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생의 탄생과 인동 장씨
〈2〉 짧은 수학기, 드높은 학문적 지향
〈3〉 잇단 슬픔과 굴곡진 삶의 여정
〈4〉 관직의 길 오르다
〈5〉 학문 연구와 강학의 기틀 마련하다
〈6〉 강학 통해 문인 배출하다
〈7〉 서원과 향교의 재건, 그리고 선현추숭사업
〈8〉 인조반정과 산림으로의 징소
〈9〉 광대한 학문체계를 집대성하다
〈10〉 위대한 학자, 영원한 스승으로 기억되다
여헌 선생은 60대 말부터 80대 초반까지 10여년에 걸쳐 성리학에 대한 방대한 저술작업을 진행했다. 이미 10대 때 우주요괄첩을 펴내면서 평설, 역학도설, 경위설, 만학요회, 역괘총설, 태극설, 도서 발휘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특히 그는 독특한 성리설을 주장했다. 조선 500년 동안 거의 모든 성리학자가 이기(理氣)를 논함에 있어 사람은 이(理)에, 말은 기(氣)에 비유하는 송대(宋代)의 인마설(人馬說)을 따랐으나, 이를 배격하고 이는 경(經), 기는 위(緯)에 비유하는 이기경위설(理氣經緯說)을 주창했다.
이 이론을 누구나 알기 쉽게 베 짜는 데 비유했다. 원래 하나인 실을 세로로 사용하면 날실(經)이 되고 가로로 사용하면 씨실(緯)이 되어 베(道)라는 것이 된다. 날(經)은 이(理)로 체(體)가 되고, 씨(緯)는 기(氣)로 용(用)이 된다. 날실과 씨실의 교호작용(交互作用)에 의해서 베가 짜이듯이 이(理)와 기(氣)가 상호작용(相互作用)하여 도(道)가 생성(生成)된다고 했다.
한평생 역학 연구에 몰두해 잘못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학설을 종합 정리한 것이 역학도설(易學圖說) 9권이다.
역학도설은 그리 쉽게 완성되지 못했다. 성리학의 역학적 관점, 즉 의리역의 입장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자신이 진행한 깊이 있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이룩한 역학적 성취를 이 책에 반영했다.
이렇듯 방대하면서도 규모를 갖춘 역학도설은 독자성과 창의성을 드러낸 결과이자 성리학의 우주론과 역학을 결합해 세계관과 인생관, 나아가 학문체계를 구성하려고 한 그의 학문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조 9년 78세에는 우주설(宇宙說)을 저술했다. 이 이론은 대지가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이며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현대 과학자들은 그의 우주설은 중국 송대 성리학자들의 논의를 훌쩍 뛰어넘어 세련되고 독창적인 것으로 재평가했다. 이러한 과학적 논리는 후대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여헌 선생의 영정이 안내문과 함께 국립과천과학관에 진열되었다.
이밖에 '경위설(經緯說)', '만학요회(晩學要會)', '역괘총설', '태극설' 등으로 나타난다.
만학요회는 제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분합의 논리를 적용한 저술로써 그 의미를 갖는다. 이간, 근사, 분합 등 3편으로 구성됐다.
역괘총설은 태극으로부터 양의, 사상, 팔괘, 육십사괘까지의 성립 이치와 역의 의미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태극설은 주희의 태극설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제시했다. 태극이 단순히 천지 만물의 원리나 법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도덕의 근원임을 분명히 했다.
여헌 선생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광대한 학문체계로 학문의 결실을 보면서 조선 성리학계의 거봉으로 우뚝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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