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향가 '혜성가'에는 "옛날 동해가에/ 건달바(乾達婆)가 놀던 성을 바라보고/ '왜군이 왔다'고/ 봉화를 든 일이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건달바'는 산스크리트어 간다르파(Gandarva)를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인도 신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오는 신을 칭한다. 건달바는 향기만 맡으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음악을 연주하고 살았으며,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와 비슷한 신이다. 인도의 조각 중에는 건달바를 사자탈을 쓴 형태로 그린 작품들도 있는데, 이는 헤라클레스의 모습과 유사해서 그 연관성을 찾기도 한다.
건달바는 이후 불교에 수용되면서 불법을 지키는 신인 천룡팔부의 하나가 된다. 조선시대 때 불경을 번역한 책인 석보상절에는 "팔부는 여덟 부류이니 천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이니… 건달바는 향내를 맡는다 하는 뜻이니, 하늘 음악을 하는 신령인데, 하늘에 있어 음악 하려 할 때면 이 신령이 향내 맡고 올라가느니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건달바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신이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인도나 우리나라나 건달바를 사람들의 별명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는 건달바가 사람들과 가깝고 친근한 신으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도의 경우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음악만 연주하며 사는 악사(樂士)나 배우들을 건달바라고 불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생업은 없으며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잘 놀고 다니는 사람들'을 건달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것이 '건달'이 되었다.(이렇게 보면 요즘 방송에서는 건달바들을 참 많이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찬사가 될 수 있는 별명을 붙일 수 있다는 것에서 옛날 사람들의 정신적 여유를 엿볼 수 있다. 그러다가 점점 '난봉이나 부리고 다니는 불량한 사람'을 칭하게 되고, 요즘에는 아예 조직폭력배를 건달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건달이라고 불리던 사람, 그들에게 건달이라는 이름을 붙이던 사람들의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건달바의 원래 말인 간다르파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멋진 마법사 '간달프'이다. 간달프가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이름이니 간다르파와는 그냥 우연히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대 인도어가 유럽어와 공통점이 많아 같은 어족(語族)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건달과 간달프가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근거는 충분하다. 영화 '친구'를 패러디해서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간달픕니더."라고 말하던 코미디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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