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디오 4대 프린트물… "이게 작품이야?"

체코현대미술전

바르보라 클리모바 작
바르보라 클리모바 작 'Replaced'

전시장 입구에 한 남자가 매달려 있다. '매달린 남자'(Man Hanging Out)라는 제목의 조형물. 당초 건물 밖에 매달려고 했지만 앞서 서울대 전시에서 강풍에 손 부분이 떨어져나간 탓에 철사로 손목을 묶어 전시장 입구에 달아두었다. 체코 작가 다비드 체르니의 작품. 체르니는 원래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포르말린이 든 수조에 상어를 담아둔 작품)를 인용해 포박당한 사담 후세인의 형상을 매달아 유명해진 작가다. 체르니를 비롯한 9명의 체코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경북대 미술관에서 8월20일까지 선보인다.

전시회 제목은 '체코현대미술전 : 할루페츠키상 수상 젊은 작가들'전. 이번 전시는 인드르지흐 할루페츠키 미술상을 받은 작가 19명 중 9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체코라는 다소 낯선 나라 출신의 작가라는 점 외에도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생소하다. 일단 지역에서 보기 드문 설치미술이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가면 '도대체 이게 무슨 작품이야?'라고 의아하게 여길만큼 생경스럽다.

자동차 후드 위에 마치 죽은 듯이 누워있는 한 남자와 그 앞에서 태연히 모이를 쫓는 비둘기를 담은 비디오 작품을 내놓은 라딤 라부다, 작품의 메시지를 적어놓은 긴 고무 테이프로 마치 '폴리스 라인'을 만들 듯이 공간 속에 공간을 만든 얀 만추시카, 그리고 프로젝트 영상과 기괴한 음향효과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미할 페초우체크의 작품 '프람 룸(Pram Room)'. 전시장 가운데 4대의 비디오를 통해 작품을 보여주는 바르보라 클리모바도 있다. 화면 속 자막을 찬찬히 읽다보면 웃음이 나온다. 프라하의 길거리에 엎드린 한 남자.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무심한 자동차. 작가는 "거리를 다닐 때조차 신호를 따라야 한다. 거리는 자동차에 빼앗겼다"고 읊조린다.

토마시 바녝의 작품은 어떤가. '테이프를 쓸 때마다 끄트머리를 못 찾는다, 가끔은 몇 초 전부터 전화가 올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시계를 자주 보면 시간이 늦게 간다'. 일상에서 겪는 흔한 경험들을 벽에 적어놓았다. 그게 전부다. 작가가 모아놓은 이런 글귀들이 가득 적힌 프린트물이 쌓여있다. 물론 가져가도 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주소까지 적어놓았다.

경북대 미술관 이남미 큐레이터는 "이색적인 작품인만큼 색다른 감상법이 필요하다"며 "비디오 작품은 편당 2~10분 가량 감상이 필요하고, 찬찬히 보고 읽고 느끼야 작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만큼 넉넉한 시간을 갖고 감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일 개막일에 직접 찾아와 작품 진열까지 상세하게 지시할 만큼 이번 전시에 애착을 갖고 있는 야로슬라브 올샤 주한체코대사는 "유머, 논란, 아이러니는 전통적으로 중요한 체코의 성향들"이라며 "이런 성향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체코 예술에서 볼 수 있으며, 젊은 체코 예술가들 사이에 큰 호평을 받는 인드르지흐 할루페츠키상 수상자 중에서 유럽과 세계의 예술계에서 명성을 떨치게 될 인물이 나올 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인드르지흐 할루페츠키상은 체코의 존경받는 미술 비평가이자 철학자 이름을 땄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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