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정일의 새론새평] 낯섦, 혐오, 그리고 차별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지난 14일 대구시청 앞에서 이슬람사원 건축허가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주민들이 북구 대현동에 건립 예정인 이슬람사원의 건축허가를 취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 14일 대구시청 앞에서 이슬람사원 건축허가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주민들이 북구 대현동에 건립 예정인 이슬람사원의 건축허가를 취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서울시 한 아파트 단지 내에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섞여 있었다. 얼마 전 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외벽을 파란색으로 칠했다. 그 바람에 임대아파트 주민이 누구인지가 드러났다. 거주자가 속한 계층이 구별되었고 아파트 단지가 계층별로 분리되었다. 혹시 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구별하고 분리하기 위해 아파트 외벽에 파란색을 칠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구별과 분리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생들이 만우절에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다. 유치한 장난이지만 여기에도 차별이 숨어 있다. 교복에는 학교 이름이 표시된다. 학교 이름이 없어도 교복의 모양과 색깔로 출신 고등학교를 알 수 있다. 교복을 입으면 출신 고등학교가 드러난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오라는 것은 네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어디인지를 밝히라는 뜻이다. 왜 알아야 하는가? 명문고 출신 학생들로 내부 집단(inner circle)을 만들기 위해서다.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이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라고. 명문대학 재학생들이 학교와 학과가 드러나는 점퍼를 입는 것, 일부 S대 학생들이 지역균형선발제도로 입학한 학생들을 비하한 것도 차별의 욕망이 드러난 사례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 즉, 낯선 것을 거부한다. 익숙한 것에 대해 호감을 느끼지만 낯선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호감을 느끼는 대상을 받아들이고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은 거부하는 것이 본능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혐오로 바뀐다. 현역 군인이었던 남성이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가 강제 전역을 했다. 얼마 전 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람이 자살하기 전까지 여론이 시끄러웠다. 성전환을 혐오하는 목소리도 컸다. 태어나면서 정해진 성을 바꾸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전환은 낯선 일이었다. 낯섦이 혐오로 바뀌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한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 많은 비난이 있었다. 이 사람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라는 청원이 제기되었다.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혼 남성이 입양을 통해 가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여성을 비난했을까? 누구도 비혼 남성의 입양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낯설어한 것은 비혼 출산이 아니다. 가부장적인 남성들은 여성이 남성과의 성적 결합 없이 출산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

낯선 대상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인종과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Y대학 의대생이 수업 중에 인도 출신 교수에게 난민이냐고 말해서 논란이 되었다. 이 학생은 자신을 용으로, 교수를 가재로 생각한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아시아인 차별을 비난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월러스타인(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은 차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중심국 국민들이 준주변부 국민들을 차별하고, 준주변부 국민들이 주변부 국민들을 차별하니 말이다.

대구시 북구는 모스크(mosque) 건립으로 시끄럽다. 주민들이 소음과 악취를 이유로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 예배를 위해 사람들이 모스크에 모이면 소음과 악취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음과 악취는 교회, 성당, 사찰에서도 발생한다. 다른 종교에 비해 이슬람 예배가 더 시끄럽거나 악취가 더 심할 이유는 없다. 대구시 북구에는 이미 다양한 종교시설이 존재한다. 모스크 건립만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우리에게 이슬람은 낯선 종교다. 혹시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는 이유가 낯선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혐오 때문은 아닌가?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위대한 윤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행복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신중(愼重)의 미덕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공정(公正)과 자혜(慈惠)의 미덕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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