털의 촉감은 내 일상의 소소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때마다 깜박이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앨리샤의 하늘빛 눈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나도 모르게 하던 일을 멈추고 자꾸 모니터 뒤의 앨리샤를 쳐다보게 된다.

보면 볼수록 고양이의 눈은 정말 묘하다.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고양이 눈의 변화는 신기하고도 매력적이다. 일반적으로 고양이의 동공은 빛의 양이 많은 한낮엔 수직으로 가늘어지고 밤이 되면 동그랗게 커진다. 낮의 고양이의 눈은 건드리면 부서져서 화낼 것만 같은 차가운 유리알 같은 가늘고 긴 눈이다.

가끔 낮의 고양이의 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차갑게 느껴지는 고양이의 그 눈매는 잠시 뿐이다. 대부분 고양이들이 낮잠 잘 장소 물색이 끝나면 매섭던 눈매는 자취를 감추고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졸기 시작한다. 그리고 태양빛이 조금씩 줄어들면 만화에나 나올법한 귀엽고 동글동글한 눈으로 변신한다. 의젓한 체셔 어르신의 눈매도 한밤중에 보면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귀여운 개구쟁이의 눈빛 바로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앨리샤의 눈매는 조금 다른 편이다. 처음에 우리 집에 오고 몇 개월 동안은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동공이 가늘어지지가 않았다. 신기하게 여겨 관찰해본 결과 대낮엔 대부분 동공이 가늘어져 있는 체셔와 달리 앨리샤는 사람인마냥 동공이 작아지긴 했지만 창가나 베란다에서 볕을 쬐지 않는 이상 쉽사리 동공이 가늘어지진 않았다.

한낮에도 '장화 신은 고양이'에나 나올법한 동글동글한 눈망울을 보며 오빠와 나는 '너 고양이 아니지? 너 정체가 뭐야' 하며 앨리샤를 놀리곤 했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낮에도 앨리샤의 눈은 동그랗다. 그 눈이 마치 하늘빛 유리알 속에 흑진주를 박아놓은 듯해서 한 번 쳐다보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가 어렵다.

얼마 전 동물병원에 갔을 때 수의사 선생님이 앨리샤의 눈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 주셨다. 이어 '너무 예쁜 루비색이에요'라는 말에 순간 의아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눈 색이 아니라 눈 안쪽에 있는 반사층(타페텀'tapetum)의 빛깔이라는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다. 반사층의 빛깔은 어두운 밤에 빛에 반사되어 반짝일 때 나타나는 색으로 고양이마다 조금씩 다른데, 앨리샤의 경우엔 루비색이라는 이야기였다.

궁금한 마음에 집에 와서 두 녀석의 눈을 비교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옅은 노란색을 띤 체셔의 눈은 빛이 반사되면서 녹색 빛이 나타났고, 앨리샤의 눈엔 붉은 빛이 나타났다. 빛의 장난으로 인해 나타나는 빛깔이긴 했지만 그 순간 나는 정말 누군가가 숨겨놓은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고양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숨겨놓은 눈 속의 보석,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다른 보석들보다 바로 고양이의 눈이 더욱 더 황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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