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믹에게 웃으면서 안녕

'나는 울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뱃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마치 대포알이 내 몸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간 것 같았다.('믹에게 웃으면서 안녕' 중)'

어린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해야 할 때만큼 난감한 일도 없다. 애지중지 기르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나 가까운 누군가가 죽었을 때가 그렇다. 인기 연예인의 갑작스런 죽음도 큰 충격이다. 친구나 가족의 갑작스런 사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을 이제 더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가 말이다. '하늘나라로 갔다'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애둘러 말해 보지만 이는 '어른의' 표현일 뿐이다.

어쩌면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떤 이의 이름을 입밖에 내는 일이 어느새 금기가 되고 하룻밤 새 공허해진 주변의 공기에서 어렴풋이 죽음을 느낀다. 이런 상실감은 자칫 어린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된다. '혹시 나 때문에' 라는 죄책감마저 더하면 심각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기도 한다.

신간 서가에서 '믹에게 웃으면서 안녕'(바바라 파크 글/웅진주니어 펴냄)을 골라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려왔다. 주인공은 자전거 사고로 남자 동생 '믹'을 떠나 보낸 어린 소녀, 포엡 하르테다.

'나는 달렸다. 사고가 났던 그 곳으로. 내가 바란 것은 내 동생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믹이 죽은 장소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믹이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곳으로 달려간 것이다.'

소녀는 충격에 빠진 가족들의 달라진 일상에서 동생의 죽음을 실감한다. 빵도 똑같은 크기로 구울 정도로 애정이 넘쳤던 어머니는 '무기력한 시체처럼' 변해 버렸고, 새로 다린 바지가 구겨질까봐 걱정하던 아버지는 꾀죄죄한 사람으로 몰라보게 달라졌다. 불과 며칠 사이에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 돼 버렸다.

아무리 좋은 말로 죽음을 미화해도 소녀의 상실감은 더욱 커질 뿐이다. '나는 눈을 감고서도 믹을 떠올리고, 믹이 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하늘'이라는 말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 대체 하늘이 뭔데? 그게 어디에 있는 건데? 그리고 거기서는 뭘 하는데?'

죽음이라는 것은 어른에게도 받아들이기 고통스런 일이다. 하물며 어린 아이에게는 더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죽음을 소리 죽여 받아들이고 마냥 숙연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동생이 숨진 이후 한 달 동안 때론 울고 때론 화내면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소녀의 모습에서 공감과 안도감을 느낀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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