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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서병오(1862~1936) '타분입산'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먹, 136×34㎝, 개인 소장
종이에 먹, 136×34㎝, 개인 소장

난분 하나를 그린 석재(石齋) 서병오 선생의 73세 작품이다. 간결함 속에 무르녹은 개성미라고 밖에 표현하기 어려운 대가의 만년작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드러난 그림이다. 평범한 화분에 담긴 키 큰 난초는 한 가운데 자리 잡았고, 유난히 길고 좁은 화폭을 단순하게 구성해 담담하고 세련된 화면을 이루었다. 짙고 강하면서 부드럽게 가라앉은 먹색으로 난초 잎을 좌우로 길게 뻗어낸 약간의 떨림이 있는 무심한 필치는 초탈한 멋스러움을 선의 느낌으로 보여준다.

사군자그림의 주제는 군자(君子)이다. 불굴의 의지를 지닌 매화의 설리개화(雪裏開花), 고독한 향기를 지닌 난초의 공곡유향(空谷幽香), 대기만성으로 가을꽃을 피우는 국화의 오상고절(傲霜孤節), 사철 변치 않는 대나무의 녹죽의의(綠竹猗猗) 등은 군자라는 인격적, 이념적 가치와 매난국죽의 생태를 동일시한 것이다. 이 주제는 군자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삼은 식자층에서 나오게 되었다. 지필묵으로 공부하며 시를 짓고, 글씨를 쓰던 그들은 묘사법을 배운 적이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군자는 간단한 먹그림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평생 손에 쥔 붓(筆)과 먹(墨)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필묵의 수준에 대해서는 도사들이었다. 무어라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한 지성의 뼈(骨)와 피(血)의 개성이라고 할 필묵 자체의 아름다움이 문인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화제는 즐겨 인용하던 청나라 양주팔괴 중 판교 정섭의 시를 '타분입산'(打盆入山) 네 글자로 줄인 '화분을 깨트리고 산으로 들어가리라'이다. 난을 산에서 데려와 화분에 모신 것은 향기 때문이다. 향기에 대해 말하자면 난초를 따라갈 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유란(幽蘭), 향란(香蘭), 향조(香祖), 향지조(香之祖), 제일향(第一香) 등의 이름이 있지만 난초꽃 향기는 어떤 이름과 말로 그 느낌을 형용하기 어렵다. '물을 주고 볕을 쪼여주고 잎을 닦아주고 조석으로 시중'드는 일은 곧 나의 심신을 기르는 일이어서 '양란이양신'(養蘭而養身)이라고 했다.

석재선생은 지필묵을 필기구로 사용한 서화시대 인물로 한시, 서예, 그림을 다 잘한 시서화 삼절의 근대기 사군자 거장이다. 2012년 대구의 뜻있는 인사들이 석재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이후 해마다 기념전과 현창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7월 30일부터 8월 11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서병오, 김진만 두 선생과 석재문화상, 석재청년작가상 수상 작가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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