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신분증과 도장을 머리맡에 두고 잤지. 몇년 만에 처음으로 투표를 한다는 생각에 들떠 잠도 제대로 못 잤어."
9일 오전 9시 대구 달서구 월성주공3단지 투표소. 고준수(77·뇌병변장애)씨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리프트가 장착된 특수차량에서 내려 투표소로 들어섰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만 환한 웃음을 짓는 고씨에게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조그만 공구방을 운영하던 그는 6년 전 갑작스런 뇌출혈로 하루아침에 뇌병변 1급 장애인이 됐다. 오른쪽 팔과 다리는 움직일 수 없게 됐고 뇌수술을 받은 후 5년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가 무사히 투표를 마칠 수 있었던 데는 달서구장애인이동지원센터의 도움이 컸다.
달서구청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고씨를 상담하러 병원에 들렀다가 '죽기 전에 투표라도 한번 내 손으로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방법을 수소문했다. 이동센터 측은 휠체어를 자동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개조한 승합차를 고씨를 위해 내줬다.
그는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 왜 그동안 아프다는 이유로 투표를 포기했는지 후회스럽다"며 "투표에서는 부자나 가난뱅이, 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평등한 한표라는 게 좋다"고 했다.
고씨는 투표를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내 손으로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는 게 얼마나 큰 권리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며 휠체어에 오르는 고씨의 표정은 상쾌해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8대 총선 유권자 가운데 고씨와 같은 장애인 유권자(4급 이상)는 81만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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