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설향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흔히 '먹거리는 다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철도 이제는 옛말'로 통할 정도로 계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봄철 과일로 인식되어 온 딸기가 눈에 띄는 사례다. 다양한 품종 개량과 비닐하우스 재배, 스마트 농법 등 환경의 변화가 작물의 제철을 봄에서 겨울로 앞당긴 것이 그 배경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여자 컬링 대표팀 선수가 "한국 딸기가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는 방송 인터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정치권과 농업단체들은 이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사이토 농림수산성 장관이 "일본 품종을 이종 교배해 만든 새 브랜드"라는 친절한(?) 배경 설명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문제의 딸기 품종이 현재 국내 딸기의 대세인 '설향'이다. 현재 금실, 아리향, 킹스베리, 관하, 장희, 죽향 등 다양한 딸기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나 값싸고 달콤새콤한 맛, 짙은 향 등에서 설향을 따라올 딸기가 없어 '국민 딸기'라는 별칭이 허세는 아닌 것 같다. 오랜 세월 겨울 과일의 아성을 지켜온 감귤과 사과의 명성을 밀어낼 정도로 딸기가 이제 '겨울 제철 과일'의 지위를 탄탄하게 다지고 있다.

설향은 지난 2005년 논산시에 위치한 충청남도 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가 개발해 보급한 품종이다. 현재 국내 딸기 시장의 84%를 차지한다. 설향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장희(아키히메)나 육보(레드펄) 등 일본 딸기 품종이 국내 시장의 80%를 넘게 차지할 만큼 기세등등했지만 설향의 등장으로 전세가 단숨에 역전됐고, 동남아 등 세계 시장에서 설향 등 한국 딸기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일본 여자 컬링팀 스즈키 유미 선수의 '딸기 발언' 뒷이야기다. 하필 일본컬링협회 주요 후원사가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였는데 올림픽 이후 열린 국내 대회 참가 팀에게 9개 딸기 종류별로 모두 180상자가 배달되었다고 한다. 선수들이 일본 딸기 홍보에 앞장서고 '일본 딸기가 더 맛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혐한' 정서가 딸기에 투영돼 자국 대표선수를 '이지메'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마디로 일본 사회의 비틀리고 저속한 집단 감정, 소시오패스적 심리 상태를 딸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래저래 딸기가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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