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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코로나19와 문명 대전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 워싱턴 주 커클랜드의 요양시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 워싱턴 주 커클랜드의 요양시설 '라이프 케어 센터'에서 지난 1일 의료진이 환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지난해 10월 18일 미국 뉴욕에서 '이벤트 201'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당시 큰 주목을 못 끌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깜짝 놀랄 프로그램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안전센터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세계경제포럼과 감염병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행사에서는 가상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박쥐→돼지→사람으로 전파되는 것을 가정한 도상 훈련이었다.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브라질 돼지농장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로 확산된다. 이 바이러스는 2002년 중국에서 발원해 29개국으로 퍼진 사스(SARS)를 모델로 삼았지만 전염력이 훨씬 높다. 감염자는 매주 두 배씩 증가하는데 어떤 정부도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한다. 첫해에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6천50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인류의 80~90%가 노출되는 18개월이 돼서야 사태는 종식된다.

지금 세계를 충격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발생 몇 개월 전에 족집게처럼 예시한 행사가 있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발원지가 중국이고, 박쥐와 인간 간 매개동물이 천산갑이라는 점을 빼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벤트 201 도상 훈련이 가정한 처음 몇 달 상황과 판박이처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날 행사에 돈을 댄 사람은 뜻밖에도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이라며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2000년에 설립했다. 그는 지난해 촬영돼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코로나바이러스를 해설한다'에도 출연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게이츠는 팬데믹에 대해 거듭 경고한다. "세상은 아직 준비를 못 했다." 그의 경고는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이후에도 인류에겐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중국 정부가 은폐·축소에 급급하지 않고 3주만 빨리 공개 대응에 나섰다면 중국 내 확산 지역을 95% 이상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국에서 터진 상황을 본 세계의 감염병 전문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막기 위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각국 정부는 귀를 닫았다.

코로나19는 충격과 공포 속에 이기심, 편견, 혐오, 각국도생(各國圖生) 등 인류의 민낯도 끌어냈다. 세계 양강 국가라는 G2의 현주소를 보자. 어영부영하다가 미국은 확진자·사망자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중국은 축소·은폐 의혹에다 바이러스 유출 의혹까지 받는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두 나라는 아웅다웅하며 네 탓 타령을 하고 있다.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던 선진국들도 부실한 공공의료와 팬데믹에 전혀 힘을 못 쓰는 영리 의료 시스템, 정부 부문의 무능을 속속 드러냈다.

코로나19의 공식 명칭은 'SARS-COV-2'다. 풀어보자면 '사스2'라는 뜻이다. 2002년 발생한 사스는 팬데믹으로까지 번지지 않았다. 이름이 운명을 정한다면 코로나19는 '사스의 길'을 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코로나19는 100년 전 5천만 명(추정치)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독감과 닮은 길을 가려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스페인독감 시즌2'가 돼서 절대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역설적으로 대유행병은 인류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적이 여러 번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 봉건제도를 무너뜨렸고 천연두는 17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코로나19도 21세기 문명 대전환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 길은 미지의 길이며 개척 동력원은 인류의 연대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잘 이겨내고 지구촌 삶의 대전환을 이끄는 과제가 인류에게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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