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은 미숭산 정상을 넘어 합천군 야로면 월광마을로 내려온다. 신비의 땅 합천이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합천 해인사를 지척에 두고 있어 마음은 한결 가볍다.
순례의 길 마지막 코스는 합천군 야로면에서 해인사 소리길까지 구간이다. 이 길은 천년을 이어오면서 팔만대장경의 역사'문화가 공존하는 길이다. 홍류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고찰 해인사가 있다. 순례의 길과 성찰의 길은 이곳에서 만난다.
◆달빛에 녹아든 망국의 한
미숭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중나대와 관모봉을 거쳐 2.4㎞ 내려오면 합천군 야로면 월광마을이다.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은 마지막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월광사(月光寺)에 도착했다.
월광사 자승 스님은 환암 스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지금은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세웠다는 월광사는 사라지고 작은 절을 지어놓고 월광사라 하고 있다. 옛 월광사 자리에는 삼층석탑 2개만 천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
아득한 풍경소리 어느 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 달빛 쌍탑 위에 물이 들어
모듬내 맑은 물줄기 새 아침을 열었네.
월광사 앞 돌에 새겨진 글이다. 시간의 흘러감을 애잔하게 노래한 짧은 글이다.
월광사 앞 소나무 숲에 말없이 서 있는 두 개의 석탑. 보물 제129호인 월광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 쌍탑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이중기단에 삼층 몸돌을 갖춘 전형적인 신라 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탑의 높이는 5.5m이다. 천년 풍상을 견뎠을 절의 삼층석탑도 태자의 한이 아로새겨진 것처럼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월광사는 대가야의 월광태자가 망국의 한을 달랬던 곳이다.
절은 푸근한 가야산을 뒤에 두고, 가야산 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야천(안림천)과 남북으로 흐르는 이천천이 모로 만나는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태자는 나라 잃은 설움과 아픔을 삭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대가야의 월광태자는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의 10세손이며, 아버지는 이뇌왕(異腦王). 이뇌왕은 신라에 청혼, 이찬 비지배(比枝輩)의 딸을 맞아 태자를 낳았다. 두 나라가 혼인을 통해 동맹관계를 맺었으나, 후에 동맹을 깨뜨린 신라에 의해 562년(진흥왕 23년) 대가야가 멸망했다.
이 책에는 월광태자가 월광사를 창건했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522∼529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월광태자는 562년 대가야가 멸망하는 것을 전후로 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또 동국여지승람 합천 월광사 조에 의하면 '진흥왕 23년(562) 신라가 공격하자 대가야의 월광태자가 끝까지 저항하다가 전사한 곳이며, 최후의 싸움터였던 곳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다'라고 표기돼 있다.
환암 스님은 월광사지 삼층석탑을 쓰다듬고 있는 달빛의 흔적을 느끼고 있다. 석탑의 곳곳에 달빛이 스며들어 있다. 그건 세월의 흔적 같은 것. 빛이 탑을 비추는 날에는 그리움도 함께 부서져 내릴 것이다.
그렇게 월광태자를 생각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환암 스님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월광사를 뒤로하고 해인사 쪽으로 8㎞가량 올라가면 대장경테마파크가 있다. 경상남도와 합천군, 해인사는 초조대장경 간행 1천 년을 맞은 2011년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을 개최하면서 대장경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이곳은 팔만대장경의 역사'문화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인류 공동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이해와 만남의 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1천년의 시간 동안 훼손 없이 지금까지 법보종찰 해인사에 보존되고 있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신비로운 보존과학의 비밀과 현대적 가치 등 팔만대장경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앞으로 흘러내리는 홍류동계곡을 따라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은 길을 재촉한다. 합천군은 홍류동계곡을 따라 해인사 소리길을 만들어 놓았다.
◆합천 팔경 중 으뜸인 홍류동(紅流洞)계곡
계곡을 흐르는 물이 푸르지 않고 붉게 보인다.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광풍처럼 몰아치고 단풍이 붉어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는 계곡. 사람들은 이곳을 홍류동계곡이라 부른다. 가야산 어귀에서 시작한 홍류동계곡은 해인사 입구까지 4㎞가량을 흐른다.
진달래와 철쭉이 피는 봄, 하얀 눈이 뒤덮인 겨울, 천년 노송이 푸름을 더하는 여름도 좋지만 홍류동 가을은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가을 홍류동 계곡은 합천 8경 중 제3경으로 꼽힐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홍류동계곡은 빼어난 경관과 맑은 물로 문인 묵객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요즘 비가 제법 온 뒤라 홍류동계곡의 물소리는 장엄하고 우렁차다.
홍류동계곡의 물소리는 계곡 속에 박혀 있는 바위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육산의 골짜기로 흐르는 물은 땅속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암산의 물은 바위에 부딪히면서 튕기고, 튕겨 올라간 물줄기는 물보라로 변해 떨어지면서 다시 물살에 몸을 섞는다. 때론 푸르렀다가 어떤 때는 옥색인 물 더미는 모든 걸 삼켜버릴 듯 위압적이다.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면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계곡 양옆으로 청정한 기운을 뿜어내는 천년 노송들이 위엄 있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골짜기를 메우고 있는 흰 너럭바위들과 그 사이를 흐르는 맑디맑은 옥류(玉流). 계곡 곳곳을 들썩이며 세차게 흘러내리는 야트막한 폭포와 선녀들의 목욕탕처럼 움푹 파인 소(沼)도 아름답다.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한국 4대 계곡의 하나로 손꼽힌다.
가야산 정기가 녹아 흐르는 홍류동계곡의 가장 큰 매력은 속세의 때를 씻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야산과 인연을 맺고 있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숨결이 녹아 있다.
소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나 고와 매일 그 물소리를 듣다 자신의 귀가 먹는 줄도 몰랐다.
하루하루 정취를 더해가는 홍류동계곡. 나무와 물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가을이면 홍류동계곡의 단풍은 다른 어느 곳보다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천년의 고고한 세월을 담은 해인사 소리길
새소리, 물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단 하나의 음절이 되는 길. 해인사 소리길. 이 길은 총 7.3㎞ 구간이다. 여기에 소리(蘇利)는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뜻. 불가에서는'극락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도 있다.
합천군은 2011년 대장경테마파크 맞은 편 각사교에서 홍류문까지 4.2㎞에 1구간인 홍류동여행, 홍류문에서 명진교까지 1.5㎞에 2구간인 발자취를 찾아서, 명진교에서 치인교까지 1.6㎞에 3구간인 비경을 찾아서, 영산교에서 해인사까지 1.2㎞에 4구간인 천년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해인사 소리길은 홍류동계곡을 따라 나무다리와 데크 등으로 단장해 놓아 누구나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천년의 고고한 세월을 담은 '해인사 소리길'은 세파에 시달린 여행객을 자연의 품속으로 안내한다. 수백 년 된 송림 숲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공기와 웅장한 바위를 휘감아도는 청아한 물길, 폭포, 산새 소리와 해인사의 풍경 소리로 마음을 씻어내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홍류문을 지나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최치원 선생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 농산정(籠山亭)으로 가는 농산교. 선생이 바둑과 차를 벗하다 바위틈에 신을 벗어놓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농산정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옆에 흐르는 홍류동계곡에는 최치원 선생이 지은 시와, 최치원 선생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농산정이란 명칭 또한 최치원 선생이 홍류동계곡 바위에 새긴 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홍류동계곡과 어울려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나타내고 있다. 정자 건너편에는 치원대 혹은 제시석이라 불리는 석벽이 있고, 거기에는 고운의 칠언 둔세시가 새겨져 있다.
삼국사기에 '고운 최치원은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가야산 깊이 들어가서 지내다가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기록돼 있다.
천년고찰 해인사(海印寺)의 주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에서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장경판전 가는 길. 작은 언덕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학사대(學士臺)다. 학사대라는 이름은 고운이 역임한 신라 한림학사란 벼슬에서 따왔다. 학사대에는 거대한 전나무 하나가 위엄있게 서 있다. 고운이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수령이 1천년 이상 된 고목이다. 그래서 이 전나무를 일러 고운 선생의 '지팡이 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높이 약 30m, 둘레 5.1m 정도 되는 이 고목은 나무줄기가 지상 10m 높이에서 두 개로 벌어져 있어 신비롭다.
해인사 아래 마을인 치인리도 고운의 이름인 치원에서 유래했다. 치인리 서편에는 치인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그 끝자락에 고운암(孤雲庵)이 있다. 고운이 말년에 이곳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그의 호를 따서 암자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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