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푸시킨에게

푸시킨.

나는 오늘 아침도 공원 산책길 당신의 시비(詩碑) 앞에 섰습니다. 하늘은 맑고 연못은 고요합니다. 오리들은 한가롭게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연못 저쪽 시비 맞은편으로 현수막 하나가 보이는군요.

'치매 할머니 찾음. 82세. 환자복 차림. 키가 작고 머리는 짧음. 연락처 ×××.'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뛰쳐나간 듯합니다. 날씨도 찬데 환자복 차림으로 어디를 갔을까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요양병원을 두고는 의견이 많습니다. 합리적인 복지시설로 인식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요.

우리는 고려장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꽃구경 가자고 속여 지게에 업습니다. 지게에 업힌 어머니는 마을을 지나고 숲길이 짙어지자 솔잎을 따서 길바닥에 뿌리며 가지요. "어머니 어머니, 꽃구경 안 하고 뭐 하세요" 아들이 물으니, "너 돌아갈 때 산길 잃고 헤맬까 표시를 해 두는 거란다"고 대답하는 어머니.

푸시킨. 당신은 말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이 말에 위안을 얻는지요. 삶은 거칠고 녹록지 않습니다. 환자복 차림으로 뛰쳐나간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어머니를 잃고 현수막을 건 자식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요.

젊은 부부가 팻말을 하나 들고 와 당신의 시비 옆에 꽂고 갑니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군요. '강아지 찾음. 포메라니안. 3세. 후한 사례 보장. 연락처 ×××.'

이번에는 강아지가 집을 나간 모양입니다. 나는 두 현수막을 비교해 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강아지에는 치매 할머니에게 없는 '후한 사례'가 있군요. 젊은 부부의 애타는 표정으로 보아 약속은 지켜질 것 같습니다.

열 살가량의 남자 아이가 팻말 앞을 지나다 멈춥니다. 사진과 같은 종(種)의 강아지를 안고 있습니다. 맞은편의 할머니 현수막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힘차게 펄럭이지만 아이는 이미 '후한 사례'에 마음을 빼앗긴 눈치입니다.

연락처를 향해 기분 좋게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아이의 등 뒤에서 푸시킨, 당신에게 묻습니다. 치매 할머니에게 미래는 무엇일까요. 당신이 말하는 기쁨의 날은 언제쯤이면 올까요.

小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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