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은 활에 대한 역사와 전통, 인프라를 모두 갖춘 전국 유일의 고장이다. 예천읍 왕신리에서 조궁술(활 만드는 기술)을 익힌 명장들이 전국으로 퍼져 국궁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국궁의 뒷받침 속에 김진호 선수가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을 차지해 활의 고장 예천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쳤다. 지금은 김진호 선수의 이름을 딴 진호국제양궁장에서 매년 11~14차례 전국 및 도 단위 양궁대회가 열리는 등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에 예천군은 전국 최초로 활을 주제로 한 축제를 열고, 지역 궁도인들의 염원인 한국양궁원을 지역에 유치하는 등 새로운 부활을 꿈꾼다. 신도청시대를 맞아 '예천세계활축제'를 통해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활의 고장 예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예천의 '활'
영화 '최종병기 활'에 이어 최근 전통 활이 등장하는 영화 '군도' '명량' '해적' 등이 올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활을 주제로 한 모바일 게임들도 속속 생겨나 스마트폰 이용자 및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만큼 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크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활의 DNA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곳이 바로 경북 예천이다. 예천은 활을 사랑하고 활쏘기를 즐긴 활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사내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거는 금줄에 고추 대신 활을 걸어놓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예천 사람들의 활 사랑은 남다르다.
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예천 활은 안동 권씨 예천읍 왕산골(왕신리) 입향조인 권계황이 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효시가 됐다. 지금은 후손들에 의해 면면히 계승돼 왕산골에서 조궁술을 익힌 명장들이 서울'영주'전주'마산'천안 등지로 흩어져 국궁의 맥을 잇고 있다.
예천에는 고(故) 송강 권영록 명장(1916~1986)이 1971년 지역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활을 만드는 장인)으로 지정받아 각궁 보급에 매진해 왔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권 명장이 만든 활을 사용했을 정도로 예천 활은 유명했다.
지금은 4대째 120년의 가업을 잇고 있는 궁장 경북무형문화재 6호인 권영학(72) 씨가 명장(名匠), 명궁(名弓), 명무(名武)로 국궁 동호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으며, 궁장 이수자인 김성락(45) 씨가 예천읍 왕산리 예천국궁전수관에서 전통 활 제작에 앞장서고 있다.
예천 출신인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고 김박영(1933~2011) 명장이 경기도 부천에서 활 생산에 매진했고, 왕산골 출신의 서울시무형문화재 23호 궁장 권무석(72) 씨도 예천과 서울을 오가며 활 생산에 전념하고 있다. 이 밖에 고 권영록 명장의 친동생인 권영덕(영주) 궁장을 비롯해 권오철(전주), 권영무(천안), 권오수(마산) 궁장이 전국 각지에서 예천 활 보급과 국궁의 저변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대한궁도협회 관계자는 "예천은 활 쏘는 민족의 기와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명실상부 활의 고장"이라며 "현재도 예천 활이 전국 국궁 수요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예천 활의 우수성은 대단하다"고 했다.
◆50년 고집 '궁장'에게 듣는 예천 전통 활 제작 방법
"국궁과 양궁의 공통점은 사람은 활을 이기고 활은 화살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활과 화살이 삼위일체가 돼 무아의 세계에서 오직 과녁의 중심만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활을 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활의 고장 예천에서 50년 동안 전통 활을 제작해 오고 있는 경북무형문화재 6호 권영학 궁장이 항상 활을 쏘기 전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말이다. 권 궁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활 제작 기술과 활 솜씨를 가진 무인이자 장인이다.
권 궁장은 "적은 표적이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표적이 가깝게 보이는 무아의 순간에 화살을 놓아 보내야 한다"며 "화살이 과녁의 중심으로 마음과 정신을 조용하게 싣고 가는 것임을 깨닫는 자만이 명궁의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전통 활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단궁, 장궁, 복합궁으로 분류되며 목궁, 철궁 등 10종류로 나뉜다. 지금은 물소뿔로 만드는 각궁만 남았다. 예천 활은 대표적인 각궁이다. 길이는 단궁이며, 구조상으로는 목편'죽편'각편 등을 모두 사용해 만드는 복합궁이다.
주재료로는 물소뿔, 산뽕나무, 대나무, 쇠심줄, 민어 부레, 화피(벚나무껍질), 명주실 등 7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활은 습하지 않은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만들며 활 한 장을 만드는 데 300번 이상 손이 가야 하는 정성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활 제작 과정은 가장 먼저 대나무를 잘라 구워서 평면이 되도록 펴 준다. 그런 뒤 몸통인 대나무의 양끝에 뽕나무를 연결하고 참나무를 손잡이 부분인 가운데 붙인다. 그리고 활 가운데 물소뿔을 붙이고 바깥쪽에 민어 부레 풀과 배합한 소 힘줄을 붙여준다. 끝으로 자작나무 껍질을 겉에 붙이면 예천 전통 활이 완성된다.
권영학 궁장은 "예천 활의 특징은 활대에 있다. 대나무와 산뽕나무로 이루어진 기본 활대 안팎으로 참나무와 물소뿔을 접착시켜서 활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완성된 활이라도 활의 균형과 대칭을 맞추기 위해서는 활과 씨름을 하다시피 잡아당기고 구부리기를 수십 번 반복해야 빼어난 탄력을 지닌 훌륭한 예천 활이 만들어 진다"고 했다.
◆국궁의 뒷받침 속에 세계무대 우뚝 선 예천의 '양궁'
'산골 소녀가 세계를 제패하다.' 1979년 7월 18일 매일신문 1면 톱기사에 실린 제목이다. 주인공은 바로 예천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자양궁 국가대표 김진호 선수.
김 선수는 당시 베를린에서 개막한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학교 1년 선배인 황숙주 선수와 함께 여자단체전 1위를 차지했다. 또 김 선수는 개인전에서도 금 4개와 은 1개를 획득, 대회 5관왕으로 단숨에 세계 최고의 명궁으로 떠올랐다.
활의 DNA를 지닌 예천은 이때부터 세계적인 양궁 도시로 거듭났다. 예천에 양궁이 유입된 지 6년 만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한국 여자양궁 국가대표를 지낸 예천 출신 서은정, 한희정, 윤옥희 선수 등은 당시 예천의 초등학교에서 활 시위를 당기며 연습에 매진하던 시대였다.
예천 양궁은 1973년 3월 예천여자중학교에 양궁부가 창단되면서 처음 소개됐다. 당시 예천여중 장기오 교장과 권영학 궁장 등을 중심으로 지역에 뜻있는 유지들이 힘을 모아 양궁 발전의 가능성을 보고 팀을 창단했다. 이어 1975년 1월에는 예천여중의 병설교인 예천여고에 양궁부가 창단되고 1979년 3월에 예천중학교, 1980년 3월에 예천동부초, 1982년 12월에 예천초에 각각 양궁부가 창단됐다. 예천군은 1983년 예천군청팀을 창단하고 문형철 감독을 영입해 호진수, 김미자, 김성남, 안승현, 장용호, 한희정, 김수녕, 최남옥, 김석관, 최원종, 윤옥희 등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하며 한국 양궁계를 이끌었다.
예천이 세계적인 양궁의 메카로 우뚝 서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고 이병탁(1936~2008) 회장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87년부터 21년간 경북양궁협회장을 맡아 왔으며 1980년 한국실업양궁연맹을 창설해 1'2대 회장, 한국중고연맹 33'34대 회장을 역임했다. 1981년 8월 사비 5천만원을 들여 예천군청 남녀 양궁실업팀을 창단해 양궁의 고장 예천의 근간을 다졌으며, 30여 년 동안 양궁과 체육 발전을 위해 매년 5천여만원 이상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양궁을 세계 최고로 만든 장본인인 동시에 예천 양궁의 대부로 예천궁도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현재는 한국중고양궁연맹 회장인 이현준 예천군수를 중심으로 김도영 경북양궁협회 회장이 함께 보조를 맞춰 예천 양궁의 화려한 꽃을 피워 나가고 있다.
김도영 경북양궁협회 회장은 "이병탁 회장은 한국 양궁을 세계무대에 우뚝 세운 주인공인 동시에 예천양궁의 대부"라며 "특히 예천진호국제양궁장 건립과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양궁 종목 예천 유치에 큰 공을 세워 정심상, 경북문화상,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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