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日帝)가 아니었다. 일제 치하 대구 교육계와 지역사회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한 헌신과 엄청난 교육 기부를 한 김울산 할머니를 그냥 '잊힌 여성'으로 만든 것은 총칼을 앞세운 적들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들이었다.
대구 교육계를 포함한 대구사회가 김울산 할머니의 숭고한 뜻을 외면했다. 일제강점기 때 다시 광복을 되찾기를 바라는 절대적 소원을 교명에 담은 복명초등학교를 세운 김울산 할머니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거룩한 창학(創學) 정신'은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시대적 변화를 앞세운 교육계의 단견 때문에 거부의 몸짓 한번 써보지 못하고 1926년 개교한 지 47년 만인 1973년 2월 폐교라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아무도 울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구사회를 위해 큰 족적을 남긴 김울산 여사와 복명학교는 그렇게 잊혔다. 살아서 과감하게 선택한 희생에 대해서 후대가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죽음도 불사하는 고초를 택하고, 어느 누가 사비를 몽땅 털어 인재양성을 위한 학교를 짓겠는가.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대구가 김울산 할머니에 관한 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김울산 할머니는 그냥 대구가 하는 꼴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문들이 일어나 복교 운동을 펼쳤다. 다행스럽게 1982년에 재개교됐고, 1999년에는 범물동으로 이전했다. 김울산 할머니가 온 생을 바쳐 마련했던 복명초교 벽돌집은 아미산 자락에서 '학생이 모자란다'는 눈앞의 현실 하나만으로 문을 닫고, 경혜여중으로 바뀌었다가, 대구 동부교육청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헐리고 흔적조차 사라졌다.
지금으로 따지면 200억~300억 원을 희사하여 복명초교를 인수하고, 종로초등학교의 전신인 희도학교에도 거금을 쾌척했으며, 홍수 범람으로 생긴 대구 이재민을 위해 쌀 2천 석을 내놓았던 여장부 김울산 할머니에 대한 반성문이 70년 만에 쓰이고 있다.
지난 3월 대구 동부교육청(교육장 권충현)은 청 내 벽오동 나무에 김울산 나무 명명식을 했다. 대구시교육청(교육감 우동기)은 김울산 여사 자서전 발간을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관장으로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의뢰하기로 확정 짓고, 원활한 기념사업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22일 오후에 가졌다. 만시지탄이지만,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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